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5. 19. 화요일

정체불명 무숙자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을 영어 배운다고 용을 쓰고들 있는데 어느 날 아침 너한테 재수 없게 전철역 난간에서 미국인 하나가 “이태원 가는 전철 여기서 타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온다면 대개 그날의 운세가 보이지.



man-438090_640.jpg

거, 말씀 좀 묻겠수다.



물어본 그 넘이 제대로 서있는 거면, “Yes!” 한 마디에 영어씩이나 하는 지성인 되는 거고, 건너서 타야 하는데 멍청하게 잘못 서있는 거라면 버벅대다가 스타일 조지는 거고. 혹여 “This is not 이태원 bound. The other side is yours.” 정도 튀어나오고, 미국인이 “Thank you, Have a good day!”라고 말하며 손까지 흔들면, 주위의 존경과 선망에 찬 시선을 한껏 받으며 그날 기분 짱 되는 거지. 여서 타면 이태원 가는 거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베푸는 친절과는 아주 다르게.


사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점수 때문이지. 시험 치니까 정답 찍어서, 신변보호를 넘어 자아실현(취업필기시험, 토익 혹은 토플, 공무원시험), 가정의 평화 수호, 나아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인재지향... 것만 해도 쌔가 빠져서 입에 단내가 나는데 수험영어 말고 진짜 영어씩이나 해보자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이 무숙자가 어쩜 쌩뚱맞을 거야.


근데 내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하는 영어공교육은 나라를 살릴 수도 있는 큰일이야. 영어 해외연수 보낸다고 날리는 돈을 모으면 4대강에 쓴 돈은 애교야. 몇 년치 모으면 사자방보다 더 많은 돈이 서민들 주머니에 모일 수 있는 거라고. 사교육비 안 나가면 ‘경사 났네 경사 났어’ 하는 가정들이 몇이나 될 거 같아? 무지 많을 걸? 그러니까 ‘제대로 하는 영어공부, 우리 집 경제를 살린다’ 뭐 이런 말이 되는 거지.


시작하기 전에 하나 클리어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 나는 영어를 한국말로 가르쳤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어선생은 ‘영어 퍼펙트, 한국말 퍼펙트’ 한 선생님이야. 근데 그런 샘 거의 없어. 모국어가 확고한 인재들은 모국어를 주체로 영어를 비교하며 가르치는 게 영어로 영어는 배워야 한다는 거보다 효과적이라고 믿거든. 근데 한국말로 영어를 설명한다고 하는 한국 영어책들을 보면 영어보다 한국말 설명이 열 배쯤 어렵더라. 컨닝 좀 해서 더 아는 척 하려고 책 고르는데 짜증이 나더라고. 영어학술대회 하는 거 아니니까 우리 상식 선에서 한국말로 영어를 얘기하자는 거야. 오케이?



제발 ‘기초’부터 하자


전철역 장면에서 나온 영어 한 마디. 참 엄청나게 어려운 문장들이야, 그지?


This is not yours.

This is not it.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영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기초부터 해야지. ‘기초’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그 기초. 영어공부의 '기초'가 뭘까?


한글의 기초하고 같아. 교회에서 만나 알게 된 방글라데시 출신 아저씨한테 한글 가르칠 때 뭐부터 해? 가나다라 가르칠 거지? 당근 우리도 ABCD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위에 있는 것처럼 엄청나게 어려운 문장들은 아직 아냐. 물론 단어도 아니야. ABCD부터 라고.



boy-286240_640.jpg



겨우 알파벳이라고라? 사람을 우떻게 보고... 유치원만 다녀도 줄줄 외는 게 알파벳이여! 알겠는데, 우리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함 해 보자고. 니가 국제결혼해서 한국에 지금 와 있다고 하자. 한국말을 배우려고 해. 그럼 ㄱ, ㄴ, ㄷ부터 배워야겠지. 걔네들은 한국어를 아예 모르는 거고 벌써 알파벳을 통달한 너의 영어레벨하고는 다르다고?


오케이. 그럼 발음은? ‘한국토종영어’ 그거 미국본토발음하고 틀린 거야? 왜 한국본토영어 발음이 미국본토영어 발음하고 틀려? 한국서 어떻게 미국본토발음을 배우냐고 너 지금 짜증내는 거야? 그래서 다들 돈 들여서 본토로 어학연수를 가는 거라고? 자식, 학교에서 영어선생들이 한국토종영어만 가르쳐줬구나. 힘들었지?


라고 하고 싶다만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초등학교서부터 중딩, 고딩 지나면서 영어선생이 한 둘이었냐. 그 중에 한 넘도 미국본토영어 가르쳐 준 넘이 없었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뭐? 신토불이가 최고라고? 에라이... ‘한국토종영어’라는 황당한 명사. 영어가 참치냐? 영어가 통조림 재료는 아닐 텐데.


영어하는 넘들과, 글구 여성분들과 소통하려고 배우는 건데 걔네들이 못 알아듣는 영어를 왜 배우냐고. 게다가 뭐? 걔네들 말하는 것도 못 알아 듣는다고? 암만 시험점수에 목이 매달려있어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근 20년씩 하고 사는 건 정말 아니지 싶어.


빠삐용이 누명을 썼다고, 나는 이런 벌을 받을 이유가 없으므로 나의 탈옥은 정당하다고 우기다가 ‘살인은 모르겠고, 인생을 허비한 것은 분명한 유죄다’라는 재판장의 말은 인정을 했었지. 쪼그리고 앉아서 함 생각이란 걸 좀 해 봐봐.


알파벳만 제대로 발음하면 영어완성의 30%는 먹고 들어간다. 왜 그런지 설명을 해볼게.



나는 알파벳 읽을 줄 안다


‘나는 알파벳 읽을 줄 안다’라는 데에 문제가 있어. 거의 다. 영어이야기 1편에 댓글 달아준 영어짱들이 다들 하던 얘기지. 니들 대부분이 알파벳을 읽으면 미국인들 귀에는 어떻게 들릴까. 한글 자음을 갖고 보여줄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ㅌ ㅍ ㅋ ㅎ

키억, 니근, 티글, 리을, 묘옴, 피욥, 쇼옽, 이잉, 직긋, 치윽, 띠글, 비옵, 키욕, 히욧


거기 키다리아저씨 일어나서 함 읽어볼래? 어때? 미국인이 한글 배운다고 열심히 저렇게 읽고 있다고 생각해 봐. 어떤 감정이 생겨? 감동이 막 오지? 존경스럽고, 어쩜 저렇게까지.


니가 알파벳을 읽으면 미국인들 귀에 ABCD가 엉망진창으로 들린다는 소리야. 미국인 앞에서 함 해 봐. 암만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야. 적어도 내가 겪은 학생들 기준에는.



어ㅡㅇ망.jpg  

이런 엉망진창인 느낌이지...



알파벳 26자 중에 우리 한국말에 없는 발음을 가진 철자가 몇 개나 될까?


B, C, F, L, P, R, V, Z


L발음은 혓바닥 굴린다는 본토발음 흉내가 가능해서 얼추 할 수 있어. 하지만 B하고 P는 까다로워. R발음도 우리 발음에 없지.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어서 '우, 우' 할 때 입모양을 먼저 만들고 ‘Red, Read, Right’를 정성스레 말하면 (우)뤠드, (우)뤼드, (우)롸이트가 돼. 그래서 Orange도 오(우)륀지가 되는 거고.


그리고 안 되는 사람은 진짜 애먹는 발음이 C야. 총수가 전에 많이 하던 ‘씨바’ 할 때 발음이 된장발음이야. 본토발음은 혓바닥이 앞니 정면 바로 뒤 입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져. ‘씨바’ 할 때 ‘씨’는 혓바닥이 바닥에서 퍼져 자는 거고. 인터넷 사전 찾아 들어가서 듣기 눌러서 듣고 따라 해 봐. 효과 직빵이야.


영어이야기 1편에 ‘열심히 단어를 외워라’님이 단 댓글을 잠깐 인용할게.


“단어를 제대로 외우고, ‘발음’을 유의해라. R, L, TH, 발음 제대로 하는 ‘한국인’ 특히 ‘우리 한국 남자들’ 진짜 찾기 어렵다. 전무하다고 해도~~!! ‘R’은 꼭 ‘L’로 발음하고, ‘TH’ 는 꼭 ‘쓰’로 발음하는 이상한 습관들이 있는데, ‘아, 쓰~바’ 같은 상소리 너무 자주해서 그런가? 딴지 영향?”


좌우간 니들 좋아하는 여자, ‘Girl’ 그걸 제대로 발음하는 한국인을 못 봤다. Girl, 우리의 외국어 표준 표기로는 ‘걸’이지만, 그게 R, L을 연달아 발음해야 알아듣거든. 혀가 들려서 입천장에 닫지 않는 게 R, 순간 연속해서 내야 하는 발음이 입천장을 치는 L, 아니냐? R과 L을 연달아 발음해야 ‘걸’을 알아듣는데, 우리식 ‘걸’ 발음에 다들 배꼽 빠진다.

GULL, Gol... 뭐, 이런 식의 발음을 하니까 못 알아듣는 거지. 일본넘이 죽어도 우리말 ‘김치’ 발음 제대로 못하고 ‘기므치’가 되듯 말이지. 그들에게 없는 우리말의 혀놀림이 많으니까 그런 건데, 이건 연습하면 된다. 나이 들어서 왔다고 못하는 게 아니라, 연습할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좋은 내용이니까 궁금하면 가서 읽어봐들...



그깟 발음이 대수다


그러니까 ‘그깟 발음이야’ 하는 건 머리에서 싹 지워. 발음이 틀리면 정상인으로 안 보이는 게 상식이야. 기껏 자음 하나 모음 하나 쪼금 이상한 게 진짜 대수야. 응, ‘진짜 대수야. 바보야’라고 말하는 거야.


보기> 어쩨 팍교에 가 썬쌩헌테 쌰되기르 마자다아이카

해설> 어제 학교에 가서 선생한테 싸대기를 맞았다아이가


위의 보기처럼 말하는 친구넘이 있다고 생각해봐. 짜증 제대로 받을 걸. 그래도 저렇게 문법이라도 맞으면 시험점수는 꽤 나올 거야. 문법이 딱 맞으니까. 한국서 영어 좀 한다는 신토불이 영어가 저래. 'Grammar & Structure'의 지존. 다음 문장에서 문법적으로 틀린 거 찾아봐라 그러면 컴퓨터 족집게지. 바로바로 찾아서 답 쓰고 백 점! 나는야 영어도사! 는 무슨.


'밥'이란 단어에서 자음 'ㅂ' 발음이 안 되면 '팝'이나 '맘'이 돼. '책상'이 '잭상'이 되고, '얼굴'이 '언굴'이 돼. '컴퓨터'가 '검퓨터'가 되고. 다시 말하지만 발음을 제대로 못하면 사람취급 못 받아. 그래서 알파벳이 중요한 거야. 그럼 어떻게 비싼 비행기를 타지 않고 정든 땅에서 알파벳을 지대로 배울 수 있을까? 우선은 니가 갖고 있는 컴퓨터 활용해. 유튜브 있잖아.




유튜브에 이런거 많아.



뭐, 영어하는 미국인을 하나 잡으면 젤로 좋고.


Can you give me an hour?

Help me to learn how to read alphabet correctly, please!!!


라고 할 수만 있다면 진짜 좋지. 말하기 뭐하면 종이에 찍어서 갖고 다니다가 미국인 한 명을 발견하면 보여줘. 귀엽게 배시시 웃으면서, 약간의 짜증도 각오하면서. 물론 계속 잡아채야지. 같은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든.


사실 글로 발음을 얘기한다는 게 어마무식한 짓이지만 쪼금 더 끄적여 보자면 이래.


B하고 P를 먼저 해 봐. 얘네들은 파열음들이야. 한글 자음 ㅍ도 파열음이지만 얘네들은 더 많이 터뜨려야 해. 입술이 안 보이게 입안으로 오므렸다가 터뜨려 발음해야 해. 많이 연습하고 나면 이런 오버액션은 관둘 수 있어, 나중에. 제대로 못 터뜨리면 등신 되는 거야.


그리고 B. 한글 자음 ㅂ발음 그대로 bus를 ‘버스’라고 말한다면, 미국인 귀엔 대략 ‘vus’ 비슷하게 들릴 거야. 결론은 못 알아 들어. 한글 자음 ㅍ발음대로 ‘피터팬’이라고 하면, 걔네들 귀엔 ‘feter fan’ 비스무리하게 들리겠지. 결론은? 무슨 선풍기 얘기를 하는 건가 정도?


미국인들은 말할 때 흉성(가슴소리)을 쓰는 이가 드물어. 얘네들은 거의 비성(콧소리)을 써. 우리? 우리는 목울림소리나 흉성을 쓰지. 그리고 얘네들은 말을 듣는 게 우리랑 달라. 우리는 음절단위로 말을 듣고, 얘네들은 유성음 무성음으로 말을 들어. (더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지금은 쓸 데도 없어) 터뜨리지 않은 ㅍ소리는 얘네들 귀에 F에 가깝게 들린다.


아무 것도 안 터지잖아. 방귀 새는 피이... 그니까 ‘Pen’이 ‘Fan’으로 들린다는 소리야. 물론 정확한 F발음을 안 했으므로 이도저도 아니지만, P보다는 F쪽에 가깝게 들린다는 얘기야.


L(엘)은 비성(코울림소리)이야. 코 틀어막고 ‘엘, 엘’ 해 봐. 기분을 확실히 느껴. 코맹맹이 소리야. 코를 틀어막고 소리가 울리는 곳을 단단히 기억한 담에 막은 손 떼고 똑같이 해 보려고 해 봐. 물론 이게 끝은 아니지만 미국인 하나 잡아서 물어보기 전까지는 이걸로 버텨. 인터넷 사전에서 듣고 따라하기 해보려면 혓바닥도 입술 끝으로 꺼내보고, ‘엘, 엘’ 하는 거야.



 pug-698659_640.jpg

혓바닥을 과도하게 꺼낸 예



옛날에 뉴욕 외환은행에서 론(loan)을 담당하던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에도 역시 처음 며칠은 이 L발음과의 전투였어. 그 아저씨는 대출신청인이 꼭 한인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신청인한테 전화가 오면 대출승인이 된 건지 안 된 건지, 빠꾸 먹었으면 왜 글케 된 건지를 설명하거나 편지로 찍어 보내는 일을 했어. 유학했던 경력 덕에 주재원이 되고 가족들하고 다 와서 사는데, 고민이었던 거지. 계속 외국손님들이 그러더래. “뭐라켓노? 뭐라꼬? 어잉? 뭐?” 욕 나오게 못 알아들으니까 수소문해서 저 외국 손님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배우러 온 거야.


며칠은 비음 연습 시키고, 혓바닥을 빼고 ‘엘, 엘’ 하는 거 연습 좀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한 2주 지났나? 아저씨 학생이 나한테 고백을 하더라. 퇴근하고 밤에 영어 땜에 잠이 안 와서 화장실을 갔대. 거울보고 혓바닥 옆으로 내밀고 ‘엘, 엘’ 거리고 있는데 와이프분이 문을 밀고 들어오더랜다. 눈물이 글썽해서리. “얼마나 바깥일이 힘들면 이렇게... 우짜다가... 여보...” 삽시간에 완전 돌은넘 될 뻔 했다고 하면서 씨익 웃는데 웃기면서도 한편 짠하더라. 그래도 일주일 되니까 “손님들이 내말을 알아듣습니다. 선상님.” 하면서 무척 좋아했었어.


이제 마무리. 복습. 영어가 너한테 필요하다면 알파벳부터 제대로 해야 해. 그래야 사용가능한 영어습득이 가능하다. 언넘이 갈쳐주고 넌 받아먹는 공부가 아냐. 영어는 ‘습득’이야. 다음 주로 미루지 말고 함 해 봐. 일단 시작하면 잘 안 되고 오기가 생기면서 욕도 나올 거야. 그래도 해 봐. 오케이?


난 또 기계 뜯어먹어야 해. 배가 고파. 니들도 저녁 맛나게 먹고, 좋은 꿈들 꿔. 수고들하고.


빠이빠이.






정체불명 무숙자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