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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사의 횡포

 

지게차 최 기사 횡포는, 내가 봐도 가끔 도를 지나쳤다. 언젠가는 10시간짜리 영수증이 올라왔다. 직영 반장은 기가 차서 화도 안 난다면서 말을 이었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 반이면 끝나는 게 노가다판이여. 숨도 안 쉬고 일해도 9시간 반이라고. 근데 어떻게 10시간이 올라와, 10시간이. 나 몰래 점심시간에도 혼자 자재 떴다는 거여 뭐여. 어지간해야 사인을 해주지.”

 

그러고는 영수증을 확 찢어버렸다. “아 몰라, 난 이 영수증에 도저히 사인 못 하겠으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물론 최 기사도, 최 기사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최 기사는 몇 번인가 나를 붙들고 앓는 소리를 했다.

 

“내가 송 군한테 딱 까놓고 얘기해서 한 달에 천만 원쯤 벌어. 근데 생각해봐. 이 차가 1억 5,000이여. 이거 할부 값에, 보험료에, 기름값에, 각종 유지보수비 빼고 나면 한 달에 많아야 500 가져간다고. 할부 끝나면 내 차 될 거 같어? 그때쯤 되면 이 차도 폐차여. 현장 일이라는 게 워낙 험하니까 기계도 금방 상한다고. 그럼 또 차 사야 되잖아. 누구처럼 돈 많아서 일시불로 지게차 사서 하면 모를까. 나처럼 불알만 두 짝이면 평생 지게차 할부 갚다가 끝난다니까? 그나마도 현장 딱~ 딱~ 잡았을 때 얘기고, 현장 못 잡으면 손가락 빨아야 되는 겨~”

 

곧이곧대로 믿을 수야 없겠으나, 편하게 돈 버는 일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하청 지게차 기사를 구했다. 작고 귀여운 3톤짜리 하청 지게차 몰아줄 그 기사를 말이다. 새로 온 기사는 공장에서 식품 상자를 운반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곱상하게 생긴 기사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직영 반장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비포장에서 해봤슈? 공장이랑 노가다판은 얘기가 완전 다른데. 할 수 있을란가 모르겄네.”

 

아니나 다를까. 곱상한 기사는 첫날부터 유로폼(일정한 규격의 코팅 합판에 철을 격자무늬로 붙여 만든 거푸집 패널) 묶음을 세 번인가 자빠트리고는 자진해서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참고로, 지게차가 자재 운반할 때는 타워 크레인처럼 자재를 꽁꽁 묶어서 운반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게발로 푹 떠서, 말하자면 지게발 위에 살짝 얹어서 운반하는 거다. 그러니까 무게 중심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자재가 옆으로 ‘휙’ 엎어진다. 하루 만에 다시 주인을 잃은 3톤짜리 지게차를 바라보며 직영 반장은 입맛만 다셨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공장에서 포장된 상자만 운반하던 사람이 울퉁불퉁한 노가다판에서 얼기설기 쌓아놓은 자재를 어떻게 날라. 소장은 괜한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겄어. 내가 나서야지.”

 

 

살망살망, 3톤 지게차의 반란

 

결국, 직영 반장이 인맥을 총동원해 베테랑 지게차 기사를 구해왔다. 첫날, 실력을 맘껏 발휘한 베테랑 기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게차 자격증 있다고 다 똑같은 기사가 아녀. 아닌 말로 자격증 없어도 지게차야 금방 몰 수 있지. 작동법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근데 그게 아니거든. 노가다판은 길이 험하잖어. 자재를 쫌만 삐뚤게 떠도 덜커덩하다가 회까닥 넘어간다고. 지게발 밀어 넣을 때의 노하우도 있어야 하고, 자재 떠서 이동할 때 완급 조절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어쨌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이라는 게 필요한 거거든. 자빠진 거 그거 다시 쌓을래 봐. 쌓는 사람들이 내 욕 얼마나 하겄어. 그래서 지게차 기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거여. 특히나 이렇게 쪼만한 지게차는 더 힘들어. 차가 크면 더 힘들 것 같지? 절대 안 그려. 장비는 크면 클수록 쉬운 법이여. 어쩌겄어. 살망살망 끌고 다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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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베테랑 기사는 작고 귀여운 3톤짜리 지게차를 살망살망 끌고 다니며 야무지게 자재를 떴다. 최대 하중이 겨우 2톤이어서 유로폼 한 묶음씩밖에 나를 수 없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시간 오래 걸린다고 돈 더 나가는 것도 아닌데. 베테랑 기사는 하청 소속 지게차 기사로 고용한 거라, 월급쟁이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운전면허가 없는 김 회장에게 소형차가 한 대 있는데, 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해 그동안 모범택시를 타고 다니다가 드디어 운전기사를 구해 집 마당에 있던 소형차를 끌고 다니게 된 거다. 소형차라 좀 불편하고 느리긴 해도 운전기사에게는 ‘건 바이 건’이 아니라 월급으로 주는 거니까 장거리든 단거리든 돈 걱정 안 하고 맘 편히 이동하게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직영 반장도 맘 편히 3톤짜리 지게차를 데리고 다니며 세월아 네월아 자재를 떠줬다.

 

그럼에도 3톤은 3톤이었다. 그 작고 귀여운 녀석이 비만 오면 보이콧이었다. 땅이 질척거리기 시작하면 자재가 좀만 무거워도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바퀴만 헛돌다가 이내 빠지기 일쑤였다. 노가다 밥 좀 먹었다는 베테랑 기사도 이런 날은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가 주르륵주르륵 내리기 시작하는 날이면 직영 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 기사만 노났네.”

 

비 온 날부터 땅이 어느 정도 마를 때까지 며칠간은 3톤짜리 지게차를 쓸 수 없으니, 13톤짜리 끌고 다니는 최 기사만 돈 벌었단 얘기다.     

     

사달이 난 그날도 비 온 다음 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최 기사 불러서 자재를 뜨던 중이었다. 오전 내내 호흡 잘 맞추던(?) 직영 반장과 최 기사가 갑자기 드잡이를 시작했다. 뭔 일인가 하고 달려가 봤더니, 최 기사가 폭탄선언을 했던 모양이다.   

 

“저거 3톤짜리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반 토막인데, 그럼 가만히 앉아서 굶어 죽으라는 겨? 앞으로는 한 번 뜨건 두 번 뜨건 무조건 한 시간으로 처리할 거니까 그런 줄 아슈.”

 

“아, X발 맘대로 해. 그럼 당신한테 일 안 주지. 그 돈 주고 부릴 거 같으면 외부에서 지게차 불러다 쓰면 돼~ 우리는 아쉬울 거 하~나 없어.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아닌 말로, 자재 떠다 주고 오는 길에 쓰레기 항공 마대 좀 떠서 버려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어. 두 번이나 떠줬나. 다른 현장 가봐. 그 정도는 얘기 안 해도 서비스로 척척 해주지.”          

 

결국, 싸움은 결론이 안 났다. 고래 싸움에 피해를 본 건 베테랑 기사였다. 최 기사가 씩씩거리며 자재를 뜨고 있는데, 베테랑 기사가 작고 귀여운 3톤짜리 지게차를 살망살망 끌고 왔다. 딴에는 놀기 뭣해 가벼운 자재라도 같이 떠줄까 싶어 깔짝거린 거다.

 

최 기사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3톤짜리 지게차가 눈엣가시인 데다가, 자재 뜨는데 자꾸 거치적거리니 뚜껑이 열린 모양이었다. 지게차 문을 쾅 하고 열어젖히더니 대뜸 쌍욕을 퍼부었다.

 

“아이 X발, 저리 안 꺼져? 왜 자꾸 옆에서 깔짝거려.”

 

스무 살은 족히 어린 사람이 반말에, 욕까지 하는데도 베테랑 기사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다 분해 퇴근 무렵, 베테랑 기사에게 물었다.

 

“왜 가만히 계셨어요. 조카뻘 되는 놈이 욕을 하는데. 아니, 자기가 아무리 나잇살 먹었어도 환갑 넘은 분한테 그러면 안 되죠.”

 

“냅둬~ 맞받아치면 똑같은 놈 되는 거여. 송군 말대로 조카뻘 되는 놈이랑 싸우면 뭐 해~ 저 양반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얄밉겄어. 그렇게라도 화풀이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텐데 그러려니 해야지. 안 그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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