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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진나라가 (B.C.221~B.C.207) 20년도 가지 못할 줄 누가 예상했겠어. 다음 왕조는 기이한 두 라이벌의 승자에 의해서 세워진 한나라(B.C.202~A.D.220)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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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 유방과 그의 세 참모

 

항우와 유방은 중국 역사의 수많은 라이벌 중 개인의 전투력 차이가 가장 컸다고 볼 수 있어.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초한쟁패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만나고 중용했기 때문일 거야. 인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유방 인복의 출발은 그보다 월등히 좋은 가문의 아내 여치를 맞이한 일이었어. 누가 봐도 기우는 혼사이며 동네 건달에 불과하던 유방을 선뜻 사위로 맞아들인 여치의 아버지는 당대의 알아주는 관상가였다고 해. 그는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관상을 가진 유방을 만났고 사위로 들였어. 그래도 동네 건달 사위가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가 될 거라고는 예상 못하지 않았을까?

 

한고조 유방의 정비인 여태후는 오늘날 서태후,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라 불리게 되는데 그 과정을 좀 살펴볼까 해. 역사는 남자가 만들지만 그 남자를 만드는 건 여자라는 말이 있잖아. 그런데 여태후는 남편과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충격적이게도 그 집안을 초토화시켜 버렸어. 유씨의 한나라가 아닌 자신의 집안이 주축이 된 여씨의 한나라를 만들었어.

 

유방은 초한쟁패의 최종 승자가 된 후 황제에 오르며 한나라의 고조가 되었어. 새 나라를 안정된 궤도에 올리기 위해 수많은 건국 공신들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내를 제거할 수는 없었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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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후는 전쟁 기간 동안 온갖 고생은 물론이고,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포로 생활까지 한 건국의 어머니야. 그녀는 독립 투사급의 까방권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여태후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인 황제 유방이 자신을 더이상 여자로 보지 않고 척부인에게 푹 빠져 있었던 거야. 척부인은 황제와 한 이불을 덮으며 여태후의 유일한 아들인 태자 영을 교체할 것을 매일 밤 울부짖었어.

 

“폐하! 태자 영이 폐하의 뒤를 잇는다면 저희 모자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습니다. 요즘 마마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옵니다. 제발 우리 사랑의 결실인 여의로 태자를 교체해 주옵소서.”

 

“흠. 내 마음도 자네와 같네. 태자 영은 너무 착해 빠져서 황제감은 아니야.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 예술가 스타일이야. 허나 당신 아들 여의는 장난끼도 많고 거침없는 것이 꼭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단 말이지. 볼수록 참으로 귀엽단 말이지. 걱정 말게나. 내 너를 위해서 태자 교체를 약조하마.”

 

한고조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챈 여태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여차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야. 그녀는 개국 공신의 한 명인 책사 장량에게 사람을 보냈어. 자신의 아들이 태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간청을 했어. 그러나!

 

“저는 나랏일이 아닌 한 씨 집안일에는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한 집안의 일입니까? 이것은 엄연히 나라의 일입니다. 건국 초기에 태자가 바뀐다면 엄청난 피바람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신생 국가가 안정되기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 나라가 어디 황제 혼자서 세운 나라입니까? 많은 군사의 피와 장량 같은 책사의 노력으로 함께 세운 나라입니다. 여기서 이리 무책임하게 발을 빼시겠습니까?”

 

한때 진시황제의 암살을 도모했으며 유방의 최고 지략가 중 한 명인 장량은 여태후의 계속된 간청을 결국 뿌리치지 못했어. 그는 고조 유방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날개를 태자에게 달아 주기로 했어.

 

“상산에 기거하고 있는 상산사호(商山四皓)를 태자의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들이 태자 폐하의 날개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하면 황제께서도 어찌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동원공, 열리선생, 기리계, 하황공 이분들이 우리 태자의 날개가 되어 줄까요?”

 

“현재 황제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으신 분 들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제가 나선다면, 기꺼이 태자님의 날개가 되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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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한고조 유방이 주최한 연회에 눈썹은 물론 수염까지 하얀 흡사 신선의 모습을 한 상산사호가 태자와 함께 참석했어. 이 모습을 본 유방은 연회 다음 날 척부인에게 태자 교체의 불가함을 알렸다고 해.

 

“미안하구나. 이미 늦었다. 태자는 이미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날개를 달고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척부인은 자신과 아들의 운명을 예감하고 밤새 울었다고 해. 자신이 얼마 후, 그토록 참혹하게 죽을 것은 상상도 못했을 거야.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장량은 탄기절곡을 선언하는데!

 

“오늘부터 디저트 포함 모든 음식을 끓고, 이슬만 먹고 살겠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신선이 되겠다는 비현실적인 선언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제 명에 죽겠다는 선언이었어. 자신은 어떠한 욕심도 없고 정치에 더이상에 관여하지 않겠으니 나를 굳이 토사구팽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야. 장량의 뜬금없어 보이는 비커밍 신선 선언은 대성공을 거두었어. 고조 유방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수많은 개국 공신들이 제 명에 살지 못하였으나, 장량은 '정계에 다시는 복귀하지 않고' 자연사하였다고 하니 그가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

 

한편, 한고조 유방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고 재위 7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이어서 여태후의 아들이자 예민한 감수성의 태자 영이 황제 혜제로 등극했고 그녀의 본격적인 섭정이 시작되었어. 그녀 자신도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기간이 남편인 한고조 유방의 재위 기간보다 긴 15년이 될 줄 몰랐어. 이후 그녀의 행동으로 유추해 보면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나와 우리 집안의 배경이 아니었다면 한고조 유방이라니? 가당치도 않을 일이지. 또한 문학 소년 같은 우리 아들도 나의 계략이 없었다면 태자 자리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바로 내가! 이 두 손으로 두 남자를 황제로 만들었다. 이제는 유씨의 나라가 아니라 나 여씨의 나라를 만들어도 역사가 감히 욕하지 못할 것이야. 암! 그렇고말고. 난 그럴 자격이 차고도 넘치지.’

 

황제인 아들 혜제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병권까지 완전히 장악한 여태후는 눈엣가시 같던 남편의 애첩 척부인을 감금했어. 그리고 아직은 어리지만 조나라의 왕으로 있던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압송했어.

 

‘나의 어머니지만 나와는 결이 다르다. 어떤 일을 저지르실지 모를 일이야.’

 

황제 혜제는 어머니가 배다른 동생 여의를 죽이기 위해 부른 것을 알고 있었어. 황제는 어린 동생을 항상 옆에 두고 식사까지 함께했어. 그러나 24시간을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 황제가 새벽을 이용해 잠시 사냥을 다녀온 사이 어린 왕 여의는 독살된 채 시체로 발견되었어. 황제는 충격에 빠졌어.

 

‘꼭! 꼭! 이래야만 했습니까? 이렇게 해서 유지되는 권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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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무서운 엄마 여태후가 황제 혜제를 느닷없이 돼지 우리로 불렀어.

 

“황제 폐하, 저기 저 돼지들 사이에 있는 것이 누군지 알아 보시겠습니까? 호호호호호.”

 

“저… 저것이? 사… 사람이란 말입니까? 혹… 혹시? 설마?"

 

그곳에는 손발이 잘리고 눈이 빠진 채 말도 못하게 되어 버린 척부인이 있었어. 황제는 어머니와 인연을 끓고 싶지 않았을까? 황제 혜제는 참혹한 척부인의 모습을 본 후, 무려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어. 혜제는 가능하다면 SKY캐슬의 영재처럼 엄마를 떠나고 싶었을 거야. 결국 그는 황제직만 유지한 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어. 여태후가 바란 건 이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 저는 당신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황제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런 나약한 생각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 어미가 도와드릴 테니 잠시 쉬세요.”

 

여태후는 현실을 도피하려는 황제에게 황후 후보를 데려왔어. 그녀가 데려온 여인은은 무려 그녀의 외손녀! 아들과 외손녀 사이에 낳은 아이는 여태후의 장난감 황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노릇.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는데, 황제가 잠자리를 거부한 건 아닐까? 여태후는 참으로 창조적인 여자였어. 자기의 며느리이자 외손녀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황후를 임신한 것처럼 위장했어.

 

“외할머니? 아니 어머니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런다고 애가 서는 것이 아닌데.”

 

“넌 군소리 말고 내 말이나 따르거라. 아이는 내가 알아서 구해 올 것이다.”

 

얼마 후, 여태후는 자신의 가문인 여씨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황후가 낳은 아이라고 선포했고 뒤처리도 그녀답게 했어.

 

“이 사내아이는 혜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의 비밀 유지 제 1원칙이 먼지 아느냐? 비밀을 아는 자들의 입을 막는 것이다. 이 아이의 생모를 죽여라.”

 

여태후의 장기 프로젝트에 따라 이 아이는 훗날 태자가 되지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엄마의 복수를 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어. 온 궁에 여태후의 새와 쥐들이 깔려 있었어.

 

“고얀 놈! 지 분수도 모르고! 준비된 예비 황제 후보들은 많다. 나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태자를 두고 볼 필요가 없다. 좀 늦었지만 어미의 뒤를 따라 가게 해라. 모자가 저승에서 상봉하면 아주 볼만하겠구나.”

 

여태후는 자신의 아들 혜제 황제가 사망했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어. 그녀의 앞길을 막는다면 손자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되었어. 가족에게 이리 잔혹하니 건국 공신들은 오죽했겠어. 국정은 어느새 한씨 손을 완전히 떠나 여씨 손에 떨어졌어. 자신의 아들이 죽고 난 8년 후에야 그녀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어. 그녀가 죽고 나자 여씨 왕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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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악행은 자신의 남편 집안과 궁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나름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고 해. 백성 입장에서는 내전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행복 지수가 높았을 거야.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 혜제 대신에 본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어.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인간성을 포기하고 얻은 권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는 않아.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악마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그런 권력 따위 원하지 않는 바야.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정치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한 작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