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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다이어트를 작심하고 결행한 적이 없다. 일단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싫고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제 일착인데 인생 뭐 있다고 출가할 것도 아닌데 맛대가리 없는 닭가슴살이나 먹고 닝닝한 선식 같은 걸 먹으면서 고행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아내가 너무 정색을 하고 협박을 해 와서 결국 그에 굴복하고 고행길로 접어들었다. 하루에 한 끼.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과 점심을 거의 먹지 않고, 점심 먹은 날은 약속 안 잡고 저녁을 대충 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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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헬스클럽에 들르는 빈도도 잦아졌는데 오늘 아침에는 샤워실 앞에 뭔가가 대문짝만하게 나붙어 있었다. 폰트 100 정도 되는 크기로 굵직하게 박힌 글자는,

 

“샤워 중 소변 금지”

 

였다. 헬스클럽에서 진상들이 연출하는 흑풍경이 몇 개 있다. 샤워한 뒤에 꼭 물 안 잠그고 나가 버리는 인간들. 헤어드라이 가지고 겨드랑이는 물론 발가락 사이하고 사타구니 말리는 사람들. 그리고 샤워하면서 흐르는 물줄기 사이로 오줌을 방출하는 짐승들. 아니 여기도 그런 놈들이 있구나 하면서 그래서 지린내가 났구나 싶어 이를 부득부득 갈다보니 몇 년 전 아파트 지하의 헬스클럽 기억이 리와인드 후 플레이돼 뇌리를 흘렀다.

 

아파트 헬스장이니 이용자는 다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헬스장에는 알통 듬직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지만 그는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였고 개인 PT로 수입을 올리고 그 중 얼마의 금액을 아파트 자치회에 내는 시스템이었다. 어쨌든 헬스장 관리인이었으니 사람들은 이런저런 요청을 했고 그는 성심껏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흥미로운 경고장(?)이 부착됐다.

 

아파트 주민들 가운데에도 화장실 그 짧은 거리 가기 싫어서 샤워 도중 쉬를 해 버린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고, 당연히 악취가 발생했고 누군가가 알통 아저씨에게 호소한 결과였다. 그런데 내용이 ‘샤워 중 소변 금지’ 류의 밋밋한 경고가 아니었다. 검은 매직과 붉은 매직으로 번갈아 쓰인 경고장의 내용은 이랬다.

 

“샤워실에서 오줌 누는 사람은 개새끼입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 남 몸 씻는 곳에 오줌 갈기는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냐, 요즘은 개도 대소변 장소 가려 누는데. 개만도 못한 새끼가 맞지. 그런데 이 경고장 때문에 탈이 났다. 한 주민이 거칠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교양없게 개새끼가 뭐야 개새끼가. 응? 여기 다 아파트 주민들이고 점잖은 사람들인데, 아주머니들도 많이 오시는데 개새끼라니. 이러면 되겠어? 왜 좋은 말 놔두고 이런 상스러운 말을 쓰냐고.”

 

정말로 ‘점잖은’ 분이었나 보다. ‘교양 없는’ 알통 아저씨는 혼쭐이 났고 ‘개새끼’ 경고장은 즉시 떨어졌다. ‘샤워실 소변 금지’를 대신 붙여야 했지만 무지하게 깨진 알통 아저씨가 경황이 없어선지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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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한 달쯤 지났을까. 연휴 뒤끝이어서 이용자가 적은 날이었다. 샤워를 하는데 예의 그 ‘점잖으신’ 분이 들어왔다. 인상은 잘 기억 못해도 그 배 둘레 햄이 워낙 둔중하셨기에 그분인 걸 알았다. 대충 씻고 나와서 몸을 닦는데 아차 샴푸를 두고 왔네. 다시 샤워장으로 들어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쏟아지는 샤워 사이로 비타민이라도 먹었는지 늦가을 은행잎처럼 싯누런 물줄기가 남자의 국부로부터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고민을 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소리를 지를까. “샤워실에서 오줌 누는 개새끼도 있네” 중얼거리면서 나가 버릴까. 어떻게 저놈을 응징할까.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증거(?)는 비누 거품과 함께 하수구로 사라져 버렸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탈의실에 나와서 휘파람 불고 몸 닦고 드라이하고 꽤 값나가는 옷들을 챙겨 입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뭐라고 해 줘야 되나 계속 머리를 굴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날 선 한 마디 던지지 못한 통한은 생생히 남아 있으되 궁금한 건 한 달쯤 전 투박한 경고장, “샤워실에서 오줌 누는 사람은 개새끼입니다.”에 그가 그토록 흥분한 이유는 뭐였을까 하는 점이다.

 

도둑의 제발 저림이었을까. 방귀 뀐 놈의 분노였을까. 자신의 치부를 들켜 버린 사람이 애써 친 방어막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오줌을 싸든 말든 네가 나를 개새끼로 부를 수는 없다는 오만함이었을까. 아니면 샤워하면서 금방 쓸려 내려갈 오줌 좀 눈 걸 가지고 개새끼까지 들어야 하느냐는 속내였을까. 오늘 아침 헬스장에서 만난 점잖은 아저씨들 가운데에도 태연하게 샤워하면서 소변을 휘갈기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가 만약 ‘샤워실에서 오줌 누면 개새끼입니다.’라고 경고장이 붙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사를 서너 번 했고 당시 그 아파트의 배나온 아저씨와 재회할 일은 없으니 물어볼 데는 없다. 그런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독재의 후예 아니라면 5.18 다르게 볼 수 없다.”라고 한 대통령의 연설에 발끈해설랑 “우리 당을 겨냥한 것이냐”고 반발하는 나경원 대표나 “내가 왜 독재자 후예냐. 북한한테나 그래라.”고 엉덩이 뭐 찔린 것 같이 나서는 황교안 대표를 보니 동일한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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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지칭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도 5.18 기념식에 참석한 처지에, 5.18을 다르게 보는 이들에 대한 성토를 굳이 자신들의 몫으로 끌어들이는 저 심리는 무엇일까.

 

샤워실에서 오줌 누는 이는 사람보다는 개새끼에 가까울 것이다. 몇 년 전 알통 아저씨의 경고장에 동의한다. 거기에 흥분해서 날뛰던 배 둘레 햄 아저씨의 개기름 넘치는 얼굴이 새삼 우습다. 아울러 5.18에 대해 달리 말하면 독재의 후예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더한다면 5.18에 대해 달리 말하면 그냥 개새끼다. 그런 개새끼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민군이 광주에서 뭘 했네, 제 자식이 맞아 죽어 가는데 총을 들면 되네 안되네 폭도네 뭐네 비웃는 인간들이 어찌 개새끼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언제 기회 있으면 황교안이나 지만원 류와 함께 화장실에 들고 싶다. 그들이 한쪽 발을 들고 오줌을 누는지 아닌지를 관찰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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