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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사나 SNS글에 갑론을박", "트와이스 사나 일왕 퇴위 심경글 논란"이라는 뉴스 제목에 황망하다. 잘잘못을 떠나 실체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기나 해야 이런 카피가 수면 위에 오를 수 있다. 사나의 글에는 문제는커녕 문제의 소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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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는 헤이세이가 끝나서 서운하고 어색하다고 했을 뿐이다. 헤이세이(平成)는 연호다. 하나의 시대일 뿐이고 거기에 정치적인 의미는 없다. 20세기에 태어난 한국인이 21세기를 맞았을 때 느꼈던 기분과 대동소이하다.

 

군주의 임기에 연호를 부여하고 시대를 가늠하는 관습은 동아시아가 공유하던 문화다. 군주제를 유지하는 일본에만 남아 현재의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법은 하다만, 어색함이 옳고 그름과 단죄의 문제로 비화될 일은 아니다.

 

애초에 서기란 것은 서양의 왕중왕, 예수 그리스도의 연호가 아니던가? 우리나라는 왜 '밀레니엄'에 그토록 호들갑을 떨었는가? 단기로 계산하면 2000년은 그냥 하나의 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서구의 제국주의 역사에 찬성해서 그랬단 말인가. 서세동점이 없었다면 우리가 서양력을 쓰지 않았을 것을. 또 거리에 나와 21세기를 맞았던 불교신자는 배교자란 말인가.

 

사람은 자기가 사는 시대가 셈하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이다. 모든 일본인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데, 사나만 콕 집어서 반성과 사죄의 의무를 지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논란 아닌 논란을 증폭시킨 한 댓글은 힌트를 주고 있다. JYP 인스타그램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외손녀가 남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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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세력 때문에 미군정 아래 금지됐던 연호가 일본에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일본이 이어오고 있는 군국주의의 역사를 한국에서 프로듀싱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멤버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역사 위에 자본을 두지 말 것. 사나씨가 한 경솔한 행동에 핵심 프로듀서, 소속사 창립자로서 책임 지고 사죄할 것. 부디 박진영씨가 올바른 소신을 가진 사람이길 믿겠습니다."

 

즉 연호는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인데, 사나는 군국주의의 피해를 받은 국가에서 활동하므로 특별히 부끄러워하며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박진영은 자신의 뜻대로 해야만 '올바른 소신을 가진 사람'임이 입증된다. 이쯤 되면 신이나 다름 없다. 피해자정치는 신성불가침을 주장한다.

 

서기 2019년도 서양 제국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연호겠다만, 우리 같은 개인이 시대가 부여한 셈법을 거스르는게 죄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나가 한 명의 개인으로서 지은 죄는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이돌 한 명의 멘트를 검열하기 이전에 국가 대 국가로 일본에 항의해야 한다. 

 

"귀국의 국민은 어째서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사나의 한국 활동이 문제라면 <어벤져스> 출연배우들이 방한했을 때 가장 먼저 노근리 학살사건(미군이 노근리 철교 밑에서 양민 약300명을 사살한 일-편집부 주)에 대한 사죄부터 해야 한다(특히나 캡틴 아메리카에게는 보다 높은 도덕적 순결성이 요구된다.). 그것이 이 땅에서 홍보활동을 윤허받기 전에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타인이 나고 자란 습속을 교정하거나 숨기라는 요구는 폭력이다. 피해자의 후손이라서 가해자의 후손을 통제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발상은 피해자정치의 계산법이다. 조상의 피해는 내 권력으로 정산받아 휘두를 수 있는 만기적금이 아니다.

 

강제징용 피해는 비극이다. 후손의 삶도 가슴아픈 가족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사나의 SNS 글은 그와 상관없는 별개의 일이다. 일제의 가해가 지워져선 안 되는 역사의 영수증이듯 피해자정치가 개인에게 저지른 가해도 조상의 죄를 물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 3 + 2 = ? >에 누가 답안을 쓰든 5가 아니면 오답이다.

 

일본의 우익이 연호를 부활시켰다는 이유로 강점기의 비극을 사나와 연결시킬 정도의 철저함이라면, 피해자정치의 세계관 최강자를 아이돌 외국인 멤버로 영입할 것을 추천한다. 바로 중국 난징 출신만 선발하는 방법이다. 이것만으로 인원충당이 어렵다면 <피해듀스 101>을 통해 K-pop의 윤리관을 재정립하는 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