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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독자. 이번 글 망한듯. 어렵고 복잡하고 진심까지 담으려함. 이해안되면 정상임. 망함을 즐기시길.)





수신인 이승환

발신인 <이승환 폐지주울까 걱정하느라 나라 걱정 못하는 폐지줍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발기인




난 그 동안 이 시리즈의 어떤 편은 30대 여성으로, 어떤 글은 50대 남성으로서 써왔습니다. 이게 뒤엉키며 40대의 성정체성이 모호한 자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나는 당신과 한날 한시에 태어난 동갑내기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철부지 소년인 반면 나는 노회한 노인이네요.


노인은 나라 걱정하는 것보다 소년을 걱정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일 걸로 착각했어요. 그런데 글을 쓴 지난 7주 3일간, 당신의 노래를 처음들은 때로부터 치면 8주 1일 동안 얼마나 갑갑하고 우울했는지. 술대신 커피믹스를 들이켜며 일주일에 하루는 기사쓴다고 밤 새다가 비장과 위장이 생기를 잃는 바람에 지난 번 글에 '비위'란 단어를 나도 모르게 무려 세 번이나 썼더라는.


게다가 지난 5화를 쓰기 위해 악성댓글을 찾아다닐 때는 뇌가 정말 아메바에게 파먹히는 줄 알았고 노인은 오늘도 그 때 읽은 것들이 발암물질이 아니길 바랄 뿐이며 이 소년이 이미 음악을 통해 일베의 공격에 상당부분 단련이 됐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는. 그리고 그의 깃발이, 투척된 오물로 얼룩진 채 저잣거리에서 나부낄 때 지나치던 사람들이 가끔씩 박수치면서 한 마디씩 하기를 “천일동안 노래 좋아요", 혹은 "멋있게 늙어가네"(철부지 소년에게 상당한 망발.)... 그가 왕년이 아닌 현재, 발라드가수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가수로 겁나 젊은 음악을 하고 있음을 그들이 알려면 그의 페북에서 클릭 몇 번만 해도 되는 것을. 역시 정의라는 것도 널려있는 공짜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일 뿐이라서 댓가로 클릭 품조차 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 그런데 내가 여기서 연예인에게 정의란 단어를 결부시키면 또 발딱 일어서서 역겨움을 표할 인간들이 털어보면 한 다스 이상 나올 텐데, 그럼 나는, 니들이 발딱 일어난 게 바로 정의다, 니들한테도 있는 정의가 이승환한테 왜 없겠냐, 울 동네 애들도 다 갖고 있고 누구나 본능으로 갖고 태어나 버스에서 내 발을 밟은 인간의 발을 꼭 되밟아주고 싶게 하는 게 바로 정의다, 하며 정의를 어렵게 만드는 반정의분자들을 친절히 모시려고 준비 중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데 음악도 사실상 공짜인 세상에서 공연에 과잉투자하는 그는 과연 폐지를 줍지 않을 수 있을까, 이웃된 도리로서 걱정이 된다는. 폐지줍는 주제에 왜 그를 걱정하냐고 묻는다면 이런 걱정이라도 해야 폐지 주을 맛이 나지, 그럼 넌 폐지 그램 수만 걱정하면서 살면 좋겠냐고 되묻고 싶다는.


그래서 그가 좀 짠했던 노인은 오늘 영업은 일찍 파하고 소년을 불러내었습니다. 물어보니 허니버터칩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소년의 손에 한 봉지 들려주고는 점빵 앞 의자에 같이 앉았습니다.


"내일부터 연말공연 시작하지?” (동갑이라서라기 보다 글의 분량좀 줄여보려고 그냥 말을 놓기로 했습니다. 그럼 문장이 짧아지니까요. 호칭은 당신. 여보 당신 의 당신이기도 하고 멱살잡고 당신이 뭘 알어? 하는 당신이기도 하니 스타와 팬간의 관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 같음. )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지 못하는 삶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그런 삶들 덕택에 인간이 이만큼 살고 있는 걸 알고 있다고. 문명과 문화는 우리가 개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댓가도 치르지 않고 빼앗은 성취가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거라고. 그래서 문명과 문화는 내가 아는 한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난 공연과 관련한 당신의 오랜 속앓이에 대해 알고 있다 생각한다고. 그리고 당신의 진심과 자부심만은 그들이 따라올 수 없을 거라는 것으로 당신이 위안 삼는 것을 보았다고. 그런데 진심과 자부심은 사람들이 따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모른다고. 이 점이 바로 당신과 같은 사람들과 그들의 차이이고 어쩌면 당신과 나의 차이이기도 하다고. 당신에겐 그것이 어떤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지만 나같은 사람에게 진심과 자부심이란 아마도 위선 카테고리에 속하는 유용한 공격 및 방어수단쯤 될 거 같다고. 난 사실 음악과 정치 모두에서 당신을 비판하는 기사를 두세 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두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 철학자의 영혼을 모셔오자면, 옳지 않음의 자연스러움을 보는 문제라고. 근데 더 자세히 말하면 이 글 망한다고.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얘기를 시작했다가 어느새 그를 심란하게 할 얘기들로 빠져버리니 역시 노인들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그 간의 기사에서 왜 당신에 대한 비판을 못했느냐 묻는다면 당신을 알리는 게 내 글의 우선적 목적이었으며, 당신이 설사 용가리 같은 노래만 만들고 부르고 그런 무대만 꾸며왔다해도 26년을 그렇게 했다면 그 삶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을텐데, 당신이 언론과 대중의 눈 밖에서도 에너지를 쏟아가며 만들고 부르고 엄청난 수의 무대를 꾸며온 그 세월과, 그게 용가리가 아니었음을 볼 때 난 그냥 졌다는. 당신의 미친 최선에 대해 쓰면서 그것이 광기이기에 비웃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난 그저 턱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는.


그리고 신은 한 가수를 통해 우화 한 편을 쓰고 계신지도 모른다는. 그에게 다양한 재능을 주시고 심지어 신화적인 에너지를 위한 모종의 발전장치까지 부착해 주신 대신에 이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그마한 핸디캡을 하나 얹어주셨으니.

그 가수는 자체 제작한 앨범으로 데뷔하면서 방송활동 없이 밀리언셀러 가수가 되는 정말 꿈같은 성공스토리를 쓰게 되고, 비오는 날 어떤 소녀는 우산도 없이 처연히 비를 맞으며 걷다가 거리에 흐르던 그 가수의 목소리가 자신을 포근히 감싸는 느낌을 받고는 문득 세상이 살만하다고 여기게 되고. 그 후로 소녀는 그 가수를 닮은 남자만 골라 사귀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남겼지만 이런 믿기 힘든 성공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목소리, 여기에 가창력, 표현력, 듣기 좋은 노래까지, 그가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황금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이것들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다른 목소리와 다른 창법으로 다른 노래를 부르게 된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나도 안다고. 그는 그 후로도 수작 앨범들을 쭉 발표했고 공연문화를 개척했고 오늘날 그는 자신을 형님으로 부르며 영업을 뛰고 있는 주진우와 표창원이라는 특별한 팬까지 두고 있으니 내가 가수라면 질투로 건강을 잃었을 상황. 그는 아마도 대한민국 대중문화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수일 거라는 것. 다만 사람들이 모를 뿐.


그는 이중그림. 그는 실패한 가수이기도 하다고.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와 창법으로도 대중적인 지지를 회복하길 바랬고 대중소구적인 곡들도 만들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는. 그렇지만 그는 재차 시도했고 실패했고 또 시도했고 또 실패했고...(이걸 아주 아주 여러번 복붙해야함.)

뒷조사를 해보니 소년의 해맑은 얼굴이 어이없게 느껴질 정도로 이승환의 지난 삶은 예상보다 더 고단해보였다고. 누군가에게는 그의 이야기가 자만과 허영에 대한 잔혹동화로 읽힐 지도 모른다고. 자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핸디캡은 신이 주신 것이니 이게 무슨 자만이고 허영이냐 싶지만 원래 이런 스토리에서는 죄도 아닌 것이 벌은 엄청나게 받는다고.


그런데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면 그 잔혹한 실패의 과정이 이상하게 매혹적이어서 나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괴상한 유혹을 느꼈다고. 이건 꼬꼬마시절 한하운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둥이 시인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걸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에 빠졌던 어느 날 이후 느낀 가장 엽기적인 욕구였다는 것. 이건 아마도 시인의 시가 고통도 아름다운 것처럼 나를 속였듯이 그의 열심이 나를 속여 실패가 성공인 듯 보이게 하는 어떤 미학적 착시를 일으켰기 때문일 거라는. 그럼에도 나는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무지 열심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도 나에게 묻고 있다는.


그리고 그의 우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제 헤어질 때가 되어 그를 배웅하러 일어섰습니다.

(여기서, 그 소년은 여태까지 왜 말 한마디 없는지 궁금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그는 공연 전엔 목소리를 안 씀.)


그런데 헤어지려는 찰나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근데 있쟎아, 돈지랄좀 작작하지?"


알고보니 이 노인은 그동안 소년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게 한보따리였는데 그의 까칠함, 이라고 하면 너무 순화시킨 거고 어떤 단호함, 이라고 하면 너무 미화하는 거 같고 뭐라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어떤 성질더러움에 걸려들까봐 꾹꾹 참고 있었나 봅니다.


무대와 사운드, 뮤비...목소리, 세련된창법의 문제...그리고 정치적인 전략전술이라는 소년과 전혀 안어울리는 얘기까지,


방언이 터지듯 한바탕 길고 긴 잔소리가 끝나고나서야 노인은 소년과 작별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누가 긴 글을 읽겠어. 그런데도 내 글이 자주 길어져서 가독성을 떨어뜨렸지. 망했다는 느낌을 갖고도 꾸역꾸역 쓰느라 힘들었네. 또 심장이 쪼여들어 당신을 까지 못하니 힘들었고 사춘기도 아닌데 자꾸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의문이 불쑥 불쑥 들어서 힘들었고...글 쓰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네. 망글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쓴 글들이 이너넷을 흘러다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려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네. 그리고 당신의 앞길이 견딜만큼만 고생스럽기를 바래보네."


그리고 이어서 노인이 소년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근데 있쟎아, 어떻게 살아야되나?"



폐지줍는 삶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는, 과잉투자 및 과잉기부의 귀재에게 물을 말이 아닌 걸 알지만

다른 가수들에게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반면교사가 될 만한 대중가수에게 물을 말이 아닌 걸 알지만

당신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당신을 가르치려드는 노인이 당신에게 이것을 묻는 것은 노인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소년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고 노인들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신시얼리 유어즈.




피에스

투 이승환

1. 원래 썼던 팬레터를 시원하게 날리고 급하게 다시 썼네요. 전에 예고했던 김민기와 송창식 얘기로 수미쌍관의 아름다움을 함 달성해보려했는데 써놓고 보니 그 문학성이 심히 고퀄이라 요즘 세상에 너무 한가해 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논쟁적인 부분도 있어 이게 팬레터를 삼켜버릴것 같기도 하고.


당신을 두 분과 비교하는 글은 아니고, 당신에게 불온가요좀 많이 만들어달라고 충동질하는 글이었네요. 아울러 이런 가요는 좀 안 세련되게 불러달라는 부탁도 덧붙이며...당신은 당신을 통해 예술하려는 사람들을 최소한 사백명은 데리고 있겠고 이들의 요구는 흔히 서로 충돌하겠지요? 대중가수로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겠습니다.


2. 내가 당신에 대해 너무 정확히 쓰면 자신을 정신적으로 스토킹하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지 않을까 혹은 부정확한 정보로 찬양하면 자신에 대한 미화나 우상화의 낌새에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글 쓸 의욕을 자주 떨어뜨렸네요.

어쩔 수 없이, 나름 성실한 자료조사로 스토킹했고 이중그림에서 한 방향의 시각을 유도하여 미화도 했을 거 같네요.


그리고 당신의 개인사적인 아픔을 다룰 수 없어서 당신의 삶이 단순화되고 그에 의한 미화가 저절로 일어난 부분이 분명히 있고, 당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지도 모를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이것이 큰 오류를 낳았을지도 모릅니다. 미안하며, 나도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다만 태초에 당신의 노래 한 곡이 있어 이 모든 미안한 일이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3.진정한 팬레터, 당신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한 글이 연공 끝날 즈음 드팩으로 갈 지도 모릅니다. 그걸 보면 당신은 아마도 나를 당신의 적으로 분류할 것입니다. 미리 억울하네요.



투 독자

1. 제 기사의 4편부터 기사가 정갈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제가 편집의 손길을 거부하여 딴지 측에서 최소한의 편집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독자가 편집이 엉성하다 느꼈다면 그건 모두 제 성질머리 탓입니다.


2. 그간 진심으로 존경하는 필자분들과 딴지 지면을 나누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광을 감내하기에는 제가 너무 모자라네요. 창피해 죽겠음. 사흘간의 댓글 응대 후 이 아이덴티티를 날립니다. 예전에 이 아이디를 사용했던 것은 제 사촌(제가 잠시 빌려 씀) 앞으로 사용하는 것은 글쎄 누굴까? 암튼 전 사라집니다요. 상기 <이폐폐> 모임은 창립만 되고ㅠ...누군가 알아서 해주길.


3. 또 올림


1999-2001 <사상 최악의 세기말 날리 부르스> 편집본.


40분30초-49분40초 <너의 나라 나의 영웅>.



2014 <진짜> 편집본


40분부터 <천일동안>

1시간부터 <붉은낙타>, <그대가 그대를>, <위험한 낙원>









지난 기사


이승환의 미스터리 4 : 체력의 비밀(이자 거의 모든 것의 비밀)

이승환의 미스터리 5 : 왜 인정받지 못했나

이승환의 마지막 미스터리 : 사회참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계기월식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