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3)

 

안티 히어로, 네이머

 

1939년 말의 가판대로 가보자. 도시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그 가판대. 우리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가판대에서 읽을만 한 만화가 있는지 둘러본다. 수퍼맨은 엄청 재밌었고, 배트맨은 마음 속 무언가를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그 둘을 모방한 만화들도 새로 나온 나를 사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물론 수퍼히어로라고 불리는 최신 트렌드 장르 외에도 유머나 우화, 공포 내지는 모험물 같은 장르의 만화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트렌드는 트렌드다. 출판만화 사업을 한다고 하는 회사들마다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일단 내놓고 보고 있다. 그렇게 우후죽순 생겨나는 새 만화 잡지 중에서 뭔가 끌리는 느낌의 제호가 있다. 왠지 미래에 크게 쓰일 것 같아 보이는 그 제목은 마블 코믹스. 직감을 믿어 보자. 이걸 집어 들어 10센트를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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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 #1 이슈. 이 잡지의 제호가 마블 코믹스 회사명의 유래가 된다.

 

마블 코믹스 #1은 1939년 10월이 발매 날짜이며, 실제 배포는 유통에 드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그보다 한두 달 빨랐을 것이다. 어쨌든 마블 코믹스 #1에 실린 여러 편의 수퍼히어로 만화 중에서, 당신을 가장 쉽게 몰입시킨 작품은 아마 특정 두 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른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열광한 작품이 그 둘이니까.

 

하나는 칼 버르고스가 만든 휴먼 토치 Human Torch 가 등장하는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빌 에버렛이 만든 캐릭터가 등장한다. 현재는 잘 쓰지않는 히어로 네임은 ‘인간 잠수함’이라는 어감의 서브-마리너 Sub-Mariner, 본명 네이머가 등장하는 만화다. 그리고 네이머의 이야기 전개는 매우 신선하다. 시작부터 미국인 잠수부 두 명과 수중전투를 벌이고 있다. 수중인류인 네이머는 심해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종족 특성 덕에 강력한 힘과 민첩성과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연변이로 인해 비행능력도 갖고 있었다. 네이머는 자신의 무력과 초능력을 이용해 잠수부 두 명을 간단히 살해한다. 자신이 죽인 시신을 트로피 삼아 집으로 가져가고, 그를 맞이한 어머니가 이 만화의 배경 스토리를 설명한다.

 

수중인류는 아틀란티스라는 제국을 세워 잘 살고 있는 지상 인류의 형제 종족이다. 과거의 어느 날, 아틀란티스의 공주 펜 Fen 은 남극해에서 폭발물을 터뜨린 지상인들의 배에 승선한다. 폭발로 인해 다수의 아틀란티스인들이 사망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파악을 위한 스파이 임무였다. 영어를 못하는 신비한 역할로 정보를 수집하던 펜은 하필 착하고 자상한 선장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임신까지 한다. 자신의 신분은 알려주지 않은 채.

 

지상인을 남편으로 맞았으니 적대감이 줄어들 법도 하지만, 어머니 펜이 가진 황족으로서의 책임감은 무척이나 강했던가 보다. 펜은 남편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의 부대를 불러 승무원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어머니가 지닌 전사의 심장은 아들 네이머 왕자에게도 이어졌다. 특히 지상에서 활동이 제한되는 다른 수중인류와는 달리, 혼혈인 네이머는 지상에서도 무리 없이 활동이 가능하다. 이제 네이머는 조국을 염탐하고 공격한 지상인들에 대해 전쟁을 결의한다.

 

수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알고 이 이야기를 접하면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동기는 원한과 증오, 수단은 전쟁과 살인이다. 연출 또한 심해를 무대로 한 공포물 같다. 물론 공격당하는 미국이 아니라 공격하는 아틀란티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네이머는 정당한 보복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자랑스러운 왕자다. 하지만 만화를 읽는 미국인 독자에게는 미국을 향해 전쟁과 테러를 가하는 전범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묘한 쾌감이 있다.

 

네이머는 배트맨 이상의 통쾌함을 주는 안티 히어로로서 기획되었다. 당대 미국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가해온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방법 중 하나였다. 수퍼맨을 보면서 그 선하고 굳건한 모습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배트맨이 범죄를 파헤쳐 범인을 찾아내고 그를 징벌하는 모습에 즐거워할 수도 있다. 네이머는 배트맨이 사용하는 폭력보다도 더 진한 폭력을 사용한다. 그 모습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이놈의 망할 세상, 그래! 그렇게 다 죽여 버려!’를 중얼거릴 때의 쾌감과 비슷하다. 문학의 치유 기능엔 여러 형태가 있는 법이다.

 

이 안티 히어로를 만든 작가는 빌 에버렛이다. 에버렛 가문은 300년을 이어 내려온 뼈대 깊은 가문이었다. 하버드 학장과 메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낸 인물도 있는가 하면, 그의 아들은 메사추세츠 주의 하원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에버렛의 조상에 시인 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도 있다. 미국인인 에버렛이 미국을 공격하면서 데뷔한 안티 히어로를 만든 것은 영국 낭만주의 시문학의 첫 거물이었던 블레이크가 성경을 믿었지만 당대의 교회를 가열차게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횃불, 휴먼 토치

 

한편 마블 코믹스 #1에는 에버렛의 네이머 외에도 대중들이 열광한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었다. 에버렛의 동료인 칼 버르고스가 창조한 휴먼 토치다. 휴먼 토치는 마블 코믹스 #1의 표지에 실려 있는, 전신이 불타는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는 인조인간이다.

 

피니아스 호튼 Phineas T. Horton 박사가 개발한 안드로이드인 휴먼 토치는 뉴욕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취재진과 관중을 무섭게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온몸으로 불을 뿜고 폭발을 일으키는 인조인간이라면 무서운 것이 당연하다. 콘크리트로 암매장당한 휴먼 토치는 간신히 탈출하고, 범죄자들과 엮이는 경험을 통해, 자기 능력을 조절하는 방법, 사회를 어지럽히는 범죄의 존재, 범죄를 막고 싶은 자신의 선한 본성 등을 깨닫는다. 제임스 해몬드 James Hammond 라는 가짜 신분으로 경찰이 되어, 휴먼 토치라는 히어로 활동을 병행한다.

 

후일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더 유명해진 다른 캐릭터와 구별하기 위해서, 오리지널 휴먼 토치 혹은 1대 휴먼 토치로 부르는 이 캐릭터는 전통적 영웅에 속한다. 즉, 안티 히어로인 네이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네이머가 테러를 가하는 도시는 뉴욕이었는데, 하필 휴먼 토치가 경찰 겸 히어로 활동을 하는 도시도 뉴욕이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1940년, 수퍼히어로 장르 최초의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졌다. 수퍼맨과 배트맨의 크로스오버 이슈가 1941년에 발간되었으니 1년이나 빠르다. 마블 코믹스는 #2부터 마블 미스테리 코믹스 Marvel Mystery Comics 로 제호를 바꾸었는데, 휴먼 토치와 네이머는 #8과 #9 이슈에 걸쳐 전투를 벌인다. 네이머가 지상 세계를 어느 정도 학습하고 적대 행위를 자제하게 된 후에도 둘은 친해지지 못하고 앙숙 관계를 유지한다. 각자의 능력부터가 물과 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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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의 수퍼히어로 크로스오버, 휴먼 토치 vs 서브마리너 네이머

 

1939년 말부터의 빌 에버렛과 칼 버르고스는 커리어 성공을 누리고 있었지만, 연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반대로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며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엑소더스의 종착역, 타임리 코믹스

 

1938년의 에버렛과 버르고스는 센타우르 퍼블리케이션즈 Centaur Publications 라는 회사와 계약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센타우르는 말콤 휠러-니콜슨의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사람들이 차린 신생 회사였는데, 이 퇴사자들 중 한 명인 로이드 재킷 Lloyd Jacquet 이 둘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넸다.

 

“만화출판 일이라는 거,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가 센타우르에서도 나가서 우리만의 회사를 차리고 싶거든요? 딱히 클 필요도 없고, 배급사에 작품을 공급하는 생산 전문 회사를 생각하고 있어요. 센타우르 창립자 중에서도 나랑 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들도 함께 할래요?”

 

모름지기 이렇게 쉽게만 얘기하는 사업가를 조심해야 하지만, 에버렛과 버르고스를 비롯한 센타우르의 작가들과 직원들은 오케이를 해버렸다. 얼마나 낭만적인 얘기인가. 작가들과 편집자들만 모여서 열심히 만화를 만드는 단란한 회사라니. 이런 비전을 제시한 편집자 출신의 재킷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퇴사자들의 회사에서 다시 퇴사해 새 회사인 퍼니즈 INC. Funnies INC. 를 만들었다. 이름만 보면 Famous Funnies 를 출판하는 회사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생 중에서도 신생인 회사였고, 자본금이 적은 탓에 환경은 좋지 않았다. 사무공간만 간신히 구했을 뿐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할 공간이 없었다. 작가들은 주로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 원고는 한 작가의 집에서 다른 작가의 집으로 왔다갔다했다.

 

재킷의 장담과는 달리 유통 라인 또한 찾기가 힘들었다. 이래서 낭만적인 비전만 제시하는 사업가는 경계해야 한다. 재킷은 휠러-니콜슨의 고생에서 참고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유통망을 따내기 위한 퍼니즈의 첫 번째 시도는 극장 가판대에 홍보용 만화를 배포하는 것이었다. 모션픽처 퍼니즈 위클리 Motion Picture Funnies Weekly 라는 제목의 이 잡지는, 그러나 출판만 되고 유통이 되지 못했다. 이걸 받은 극장주들이 가판대에 배포를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상황이 이러니 결국 직원들과 작가들은 직접 출판본을 차에 싣고 거리와 극장의 가판대를 돌아다니면서 즉석 판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빌 에버렛은 몇몇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만들어 실험하던 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네이머의 초기 버전을 모션픽처 퍼니즈 위클리 #1에 실었다. 물론 배급에 실패한 탓에 #2부터는 표지 기획만 있었을 뿐 실제 제작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1974년에 기적적으로 남아 있던 판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소수의 구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던 잡지였다. 빛도 보지 못한 #1 이슈의 출판 시기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오직 1939년 초라는 것만 알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의 데뷔인 3~4월보다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네이머는 역사상 두 번째 수퍼히어로로 강력히 추정된다. 이 유통되지 않은 이슈 덕분에 네이머는 함께 마블 코믹스 #1에서 데뷔한 다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보다 데뷔도 빠르다. 네이머는 마블 역사상 최초의 수퍼히어로다.

 

역사적 영광은 차지하고, 당시 퍼니즈의 앞날은 어두웠다. 재킷은 계속해서 작가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당시 퍼니즈와 계약했던 작가들 다수가 창작 과정에 재킷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했음을 증언했다. 지나치게 단란한 가족은 사생활이 없어지는데, 그건 가족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이러니 에버렛과 버르고스가 선택을 후회할 만도 하다.

 

작가 숫자는 충분하고 그 평균 실력도 높아서 컨텐츠는 충분한데 판매 루트가 없어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퍼니즈에게 어떤 사람이 접촉해와서 ‘내가 그 만화들 팔아 보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는 후일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가 되는 마틴 굿맨 Martin Goodman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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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굿맨, 눈빛부터가 범상치 않다.

 

1908년에 태어난 마틴 굿맨은, 증언을 신뢰한다면, 무려 17남매의 장남이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족이다.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온 수퍼-대가족은 당연히 극도로 가난했고, 일자리와 거주지를 찾아 미국 전국을 돌아다니는 유랑의 유년기를 보냈다. 굿맨은 이 가난의 경험 때문인지 야망이 컸고, 거대 가족의 경험 덕분인지 사람을 잘 다뤘다. 성인이 되어 잡지 출판계에 입문한 굿맨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영 파트너 겸 공동 소유자까지 승진했다. 고작 30대에 도달한 위치였다. 공동 소유자 다음으로 승진할 위치는 하나였다. 독립된 회사를 혼자 소유하는 것. 그래서 굿맨은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퍼니즈가 제공하는 만화의 출판과 판매를 담당했다. 이제 에버렛과 버르고스는 후회를 멈췄다.

 

에버렛은 네이머를, 칼 버르고스는 휴먼 토치를 제공했다. 그 외의 여러 작가들이 만든 여러 만화를 엮어서 1939년 10월,  퍼니즈와 타임리의 합작 만화 잡지인 마블 코믹스 #1을 발매했다. 당시 굿맨은 다수의 펄프 픽션 잡지를 발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제호가 마블 사이언스 스토리즈 Marvel Science Stories 였다(여기서 마블 코믹스의 제호가 유래했다는 추측도 있다). 마블 코믹스는 성공을 거뒀다. 네이머와 휴먼 토치가 데뷔한 이 이슈는, 출처가 불확실한 기록에 의하면 초판 8만 부가 매진되었고 이에 #1을 11월에 추가 출판하자 8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이 두 달 연속으로 발간되었기에 #2 이슈는 12월에 발간되었다.

 

이 성공에 크게 고무된 재킷은 사업 파트너를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이 성공에 크게 고무된 굿맨은 컨텐츠와 작가들을 모두 자기가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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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로서 독립과 확장을 꿈꾸고 있던 굿맨은 자신이 새로 진출할 출판시장은 만화 시장이고, 자신이 다룰 주력 상품은 새롭게 뜨는 장르인 수퍼히어로 장르라고 확신한 것 같다.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는 직원 없이 마틴 굿맨과 그의 동생 하나만 소속되어 있는 페이퍼 컴퍼니였다. 회사의 모든 직책을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사실상 마틴 굿맨이라는 1인 그룹의 만화 부서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굿맨은 이 페이퍼 컴퍼니를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의 실제 회사로 확장시켰다. 1939년 말부터 1940년 한 해의 시간 동안, 그는 퍼니즈의 직원들과 작가들을 포섭하고 재킷을 압박하는 한편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를 타임리 코믹스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인력확보는 매우 쉬웠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로이드 재킷의 간섭에 신물이 나 있었고 직원들 다수는 재킷의 허세와 성질머리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수입에 있어서도 좋은 일이었다. 퍼니즈의 직원 급여 수준은 현재 알 수 없지만, 작가 급여의 경우는 기존의 출판사나 스튜디오가 지불하던 금액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다. 당시의 중견급 작가인 조 사이먼 Joe Simon 의 회고를 보자. 사이먼이 아이즈너-아이거의 스튜디오와 계약을 하고 일했을 때는 그림 파트만 맡았고 페이지당 원고료는 3.5달러에서 5.5달러였다. 사이먼이 퍼니즈에서 일을 받을 때는 페이지당 7달러를 받았다. 반면 스토리에서 레터링까지를 모두 해야 했다는 것은 함정이다. 굿맨은 사이먼에게 이렇게 말했다. “페이지당 12달러! 원고 받는 즉시 현찰 박치기로!” 스카우트에 응하지 않는 쪽이 바보였다.

 

직원들도 작가들도 반색하며 하나둘 타임리 코믹스로 넘어갔다. 에버렛도, 버르고스도, 재킷의 눈치를 살짝 본 후 타임리와 계약을 했다. 그 중 가장 빨리 넘어간 최고의 거물은 작가 겸 편집자인 조 사이먼이었다. 1939년 말에 넘어간 사이먼은 편집장 자리를 맡았다. 물론 사소한 함정은 있었다. 당시 막 시작한 타임리가 채용한 편집 인력은 사이먼 하나뿐이었다. 그 외의 작가들은 작가로서 계약했다. 계약 보유 작가가 넘쳐나게 된 굿맨은 이 인력들을 만화 외에도 자신의 기존 펄프 픽션 회사에서 발간하는 소설의 삽화 인력으로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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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조 사이먼. 들고 있는 책은 자서전이다.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만든 센타우르, 센타우르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만든 퍼니즈, 퍼니즈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입사한 타임리. 최초의 수퍼히어로 출판사에서부터 시작된 엑소더스의 끝에는 두 팔 벌린 마틴 굿맨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로이드 재킷은 1940년 말 모든 만화 컨텐츠의 권리를 타임리에 매각했다. 1939년 말에서 1940년 말에 이르는 1년 동안, 타임리는 수퍼히어로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조 사이먼은 커리어 내내 프리랜서 계약만 맺으며 떠돌던 유목형 작가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정착할 마음을 먹고 직원으로서 정식 계약을 맺은 회사가 타임리다. 사이먼은 첫 정착지인 타임리 코믹스에 훗날 큰 자산이 될 두 사람을 연결시킨다. 이 두 사람은 이후 수퍼히어로 장르의 최고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한 명은 굿맨의 처사촌, 어떤 증언에서는 처조카라고도 하는 스탠 리 Stan Lee 다. 본명이 스탠리 마틴 리버 Stanley Martin Lieber 인 1922년 출생의 이 10대 소년은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1937년, 15세의 스탠 리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주간 작문 콘테스트에서 3주 연속 우승을 했다. 처조카가 글을 좀 쓴다는 것을 굿맨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39년, 막 이직해 온 편집장 조 사이먼에게 스탠 리의 삼촌이 찾아와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17세의 조카를 채용해달라고 청탁했다. 실제로는 16세 반이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사이먼은 그를 편집 보조로 채용했다. 당시의 사이먼은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된다.

 

다른 한 명은 조 사이먼의 인맥인 잭 커비 Jack Kirby 였다. 두 사람은 출판용 코믹스와 신문 연재용 코믹 스트립의 제작과 유통을 하는 폭스 피처 조합 Fox Feature Syndicate 에서 처음 만나 절친이 되었다. 당시 사이먼은 프리랜서 계약직이었고, 커비는 소속 작가였다. 잭 커비는 당시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중견 그림 작가였는데, 폭스 조합에서 블루 비틀 Blue Beetle 이라는 수퍼히어로를 만들어 본 경험도 있었다. 현재 DC 코믹스 소유인 블루 비틀을 포함해, 커비는 여러 회사에서 여러 수퍼히어로 캐릭터와 폭넓은 장르의 만화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를 대표하는 업적은 마블 코믹스에서 조 사이먼과 함께 캡틴 아메리카를 만든 것과, 스탠 리와의 오랜 협업으로 마블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을 만든 것이다.

 

물론 1940년 시점에서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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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의 두 사람. 좌측이 스탠 리, 우측이 잭 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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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때 초반의 두 사람. 좌측이 스탠 리, 우측이 잭 커비.

 

 

 

대공황의 끝, 2차 대전의 시작

 

타임리가 등장하고 약진한 1940년쯤 해서, 미국인들은 차츰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공황이 끝난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온 힘을 쏟아 편 뉴딜 정책이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서서히 건져내고 있었다.

 

1933년부터 재임한 루스벨트는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금본위제를 중단해 통화를 안정시키고, 균형 발전을 꾀할 겸 강제적으로라도 자본 유통을 부추길 겸 정부 주도로 일자리를 만들 겸 테네시강 유역을 시작으로 대규모 토건 사업을 벌였다. 이 정책은 곧 복지 사업과 예술 진흥 투자를 확대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미국 복지 제도의 대표격인 사회보장법도 루스벨트 재임 기간에 생긴 제도다. 한편 시장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 증권법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했다. 소득세율의 상한이 79%까지 올라간, 일명 부유세가 도입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자본 유통을 돕고,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와 노동권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결실을 가져다주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말이었다. 하지만 불황에서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었다. 속도가 매우 느려서 국민들이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 경이 되어서였다. 아직도 대공황과 작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가 약간씩이나마 좋아지고 영화 시장과 출판만화 시장을 비롯한 대중문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은 다시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1941년 12월에 대공황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을 알리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비극적인 사건이 터진다. 진주만 공습이다.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시 경제를 돌리면서 완벽하게 대공황을 졸업하지만, 공습 자체는 비극적 전쟁의 한 페이지다. 무수한 생명이 사라진 전쟁이 국가경제를 구했다는 점은 역사 속의 잔인한 아이러니다. 그 점은 수퍼히어로 만화에게도 동일했다. 전시에서 수퍼히어로는 좋은 프로파간다 도구였다.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진주만 공습 한 달 전인 1941년 11월까지 수퍼히어로 시장에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마구 쏟아졌다. 특히 최초 캐릭터들의 뒤를 이어 DC와 마블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진 초창기의 핵심 캐릭터들이 1940년과 1941년에 출생 신고를 했다.

 

그리하여 수퍼맨이 탄생한 1938년부터 2차대전의 뒤처리가 마무리되는 1950년까지의 시기를 수퍼히어로 장르에서는 골든 에이지 Golden Age 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토대가 형성된, 빅뱅의 시대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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