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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6. 리더의 자세와 사내 불륜이 미치는 영향

7. 20년 다닌 직장을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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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라는 사람의 전공은 설레발이고, 부 전공은 호들갑이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일에도 어찌나 나서는지유난도 보통 유난스런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일에는 일관되게 말을 아낀다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다. 어지간하면,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하고 있다면 참을 있는 데까지 참아 본다. 그래서 상사가 시키는 일은 대체로 군말없이 하는 편이다해서 나는 여태 내가 모셨던 상사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같은 맥락에서 나는 아픈 것도 미련하리만치 참는다. 지난 여름 출근길 버스에서 잘못 넘어져 뒤꿈치가 까져 새하얀 컨버스가 붉은피로 온통 물이 들었는데도 발을 끌고 타박타박 걸어 사무실에 앉아 모두를 놀래킨 적이 있다이번에도 그랬다. 잘못 먹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열흘을 넘겨 배앓이를 했다그러다 끝내 오지게 앓다가 동네 병원에 갔다. 처음엔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며칠 쉬고 나면 괜찮을줄 알았다.

 

헌데 어쩐일인지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약을 챙겨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약을 먹고 괜찮다 싶어 죽이라도 넘기면 바로 다시 탈이 났다그렇게 계속 앓다 보니 의사 선생님께서도 혹시 다른 장기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병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어떻겠냐고 했다. 말을 들은 순간 나는, '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며, 전공을 살려 착각의 세계로 망상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았다.

 

그간 주위에서 어설프게 주워들은 의학정보를 종합해 결과, 병은 누가봐도 '췌장암 말기'였다 후로 종합병원에 비장한 태도로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리산 언저리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었다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다시 (다행히도) 예상은 보기 좋게 나갔고종합병원 의사는 내게 덤덤한 얼굴로 급성위염과 장염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다른 장기들의 기능이 떨어진 걸로 보이니크게 문제 없다 하고 약이라고는 고작 서너알 되도 않는 일주일치 지어주더니  먹고도 불편하면 그때 다시 병원에 오라 했다.

 

진찰을 받고 묵직한 병원 문을 밀며 다시 현실세계로 걸어 나오는데 어찌나 만감이 교차 하던지그렇게 나는 생에 홀로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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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남다른 생의 이력 때문에, 평소에도 별나게 죽음을 염두하고 사는 편이다언젠가 캄캄한 슬리퍼도 신고 화장실에 제대로 자빠진 후로는이렇게 별안간 속옷 바람에 있는 게 인생이구나 싶어, 후로는 여름에도 잠옷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반듯하게 누워 잔다.

 

그러다 보니 나는 평소에도 메모 사진 어디다 허투루 두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정을 적는 책상 달력도, 달이 바뀌는 즉시 바로 뜯어 문서 세단기에 갈아 버린다덕분에 그간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증명할 길이 없어 애를 먹은 적도 있지만 이런 습관은 어쩐지 고쳐지지 않았다.

 

휴대폰 메모장에는 갑작스러운 나의 죽음에 대비 남겨진 가족들이 알아야 이런저런 정보들이 적혀있다읽어보면 별거 아니지만 오랜 시간 신중하게 써내려 글이다. 거래 은행 계좌, 가입한 보험 내역개인적인 채권 채무 관계, 친한 친구 두엇이 하는 친목계, 얼마 되도 않는 곗돈, 무슨 일이 있어도 스무살까지 후원하자 다짐한 아이 이름죽어서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뿐인가 연락처도 수시로 점검해 불필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죄다 지운다삭제 기준은 명확하다. 나의 부고 문자를 받아도 괜찮은 사람들. 바꿔 말해 장례식에 와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렇듯 생은 뜻대로 된다. 누가 그랬다.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고. 다른 모르겠는데정말이지 타고난 명줄 만큼은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같다.

 

아무튼 이번에 호되게 배앓이를 나는 생각했다. 대체 내가 아픈가 말이다. 지난 여름 신경 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속을 버려 한참을 고생해서, 어지간하면 술도 마시고식단 조절도 해서 괜찮은가 보다 했는데, 어째서 탈이 났는지 도무지 없었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속을 끓인 유력한 사건이 바로 떠올랐다.

 

앓이를 하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대강당에 모여서 듣는 사내 세미나를 들은 거였다지난 여름부터 일년 내내, 남의 입에 오르내린 나는 대인기피에 걸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는 일절 출입도 했는데 하필 그날 세미나는 부서에서 필참 지시가 떨어져 어쩔 없이 앉아야 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심장이 벌렁거려 어쩌지를 못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보자, 머리 속에  사람들이구나, 앞에서는 웃고 뒤에 가서 내게 돌을 던진 사람들이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로 나는 다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기어이 탈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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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렵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도 몰라주는 ' 홀로 투쟁' 해를 바꿔가며 했는데어쩐 일인지 하나 달라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체 높으신 양반님네들은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덤벼도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그래서 있는 모든 걸고 붙어도 그들은 여전히 책상 넘어 앉아 있는 먼지 보듯 보았다.

 

그러는 사이, 내가 만든 대외용 발표 자료는 사내에서 입소문을  관련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자료를 받아갔는데, 어쩐 일인지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그간 나는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며, 팀의 막내나 하는 일도 군말 없이 했다아침 일찍 출근해 우편물까지 찾아 돌리고 복사 용지부터 대일밴드까지 사무실 서랍마다 가득가득 사다 넣었다헌데 그들은 바위처럼 틀고 앉아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는 내내 나는 착각했다. '봐라. 내가 이겼다. 우리 일은 내가 한다. 이제 오만 사람들이 나를 찾는다. 이겼다.' 했다.

 

하지만 웬걸, 오히려 싸움에서 완벽하게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나와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나한테 적도 없는 거였다어차피 이마에 주홍 글씨가 박힌 내가 멋대로 찧고 까부는 , 저들의 생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거였다그렇다. 나는 지난 일 년간 허공에 대고 맹렬하게 칼질을 돈키호테였다게다가 이들이 대단한 이들은 이미 싸움에서 자기들이 이길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 실력을 증명한다 한들, 이들은 애초에 같은 천출의 신분그러니까 일반직 여사원이라는 꼬리표로는 절대로 자기네들과 경쟁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로 나는 확실하게 미래를 보았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저들을 이길 없겠구나 하는, 쓸쓸하고 명징한 미래 말이다.

 

절절하게 나의 패배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보다 영리한 몸이 벌써 알아 차리고 탈이 거였다. 이제 그만 하라고여기서 멈추라고, 그들은 내게 일을 빼앗겨 죽은 있었던 아니라애초에 회사의 정물이  생각으로 입사한 거라고, 그리고 이들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평화와 정적을 깨는 나같은 존재는 영원히 뭘 해도 눈엣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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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이상 이곳에 있어야 이유가 없었다그렇게 나는 장장 20년의 세월을 보낸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나의 퇴사 선언에 가장 놀란 바로 직속 팀장님이었다하지만 팀장님이야말로 상황을 지난 일 년 옆에서 지켜,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에 차마 말리지도 못했다.

 

한데 본부장은 달랐다. 본부장은 사직서를 즉시 반려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바로 다음 정신과로 진단서를 끊은 나는 사직서에 첨부해 다시 결재를 올리며정신과 의사의 소견대로 이러이러한 병을 앓고 있어, 업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퇴직을 희망한다 했다.

 

본부장은 내게 몸이 좋아질 때까지 휴직을 보는 어떻겠냐고 했고, 나는 싫다 했다. 그러자 그는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말하라 했지만 나는 다시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말을 대신 했다.

 

"지난 10월부터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일들을 어떻게 왔는지 본부장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한데 같은 부서 사람들은 여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매달 월급을 저보다 200만원, 300만원씩 받고 있고전부 내년에는 승진 대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열심히 성과를 내도, 공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상 승진도 못하고, 퇴사할 때까지 월급도 지금 수준으로 동결입니다본부장님께서 입장이라면 일을 계속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본부장은 그제야 한참 말을 잃고는 처후 관련하여 인사 팀과 협의해 보겠으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하지만 나는 마저도 뿌리쳤다. 그나마 최근에 조직에 합류한 그는 모르지만나는 조직에서 20년간 잔뼈가 굵었. 해서 안다. 조직은 절대로 예외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겠다. 혹여 천지가 개벽하여, 내게 승진이나 연봉 협상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치자,  일은 더더욱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렇게 되면 이제 온갖 수법을 동원해 다시 끌어내릴 거다해서 마다한 거다. 그렇게 얼마를 사느니,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보도블록을 베고 자더라도 나갈 거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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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대단히 상식적인 의문이 거다. 도대체 내가 말하는 긴 시간동안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게 가능하기나 일이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조직이 크면 클수록 노는 사람이 있어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10명 중에 8명이 놀면 문제가 보이지만, 10000명 중에 8000명이 놀면 티가 나지 않는다2명이 일하는 것과, 2000명이 일하는 것, 어쨌거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저마다 일을 했는지도. 하지만 모르겠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그냥저냥 내버려 두는 아니다상위직급자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성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들은 상사에게 깨졌다 혼났다 생각하고 저녁에 소주 한 잔 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직장생활이 거기서 거기지 , 인생 있냐 그냥 존버하자. 해서 그나마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하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 말이지, 10개의 일을 하다가 1개를 잘못하면 징계를 받는데, 애초에 1개도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1개도 실패하지 않아 남는 시간에 쓸개 빼가며 형님들께 아부를 하니 오히려 승승장구 . 그러니 누가 열심히 하고 싶겠어."

 

그러면 이쪽도 나름 서로에게 위로한다. 아니다.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눈이 있다. 사회는 냉정하다. 결국 실력없는 사람은 변별된다헌데 불행히도 나는 조직에서, 실력없는 사람이 변별되는 보지 못했다. 오히려 조직의 미래를 위해 일은 그렇게 하시면 된다, 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나가 떨어지는 것만 없이 봤다.

 

사실 나같은 주제가, 생에 무슨 대단한 신념이 있겠느냐마는 언젠가부터 지키고 사는 원칙 하나가 있다. '의미 없는 싸움은 하지 말자' 이다. 만약 싸움에서 피해자가 하나라면 싸우지 말자. 입에 발린 사과라도 하고 말자하지만 일로 인해 말고 다른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싸우자. 충분히 이겨야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결사 항전하자. 하지만, 이겨도 의미가 없는 싸움은 하지 말자.

 

그러고보니, 지난 싸움이야 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몰랐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힘들어도 내가 성큼 딛으면, 다음 사람, 다음 사람은 적어도 여기까지 쉽게 오겠지, 하는 생각은 과히 망상에 가까웠다내가 아무리 재주를 넘어도 나는 어쩌다 대감집 잔치에 섞여 들어온 주제에 잡일이나 하고 빠지는 종놈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면서도 끝끝내 나는 대감집을 나서며, 순진한 희망을 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간 많이 아팠냐 하며 내게 사과는 못할지라도 설마하니 고개는 떨구겠지하지만 마저도 착각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잘못한 없어서 반성할 필요도 없었다오히려 내가 그만둔다 하자 오랜만에 눈에 빛이 돌고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해서 나는 미련없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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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직을 했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 물었다. 20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 두는 기분이 어떠냐고 해서 말했다. “그냥 스타크래프트를 20 동안 기분이야.”라고 안에서 수없이 많은 전쟁을 했지만, 로그아웃 하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런 기분내가 그간 이곳에서 어떤 플레이를 어떻게 했는지 몰라서,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기분이라고,

 

해서, 이제 공식적으로 나는 백수가 됐으니, 남는 시간에 그간 회사에 아직 적을 두어 대놓고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잡고 생각이다. 연재를 마치면 고급 수입 양장지에 예쁘게 출력해 회장님 댁에 등기 우편 보낼 생각이다. 모르겠다비서실에서 먼저 보고 찢어 버린대도 좋다. 하지만 반드시 말해주고 싶다한때 나도 사랑했고 당신도 사랑해 마지않는 회사가 결국 어떻게 병들고 망가졌는지 증언하고 싶어서 말이다.

 

물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이 나이에, 20년이나 다닌 직장을 박차고 나오면 어떤 고민을 하고 생계는 어떻게 되며, 그전에 생각지 못했던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도 라이브로 써 볼 계획이다.  

 

... ... 

 

아참, 연재물 제목이 <나의 대기업 생존방정식>인데, 퇴사해버렸으니 제목을 고쳐야 되나?  뭐, 퇴사하는 것도 나만의 생존방정식이려나. 

 

 

 

 

 


 

 

필자 주

 

http://www.podbbang.com/ch/1770326

 

안녕하세요산만언니입니다

 

저는 오랜세월 불행에 대해  다르게 고민했고우연히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말로   있는  글로  하지 못해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지난 연재글의 연장 선상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주변에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친구들을 섭외해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패널들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보니내용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고,  밝은(?) 목소리 탓에 더러 ' 본의' 오해 받곤 하지만나름 이를통해 성장하고 싶고전에 제가 글을 올리며 독자분들께 받았던 진심어린 위로와 감동에 보답하고자 기획한 팟캐스트니까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봐 주세요나름의 컨텐츠들이 전부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질문있으시면 molaseo99@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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