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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리하면 쉐프라고 대우해 주고 옷 만들면 디자이너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집 짓는다고 하면 노가다꾼으로 뭉개는 대한민국에서 나는 노가다꾼으로 살아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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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해서, 일 끝나면 늘 카페에 들른다. 물을 조금 적게 넣고 샷을 추가한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종일 먼지 뒤집어쓴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다. 근데 그 작은 위로가 참 쉽잖다. 카페 문 열 때면 어김없이 걸음이 망설여진다. 내 꼴 때문이다. 얼룩덜룩한 작업복에 안전화. 누가 봐도 난, 노가다꾼이니까.

 

카페에 들어서면 노골적인 시선이 온몸 구석구석을 찌른다.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불쾌한 감정을 담은 그 시선 말이다. 아마도 ‘노가다꾼이 웬 카페?’라고 생각하겠지. 커피를 주문하고 나면 괜히 카운터 옆을 서성인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게 미안해서. 누구에게, 왜 미안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 커피가 나오면 얼른 받아 밖으로 나온다. 그때마다 뒷맛이 쓰다.

 

친구나 지인에게 이런 얘길 하면 “아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이라는 말을 서두에 달면서, 노가다꾼이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이런저런 얘길 종합해 보니 쉐프와 디자이너, 그리고 노가다꾼의 가장 큰 차이는 창작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노가다꾼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는 거다. 더럽고 위험하고 단순한 일 하는 사람. 이게 그들이 정의하는 노가다꾼이었다.

 

진짜 모르는 소리다. 그들 말마따나 창작의 영역에 있는 건축가, 혹은 그에 준하게 설계 도면을 만지작거리는 목수를 논외로 하더라도 현장에는 깜짝 놀랄 크리에이터가 많다. 망치와 못만으로도 이런저런 걸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잡부(목수 아니고 잡부다!)를 보고도 창작이니 크리에이티브니 하는 소리가 나올런지. 하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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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펜대 좀 굴리는 먹물, 아니 기자였다. 펜 하나로 세상 바꿔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치기 어린 시절도 있었고, 또 한때는 나름 인정받는(?) 콘텐츠 기획자로 이런저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다. 아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나에게 “어쩌려고 그래?”라는 친구나 지인들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려고 그러긴? 지금처럼 노가다꾼으로 즐겁게 살려고 그런다, 왜!

 

대기업 과장급은 아닐 테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돈도 잘 벌겠다, 야근 없고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쉬겠다, 클라이언트 눈치 볼 일 없겠다, 성과 못 냈다고 스트레스 받을 일 없겠다, 만족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원고 마감한다고 며칠씩 밤새고, 주말 휴일도 없이 취재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던 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고만. 이래저래 속상해서 신세 한탄 좀 해 봤다.

 

나도 처음에는 머리나 식힐 요량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노가다꾼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이곳에서 삶을 배우는 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도 수많은 사연과 감정과 함의가 뒤엉켜 있다. 한마디로 이곳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동정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 없다.

 

그런 얘길 하고 싶다. 쉐프나 디자이너 선생님까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너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 땀내 좀 나고, 먼지 좀 묻었어도 맘 편히 카페가고 싶다.

 

 

3.

 

내게 노가다꾼으로서의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노가다 일을 하다 보니 일반인에겐 다소 신선할 수 있는 일들을 보고 듣고 겪게 됐고, 미천한 습성이 남아 그런 얘길 글로 옮기면 재밌겠다 싶었다.

 

이야기의 절반은 주워들은 거고 나머지 절반 정도만 내가 보거나 겪은 거다.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노가다를 10~20년 한 사람도 아니다. 모르건대 전문 정보의 오류나 사실 관계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일일이 확인할 자신이 없어 미리 양해를 구한다. 그냥, 글 쓰는 노가다꾼의 단상 정도로 여겨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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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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