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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 앞.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필요한 건 보편적 복지라니까?" 

 

그때, 노인이 그들 앞을 지나간다. 무엇인가에 물린 듯, 목에 피가 잔뜩 묻어있고 걸음은 느릿느릿하다. 남자 하나가 도와줘야겠다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코를 막고 인상을 잔뜩 꾸기며 돌아온다. 

 

 “왜 그래?”

 

 “노숙자야. 노숙자.”

 

 “진짜? 아 씨.”

 

 “난 다친 줄 알고 도와주려니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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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던 노인은 결국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 좀비로 깨어난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서울역>의 첫 장면이다.

 

다시 한번 두 남자의 얼굴을 보자. 불쾌하다는 듯 짜증스럽게 일그러진 표정. 저 얼굴이 두 남자만의 얼굴은 아닐 것이다. 노숙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도 그와 다를 바 없으니.

 

더럽고 나태하며 위험한 존재. '보편적 복지'의 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존재.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그리하여 그 생명의 존엄조차 의심받는 존재. 치료를 받지 못해 좀비가 되지만 어쩌면 이미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던, 노숙인이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

 

노숙인을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역, 영등포, 종로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노숙인이 있다. 그들은 서울의 배경이자 일상이다.

 

허나 어느 시점 전까지만 하더라도 '길거리에 누워 자는 사람'은 익숙치 않은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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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한국의 노숙인은 1997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원인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IMF 다.

 

IMF 사태로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회사가 부도난 넥타이 아저씨, 어음에 도장을 찍은 사장님뿐 아니라 일가족이 노숙을 하는 가족 노숙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영등포로 서울역으로 쏟아져 나오는 노숙인들의 모습에 '한강의 기적'으로 OECD 가입을 일군 '선진국' 한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론은 연일 노숙인 문제를 다뤘고,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오늘날 일상이 된 그 풍경을, 20년 전엔 그리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우리가 노숙인 문제에 무뎌지는 동안, 노숙인을 향한 우리의 태도도 변했다. IMF 사태라는 국가적 재난의 희생자에서 나태한 인간으로. 금모으기 운동으로 함께 힘을 모았던 이웃에서 사회의 낙오자로.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당연한 일상이 될수록 그들의 존재는 점차 잊혀졌고, 급기야는 목적도 의식도 없이 허우적거리는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뉴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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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tv>

 

2018년 10월,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노숙인 한 씨가 법인카드 한 장을 줍는다. 분실신고가 되지 않은 카드라는 걸 알게 되자, 한 씨는 '평소 좋아하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는 강원도 강릉, 경상도 통영, 전라도 여수, 충청도 공주 등 전국을 두루 여행하며 한 달간 200여만 원을 사용했다. 뒤늦게 카드 분실신고가 접수되고 한 씨는 경찰에 붙잡힌다.

 

이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내가 아주 당연한 것 두 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 노숙인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들도 자유와 여행을 원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말이다.

 

이러쿵 저러쿵 가치판단을 떠나, 궁금해졌다. 한 달간 전국 일주를 떠난 노숙인. 그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해서, 그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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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생님을 찾아서

 

한 씨라는 걸 제외하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를 찾을 방법이 있을까? 주거도 일정치 않으니 그야말로 막막한 상황이다.

 

우선 상황을 정리해보자. 기사에 따르면 한 씨는 18년 10월 카드를 습득했고, 한 달간 여행 후 경찰에 검거, 12월 검찰 송치됐다고 한다.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현재(19년 4월) 구속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사건번호를 알아내 그의 재판에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보통 형사사건은 3개월 이내에 처리하고, 이 경우 약식고소로 이미 재판을 끝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보이지도 않아 우선은 무식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처리했던 성동경찰서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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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경찰서 입구엔 이토록 무시무시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무려 사운드도 재생됐음). 내용의 진위를 떠나 민원인이 정말로 화가 많이 났다는 것 하나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민원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민원실에 갔더니 형사과를 안내해줬고, 형사과에선 강력반을 안내해줬다. 강력반에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알 수 없다며 형사지원과를 안내해줬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뺑뺑이. 경찰 역시 공무원이다. 물론, 형사지원과에선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다른 기자의 도움을 받아보려 기자실을 찾아갔지만, 잠겨 있었고, 두 시간을 기다려도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이 루틴을 반복하며 온갖 까칠함을 몸소 겪은 결과, 나는 경찰서 입구의 무시무시한 시위를 응원하는 입장에 서고 만 것이다(민족정론지 딴지를 까칠하게 대하다니, 그 배짱이 놀라울 뿐이었다).

 

경찰 사건, 검찰 사건 모두 온라인으로 조회할 수 있지만, 본인만 대상이고 그마저도 사건번호를 알아야 해서 재판을 찾아가기 위한 나의 노력은 시원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더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발로 뛰어서 그를 찾는 것이다. 

 

 

도시 속의 작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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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서초구에 위치한 센트럴시티터미널은 전국 최대 규모의 고속터미널이다. 이전엔 서울종합터미널로 불렸는데, 대규모 리모델링 이후 '센트럴 시티'라는 멋드러지는 이름을 지었다. 이 터미널을 신세계가 인수하며 상당히 럭셔리한 'One-stop 복합생활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저것 비싼 걸 많이 들여다 놨다는 뜻이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오른쪽엔 JW 메리어트 호텔이, 그 옆엔 파미에스테이션이라는 버스 타는 사람들은 비싸서 못 사먹는 푸드코트가 있다.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서 개미굴 같은 지하쇼핑센터를 헤매다 보면, 주변이 갑자기 황금색 자금성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센트럴시티터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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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삐까뻔쩍하게 생겼다

 

한 씨가 카드를 주운 곳이 바로 이 터미널이다. 그가 현재 구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그가 이곳에서 오래 생활했다면 다른 노숙인들과 알고 지냈을 테니 한 다리 건너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오후 1시, 터미널을 쭉 둘러봤으나 노숙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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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센터에 터미널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있는지 물었더니, 대합실에 가면 몇 명 만날 수 있을거라 했다. 직원은 혹시 취재하는 거라면 명함을 줘야 한다고 했고, 나는 순순히 명함을 건네줬다. 5분 뒤, 센트럴터미널 보안팀에서 잠깐 만날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찾아온 보안팀 직원 둘은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사진촬영은 자제해 달라고 했다. 본디 착하기도 하고 제복 입은 사람 앞에서는 더 착해지는 나는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많이는 찍지 않겠다는 뜻이여서 조금은 사진을 찍었다).

 

취재로 사람을 찾고 있다며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안팀 직원들에게 몇 가지 물을 수 있었고, 되려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고속터미널은 24시간 개방이다.

 

  - 20~30명 정도의 노숙인이 밤에 와서 잔다. 

 

  - 고속터미널 주변엔 무료급식소가 없어, 낮에는 서울역에 가고 밤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모하긴 하지만 한 씨를 찾는 방법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게 유일한 것 같았다. 늦은 밤 노숙인들이 모이면 한 씨를 수소문하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고요한 밤의 도시 속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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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터미널은 고요하다. 12시 광주행 마지막 버스가 떠나고 나면 터미널엔 두 부류의 사람만 남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터미널 직원들과 하루를 보내기 위해 터미널을 찾는 노숙인이다.

 

터미널을 쭉 둘러봤다. 노숙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대략 40여명쯤. 모두 대합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가끔씩 도착플랫폼에 온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으나 금방 다시 고요해졌다. 자는 노숙인의 코고는 소리 정도가 유일한 소리라면 소리였다.

 

자는 사람들을 깨워서 물어볼 순 없으니 일단 더 버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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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업체 직원들이 청소를 시작한다. 멈춰 있던 물차도 이때부터 터미널을 돈다.

 

노숙인 대부분은 잠을 자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두 명의 사람들이 깨어나서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터미널을 배회한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기도를 하는 노숙인도 있다. 

 

청소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평상시에도 이 정도(40명 가량)의 노숙인이 센트럴터미널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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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 노숙인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한 씨 나이대로 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다. 말 걸어볼 사람을 추려 얼굴을 익혔다. 혹여나 일어나면 말을 걸어볼 생각이다.

 

계속 터미널을 돌아다니던 중, 잠에서 깬 사람을 찾았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잠깐 스트레칭을 하려는 듯 주변을 서성거리다, 24시간 카페 창가에 앉은 여자손님들에게 말을 걸었다. 몇 번의 질문에도 대꾸가 없자 그는 다시 스트레칭 하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바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성함이 한xx 선생님 이거든요."

 

"한xx? 나는 처음 듣네. 얼굴을 아는가? "

 

"아니요. 성함이랑 나이만 알고 있어요."

 

"그러면 찾기 힘들재. 그 양반이 사고를 쳤는가?" 

 

"아 그건 아니구요. 사정이 있어서요."

 

"아 그랑가.. 지금은 다 자는 시간이재. 5시 되면 다 깨워."

 

"5시에 직원들이 깨우는 건가요?"

 

"직원들이 깨우지. 그라면 서울역으로 가. 거기 아침 먹으러."

 

"낮에는 다른 곳에 있다가 밤에 오시나봐요."

 

"밥 먹으로 가제. 서울역, 종로 5가, 영등포역에서 밥 먹어. 그라고 밤에 다시 여기와."

 

"서울역까지는 어떻게 가세요?"

 

"지하철 타고 가제. 돈도 없는 사람들이라 그냥 타. 돈이 없는데 어떡해."

 

"서울역 쪽은 자리싸움도 하고 그런다던데, 여긴 그런 게 없는 거 같네요?"

 

"여기서는 그런 거 없어. 술도 안 먹어."

 

"자리가 많아서 그럴까요?"

 

"대한민국 강남 고속터미널 아니여. 여기서 싸우면 바로 잡혀가지. 쫓겨나고. 그래서 여기는 깨끗하재."

 

낮이든 밤이든 센트럴터미널은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게다가 의자가 많아 바닥에 눕지 않을 수 있으니, 비교적 괜찮은 노숙 장소인 셈이다. 그러니 끼니는 서울역에서 해결함에도 굳이 고속터미널까지 찾아 오는 것이고. 

 

그래서인지 센트럴터미널엔 여성 노숙인이 많이 보였다. 40명 중 대략 15명 이상이 여성 노숙인이었으니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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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업체 직원은 대부분 빠졌고, 의자를 빼고 청소를 하던 통행금지 구역도 원상복구됐다. 노숙인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한 씨를 찾으면 이야기하며 나눠 필 생각으로 담배를 한 갑 샀다.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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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조명, 행선지 간판 등 터미널 여기저기에 불이 들어온다.

 

5시 30분 광주행 첫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터미널로 모여들었지만, 여전히 터미널엔 노숙인이 이용객보다 많다.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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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보안과 직원들이 나타났다.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큰소리를 외치며 안내데스크에 나타난 4명의 직원들은 터미널 사방으로 흩어져 노숙인들을 깨웠다.

 

노숙인들이 어깃어깃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한 번에 잠에서 깨지 못해 직원들에게 핀잔을 듣는 노숙인도 있었다.

 

직원들이 터미널을 한 바퀴 돌자, 티비가 켜졌고 뉴스가 흘러나왔다. 노숙인들이 티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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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가 열렸다. 어느덧 터미널엔 노숙인보다 이용객이 더 많아졌다. 

 

깨어난 노숙인 중 한 씨 나이대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으나, 다들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중 한분은 여기 오래 있던 양반을 안다며 60대 쯤으로 보이는 노숙인을 소개시켜줬는데, 그 역시 한 씨는 모른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센트럴터미널 노숙을 시작했다는 40대 아저씨는 이곳 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알려줬다.

 

"여기 사람들은 교류를 별로 안하는 거 같던데? 같이 술도 안 먹고 그러니까. 얼굴 아는 거 아니면 찾기 힘들거야."

 

 

05:30

 

광주행 첫차가 출발하고, 센트럴시티터미널은 낮의 모습을 되찾았다.

 

더이상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없겠다 싶어,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노숙인을 따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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