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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민중총궐기가 있던 날는 박근혜 정권이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적’이라고 분명히 규정한 날이다. 최루탄이 캡사이신 물대포로 바뀌었을 뿐, 1980년대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1월 14일 사진을 흑백 처리하면 1980년대 당시 사진이라 해도 믿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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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제는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물론 이쪽 진영에 많은 전략 전술가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대로 그간 느꼈던 점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 글을 시작했다.


11월 14일, 필자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조합원 신분으로 현장에 있었다. 전날 프랑스 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마 별생각 없이 선배나 동료에 끌려온 사람들도 막상 10만에 달하는 군중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구나’


그 날의 집회만 놓고 보자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과잉진압 논란으로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되었으니.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날도 그렇고, 여태 집회에 참가하고 보아오면서 느꼈던 점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싸우면 좋을지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1. 동시다발적 대규모 집회


14일 당일 새벽 경남에서 11,000명, 울산에서 5,000명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했다. 해당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원을 동원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만약 이 정도 인원이 각 지역에서 집회를 열고 시위를 했다면, 아마 해당 지역 언론이나 지역 방송 톱기사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지역 주민들이 이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일어나는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된다.


4월 혁명이나 6월 항쟁 때도 지방에서 실마리를 터줬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3·15부정선거 반대의 불길이 확 타올랐다가 주춤해졌을 때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이 떠오르면서 마산을 중심으로 다시 시위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고, 이는 서울까지 전염됐다. 6월 항쟁 때도 서울 외에도 부산, 마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에서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 당시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지방까지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전두환은 부산, 마산, 대구 등에 군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물론 군 투입 지시는 미국의 반발과 노태우가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취소됐다).


지금도 역시 경찰 병력으로 지방까지 커버하지 못한다.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면 정권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정권은 그저 수도 서울 지키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다. 지방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접촉면을 늘여라


오늘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이것이다. 아니 모든 운동의 핵심은 바로 대중들과 폭넓게, 다양하게 접촉해서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거 아닐까.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접촉면적이 아주 적었다고는 할 수 없다. 서울 각지에서 집회를 했고, 워낙 사람이 많았으니 차를 몰고 가다, 길을 가다 집회 현장을 스쳐 본 대중들도 제법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원된 인원 수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접촉면이 적었던 것 같다. 특히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할 때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대중들은 극히 제한 됐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말지와 한겨레를 봤지만 ‘데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뭔가 거부감이 있었다. 정권, 보수언론, 학교, 집안 식구들 영향으로 ‘데모하는 사람들’과 나는 떨어져 있었고, 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배제된 사람’으로 느껴졌다. 아마 이런 ‘배제의 논리’는 앞으로도 주구장창 계속될 것이다. 집회하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또라이(지금으로 치면 무슬림이 당하는 형태로) 집단으로 계속 매도될 것이고, 대중들은 보이는 대로, 듣는 대로 믿을 것이다.


따라서 대중들과 접촉면적을 늘이는 작업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면 대중들과 접촉해야 한다. 만약 13만 명 가운데 5,000명 만 서울 시내에 흩어져서 선전전(홍보)를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한정된 공간에서 경찰이랑 싸울 게 아니라 서울 시내 곳곳으로 다시 퍼져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홍보지를(그날 비가 왔기 때문에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겠지만) 나눠주는 것이다.


나는 아침 7시 버스로 올라가서 저녁 7시 버스를 타고 빈손으로 왔다. 결국 지방 사람들은 서울에서 빠져야 하는데, 이 사람들에게 하다못해 다음날 2차 미션으로 홍보지 한 뭉텅이라도 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결국 지방에서의 접촉면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들의 도저히 관리할 수 없을 때다. 아까 말한 대로 전국에서 터지면 관리할 수 없고, 사람들이 흩어져서 대중들과 만나는 것도 관리할 수 없게 된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는 정권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었던 일이다. 저들을 편안하게 해 주면 안 된다. 정권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벌어져 정권이 상황을 관리 못 할 때, 대중들은 정권이 흔들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짐작한다.



3. 20~30대를 내세워라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연령대는 대부분 50대 노동자들이었다. 운동을 이어나갈 젊은 세대가 없다는 건 참으로 막막한 일이다. 민중총궐기에서 가장 큰 집회인 서울시청 노동자대회에서 20대가 무대에 선 것을 보기 힘들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는 건 이해하더라도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입장을 호소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들은 그저 무대에서 몸짓을 하고 내려올 따름이었다.


20~30대는 리더가 없는 세대다. 하지만 이 세대가 10년이 지나면 사회의 주역이 될 거다. 누군가는 리더로 나서야 한다는 거다. 리더가 될 경험을 왜 이쪽 진영에서 제공해주지 못하는가? 작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질 거 아니냐. 후보를 낼 수 있는 곳에 모두 20~30대를 내세워라. 이 친구들을 딱 3번만 계속해서 선거에 내보내 봐라. 엄청나게 성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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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있었던 '헬조선 뒤집는 청년총궐기'에서 청년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NEWS 300>)


또한 이번 노동개악에서 박근혜 정권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을 논리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논리를 자주 써먹을 것이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리려면 청년들의 입을 빌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된다. 그런데 50대 대기업 노조 위원장이 나와서 비판을 하는 모양이니, 지지를 얻기 힘들다. 찾아보면 20~30대에도 인물이 있다.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등을 기반으로 많은 청년들이 활동하고 있다. 문화 쪽에서도 괜찮은 청년들이 많은 것 같다.


현장에서 투쟁가를 틀더라도 이 친구들이 리메이크한 투쟁가를 틀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들에게 1차적으로 마이크를 잡을 기회를 주고, 2차로 큰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할 기회를 주고, 3차로 선거에 출마할 기회를 주면 정치적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4. 청년들 기 살려주기


11월 14일 같은 대형 행사는 적지 않은 비용을 소비하는 행사다. 지방에서 버스 한 대만 전세 냈다고 해도 버스비, 식비, 뒤풀이 비용까지 족히 백만 원 단위는 그냥 깨지는 행사다. 이런 버스 수천 대가 서울로 향했다. 그 돈 가운데 일부를 다른 식으로도 써 보자.


청년들 가운데서도 다양하게 ‘노는’ 친구들이 많다. 무슨 조직 단위로 투쟁 기금을 모을 필요는 없고, 다만 좀 생각이 맞는 청년이 책을 한 권 썼다면 노조에 몇몇이 책 한 권 팔아주거나, 카페를 차렸다면 그냥 차라도 한 잔 사주고 가는 것이다. 노래를 한다면 음반 한 장 모르는 척 사 줄 수도 있는 거고. 공연을 하면 좌석을 잠시 채워주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런 청년들을 발굴하는 것이다.


청년들도 ‘우리 조직에서 어느 친구 먹여 살려주자’ 이런 건 바라지 않는다. 그냥 작은 관심 하나에 감동하고, 작은 지지 하나에 일어설 용기를 얻는 것이다.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마이크를 주거나 선거에 내보내는 것 말고도 젊은 친구들을 키우는 건 이런 방식도 있다. 청년들은 많은 돈을 바라며 살지 않는다. 이 청년들이 ‘기가 살면’ 나중에 무슨 큰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기성 운동권은 너무 크게 크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저 사소한 행동이 훗날 세상을 바꿀 인물을 배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물론 여기에 전제가 하나 붙는다. 꼰대 짓 하지 말기. 공연이 어쨌니, 책이 이렇니 저렇니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 그건 기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뒤풀이 같은 데도 가지 말자. 술 마시고 또 옛날 얘기할 게 뻔하다. 그냥 말없이 박수쳐 주면서 소소한 것을 도와주면 알아서 살길을 찾아간다. 그 정도 능력은 있다.



5. 손가락을 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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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 말마따나 손가락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다. 집회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들에게도 미션을 줘라. 네이버나 다음에 기사 올라오면 댓글을 달거나 하다못해 찬반이라도 누르게 해라. 네이버 지식인 이런 곳에 채택이 안 되더라도 답글을 달아줘야 한다. 밴드 같은 데에서도 쪽팔리지만 글을 올려야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개혁’ 글자만 붙으면 다 좋은 방향으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미디어 90% 이상이 저들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기댈 곳은 온라인뿐이다. 온라인은 성실한 집단이 장악한다. 심심하면 맨날 스마트폰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찬반 버튼 한 번 눌러주고 오는 습관, 딴지일보 같은 괜찮은 곳에 배너 한 번 눌러주는 습관을 길들이면 큰 도움이 된다.


씨바 막 쓰다 보니 글이 졸라 재미없다. 내 결론은 이거다. 아직 사람이 있고, 길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저쪽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역량을 갖춘 천재들만 모인 집단은 아니다. 저들 또한 온갖 삽질을 하고,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냥 몇 가지 습관이나 관점만 바꿔도 길이 있다고 본다. 뻔한 소리지만 아직 세상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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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말고도 다른 방법에 대해서 함께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임종금


편집: 딴지일보 cocoa,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