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9)
원더우먼의 변화 혹은 변질
우리가 지금껏 만나온 업계인 중에서 최초로 고인이 된 사람이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다. 1893년생으로 1947년에 죽었으니 향년 53세다. 그가 처음 쓰러진 것은 1944년 8월 25일이었다. 소아마비 발병이었다.
1944년은 원더우먼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많았다. 수퍼맨과 배트맨에 이어 신문 연재가 결정되어 트리니티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책과 신문의 출판부수로 추측한 독자수가 천만을 넘었다.
이 때 고정 어시스턴트로 조이 험멜 Joye Hummel 이 합류한다. 올리브 번은 험멜에게 이모 생어의 저서 ‘여성과 신인류’를 주면서 “이 책에 원더우먼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험멜은 곧 마스턴과 함께 스토리를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포지션으로 올라갔다. 3월에 일을 시작한 험멜이 5개월 차가 되었을 때 마스턴이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험멜은 유능했다. 이름을 걸지 못하는 고스트라이터였다 뿐이지, 그녀의 스토리 집필 능력은 품질과 방향성 모두에서 마스턴 못지 않았다. 조이 험멜은 수퍼히어로 만화 업계에서 최초의 여성 작가로 여겨지고 있지만, 동시에 고스트라이터였고 그 활동 시기가 짧은 탓에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그 공로가 인정되었다. 활동시기가 짧은 이유는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1순위인 결혼 때문이었다. 험멜은 22세가 되는 해에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조이 험멜(결혼 후의 성은 켈리 Kelly)
고스트라이터로 고용되었기에 마스턴의 필명인 찰스 마스턴의 이름으로만 활동을 했다.
2014년 5월에 과거 원더우먼 스토리 업무 관련 서류를 찾아내 스미스소니언 학회에 기증했다.
험멜이 결혼으로 사임하던 해인 1947년, 마스턴은 악성 흑색종으로 인해 사망한다. 54세 생일을 1주일 남겨둔 5월 2일이었다. 투병생활 중에 얻은 합병증이었을 것이다.
이 해는 원더우먼만의 골든 에이지가 끝난 해다. 험멜의 결혼과 마스턴의 사망에 이어 8월 20일에는 편집장 역할을 해왔던 맥스 게인즈가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 보조 편집자 도로시 루비섹 Dorothy Roubicek 은 결혼 후 퇴사했다. 남편과 함께 별도의 회사를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이나 결국엔 타임리 코믹스에 입사했다. 스토리 업무는 1946년부터 원더우먼 담당 편집자가 된 로버트 캐니거 Robert Kanigher 가 맡았다. 캐니거는 블루 비틀, 캡틴 마블, 호크맨, 그린랜턴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작가였다.
원더우먼 토막 지식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두 개의 잡지, 원더우먼 코믹스 Wonder Woman Comics 와 센세이션 코믹스 Sensation Comics 에는 매 이슈의 끝마다 ‘역사 속 원더우먼 Wonder Woman of History’ 라는 코너가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영웅적인 흔적을 남긴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1~5페이지 분량의 위인전 만화였다.
이 코너는 당시 막 은퇴를 한 여성 테니스 스타 앨리스 마블 Alice Marbel 이 보조 편집자 직위를 얻어 썼다고 홍보되었다. 실제는 앨리스 마블이 코너의 아이디어를 내고 초반 일부를 썼을 뿐, 진짜 보조 편집자인 도로시 루비섹이 더 많은 회차의 스크립트를 써냈다.
이 코너에서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잔다르크 Joan of Arc, 마리 퀴리 Marie Curie, 헬렌 켈러 Helen Keller 등의 유명인사를 포함해, 최초의 여성 비행사 에밀리아 에어하트 Emilia Earhart, 장제스의 아내로서 대만 중화민국 정부 수립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 등의 업적을 세운 쑹메이링 宋美齡, 여성 노예해방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서부개척의 길잡이 역할을 해 원주민과 이민자 간의 화해를 상징하게 된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사카자위아 Sacajawea,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뭄타즈 마할 Mumtaz Mahal 등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던 위인 및 역사적 중요 인물들도 문화권과 시대에 관계없이 다루었다. 다만 접근 가능한 타국의 역사적 사료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던 시대라 미국 외의 인물은 다소의 오류가 있다. 쑹메이링을 ‘마담 장제스’로 표기한 것이 예다.
‘역사 속의 원더우먼’ 코너는 원더우먼 코믹스에서 주로 연재되다가 일부는 센세이션 코믹스에 실렸다. 1954년 5월의 원더우먼 #66을 마지막으로 정기 연재가 끝났고, 이후로는 아주 가끔 비정기적으로 제목만 살짝 다른 코너가 등장하다가 60년대 초반에는 그나마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 코너를 맡았던 도로시 루비섹은 수퍼맨에게 약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신이 처음 했다고 1993년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가 크립토나이트이고, 루비섹은 그 공로가 익히 알려진 대로 편집자 모트 와이징어의 것이 아니라 당시 스토리 담당이었던 빌 핑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버트 캐니거의 집필 방향은 마스턴 및 험멜의 방향과 달랐다. 1948년, 캐니거의 방향성에 불만을 느낀 엘리자베스 할러웨이가 DC 코믹스에 자신이 스토리를 쓰겠다고 제안했다. 제안은 거부되었다. 할러웨이는 원더우먼 캐릭터의 중요요소와 주의점을 정리해 인수인계를 해주었는데 캐니거는 이를 무시했다. 그는 1950년에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기는 작가가 되지만, 확실한 것은 원더우먼의 페미니즘 측면과 SM미학 측면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니, 그는 원더우먼에 담겨진 페미니즘을 싫어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캐니거의 동료들이나 보조 직원 등의 증언을 모아보면 캐니거는 상당한 남성우월주의자에 여성혐오자였다.
로버트 캐니거와 원더우먼의 미스매치
캐니거가 창조한 두 여성 캐릭터를 보면 확인이 된다. 하나는 1947년 8월에 플래시 코믹스 #86에서 첫 선을 보인 수퍼히어로 블랙 카나리 Black Canary 다. 첫 등장 당시의 본명이 디나 드레이크 Dinah Drake 였던 블랙 카나리는 자니 썬더 Johnny Thunder 라는 군소 히어로의 보조 캐릭터로 시작했다. 후일에는 초능력을 갖게 되지만, 초기의 블랙 카나리는 초능력이 없는 플로리스트 출신의 자경단이었다.
블랙 카나리가 자니 썬더를 지면에서 몰아내고,
처음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게 된 플래시 코믹스 #92의 표지.
로빈이 처음 등장할 때의 표지를 그대로 오마주했다.
첫 등장 후 6회가 지나서야 자기 스토리 지면을 얻었다는 의미는,
인기가 좋아서 승급이 빨랐다는 의미도 되지만
반대로 원래 이렇게 쓸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의미도 된다.
블랙 카나리를 창조한 그림작가는 카마인 인판티노 Carmine Infantino 인데, 처음 블랙 카나리가 등장하는 자니 썬더 회차의 스크립트를 받아본 인판티노는 캐니거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길 원하세요?”
캐니거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네가 갖고 있는 예쁜 여자 판타지가 있을 거 아냐? 그대로 그려.”
그리하여 블랙 카나리는 인판티노의 성적, 미적 취향이 형상화된 캐릭터가 되었다. 검은 가죽 자켓과 검은 핫팬츠, 검은 망사 스타킹을 코스튬으로 하게 되었고 강하고 당당한 성격을 부여 받았다. 여성 캐릭터는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캐니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블랙 카나리 캐릭터의 특징이자 한계가 된다. 강한 여성 캐릭터지만 성적 대상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반드시 남성 캐릭터와의 관계를 갖고 있어야 안정적으로 이야기에 존재할 수 있다.
캐니거는 배트맨의 빌런 중 포이즌 아이비 Poison Ivy 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시간을 뒤로 돌려 1966년 6월에 발매된 배트맨 #181 이슈를 보자. 본명을 파멜라 아이슬리 Pamela Isley 라고 하는 이 빌런은 식물학자 출신이다. 식물의 독성 물질에 정통하며 식물을 조종할 수 있어, 이를 이용해 남성을 홀리고 조종한다.
포이즌 아이비가 첫 등장한 배트맨 #181의 표지.
다이나믹 듀오의 관계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포이즌 아이비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초록색 옷을 입고 배트맨과 로빈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여기서 캐니거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블랙 카나리의 예와 연관지어 보면, 캐니거에게 여성의 가치는 섹슈얼한 면모가 우선 혹은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포이즌 아이비처럼 성적 매력을 무기로 남성을 유혹해 인생을 망치게 하는 존재이니, 블랙 카나리처럼 보조적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당대에 로버트 캐니거의 하급자로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해석을 지지하는 정황증언을 내놓았다. 여성혐오자라 해서 작가를 못하란 법은 없지만 미국 서프러제트의 사상적 후예인 페미니즘 캐릭터 원더우먼의 작가로에는 결코 맞지 않다.
결국 캐니거는 원더우먼의 그리스 신화와 노출도에만 초점을 맞췄다. 캐니거의 원더우먼은 사이드킥인 스티브 트레버 Steve Trevor 에게 공주님 안기로 안기는 캐릭터가 되어갔다.
마스턴과 험멜 시절의 트레버는 원더우먼의 자주성을 부각시키는 장치였다. 스티브 트레버는 미국 군인 출신으로, 원더우먼이 아마존의 섬에서 나와 세계로 진출하도록 도운 남성이다. 마스턴과 험멜은 스티브 트레버를 두 가지로 활용했다. 소유욕에 가까운 사랑을 원더우먼에게 느끼며 “결혼을 승낙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한다던가 “왜 나와 결혼하지 않을까? 나와 결혼하면 지금쯤 내 저녁을 차리고 있을 텐데”라고 말하는 등 남성중심 세계의 여성억압적 측면을 반영했다. 다른 역할은 속세 문명이 낯선 원더우먼에게 세계의 상식 등을 가르쳐주고 활동을 서포트하는, 일반인 사이드킥이었다. 캐니거는 전자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후자에만 집중했고, 그러다가 두 인물의 관계를 역전시켜버린 것이다.
다른 사이드킥인 에타 캔디 Etta Candy 도 변화를 겪었다. 에타 캔디는 원더우먼이 속세에 나와 사귄 친구 중 하나로, 사탕을 죽도록 좋아하는 플러스사이즈의 여성이다. 에타 캔디는 자신이 다니는 할리데이 대학 Holliday College 의 여학생들을 규합하여, 리더로서 그들을 이끌어 원더우먼을 돕는 주도적 리더 형태의 사이드킥이었다. 캐니거는 에타 캔디와 그 무리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고, 점차 에타 캔디의 리더십에 큰 문제가 있고 에타 켄디는 살을 빼야만 한다고 전개를 이끌었다. 푸대접 받던 에타 캔디 캐릭터는 결국 1960년 캐니거에 의해 사망처리 된다. 마스턴과 그 아내들이 설정했던 방향과는 정반대였다. 에타 캔디는 1980년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EC 코믹스 계획과 맥스 게인즈의 사고사
어쩌면 맥스 게인즈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전개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스턴의 사망과 같은 해에 벌어진 그의 사고사는 원더우먼 외에도 회사 하나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DC의 전신 회사 셋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맥스 게인즈는 자신의 지분을 인정받고 올 아메리칸의 일부를 받아 EC 코믹스라는 회사로 독립시켰다. 기존 최고 경영자 3인 체제의 나머지 두 사람인 도넨펠드와 리보위츠는 게인즈의 새 도전을 축복해준 것으로 보인다. 불화의 기록이나 정황은 없다.
EC 코믹스는 맥스 게인즈에 의해, DC 3회사의 합병이 시동을 걸었던 1944년에 설립되었다. EC는 Educational Comics의 약자로, 과거 교사 경험이 있었던 게인즈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방향이기도 했다. 설립 후부터 EC 코믹스는 기독교 종교 만화와 교육용 역사 만화, 교육용 과학 만화 등의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만화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유서 깊은 공격에 맞서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출판만화계의 거물로서 할 수 있는 공익적인 모험이었다.
그런 맥스 게인즈가 회사 독립 완료 1년 후에 사망했다.
EC 코믹스의 최종 로고. E가 Educational이 아닌 Entertaining이라는 것에 주목하라.
맥스 게인즈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회사를 상속받은 사람은 육군 비행단에서 복무하다가 전역하여 대학으로 돌아가있던 아들 윌리엄 게인즈 William Gaines 였다. 원래 그는 뉴욕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화학 교사가 되려 했다. 큰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았으니 아버지의 계획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의 경영 방향은 아버지와 반대였다.
윌리엄 게인즈가 출판 만화의 시장 상황을 보니 수퍼히어로는 저무는 장르 같았고, 대신 전쟁물, 범죄물, 공포물, SF물이 다시 주류 장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들 게인즈도 그리로 가면서 사명의 E를 Entertaining으로 해석을 바꾸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미국 출판 만화 역사상 중요한 회사들에서 다년간 일하면서 다져놓은 작가들과의 인맥 풀은 넓었다. 윌리엄 게인즈의 경영은 매우 순탄했다.
EC 코믹스는 사회 문제가 되어가던 장르들의 대표주자로 떠올랐고, 50년대의 폭력성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화의 교육 기능을 보여주고 싶었던 맥스 게인즈나 만화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고 실제 교육 기능을 시도했던 윌리엄 몰턴 마스턴이 좀 더 오래 살아있었다면 이후 전개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골든 에이지 에필로그
한편 수퍼맨의 공동 저작자인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1947년에 DC 코믹스를 상대로 저작권 수익을 공유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료로 받은 130달러는 초기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대금으로 봐야 하므로, 이후의 수퍼맨 브랜드의 창작 노동과 그로 인한 저작권 수익을 응당 지급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뉴욕 주 고등법원의 J. 애디슨 영 J. Addison Young 판사는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수퍼맨의 저작권이 DC 코믹스, 정확히는 당시 정식 명칭인 내셔널 코믹스 혹은 내셔널 피리어디컬 퍼블리케이션즈에게 귀속된다고 판결하였다.
반면 수퍼맨의 파생 캐릭터인 수퍼보이 Superboy 에 대해선 제리 시걸의 저작권 소유 주장이 인정되었다. 따라서 수퍼맨의 저작권은 회사에, 수퍼보이의 저작권은 제리 시걸에게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한 회사가 수퍼맨 브랜드의 라디오 시리즈 판매과정에서의 저작권 수익 발생을 언급하지 않고 계약서에도 명기하지 않은 채 착복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 또한 영 판사는 인정했다.
영 판사의 판결로 인해 DC 코믹스는 합의로 전략을 수정했다. 시걸과 슈스터 역시 이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알짜배기인 수퍼맨의 권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양측 합의의 결과로 DC는 시걸과 슈스터에게 9만4천여 달러, 2010년대 물가로 환산하면 98만여 달러를 저작권 구매 비용으로 지불했다. 이에 영 판사는 두 캐릭터의 저작권이 온전히 DC 코믹스에 속한다는 판결로 소송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이 소송은 1시즌이 끝났을 뿐이었다. 이 소송의 역사는 수퍼히어로만이 아니라 출판 만화 시장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두 아내와 한 애인과 네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 윌리엄 몰턴 마스턴 이후 이 가족의 후일담 또한 들여다보자. 원더우먼 작가를 지망했던 할러웨이의 제안이 거절당한 후, 두 아내는 각자가 이미 하고 있던 커리어를 이어갔다. 자식들이 독립을 한 후에도 둘은 계속 함께 살며, 마치 커플처럼 한 침대를 썼다. 헌틀리는 여전히 가끔 놀러와 자고 가곤 했는데, 그럴 때면 올리브 번이 할러웨이 옆자리를 내주고 다른 방에 가서 잤다고 한다.
먼저 타계한 사람은 가장 연상인 마저리 헌틀리였다. 1986년이었다. 4년 뒤인 1990년에는 가장 젊은 올리브 번이 사망했다. 가족의 원탑 가모장이었던 엘리자베스 할러웨이는 1993년에 향년 100세의 나이로 앞선 이들을 따라 세상을 떠나며 그룹 결혼 가족의 문을 닫았다. 이들의 장남은 아직도 아버지의 SM 요소 표현이 은유였을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디 갖다붙일 수도 없게 쓸모없는골든 에이지 토막 지식
수퍼히어로 골든 에이지의 두 가지 키워드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징병제였던 전쟁 당시의 미국에서 작가들 중 상당수도 군에 징집되거나 자진입대했다.
캡틴 마블 빌리 뱃슨의 스토리 작가 빌 파커는 대학 시절 ROTC였다. 1940년 10월에 장교로 임관해 뉴욕 주방위군의 기병대에서 복무했다. 소령까지 진급해 5년을 채우고 1945년 10월에 제대했다.
후일 마블의 대부로 성장할 스탠 리는 1942년 초에 입대했다. 그의 소속 부대는 통신사령부(USASC)였다. 부대에서 그의 전직을 알게 되면서 훈련/정훈 자료를 제작하는 업무로 바뀌었다.
수퍼맨의 창조자 제리 시걸의 입대는 1943년 6월 28일, 제대는 1946년 1월 21일. 복무지는 하와이의 호놀룰루였고 주업무는 군내 잡지 제작이었다.
서브마리너 네이머의 창조자 빌 에버렛은 매사추세츠 귀족 가문이라 군대를 기피할 것 같았지만 1942년 2월에 입대했다. 게다가 유럽 전선과 필리핀 전선에서 근무했다 하니 최전선 바로 뒤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무 중에는 펜타곤 병참지원부에서 일하던 이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1946년 2월에 제대했다.
휴먼 토치의 아버지 칼 버르고스는 1942년 공군에 입대했다. 수색대 소총수, 통신사령부, 기술부대를 거치면서 복무했다고 한다.
조 사이먼은 불확실한 해에 입대해 해안경비대 소속이 되어 홍보 부서에서 근무했다.
잭 커비는 1943년에 입대했다. 11보병연대 소속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의 오마하 해변에 배치된 적이 있다. 입대 직전에 사이먼과 커비는 DC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잭 리보위츠의 요청에 따라 보조 작가들을 대거 고용하여 1년치 원고를 만들어놓고 입대했다.
수퍼맨의 편집자이자 아쿠아맨의 아버지 모트 와이징어는 1942년에 입대해 뉴욕 시의 육군 부대에서 군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본을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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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Batchelor, “Stan Lee: The Man behind Marvel”, Rowman & Littlefiel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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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 Amash, Eric Nolen-Weathington, etc., “Carmine Infantino: Penciler, Publisher, Provocateur”, TwoMorrows Publishing, 2010
Jim Steranko, “The Steranko History of Comics” Vol. 1, Supergraphics, 1970
Jerome Siegel and Joseph Shuster vs. National Periodical Publications, INC. et al, 미국 뉴욕 주 고등법원 판결문, 1948.
Joe Simon, “Joe Simon: My Life in Comics”, Titan Books, 2011
Les Daniels, “DC Comics: Sixty Years of the World’s Favorite Comic Book Heroes”, Bulfinch, 1995
Ronin Ro, “Tales to Astonish: Jack Kirby, Stan Lee and the American Comic Book Revolution”, Bloomsbury USA, 2004
2장 주요 사건 총정리 연표)
파란색은 DC 코믹스 계열 사건이다.
빨간색은 마블 코믹스 계열 사건이다.
보라색은 그 외 회사의 사건이다.
검은색은 사회와 시장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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