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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사이클은 시작에서 끝까지 약 12년 정도가 소요된다. 디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은 약 7단계로 나눌 수 있고, 인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은 5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 4단계까지는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본격적인 크레딧 사이클의 각 단계를 하나씩 다루기에 앞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

 

첫째. 크레딧 사이클은 연속해서 발생한다.

 

하나의 크레딧 사이클이 끝나면 다음 크레딧 사이클의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크레딧 사이클이 12년 정도가 걸린다고 했으니,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세 번 정도 개최되면 한 크레딧 사이클이 완전히 끝나고, 다음 크레딧 사이클로 넘어가는 것이다.

 

 

둘째. 크레딧 사이클도 패턴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 있다.

 

이는 여러 개의 크레딧 사이클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초장기 크레딧 사이클이 만들어질 때다. 본격적으로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고 독과점으로 인해 부의 양극화가 극심했던 1920년대 대공황이 대표적인 사례로, 이때는 일반적인 크레딧 사이클보다 훨씬 더 큰 낙차로 심하게 경제가 나빠진다.

 

후술하겠지만 일반적인 크레딧 사이클에선 정부 및 중앙 은행이 개입하면서 경제가 자연스레 회복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초장기 사이클에서는 일반적인 부양책이 당최 먹히질 않다. 경제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전형적인 크레딧 사이클을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여기선 이런 초장기 사이클도 있다는 걸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다.

 

 

셋째. 이 글의 목표는 전형적인 크레딧 사이클을 규정하고 그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크레딧 사이클은 개별적이다. 크레딧 사이클이 12년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반드시 12년마다 발생한다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전개된다는 것도 아니다. 각 국가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책 입안자들이 취한 대응에 따라, 경제위기가 언제 어떻게 발생하고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하나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이건 자연과학이 아니다), 현재 경제 상황이 사이클의 어느 정도에 해당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도구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이제 디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의 7단계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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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초기 단계)

 

초기 단계는 이전 크레딧 사이클의 끝과 새로운 버블기의 사이에 낀 짧은 시간이다. 이 단계에서의 경제는 회복기, 정상화 단계를 벗어나(부채가 감소한다부채가 다시 늘어나지만, 늘어나는 속도가 버블기에 비하면 완만한 데다가 소득이 부채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부채가 단순히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빌린 돈이 어떻게 쓰이느냐의 문제다. 부채는 결국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고, 부채보다 소득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은 채무자가 미래에 돈을 갚을 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빌린 돈이 생산적으로 잘 쓰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초기 단계에서 정부와 기업들은 아직 지난 크레딧 사이클의 여파 때문에 부채 비율이 낮은 편이라 돈을 빌릴 여력이 충분하며 부채를 사용했을 경우 바로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기회 역시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약 1), 이 초기 단계에서 거시 경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안정적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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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버블기)

 

본격적으로 자산 가격이 오르는 시기다. 초기 단계에서 개인, 기업들의 소득이 올라 경기전망은 밝아진 반면, 지난 사이클 때 낮춰둔 금리(경기가 한창 나쁠 때 중앙은행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낮춰 둔 기준 금리가 버블을 형성)는 계속 낮게 유지되고 있어 이자 비용은 아직 낮다. 전망은 좋고 돈 빌리기는 쉽다보니(기준 금리가 낮고 유동성도 충분하기 때문에많은 사람들이 선뜻 돈을 빌려 자산 구입에 나선다.

 

부채가 일단 늘어나지만 이 빌린 돈이 대부분 자산 구입으로 몰리기 때문에, 자산 가격이 더욱 빠르게 상승한다. 이 시기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많은 대출을 받아 자산을 구입한 사람들의 순자산(부채를 제외한 자산)이 크게 증가한다.

 

여기서부터 버블은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다. 최초 자산 가격이 오를 때는 그럴만한 이유(경기 전망은 좋은데 이자 비용은 낮은 상태)가 있었지만,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투기 심리가 개입되면서 자산 가격의 상승 수준과 속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먼저 대출을 받아 돈을 번 사람들은 순자산이 증가했기 때문에 추가 대출을 받기가 쉬워져 베팅을 늘리고, 돈을 벌지 못했던 사람들도 돈 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매수에 나선다.

 

이러한 버블 중에도 소득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부채보다는 느리다. 초기 단계에서 이미 쉽게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자산은 고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아있더라도 자산의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버는 돈에 비해 많은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 

 

편의점 창업을 예로 들어 보자. 상권이 형성되기 이전에 좋은 목에 일찍 창업을 한 사람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지만, 편의점이 이미 많이 있는 상태에서 창업을 할 경우 기존 편의점에 권리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비용은 더 올라가지만 경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경제가 버블기인지를 판단하는 것을 돕기 위해 레이 달리오는 버블기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정리하였다.

 

1. 기존 방식으로 평가했을 때 자산 가격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2. 현재의 가격이(이미 현재 수준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미래에 추가적인 고성장이 있을 것을 전제하여 매겨졌다.

 

3. 전반적으로 상승장 지속에 대한 기대가 높다.

 

4. 많은 레버리지(자기 자본은 적고 빌린 돈의 비율이 높은 것)를 낀 자산 구입이 이뤄진다.

 

5. 구매자들이 미래의 추가 가격 상승을 기대, 대비하기 위해 구매를 앞당긴다.

 

6. 기존에는 투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자산 구입에 관심을 보이고 시장에 등장한다.

 

7. 경기 부양책이 추가적으로 버블을 불어넣는다.

 

레이 달리오에 따르면, 지난 2007년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 미국은 위의 7가지 항목에 모두 해당이 되었다. 참고로 IMF이전 우리나라(1994)의 경우에도 1번부터 5번까지가 모두 해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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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고점 형성기)

 

오랜 상승장 끝에 빚을 내서 자산을 매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더이상 가격이 오를 수 없게 되는 지점이다. 고점 형성기는 버블기의 끝물이고 본격적인 조정(하락장) 직전에 찾아오는 짧은 시기다.

 

자산 상승이 멈추고 고점이 생기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보통은 버블 지속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올리고 시중에 지나치게 풀린 돈을 회수함에 따라 고점이 형성되고 가격이 깎인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개입해서 버블을 꺼뜨리지 않더라도 기업이나 국가가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최대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치에 도달함에 따라 버블이 스스로 사그라들기도 한다.

 

외부적 요인을 통해 버블이 꺼지기도 하는데,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같은 것이 발생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갑자기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최악의 경우는 일본인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 미국에 수출을 하는데, 엔화의 가치는 상승하고 달러는 하락하는 경우다. 갚아야 될 돈의 가치는 원화 대비 높아지는데,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는 원화 대비 내려가기 때문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버블이 꺼지고 자산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빚을 내서 투자를 한 사람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투자를 통해 구입한 자산의 값어치는 떨어지는데 갚아야 할 이자와 원금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가장 많은 희망을 가지고 가장 많은 빚을 내서 무리하게 자산을 구입한 사람부터 가장 큰 손실을 입는다.

 

이렇게 손실이 발생하고 담보물의 값어치가 하락하면 대출자들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버블기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 먼저 영업을 하던 은행들도 돈을 빌려주기 꺼려하고 신규 대출자들에 대한 심사가 대폭 강화된다.

 

따라서 고점 형성기 초기에는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 보통 장기 대출을 해줄 땐 장기간 돈이 묶이는 데에 대한 보상으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조만간 불황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면 신규 대출 자체가 드물어지는 데다가, 돈을 빌려주더라도 채무자의 신용도가 훨씬 중요해져서 장기 금리에 대한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지는 것이다. 경제 위기의 전조로 찾아온다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출 시장에 조금씩 문제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고점 형성기 초반에는 경제 상황 전반은 괜찮은 편이다. 이 시기에 은행은 조금씩 경계를 하고 중앙은행에서는 경제 성장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만, 일단은 경제 활동과 소비 활동이 왕성하고 실업률도 낮은 편이다. 고점이 형성되고 본격적으로 불황이 찾아오기 반년 전 쯤에 가장 빠른 속도로 이렇게 돈줄을 죄고 현금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잘 포착된다.

 

자산 가격이 꺾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불황이 시작된다. 고점 형성기 후반으로 갈수록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돈을 풀고 죄는)보다 자산 가격의 변동이 점차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자산 가격 하락은 소득 감소를 촉진시키고, 담보물 가치 하락과 소득 감소의 콤보는 기업과 개인의 신용도를 가파르게 떨어뜨린다. 소위 말하는 펀더멘털이 맛이 가면서 본격적인 불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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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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