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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자극적인 경제 뉴스가 많이 유통되고 있다. 

 

 '미국이 3.2% 성장할 동안 한국은 -0.3% 성장했다.'

 

 '원화 가치가 후진국보다 빠르게 폭락중이다' 

 

와 같은 얘기들이다. '사실'로 보이는 이 이야기을 제대로 이해해 '진실'을 들춰보기 위해선 그 맥락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경제 거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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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미국과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GDP를 계산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미국은 분기 경제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해 표기한다. 미국 경제는 연간으로 쳤을 때 3.2% 정도 성장했다는 거고, 우리나라 방식으로 치면 0.8%(정확히는 0.76%) 성장한 셈이다. 미국(0.8%) VS 한국(-0.3%)라고 하면 극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언론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비교를 반복한다.

 

물론 미국이 깜짝 성장을 할 동안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수치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장 간단한 해석은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를 단순 비교해 보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중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내는 건 투자와 수출이다. 미국에서는 1분기에 투자와 수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고유가와 무역 갈등의 영향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셰일 가스 개발 등을 통해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다. 원유 수출 부분에서도 사우디,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권 국가이다. 해서 미국은 1분기 유가 상승(베네수엘라 사태 악화, 이란 경제 제재)에 따른 수출액 증가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올해부터 대중 수입품 관세 인상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미국 기업들은 관세 인상에 앞서 재고를 비축해 둔 상태였다. 자연히 1분기 수입액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중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그 수출또한 반도체와 자동차에 집중되어 있다. 경제 구조 자체가 미중 무역갈등에 취약했고, 반도체 가격 하락에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란 것이다. 이런 악재로 수출은 감소했고, 그에 따라 설비 투자도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1분기에는 신규 사업 추진 등으로 정비 지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언론이 제대로 일을 하려 했다면, 3.2% vs 0.3%의 수치로 불안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이 차이를 설명하고 우리의 경제 구조에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까지 쓰고 보니, 한국 언론에 이런 걸 기대할 수 있을까 싶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환율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이 깜짝 성장을 한데다가 금리 또한 우리나라보다 높게 쳐주기 때문에 원화가 악하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거기에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경하게 돌아서 북한 리스크까지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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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버들은 신났다

 

 

지표 이면을 들춰보자 

 

올해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과 환율 하락의 이면에는 이러한 맥락들이 존재했다. 일각에선 나라가 망했다는 둥,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둥 하지만, 경제가 크게 나빠졌다고 단정 지을 요소는 없다. 분기 경제성장률이나 환율은 2, 3분기에 반등할 여지가 충분하다(환율은 북한 리스크를 많이 탈 것 같고, 경제성장률은 예산 진행에 따라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진짜 문제는 분기 지표 하나가 나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구조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고, 그 앞에 놓인 현실 또한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황xx, 나xx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는 현 정권의 경제 정책 때문은 아니고 최저임금 인상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 수년에 거쳐 한국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게 우위를 내어준 상태이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있고 중국이 잘 치고 나간 것도 있지만 이렇게 시장 규모도 작은 제조업 중심 국가가 여러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게 원래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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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산업(치열한 치킨 게임 속에서 규모를 통해 살아남았다)이라면 반도체 정도였는데, 반도체 산업이 조정기에 들어가면서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최근 조선, 자동차 산업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어 다행이지만, 나머지 산업의 전망이 어둡다. 수출이 특정 산업에 몰려 있다 보니 경기에 따라 수치가 크게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 중 다른 하나인 투자 쪽을 살펴봐도 앞으로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R&D 지출 상위권인 국가다. GDP 대비로 보면 최상위권이고 절대액수로도 상위권이다(설비 투자 쪽은 이미 과잉에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걸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당장 과학 분야 노벨상 한국인 수상 명단을 보라), R&D 비용 대부분이 개발 연구 쪽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가 되는 기초 연구에는 10%대의 돈만 들어간다. 짜내기만 급급하다 보니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초 분야에 대한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매출 대비 R&D 비용을 유지하는 데 인색한데 이걸 좀 삐딱하게 보면 국내 시장에선 독과점으로 꿀을 빨기 때문에 투자 비용을 늘려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것이고(자동차 회사가 땅을 사는 데 10조를 쓴다던가), 좀 온정적으로 보면 산업 전체가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에 돈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P/B(시가총액을 장부가격으로 나눈 비율)는 현재 1이 채 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우리 기업들의 가치가(시가총액지금까지 들인 돈(장부가치)보다 낮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돈을 버는 족족 재투자하지 않고현금으로 쌓아두는 회사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하는 투자를, 시장에서는 돈값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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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여건도 상당히 좋지못하다. 미국은 홀로 호황을 누리고있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랐다. 이미 미국금리가 더 높은상황에서, 여기서 우리만 금리를 낮춰서 경제성장을 도모하기란 매우 어렵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쓸 수있는 카드(통화정책)가 제한된 상황이다. 

 

보통은 이렇게 미국이 잘나가고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할 법한데(환율이 떨어지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에),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에 돈을 잃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각국의 무역분쟁은, 결국 무역흑자를 통해 다른 부분을 메우려는 우리 같은 나라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들이다.

 

이러한 얘기들이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사실 IMF를 기점으로 한국의 경제는 고성장에서 현상 유지로 방향을 잡았었는데 밑에선 중국, 베트남이 치고 올라오고 있고, 위에선 미국이 더이상 돈을 잃어주지 않겠다고 하는 통에 이래저래 먹고살기가 막막해진 것이다.

 

딱히 답도 없고 희망도 없는 만년과장(요즘은 물론 과장은커녕 사원되기도 어려워졌지만)같은 슬픈 얘기지만, 적어도 그걸 가지고 표장사 하려는 정치인들에게 흔들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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