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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3줄 요약

 

- 우연히 주운 법인카드로 전국일주를 했다는 노숙인 뉴스를 봤다

-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 그를 찾아나섰다

- 고속터미널에서 밤새 기다렸지만 끝내 그를 찾을 순 없었다 

 

 

 

 

 

종착역 혹은 인생의 정거장

 

“서울역은 기차의 종착역뿐 아닌 서울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우리 인생의 정거장이기도 합니다. 홈리스들은 서울역에서 절망을 이어가기도 하고, 또 다른 난관을 만나기도, 새 출발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홈리스뉴스> 김정원 씨 인터뷰 中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숙인이 많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서울역이다. 굳이 수치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서울역을 지나쳐본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굳이 수치를 들이밀자면 이렇다.

 

가장 최근인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11,340명. 그중 31%인 3,478명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굳이 한 번 더 나눠보자면,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거리 노숙인이 731명, 지자체, 종교단체 등의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2,747명이다. 그 731명 중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300~400명가량으로 추정되니, 상당히 많은 노숙인들이 서울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노숙인'이라는 단어 대신 '홈리스'라는 글로벌 스탠다드한 개념을 가지고 오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홈리스는 노숙인 + 비닐하우스나 PC방 같은 비공식 주거 + 쪽방, 컨테이너 등 기준 이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더한 개념인데, 주거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노숙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숙인보다 현실을 잘 반영한 용어라 할 수 있다. 서울역 근방의 대표적 쪽방촌인 동자동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홈리스가 많은 곳은 단연 서울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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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울역 이전, 1900년 경성역이 지어진 이래 이곳엔 노숙인이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고 일용직을 구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던 차에 IMF가 터졌고, 100명이 채 안되던 서울역 노숙인수는 1998년 9월, 2000여명까지 늘어났다. 이후 역 주변으로 무료급식소와 노숙인 보호시설이 드러서며 서울역은 노숙과 땔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주운 법인카드로 전국일주를 떠난 한 씨를 애타게 찾고 있던 나는, 어쩌면 서울역에서 한 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선 역 주변의 무료급식소 몇 곳을 찾아갔다.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고, 아침 저녁 두 번 급식한다고 했다.

 

 "밥은 많이들 먹으러 오죠. 근데 이름을 묻거나 하진 않아요. 밥만 먹지."

 

별다른 소득 없이 서울역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장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다가가 봤더니 한 종교단체에서 노숙인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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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줄이 무척이나 길다

 

광장을 지나 서울역 다시서기센터를 찾았다. 다시서기센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보호시설인데, 노숙인들은 이곳에서 응급 치료나 자립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보호시설 안내를 받기도 한다. 많은 노숙인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니(고혈압, 당뇨, 치과 질환 등) 한 씨도 이곳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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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니 왼쪽엔 센터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오른쪽 대기실엔 노숙인들이 보였다. 20여개 좌석이 놓인 대기실은 앉을 자리 없이 꽉 차 있었다. 정면으로 이어진 복도 끝엔 화장실과 샤워실 간판이 보였다.

 

내가 입구에 서서 우물쭈물 하는 사이, 응급차가 와서 노숙인을 내려놓았고, 자원봉사자로 추정되는 가운 입은 사람들이 노숙인이 누워 있는 간이 침대를 능숙하게 끌고 갔다. 모두들 바빠보였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장 덜 바빠 보이는 직원을 붙잡고 사정을 설명했더니 나를 회의실로 안내해줬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무척이나 피곤해보이는 직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제가 찾고 있는 분 성함이 한xx 씨인데 혹시 여기 들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xx 씨요? 그런 분은 모르겠는데...잠시만요."

 

그렇게 자리를 비운 직원이 5분 후 돌아왔다.

 

 "한xx 씨 여기서 치료를 받으셨네요."

 

 "그래요? 언제쯤에요?"

 

 "2010년에요. 그 이후로는 안 오셨어요. 서울역 근방에서 생활 안 하시는 거 같아요."

 

 

머리는 빌리면 된다!

 

서울역 이후 몇 번 더 고속터미널을 찾았다. 막차 시간까지 있어 보고 밤을 새기도 했지만 한 씨도, 한 씨를 아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함께 급식소 다니고 술자리도 빈번하게 갖는 서울역과 달리 교류하지 않는 고속터미널 특유의 노숙 분위기 때문에 더욱 진전이 없었다.

 

의도치 않은 소득이라면, 자주 터미널을 가니 노숙하는 분들 얼굴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나는 어느덧 터줏대감처럼 오래 있었던 분과 이제 막 들어온 뉴비를 구분할 수 있게 됐고, 저 선생님이 오늘은 컵라면을 드시는구나, 오늘은 주무시는 위치가 달라졌네? 하는, 고속터미널을 찾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걸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 씨의 행방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고 취재는 고착상태였다. 이대로 실패하는 건가, 불안감이 저 멀리서 스멀스멀 다가오던 그때. 불현듯 머리를 치고 가는 명언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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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는 빌리면 된다!"

 

알든 모르든 시원하게 내지르는 YS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머리속에 울려 퍼진 것이다. 그렇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 이 간단한 원리를 등불 삼아 나는 다시 탐험의 길을 나섰다. 

 

어느 영역이든 머리를 빌릴 수 있는 은둔 고수들이 있기 마련이고, 은둔 고수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는 시민단체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민단체가 있다. 물론 일당 몇 푼에 자랑스런 태극기를 팔아먹는 곳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단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깊은 일을 하고 있다.

 

혹시나 하고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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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골목을 헤치고 넘어 <홈리스행동>.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작은 사무실이지만, 이곳에서 반빈곤 운동과 홈리스 인권, 야학 등의 이슈를 끌고 나가는 은둔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수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시 등에서 노숙인 실태조사를 할 때, 시에서 민간위탁한 노숙인 시설, 지원 기관 등이 함께 한다고 한다. 각 단체가 종로, 용산, 강남, 심지어는 인천공항 등을 나눠 주기적으로 아웃리치(찾아가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해당 단체에서 지역 실정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속터미널 아웃리치를 나가는 홈리스 단체를 찾으면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천금 같은 조언이었다.

 

 

다시, 고속터미널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등을 수소문한 결과, 강남 고속터미널을 관할하는 홈리스 시민단체 두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연락을 했다. 두 단체 모두 한 씨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혹시 방법이 없겠냐는 물음에, 시민단체 직원은 방법 대신 절망적인 소식을 하나 더 전했다. 

 

 "고속터미널에 지금은 별로 없을거에요."

 

 "네?"

 

 "거기 노숙하는 분들이요. 날 따듯해지면 딴 데로 많이들 가거든요."

 

 "그래요? 혹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모르죠. 밖에서 잘 수 있으면 각자 좋아하는 곳에 가니까."

 

그랬다. 겨울이 지나면 굳이 실내에서 눈치보며 잘 필요가 없어지니 고속터미널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도 겨울에만 정기적으로 아웃리치를 나가고 지금은 쉬고 있다고 했다.

 

"그럼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요. 매주 화요일 저녁에 고속터미널에 봉사하러 오는 수녀님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분들을 한번 찾아보세요."

 

수녀님들 소식을 듣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또 고속터미널을 찾았다.

 

오후 5시에 도착해 터미널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노숙인분들은 몇 없었다. 고속터미널역 앞에서 빅이슈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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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

마침 내가 좋아하는 새소년 황소윤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8시쯤 되니 상당히 오래 고속터미널에서 생활했다는 여성 노숙인 두 분이 보였다. 평소엔 멀찍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두 분이 신중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0시쯤 되자 눈에 익은 노숙인이 여럿 보였다.

 

10시 30분. 수녀님 세분이 보였다. 혹시 저분들인가 싶어 면밀히 관찰했는데, 버스를 타러 온 사람들이었다.

 

11시, 12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빅이슈>도 다 읽었다. 겨울이 지나서 안 오신 건지, 동선이 안 맞았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끝내 수녀님들을 만날 순 없었다.

 

더는 방법이 없었다. 한 씨는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췄고, 그의 흔적을 찾을 경로는 모두 막혀 있었다.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고 사실상 취재를 포기하고 있던 그때.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한 노숙인 시민단체 대표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단체 자원봉사자 중 한명이 한 씨를 기억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그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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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뉴스 보셨어요?"

 

"뉴스는 예전에 봤었는데, 그 사람이 한 씨인 줄은 몰랐어요."

 

"한 씨라는 걸 알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한 씨라서 그렇게 했겠구나 싶었어요. 사람 해하지 않고 나쁘게 안 썼구나."

 

"전국을 돌아다니셨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싶더라구요."

 

"노숙하는 분들은 다 사연 있어요. 퇴직한 사람도 있고, 공장 운영했던 사람, 남대문에서 옷 팔던 사람.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한 씨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어요. 노숙인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안하거든요. 한 씨는 그냥 하던 일이 잘못돼서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하던 일이 안됐다.. 그렇군요. 혹시 마지막으로 한 씨 보신 게 언제인지 기억나세요?

 

"음.. 제작년에 마지막으로 본 거 같아요."

 

"고속터미널에서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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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10월부터 11월까지 한 씨는 주운 법인카드로 전국여행을 하고 있었고, 12월 구속됐다.

 

"한 씨는 어떤 분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냥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술 같은 거 안 먹고. 옷도 항상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조금만 옆에서 도와주면 충분히 재활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냥 딱 봤을 때 노숙인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어렵겠네요."

 

"그렇죠. 터미널에 있으면 누가 노숙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분간 안 가요. 자기 관리를 다 해요. 

 

"저 터미널에 갔을 때도 그렇더라구요. 12시 막차 떠난 이후에야 손님인지 노숙인지 구분이 되고."

 

"일반인들은 구분을 못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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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시민단체에 있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다.

 

일반인과 노숙인을 외모로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 노숙인의 이미지와 실제 노숙인의 모습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서울역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이 '평범한' 노숙인이 있다는 말이었다. 

 

"처음 만난 것도 고속터미널이죠?"

 

"네. 4년 전인가 고터에서 처음 봤죠."

 

"처음엔 어떠셨어요?"

 

"인사만 했어요. 절대 처음엔 인사를 안 해주거든요. 일주일 열흘 계속 눈도장을 찍으면 알아보고 인사를 받아주기 시작해요. 한 씨도 그랬죠."

 

"한 씨는 고속터미널에서만 생활하셨을까요?"

 

"제가 알기론 터미널에서만 있었어요. 근데 그 자리에 하루 종일 있는 게 아니거든요. 왔다 갔다 해요. 잠은 항상 같은 곳에서 자도."

 

"지금도 고속터미널에 계실까요?"

 

"노숙인은 자기가 처음 노숙한 자리를 절대 버리지 않거든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거 아니면 다시 그 자리로 올거에요. 뭐, 가봐야 알겠죠? 거기 노숙하는 분들이 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시거든요. 가서 인사하고 물어보면 다 알려줘요. 저 사람이 새로 왔다 뭐 이런 거."

 

"혹시 다음에 가실 때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네, 뭐 같이 가봐요. 제가 소개시켜 준다고 해도 될 지 안 될지는 몰라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촬영을 오거든요. 근데 노숙인분들이 응해주지 않아서 단독으로는 인터뷰를 못 따요. 우리를 거쳐서 하지. 우리도 노숙인분들한테 설명하고 부탁 드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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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씨를 찾기 위해 자원봉사자와 함께 고속터미널을 찾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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