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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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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처럼 매년 가치평가를 당하게 된다. '고과'라는 것이 그러하고 사내에서 책정되는 나라는 사람의 몸값이 그러하다. 그렇게 정해진 조직 나의 가치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대략 3 내리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여느 상장 주식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상장 폐지된. 정확히 말해, 스스로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간 이곳에서 만난 수없이 많은 사람들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멋모르고 회사를 다닐 적엔 다들 마음으로 퇴사하는 알았는데, 철들고 보니 몇몇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도저히 어쩌지 못해하며 다들 이곳을 떠나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기업이라는 생태계는 확실히 안정적인 울타리가 맞는 사실이다. 때로는 그깟 명함 장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들 저러나 싶다가도 당장 은행의 대출 문턱부터 낮아지는 보면 말이 들어가곤 하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안에서 오래 버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당연한 논리다. 회사 안의 직급체계는 피라미드 형태고, 위로 올라갈 수록 자리가 줄기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서 사라진. 각자의 사정이야 어쨌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이다(당연히 이 '성과'라는 건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하지만 드물게도 예외는 있다. 시장에서 잊혀진 지 오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굳세게 버티는 사람들 말이다

 

2.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

 

나는 이들의 서식을 도무지 이해할 없었다. 그들을 보며 속으로 '어떻게 저런 취급을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지?' 했다. 걔중엔 누구보다 회사에 많은 기여를 했던 사람,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지킨 사람, 지표론 측정할 수 없는, 동료들의 시너지 효과를 2배, 3배 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뭣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옆에서 보는 사람조차 기분이 더럽고 인간성이 사라질 것 같아 어떻게 참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고 보니, 이들에게는 회사에서 구겨지는 자존심보다 중요한 있기에 이곳에서 버티는 거였다. 그렇다. 가족이다. 당장 월급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으면 자존심 같은 어째도 좋은 사람들인 였다.

 

물론,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3.

나는 입사 이래 여태 지내오다 삐끗했다. 그놈의 신사업인지 뭔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고, 그 즈음 3 내리 성과를 못내다, 급기야 지난 해에는 사고까지 제대로 조직 내에서 나라는 사람의 상장폐지까지 거론됐다.

 

한데 놀랍게도 내가 한참 일할 모습을 기억해 사람들이, 그야말로 서로 서로 ' 보증' 줘서, 아슬아슬하게 퇴사를 면하고 다시 자리에 앉을 있었다. 물론 하한가는 피할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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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시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해야겠다

 

지난해 나는 (앞서 말했지만)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하고 업무용 차를 몰고 오다 추돌 사고를 냈는데, 일에 대해 사내에는 음주에 의한 사고라 소문이 금새 파다하게 퍼졌다(지금도 그분이 당시에 그렇게까지 했는지 의아하지만). 당시 우리 본부 인사 담당자는 소문을 듣고 일하다 말고 굳이 파손된 차가 맡겨져 있는수리센터까지 찾아가 블랙박스를 뜯어와 본사 인사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술을 마시고 사고를 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나는 음주사고를 아니었다. (약이든 술이든, 그거나 그거나인데, 당시에는 이게 민감한 사안이었다) 당시 처방 받은 정신과 졸피뎀이라는 약이 있었고, 약을 단기간에 과다 복용해 사고를 낸 였다. 지난해 사고를 내 전까지 약에 이렇게 무서운 부작용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일을 계기로 사내 익명게시판에 누군가 나를 거론했, 조회수는 게시판이 생긴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건을 보고 충격에 빠진 나는 한동안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결국 대인기피에 걸렸는데 여태 완치가 되지 않아, 요즘도 가급적이면 회사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가지 않고,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은 퇴근 시간은 피해 다닌다.

 

그 일은 순식간에 나를 마녀로 몰고 갔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문은 어느 순간 사실이 돼 버렸다. 내가 아무리 의사의 처방과  병의 치료 내역까지 챙겨 보여줘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당시 나를 오래 봐온 팀장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아픈 사람들 모르지? 제발 주변 사람들한테 아프다고 하고 다닐래? 아무도 사정을 모른다. 나도 미칠 같다. 그러니까 제발 하고 다녀라 "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보는데 앉아 울었다. 그러자 같은 층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하나 울고 있는 나를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다. 마침 책상 부근에 문서 세단기가 있었는데 내가 울고 있다는 소문이 중계 됐는지, 어디선가 모두 종이 장씩을 들고 나타나 문서 세단기에 종이를 갈아 넣으며 곁눈질로 울고 있는 나를 구경했다. 

 

당시 모습을 보다 못한 옆자리 대리가 내게 이렇게 메신저를 보냈다. "신경쓰지 마세요. 제가 내일 문서세단기 방향 바꿔 놓겠습니다." 글을 보니 그야말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기어이 친구의 부축을 받고 함께 창고에 들어 엉엉 울고야 말았다.

 

후로 나는 달간 측의 강도 높은 조사에 응했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제출했다외려 답답하고 억울해진 내가 근태 관련 억측에 대한 소명을 위해 통신사까지 찾아가 그간 통화한 기지국 내역까지 출력 사측에 제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이 믿고 싶은대로 믿었다아무튼 일도 결국 내가 어떤 식으로든 '처벌' 받자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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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려서부터 나는 감정을 조절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나보다 배 덩치  오빠한테 얻어 터져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겠지. 95년에 삼풍 사고를 겪고도 그랬던 같다. 혼자 있을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태연한 괜찮은 척 했다.

 

모르겠다. 엄마의 기억 속에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울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온 몸에 열꽃이 피어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생글생글 잘만 웃었다는 얘기를 여러  걸쳐 들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나는 울지 않는 것이 나를 키우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 여겼던 같다.

 

지난해 나는, 그 일을 통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이 정리되고 보니,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얘기를 나쁘게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욕을 아니라, 내가 여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 내가 친하다고 생각해 곁을 내어 사람들이 얘기를 그렇게 하고 다닌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른 무엇보다 사실이 힘들었다.

 

파란이 지나가고 소문이 가라앉자당시 멋모르고 함께 우르르 몰려와 내게 돌을 던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고그때부터 하나 내게 양심선언 비슷한 해오기 시작했는데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후로 나는 조직생활의 자세를 고쳤다. 태도도 돌아봤고, 관계도 하나하나 조정했다. 그러자 누가 일을 주도했는지 원치않게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됐고, 중복된 다수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재차 확인하게 됐다.

 

 

5.

나는 오랫동안 이들이 사과해오길 기다렸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었다. 일단 저들은 나를 몰랐다. 모르면 그럴 있다아무도 내가 아픈 몰랐으니까 그럴 있었다 생각하며 계속 기다렸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들은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나를 조직에서 영원히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었다그래서 알게 됐다. 사과할 아는 사람들 같으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걸,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사과할 줄도 모른다는 걸.

 

후로 나는 내가 벌인 일은 스스로 정리하자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 평가도 내가 조정하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를 악물고 일해 지난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미친 듯이 일했다( 연말이 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기한이었는데, 뜻밖에도 일이 일찍 마무리됐다)

 

그간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청소 노동자분과 함께 직장 출근했고, 날이면 날마다 52시간을 넘겨 일한다고 인사팀에서 경고 메일을 받았다. 출퇴근 로그까지 조작하며 일했다. 이때 머릿속으로 한 가지 사실만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든 판정 시비 붙지 말고 깔끔한 한판승으로 이기. 지금 나가나 뒤에 나가나 달라지는 없으니 그렇게 년만 해보자.

 

게다가 지난 연말 조직 개편으로, 이들을 오도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의 가운데서 만나게 됐다. 내게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긴 사람들을 새로 발령받은 본부 안에서 마주치게 됐다는 말이다. 해서 나는 물러서지 않고 열심히 했다. 좋다. 보여주자. 입에 칼을 무는 심정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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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에는 보고 말 일을 후로는 두세 번씩 보며 했고, 퇴근하면서도 생각을 하고 자면서도 생각을 하다 눈을 뜨면 출근해 1초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압도적인 물리적 시간을 활용해 일하자 어쭙잖게 나와 비슷한 직급에서 대결구도에 있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찾아 일을 맡기게 됐기 때문이다

 

공적으로 내가 일들에 대한 평가가 다시 조정된 . 정확히 말해 내가 일에 대해 조직에서 포상까지 받게 . 승리에 도취된 나는 실로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집에  시원한 맥주를 따고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땅히 기뻐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리 기쁘지 않았곰곰이 생각해 보니, 싸움에서 이긴다 한들 지난 여름의 일들에 대해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상처는 있는대로 입었는데, ' 후에 하는 입에 발린 사과 같은 , 얼마 쥐어주는 심정으로 던져주는 보상 같은 거, 아무 소용없다'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누군가는 현대판 노예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각성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할지 모르겠으나 조금, 다른 감정이 섞여 있다. 나는 속으로 계속 되내일 뿐이었다.  게임의 시작은 너희들이 했지만 끝은 내가 낸다고. 그래야 다시는 너희들이 나같은 사람한테 이러지 못할 테니까.

 

누가 그랬다. 조명이 꺼진 다음에야 진짜 경기가 시작된다고. 조명은 꺼졌으니, 이제 진짜 게임이다. 

 

 

 

 

 

계속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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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산만언니입니다

 

저는 오랜세월 불행에 대해  다르게 고민했고우연히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말로   있는  글로  하지 못해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지난 연재글의 연장 선상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주변에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친구들을 섭외해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패널들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보니내용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고,  밝은(?) 목소리 탓에 더러 ' 본의' 오해 받곤 하지만나름 이를통해 성장하고 싶고전에 제가 글을 올리며 독자분들께 받았던 진심어린 위로와 감동에 보답하고자 기획한 팟캐스트니까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봐 주세요나름의 컨텐츠들이 전부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질문있으시면 molaseo99@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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