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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 핵심을  마디로 정의하자면,

 

통합군 창설

 

이었다.  법으로 인해 만들어진  바로 지금의 미국 통합군 시스템이다. 물론,  이전에도 미국은 이런 형태의 군대운용법을 보여줬다. 2 대전 당시에 태평양을 둘로 쪼개 니미츠와 맥아더에게 맡긴  대표적인 . 2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됐을 무렵에는  세계를 여러 조각으로 쪼갠 뒤에 하나씩 던져(?) 줬다.

 

 태평양 맡고,  대서양... 그래,  카리브해 맡아 알았지?”

 

저는요?”

 

 유럽 맡아.”

 

냉전시절 미국은 극동사령부(Far East Command), 태평양사령부(Pacific Command), 알래스카사령부(Alaskan Command), 동북사령부(Northeast Command), 대서양사령부(Atlantic Command), 카리브해사령부(Caribbean Command), 유럽사령부(European Command) 등등을 만들어서 합동참모본부 직속으로 운영했었다(정말 미국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를 작전 대상으로 놓고, 병력을 쪼개 배치시키고, 전쟁을 준비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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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시 사령부의 느낌이란 ,

 

 세계를 대상으로 군구(Military district)제를 펼쳤다.”

 

라는 느낌이다. 여기서 군구(Military district), 어떤  지역에 군을 배치했을  해당 군대에게  지역에서의 주둔이나 활동에 있어서의 ‘독립적 권한 주는 것이다. 여기서 ‘권한이란 군사작전에 관한 권한인 군령권이 아니라, 주둔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권한. , 군정권이다.

 

(만약 군령권을 해당 군구사령관에게 준다면, 이건 중세시절의 영주나 다름이 없다. 문민통제가 일반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구사령관에게 독자적인 작전권을 준다면...)

 

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은 이때까지 합참 직속으로  있었던 지역별 사령부를 국방부 직속으로 옮기고, 조직의 효율화를 위해서 필요 없는 사령부를 해체하거나 통폐합했다.

 

(‘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 의해 국방 예산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강화됐다국가안보를 위한 예산이다.”라며, 비밀주의와 말도  되는 납품가로 혈세를 낭비하던 국방부의 고삐를 확실히 틀어쥐었다.)

 

겉으로만 보면, ‘이름 바꾸고, 문민통제를 강화하고(의회통제), 조직개편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착각이다(물론,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1986년에 발의된  법안의 진정한 ‘ 통합군 사령관에 대한 ‘법적인 지위 보장한 164조를 보면 확인할  있다. 주요 내용을 발췌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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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군 전투 사령관의 임명, 권한, 의무(164)

 

- 통합군 사령관의 지휘권은 대통령이나 국방 장관의 별도 지시가 없는  지휘관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배속된 부대의 작전, 합동 훈련, 군수 지원 준비를 포함한 제반 지시, 통제, 지휘권을 직접 행사한다.

 

- 통합군 사령관은 주어진 임무 수행에 필요한 부대와 필요한 자원을 요구  있다.

 

- 통합군 사령관은 임무 수행에 필요한 부대 편성, 훈련, 필요 자원의 요구, 군기 유지를 위한 행정적 지시를 집행  있다.

 

- 통합군 사령관은 예하 배속 부대 지휘관, 참모, 지정된 부대를 훈련시킬 권한이 있으며 필요시 군법 회의를 소집  있다.

 

- 통합군 사령관은 언제든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 지침, 통제 권한이 임무 수행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국방장관에게 알리고 보완을 요구  있다.

 

- 통합군 사령부에 예속, 배속된 사령부와 부대의 지휘관들은 통합군 사령관의 권한, 지시, 통제에 순응해야 하며 통합군 내의  사령부와 부대와 적극적이고 유기적인 협조와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 통합군 사령부의 주요한 직속 예하 사령부의 사령관을 선정할 때에는 통합군 사령관이 동의한 지휘관이어야 하고 국방 장관은 대상 지휘관이 특별히 국가의 이익에 부합한 자를 제외하고는 통합군 사령관의 동의하에 임명 절차 밟아 임명하여야 한다.

 

- 통합군 사령관은 예하 전투 사령관들의 근무 평가서를 작성하여 각군 장관과 합참 의장에게 제출할 권한 가진다.

 

- 통합 전투 사령부는 사령관을 보좌할 참모를  군의 유능한 장교를 선발하여 임명하며 중요 직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방장관이 통합군 사령관의 동의를 참고하여 국익에 도움이 되는 자를 선발하여야 한다.

 

어떤가? 통합군 사령관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가? 통합군에 소속된 , , , 해병대의 지휘권 보장은 물론이거니와 작전 수행에 필요한 자원의 요청은 물론이거니와 인사권과 처벌권(군법회의)까지 가지고 있다. 통합군 사령관의 지휘권과 작전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어지는  조항을 보면, 당시  의회가 통합군을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대한 생각이 손에 잡힐  보인다.

 

통합전투 사령부 행정지원 조항(165)

 

- 국방 장관은 합참의장의 자문과 지원을 받아 통합군 사령부에 제공할 행정  지원 대책을 강구하며  군의 장관들은  법령 지시에 의거 통합군 사령관에게 예속된 소속 군의 사령부와 부대가 고유의 전투 기능을 발휘할  있도록 행정  지원을 수행할 책임을 진다. 국방 장관은 각군 장관들과 상의하여 통합군 사령부에 예속되는 부대가 가지고 있던 행정과 지원 임무를  부대와 기관에 이관함으로써 통합군 전투 임무에 전념할  있도록 한다.

 

통합전투 사령부 예산 조항 (166)

 

- 국방 장관은 국방 예산 편성  통합군 사령부의 예산을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편성하여 의회에 상정하여  통합군 사령부가 합동 훈련, 부대 훈련, 우발 대비, 주어진 작전 수행을 준비할  있게 하고 독립적인 군법회의를 운용할  있는 예산을 확보하게 한다.

 

통합군은  그대로 , , , 해병대의 모든 군이 모여 있는 군대다.  군대의 지휘권을 명확히 하고, 독립성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예산도 따로 책정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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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회 의원들은 이때까지 보여준 실패와(베트남전, 이란 대사관 인질 구출작전, 그레나다 침공 등등)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거였다.

 

겉으로만 통합군이네, 지역사령부네 하는데 이제까지  세계에 흩어져 있던 미군은 군구(Military district) 사령부에 불과했다. 우리는 관리자가 필요한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쟁을  사령관과 군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6개의 통합 전투 사령부와 3개의 기능전투 사령부(전략사령부, 수송사령부, 특전사령부) 개편된 미군은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이후 통합군 사령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늘어나게 된다). 전초전이라   있는 파나마 침공작전에서 깔끔한 데뷔전을 치른 미군은 이어 터진 걸프전에서 ‘통합군 제대로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중부군사령부의 사령관은 노먼 슈워츠코프(Herbert Norman Schwarzkopf. Jr) 대장이었다. 개인적인 평가지만, ‘통합군 사령관 지위와 권한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 펼쳐진 사막의 방패 작전.  작전 기간 동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꾸역꾸역 병력을 밀어 넣었다. 중부군 사령부는 가지고 있던 작전계획 90-1002 인터널 (Internal Look)이라 불리는 사령부 수준의  게임을 돌렸는데, 미군이 패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즈음에 워싱턴 정가에서는(구체적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

 

“10 중으로 우리가 이라크에 들어갈 것이다.”

 

라는 희망 섞인 관측(관측이라고 읽고 압박이라고 읽는다) 언론에 흘리면서 전쟁 승리 분위기를 만들었다.  당시 중부군 사령부가 확보한 병력은 공군과 해군 병력을 포함해서 18만명 수준이었다. 슬슬 전방에 배치한 병력에 대한 순환 근무계획을 짜는 상황에서 ‘이라크 공격 감행하라는 우회적인 압박에 슈워츠코프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보였고, 워싱턴은 슈워츠코프를 달래기 위해 필요한  무엇인지 물어봤다. 이때 슈워츠코프의 대답이 걸작인데,

 

“7군단을 주십시오.”

 

 당시 슈워츠코프에게 배속돼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했던 부대가 18공수군단이다(분쟁지역에 제일 먼저 급파되던 부대다. 최초 이라크에 파병된 부대가 공군의 F-15편대와 82공정사단 1 병력 23백명이다. 드라마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101공수사단과 듀엣으로 등장하던  82공정사단이다).

 

18공수군단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언제나 등장하는 부대이지만, 7군단은 이야기가 다르다. 불과 1   해도 이런 소리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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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군단은 미국의 유럽방위에 있어서 핵심이었다. 냉전이 한참이던 시절에 바르샤바 조약군의 탱크 러시를 전면에서 받아내는 임무를 부여받았던  7군단이다.  임무에 걸맞게 2 기갑사단, 1 기계화 보병 사단으로 구성돼 있었고,  당시에 보기 드물게 ‘완편으로 편제돼 있던 최정예 군단이었다.

 

통합군 사령관은 주어진 임무 수행에 필요한 부대와 필요한 자원을 요구할  있다.”

 

라는 법조항을 기억하는가? 슈워츠코프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고, 워싱턴에서는 슈워츠코프의 요구를 들어준다. 아니,  이상으로 부대를 보낸다.

 

유럽에 있던 7군단을 그대로 뽑아내 사우디로 보냈고( 그대로 7군단을 그대로 보내줬다), 덤으로 1 해병사단에 육군 1 보병사단,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 3, 그리고 공군 전술기 400여대까지 미군이 동원할  있는 모든 자원을 슈워츠코프에게 건넸다.

 

여기서 빛을 발한  수송사령부다. 병력이 아무리 많더라도 이걸 사우디아라비아로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본토에서 사우디아라비아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만으로도 11 킬로미터에 달했다. 수송사령부는 10분에  꼴로 C-5 C-141을 착륙시키는 비율로 1990 8월 말까지 7 2천의 병력과 10 톤의 물자를 실어 날랐다. 이후 증파되는 병력과 급증하는 보급수요를 맞추기 위해 민간 항공기를 징발해 보급품 수송에 투입했다(베트남 때도 민간 항공기를 징발하지 않았다는  생각한다면, 당시 미국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준비했는지 확인할  있다).

 

걸프전은  『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  성과를 보여주는 시험대였고, 미군은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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