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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략) 육군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8기보사단과 11기보사단을  키우려 하는지, 그리고 작년 연말까지 20기보사가 11기보사를 흡수하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으나 막판 홍천 주민들의 민원을 핑계로 20기보사를 슬그머니 해체하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7기동군단의 핵심인 20기보사를 해체하는 것은 굴러들어온 (8기보사·11기보사) 박힌 (수기사·20기보사) 빼는 

 

그는 “7기동군단의 핵심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창설한 수기사를 해체 대상으로 삼지 않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창설한 20기보사를 해체하려는 것도 의문

 

최근 5·18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5·18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20기보사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기무사령부가 2017 3 작성한 ‘전시 계엄  합수업무 수행방안문건을 시민단체가 공개하며 기무사가 ‘탄핵심판 기각 가정해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느냐

 

 문건에 박근혜 정권이 집회예상지역(광화문·여의도) 30사단 3 여단, 20사단 3 중대  무장병력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있는데 여기서 20기보사가  언급된 것도 ‘괘씸죄 걸려드는  영향을 미친  같다

 

- 주간 조선 2019. 3. 4일자 (통권 2547) 기사  발췌』

 

 

시작은 간단했다.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이 2사단을 해체하고, 공중강습부대로 개편하는 것에 대한 기사를 요청했다. 애초 계획은 연재 중인 국방브리핑 한 편으 내려 했는데, '보수매체'라 불리는 곳에서 2사단과 20기계화보병사단을 계속 걸고 넘어지는 걸 보니 이건 좀 길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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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핵심전력 날리는...육군 2사단 해체』

 

제목에서부터 ‘의도 손에 잡힐  느껴진다. 기사 내용을 보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①얼핏 좋은 계획으로 보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동부전선 핵심전력을 후방으로 빼고, 여기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는 후방 부대들을 뭉쳐서 새로운 부대로 포장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 통해 임기 중에 2 군단과 5 사단을 해체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이면 한국 육군 수는 38만여 명이 된다. 북한 육군에서 돌격대(건설전문부대) 35 명을 뺀다고 하더라도 2.5 1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된다. 이때 육군에서 강하기로 소문났던 부대들이 사라진다면, 군의 사기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매체 성격상,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기사다(그들도 살아야 하니까). 의견을 개진한 것이니 여기에 딴지를  생각도 없다. 다만, 이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 

 

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미 많은 보수층 인사들은,

 

문재인이 군대를 해체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고 한다.”

 

 주장의 근거가  주고 있다. 이런 논리전개를 보면서   숨을 토해냈다. 군사정보라는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생경하기에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일반적이다(새끈한 미다시에 ‘-’ 하고 넘어가는  대부분이다). 군사관련 이슈의 대부분은 최소한    전의 문제, 그리고 수   이후를 담보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무기 도입 기사 보더라도 도입 사업에만 10, 운영에만 20~30년이 걸리는 장대한(!) 사업이다. 하물며 무기 도입 사업에만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국방개혁.  중에 핵심이라   있는  구조 개편이 누구  명의( 사람이 아무리  통수권자라해도) 생각에 따라 쉽게 움직일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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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론부터 말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실행하려고 하는  구조 개편은 이미 노태우 정권 때부터 계획되고, 준비된 것들이다.

 

“30

 

 세대다. 지난 30  대한민국 국군은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내외적인 압박을 받아왔지만,

 

한반도 상황의 특수성

 

 말하며,  압력을 흘려왔다. 그러나 이제  압력을  이상 피할  없는 상황. , 막다른 골목에 몰린 거다. 이에 대해서는  장성들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사단  개를 해체하고, 지상작전 사령부를 만들고, 별들의 수를 줄인다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1953 7 27 이래로 가장  변화. 아니, 개혁의  가운데에 내몰린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해야  일이다.

 

지난 30년간 군대 안의 기득권층이 개혁에 저항했다! 이들은 청산해야  적폐대상이다!”

 

이런 반응을 보일  같은데, 너무 자학하거나 군을 비난하지 말자. 이건 우리나라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기사에서  개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리고 이게  필요한지, 앞으로 우리나라 군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어떤 나라든  개혁은 힘들다. 미국의 경우는  100년이나 걸려서 겨우 완성한   개혁이다.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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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육군과 해군이 싸우지만 않았다면, 전쟁을  빨리 끝낼  있었다.

-  미국 33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해리 트루먼의 탄식이다.

 

 육군과 해군의 알력 다툼은 유명했다. 2 대전 당시 육군의 맥아더 원수와 해군의 니미츠 제독이 태평양을 반으로 갈라 작전구역을 설정하고, 도쿄를 목표로  태평양 레이스를 벌일 때, 이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도 중요했지만, 서로에 대한 견제와 알력다툼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물론, 건전한 경쟁은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고 확실한 결과를 담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절 미국의 육군과 해군은 건전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질시와 견제로 발목잡기 바빴다.

 

문제는 이게 특정 개인(맥아더와 니미츠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군 전체에 만연돼 있었고,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독립전쟁까지 이어진다는 거였다.

 

육군이 해군 전력을 자군에 예속시키려는 간계를 꾸미고 있다.”

 

1812 미영 전쟁 당시(2 독립전쟁이라고도 불린다),  해군의 촌시 대령이 내뱉은 말이다.  해군과 육군은 창설 초기부터 반목과 갈등을 이어왔다. 이런 갈등이 전쟁터에서 확실히 드러났던  스페인 전쟁이었다.

 

1898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였다.

 

(당시 미국은 대서양에서 미국을 지켜  ‘1 저지선쿠바와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인 필리핀과 괌을 확보하고 싶었는데, 그걸 가지고 있었던  스페인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반대여론이 있었지만, 어느새 미국은 ‘제국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해군은 자기 몫을 훌륭히 냈다. 초반부터 스페인 해군을 몰아 쳤다. 전쟁이 시작된  불과 1주일 만에  아시아 함대는 스페인 함대를 급습. 장갑순양함 2척과 순양함 5, 수송선 1척을 격침시키고, 항복을 받아냈다.  한방으로 미국은 서태평양에서의 제해권을 손에 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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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육군은 사정이  달랐다. 물론, 분전하긴 했지만 양이나 질에서 스페인군을 압도   있는 상황에서도 밀리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쿠바의  후안 언덕 요새 전투(San Juan Hill order of battle)였다. 미군 병력은 10배나 많았지만, 사상자 숫자는 스페인군보다 3배나  많았다. 이런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당시  해군이 육군보다 훨씬   훈련됐던 탓도 있지만, 육군과 해군간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아예 각자 작전을 펼쳤다.

 

해군은 육군과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스페인 해군을 격파했다. 승리한 것까지는 좋은데,  다음이 없었다. 제해권을 잡았으면 항구를 접수하고 병력을 상륙시켜 점령을 해야 하는데, 점령할 ‘육군 없었다. 결국 육군이 항구에 상륙한  해군이 승리  후,  달이 흐른 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페인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육군과 해군은 각자 ‘알아서컸다.

 

해군은 바다에서 노는 애들이니까 우리랑 상관없어.”

 

육군이 바다에 나올  없을 테니까 우리랑은  상관 없겠지.”

 

그럼 이들을 통합해서 지휘할 총사령관은? 독립전쟁 당시의 영웅인 워싱턴이 있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총사령관이란 이름은 명목상의 직책이 됐다. 남북 전쟁이나 멕시코 전쟁에서 미군 체제는 어딘가 나사 빠진 모습이다. 육군 사령관이라고 해봤자 일종의 ‘자문위원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에 2사단 사단장으로 얘가 괜찮을  같은데, 어떻게   보실래요?”

 

이번에 게티스버그에서 제대로   붙을  같은데, 있는 병력 모두 몰아넣으시죠?”

 

대통령에게 군사적 자문을 하는 역할 정도?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모든 병력을 장악하고, 유기적인 작전을 준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남북전쟁 진행과정 중에서 총사령관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는 판단이 서서 총사령관에게 힘을 실어줬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북군은   고생했을 거다.

 

(미국에서 ‘총사령관이란 이름이 애매한 , 정치적인 견제도 어느 정도 작동했다   있다. 미국은 ‘전쟁영웅 되면  명성을 발판으로 대통령으로 출마해 대권을 쟁취하는 경우가 많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도 그랬고,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그랜트도 그랬다. 2차대전의 영웅 맥아더도 전쟁 말기에는 대권행보를 보였고,  다른 영웅 아이젠하워는 결국 대통령이 됐다.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은 총사령관 자리에 앉은 인물을 ‘잠재적 라이벌 보는 경우가 많았다).

 

육군 총사령관도 제대로 병력을 수습하지 못하는데, 해군을 챙길 겨를이 있을까? 남북전쟁 당시 미국 육군과 해군은 전혀 다른 길로... 그러니까 별개로 ‘알아서컸다.

 

물론, 이때까지는 그렇게 놀아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전쟁의 상황이 충분히 감내할 정도였고(육군의 경우 상대했던 적이 인디언 아니면 멕시코군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화력이나 작전구역, 통신 수준을 고려한다면 육군과 해군이 연계해서 싸울만한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덜컥 스페인 전쟁이 터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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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안 언덕 요새 전투(San Juan Hill order of battle)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