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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연쇄 테러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났다. 타인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한 법인지라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테러라는 참상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계속 이어져 간다. 나 역시도 점차 이방인으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하루의 일과를 힘겹게 해치워 나가고 있다. 정말이지 망각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심리기제.


프랑스는 테러가 할퀴고 간 상처를 치료하느라 바쁘다. 11월 27일 금요일, 프랑스 정부는 테러 희생자 추모식을 진행했으며,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이날 각 가정에 프랑스 국기를 게양할 것을 요청했다. 모든 이가 여기에 동참한 것은 아니며, 동참한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 (파랑, 하양, 빨강)을 창밖에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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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롭스(L’Obs)> 2015년 11월 27일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삼색기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보통은, 심지어 국가기념일에도 가정에 삼색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44년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1970년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사망했을 때, 혹은 더 최근에는 19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의 환희를 맛보았을 때 정도가 되어야 프랑스의 가정에 삼색기가 달렸다. 혹은 열렬한 스포츠 팬인 경우, 국가 대항전이 있을 때는 승리를 기원하며 삼색기를 달기도 한다. 언급한 경우들 대부분은 자발적인 게양으로, 이번 정부의 요청과는 또 성격이 다르다 하겠다.


물론, 국기 게양 정도는 국가에 대한 맹세와 국기에 대한 경례 등을 일상화하며 자란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점에서는 어찌 보면 새삼스러울 것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랑스 삼색기의 역사는 그리 간단치 않으며, 프랑스에서는 국기는 국가의 상징물인 동시에 전체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참고로 유럽에서의 민족주의(nationalisme)는 흔히 극우 혹은 나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다루어진다.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은 나폴레옹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1848년 혁명주의자들은 빨간색 깃발을 선호했다. 또한 삼색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우파 민족주의자들이었다. 비시 정권이 그러했고, 그 뒤를 이어 현재까지 극우 국민전선이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삼색기는 드골주의에 반대하는 68혁명 세력으로부터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는 특히 좌파들이 삼색기의 상징을 꺼려 왔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인 사회당 정부의 수장 프랑수아 올랑드가 이번에 삼색기에 보이는 반응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 장 가리그(Jean Garrigues)는 <르 파리지앵(Le Parisie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파리 테러 이후 현재 프랑스인들은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으며, 삼색기는 이를 상기시켜 줄 가장 좋은 상징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13일의 테러는 프랑스의 민주주의 가치를 공격한 것으로, 프랑스 국민의 연대를 꾀하기 위해 정부가 삼색기를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르 파리지앵> 11월 27일자).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인 내 눈에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현재 테러를 겪은, 또한 12월 지역 선거를 목전에 둔 프랑스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으로 보인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가 발생한 직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11월 19 일부로 이 비상사태는 3개월로 연장되었다. 찬성표 551표, 반대 6표, 기권 1표였다. 상원에서는 반대가 한 표도 없었으며 12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기권표 중 11표는 공산당에서 나왔고, 1개 표는 유럽녹색당에서 나왔다. 이제껏 올랑드 정부가 정책을 내면 사회당을 동정하는 이들만 찬성표를 던지고 우파 쪽에서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던 것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라 하겠다.


그에 따라 S파일(*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신상을 기록한 파일)에 등록되어 있는 이들에 대한 특별 감시 역시 강화되었으며, 경찰은 임무 외 시간에도 총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인터넷 사이트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폐쇄 조치되거나 프랑스 영토 내에서의 접속이 금지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반 시민들의 자유로운 인터넷 활동 역시 감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상의 대용량 저장 매체들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차량의 블랙박스 역시 그 대상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청소년 이슬람 급진주의자에 대한 감화 교육 등의 특별 조치가 실시될 예정이며, 이미 테러 조직에 합류한 프랑스 국적의 지하디스트들은 더 이상 프랑스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집회는 11월 말까지 금지되었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다양한 행사들 역시 취소되었다. <쿠리에 앵테르나씨오날(Courrier international)>은 이를 두고 11월 13일의 테러가 129명의 목숨만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생활까지 앗아가게 생겼다고 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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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프랑스


여성이 작은 공룡에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하고 있다. 여성은 '자유'를, 공룡은 '안전'을 의미한다.

점차 덩치가 커진 공룡은 끝내 여자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시민은 국가 비상사태 연장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디망쉬 웨스트 프랑스(Dimanche Ouest France)>가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1%가 긍정적인 반응을 내어놓았다(<르몽드(Le Monde)> 2015년 11월 22일자). 시민들의 반응은 11월 넷째 주 TOP 기사들을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많이 읽은 기사들은 여전히 테러의 공포를 담고 있는 기사들이다. 브뤼셀 테러 위협, 테러 전문가의 추가 테러에 관한 견해, 파리 테러 용의자 수배 기사, 프랑스 국적의 지하디스트와 그 가족, 무산된 추가 테러 계획 등의 기사들은 겨우겨우 진정시킨 독자들의 심장을 다시 쪼그라들게 한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지난 22일부터 벨기에에 발령된 테러 경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 정부는 테러 위험이 감지되었다며, 브뤼셀 지역의 경계 경보를 최고 단계인 4단계까지 높였다. 그에 따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고 학교가 폐쇄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이웃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은 프랑스 시민들로 하여금 일주일 전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프랑스와 깊은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튀니지에서도 지하디스트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참고로 튀니지는 1881년에서 1956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식민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 양국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국민 중에도 튀니지 출신이 많은바, 이번 테러는 제3세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테러보다 더 큰 임팩트를 주었으리라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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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상징 에펠탑, 그리고 그 아래 총을 든 군인들


하지만 테러가 발생한 지 2주일이 지나면서 속속들이 자유와 인권 등 프랑스 사회가 본래부터 소중히 여겨 온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분명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견제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굳건한 곳이기도 하다.


리옹 3대학의 법학과 교수 마리 로르 바실리앙 갱쉬(Marie-Maure Basilien-Gainche)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비상사태 안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조치들과 발표되는 정책들이 프랑스 사회에 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중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텍스트의 해석에 따라 해당 정책들이 충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바실리앙 갱쉬 교수는 개헌 논의 역시 법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본다. 그는 또한 1990년 이후로 이런 테러 사건을 벌인 이가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고작 30명 때문에 헌법까지 고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그는 올랑드 정부가 현 상황을 전시로 보는 것도 적법하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전쟁이란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IS는 국가가 아니라 범죄집단에 불과하기 때문라는 것 .


사회당(PS)의 푸리아 아피르샤히(Pouria Amirshahi)는 안전과 자유라는 두 가치의 충돌은 1789년 이래 계속 있어 왔던 오래된 논쟁거리이며,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승리는 민주주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권리나 자유를 잘라낸다면 민주주의는 승리하지 못할 것이며, 현재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법에 반하는 심각한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다.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는 "이미 적으로부터 공격당한 프랑스의 자유가 정부로부터 침해당하고 있다"고 이 상황을 진단한다. 또한 테러 이후 프랑스 사회, 특히 정치권에 대해서는 "다음 선거에서는 우파 쪽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나올 것인가? 극우의 슬로건이 중도가 되어 버린 이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를 허용할 만한 우파적인 가치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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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안전은 자유와 정의 등의 가치를 훼손시켜야만 완성될 수 있는 것

출처 : <netzpolitik>


다시 프랑스 국기 대신 세 가지 색깔의 브래지어를 걸어 놓는 프랑스 시민들로 돌아가 보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프랑스 시민들은 국가 비상사태에 찬성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현재 프랑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부가 내어놓는 딱딱한 정책들, 점차 심각해져 가는 국제 정세와는 달리 여전히 유머러스하다.


테러 다음 날부터 소셜네트워크에는 #JeSuisEn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어)를 단 글과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까페 테라스에 앉아 음료 및 술을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미소 짓는 프랑스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정말이지 프랑스다운 저항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그 어떤 나라도 프랑스만큼 삶을 즐기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 중심에 파리가 있다. 파리지앵들은 오늘 밤도, 그리고 내일 밤도 어디엔가 모여 와인을 즐기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을 계속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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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의 파리지엔느

Paris, 1966, Robert Doisneau

사진 출처 : <o.nouvelobs>


한편 파리의 식당들은 테러 이후 3일간의 애도기간 종료를 기념하며 11월 17일 화요일 저녁, 시민들에게 외출할 것을 권했다. 물론 그 어떤 훌륭한 음식도 지난 13일 테러로 인한 슬픔과 분노의 쓴 맛을 없애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즐기는 맛있는 식사,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진 한 잔의 와인은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며, 충격에 빠진 사람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줄 것이라는 것. 물론 자본주의적 마케팅이란 시선에서 이 이벤트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이를 방금 전에 언급한 해시태그 나는 테라스에 있다 의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시기, 레스토랑과 바의 문을 열고 테라스에 손님을 받고 저녁과 밤의 축제를 계속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자행한 테러에 대응하는,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 파리 6구의 콩투아 뒤 흘래(Comptoir du relais)라는 식당의 주인은 "화요일 저녁 9시, 우리는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길가로 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또한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관용에 건배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쇼킹한 제안을 한 남성이 있다. 방송 일을 하는 27세의 메흐디 미첼(Mehdi Mitchell)은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가 프랑스를 타락의 땅으로, 프랑스 여성을 창녀로 보는 데에 창안하여 그들에게 엿을 먹이자는 뜻으로 오는 목요일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나체로 난교 파티를 벌일 것을 페이스북에서 제안했다. 진짜 한 것은 아니다. 이 남성은 테러로 인하여 끔찍한 주말을 보낸 후 너무나도 일터에 나가기 싫었고, 이 상황에 웃을 거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참가 의사를 밝혔으니 그의 의도는 일단 성공한 듯싶다. 정말 프랑스스럽달까.


실로 오랜만에 프랑스가 세계 화제의 중심이 된 지금, 프랑스는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으며, 그 주체는 정부도, 공권력도, 언론도, 지식인도 아닌 바로 일반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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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12월 지역 선거 후보자 포스터들이 붙었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후보는 이름도 모르겠고 얼굴도 모르겠다.

그저 '마린 르펜이 소개하는 국민전선 후보'라고 적혀 있을 뿐이기에..

(그나마 이름이랑 얼굴 부분은 찢겨 나갔다)

누군가가 마린 르펜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수염을 그려 넣고는 "창녀(pute)"라고 써 놓았다.



덧붙임. 2015년 11월 넷째 주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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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는 지금> 연재 기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기사 매일 5건, 한 주에 총 25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사로, 동시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프랑스어로 된 매체의 기사들을 모두 프랑스인들만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세계 프랑스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프랑스 본토에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 시간은 프랑스 시간으로 매일 오전 8-9시 사이입니다. 프랑스 현지 시간에 따라서 기사를 수집하여 오류를 최대한 좁히려 하였습니다.


3. 본 연재물에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혹은 프랑스 매체에서 다루는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 관계로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인권의 나라’라던가 ‘낭만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민낯은 어떤지, 한국의 모습과는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전달한 것일 듯 합니다.






지난 기사


사법부vs전 대통령 사르코지

파리 테러, 현재 상황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