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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멘탈 길잡이, 행복 전도사, 척수맨입니다. 제가 질문 하나를 준비했는데요.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정도의 탈인류급 두뇌를 타고나지 않은 수많은 닝겐들이 반복해왔을 질문입니다. 

 

 '무언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창한 질문과 달리,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지혜로운 어르신들께서 이미 답을 알고 계시기도 했구요. 당신이 수없이 들어왔을 그 말 말입니다. 

 

 "노력해!"

 

네. 바로 ‘노오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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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스페이스 누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요.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무작정 노오력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는 건데요. 무언가 잘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데, 노력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력을 해야합니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금연을 해야합니다. 즉,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쉽죠?

 

이게 뭔 헛소리냐? 아뇨, 놉! 이건 헛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깨달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력을 해야 하는 데 노력을 못하겠다면? 노력해야 합니다. 즉, '노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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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워낙 의지력이 약한지라 노력을 정말 못하는데요. 그걸 극복하기 위한 여정, 즉 노력을 위한 노력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어질 이야기는 매우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지겠지만 때에 따라 종교적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레이니즘 나르시시즘 페티시즘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노력을 노오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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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란 뭘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사람의 멘탈과 연관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배경 지식 없는 저는 이 책 저 책 읽으며 방황하다가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멘탈 = 생각 비슷한 말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이 책의 저자를 소개하자면, 다니엘 카너먼이라는 사람인데 심리학자입니다.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네요? 대충 똑똑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나름의 분류로 사람의 사고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인간의 뇌는 얼마나 게으르고 멍청하며 얼마나 실수를 자주 하는가에 대해 알게 됩니다. ‘와 나만 똥 멍청이 쓰레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를 받게 되죠.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버금가는 이 시대 최고의 위로 서적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생각에 관한 여러 이론 중 저의 눈길을 끄는 이론이 있었습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라는 사람이 ‘자아 고갈 ego depletion 이론’이라는 간지나는 이름을 붙인 이론인데요.

 

이 이론에선 사람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는 일은 매우 피곤하다고 설명합니다. 와, 저만 그랬던 게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무언가 억지로 해야 했다면 다음 작업에서는 자기 통제력을 발휘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해진다는 겁니다. 즉, 자기 통제력, 의지력 따위의 것들은 일종의 소모되는 에너지 같은 개념이라는 거죠. 

 

의지력은 한정되어 있어 자꾸 쓰면 고갈된다, 그런 상태에선 통제를 발휘하기 어려워 충동에 쉽게 넘어가거나 무언가를 해낼 힘이 떨어진다는 거죠. 저는 이 이론이 확 끌렸습니다. 어쩌면 이 녀석이 내가 노력하지 못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너 이리 와서 앉아봐라. 니가 왜 안되는지 알아?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 그래!! 노오오오력이!!!"라는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근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아 고갈 이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의 <의지력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이론에 대한 설명, 근거가 되는 실험들, 그리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맛없는 무를 먹으라구요?

 

저는 사회과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만, 언뜻 보기에 사회과학자들이 무지하게 잔인한 사람이란 건 알겠습니다.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실험들을 많이 행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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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까진 아니지만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이 실험에 비할 수 없겠지만, 자아 고갈 이론의 창시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 역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른바, 래디시(radish) 실험입니다.

 

우선 대학생들을 굶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학원생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대학원생도 아니고 대학생을 굶길 수 있죠?? 이것이 사회과학 실험의 잔인성입니다. 아무튼, 얼만큼 굶겼는지 모르겠지만, 배고픈 상태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들을 실험실 탁자 앞에 쭉 앉힙니다.

 

탁자 위엔 접시가 놓여 있고, 접시에 음식은 랜덤하게 올라갑니다. 절반엔 방금 막 구은 따뜻한 쿠키가, 절반엔 아무런 조리도 하지 않은 래디시가 놓여 있습니다(무가 아닌 래디시 radish 라고 표시한 걸 보니 흔히 서양 무라고 불리는, 동그랗고 빨간 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선 그냥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불쌍한 대학생들은 남의 음식엔 손댈 수 없고 자신이 받은 음식만 먹어야 합니다. 래디시만 받은 학생들은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을 겁니다. 쿠키의 냄새라도 맡아보려고 쿠키 주변을 기웃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하구요. 하지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건 맛없는 래디시뿐이었습니다. 즉, 맛있는 쿠키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는 학생들은 강한 의지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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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그냥 먹으라고 했다니, 개인적으로는 연구자들이 무로 안 맞았으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극악무도한 연구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 기하학적인 수수께끼를 풀게 했습니다. 문제를 풀지 못하면 카톡 프사를 펭궨으로 바꿔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시험하는 테스트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수수께끼는 답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그 문제 풀기를 포기하는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인내심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십년간 사용해왔던 방법이라고 하네요.

 

자, 그럼 대망의 실험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초콜릿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문제를 포기하기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실험을 받은 통제집단의 경우도 비슷한 시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래디시를 먹은 불쌍한 학생들은 8분 만에 문제 풀기를 포기해버립니다.

 

창의력이 굉장한 사람이라면 래디시가 사람의 끈기를 갉아먹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교수님께선 이 실험 결과를 래디시를 받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거기에 집중하느라 문제 풀 힘을 소진했다고 해석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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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계속 관찰되었습니다. 이번엔 피실험자들을 모아놓고 악력기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악력기를 누르면 손이 피로해지고 근육에 고통을 느끼게 되겠죠. 따라서 악력기를 더 이상 쥐지 않고 쉬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충동입니다. 이 충동에 저항하여 악력기를 계속 누르는 건 의지력을 발휘하는 행동이구요.

 

잔인한 연구자들은 이 타이밍에 피실험자들에게 아주 아주 슬픈 영화를 보여줍니다. 물론 엄복동처럼 예산이 아까워 눈물 나는 영화도 가능하겠지요? 피실험자들에게 카메라를 통해 영화를 보는 표정을 관찰할 거라고 미리 이야기도 해둡니다.

 

이때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는데요. 한 그룹에게는 영화를 보는 동안 드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영화를 보는 동안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감정을 억누르라고, 마지막 그룹에게는 아무 지시도 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처음과 같은 악력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결과는? 첫 번째, 세 번째 집단은 이전과 똑같은 시간 동안 악력기를 견뎌냈지만 두 번째 집단, 즉 감정을 통제하라고 지시받은 집단은 그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습니다. 이 역시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느라 의지력을 빼앗겼다고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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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실전이고, 한타는 한번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실험과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자아 고갈 이론의 타당성이 증명됐다는 셈이죠.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자제력은 소모되는 에너지 개념이라는 겁니다.

 

근육을 쓰면 점점 피로해져서 나중에는 근육을 쓰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런 현상이 매우 특별한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익숙한 시스템입니다. 특히 저처럼 게임으로 인생을 낭비해본 닝겐들에겐 말이죠.

 

바로, 게임의 '마나'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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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 = 의지력

 

 스킬을 쓰는 행위 = 의지력을 사용하는 행위

 

실험 결과가 증명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의지력을 다 써버리면 정작 중요할 때 의지력을 발휘하지 못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인전에서 q w e를 허공에 꼴아박으며 마나를 다 써버리면, 한타 때 마나가 없어서 궁극기를 못 쓸 수 있다는 것이구요, 조금 더 옛날 버전으로 하자면 러시 전에 할루시네이션을 써서 템플러 마나를 다 써버리면 교전에서 스톰을 못 쓰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노력으로 돌아가 봅시다. '인생 열심히 살고 싶은데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지?' 라는 질문은 저에게 너무 무겁고 다가가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한타에서 스킬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자주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치환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매일 모니터에서 고민하던 주제 아닙니까? 질문이 훨씬 가벼워지죠. 저는 이 관점으로 자제력을 바라봤고, 여러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