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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6. 리더의 자세와 사내 불륜이 미치는 영향

7. 20년 다닌 직장을 관뒀다

8. 퇴사 후 느끼는 것들

9.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10. 퇴사 후, 트라우마 - 불행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네

외전. 소문 공화국과 검찰 공화국 사이에서 

 

 

 

1.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글을 읽는 기자들은 2029 수능 언어영역 기출 예상 문제를 풀어보자. 

 


 

기자들은 아래의 사건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하는지 서술하시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겠느냐'는 말이 있다하지만 누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는 봤다 하면 때때로 얘기가 달라진다. 

 

짜한을 검촬리에선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 마을은 대기환경의 오염을 막기 위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 금하고 있다. 헌데 누군가 그런 증언을 하고, 믿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면 주민들은 연기가 났다는 집으로 몰려들고, 이어서 묻은 구둣발들이 방까지 들어가 서랍 이불호청까지 뜯어 본다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을의 분위기다. 

 

너나 없이 연기가 났다는 집에 몰려들어 집안을 들춰보며 증거를 찾는다. 증거는 없다. 주민들은 집주인에게 말한다.

 

" 아궁이에서 아무것도 피우지 않았다는 증명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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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당황해하자 주민들이 말한다.

 

"당신들은 증거를 인멸했다. 벌해야 한다"

 

소문은 사실이 되고, 주민들은 여보란듯 그 집을 드나든다. 그날 새벽, 식구들 면목이 없어진 가장은 며칠 밤을 뒤척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모든 책임은 부덕한 내가 떠안고 간다. 더이상 가족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며 유서를 쓴다이웃들은 그제야 조명을 끄고 사라진다.

 

다음날 해가 뜨 다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끔하게 차려입고 빈소에 나타나 유가족에게 말한다. 평소에 하지 그랬냐. 일을 이지경까지 만들었.

 

짜한을 검촬리에 당신이 기자로 간다면 무슨 일을 해야할지 서술해보자. 

 


 

2.

우리 생엔 크고 작은 마녀사냥이 계속 일어난다. 인격살인, 사회적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소문은 사람을 잡는다

 

나는 전에 다니던 기업에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력이 있다. 지금 상황과 당시 상황을 빗댈 것도 아니고 빗대서도 되지만, 말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상한 논리구조는 같다. 

 

'그럴듯한 가설을 세운다 - 그렇다더라 - 그랬다며 -그렇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조리돌림 하던 상황.  맥락은 비슷하다당시엔 그 일 이후, 내가 겪을 마음고생이 어떤 건지 몰라 당했다. 하지만 두 번 겪고 싶지 않을만큼 끔찍하.

 

요즘 조국 후보자를 보며 그때의 경험을 생각한다. 어떤 날은 혼자 손을  보다 이내 몸서리 친다나는 고작 여명의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고도 사네 마네 난리를 쳤는데. 도대체 지금 몇 명인가? 몇 십 만 건의 기사인가? 누군가의 댓글처럼 우리 지금 지구 최초로 신을 뽑는 선거를 하는 건가? 

 

나는 밤낮없이 후보자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아빠가, 남편이 훗날 장관 후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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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 연말이었다. 나는 어느 때처럼 회사에 일찍 갔고 그날 우연히 복도에서 출근 중에 있던 부서장을 마주쳤다. 안부를 시작으로 가벼운 환담을 나누다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게 됐다.

 

당시 기러기 아빠였던 부서장은 내게 크리스마스 연휴라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며 들떠 있었고, 혼자 사는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가족이란 좋은 것이구나 했다. 저렇게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라고 말이다.

 

그날 얘기 부서장이 물었다. 아내가 김치를 사오라는데 어디서 사면 좋겠느냐고. 현지에서 파는 마트 김치는 맛이 없다던데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괜히 잘못 사가서 욕만 먹을 같다고.

 

얘기를 듣던 나는 생각 없이 마침 집에 맛있는 김치가 많이 있으니 가져다 드리겠다 했다. 그러자 부서장은 손을 저어가며 사양했고 나는 드셔보시면 사양하지 못할 거다. 정말 맛있는 김치라고 했다.

 

부서장은 그럼 연휴 끝나고 사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음  회사에서 내가 건네는 김치를 받아 가족을 만나러 갔다. 당시 나는 일이 훗날 나를 괴롭히게 상상도 못했다.

 

4.

때마침 이곳 저곳에서 차마 거절하지 못해 받아온 김장 김치로 냉장고가 터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김치를 건네면서도 당연히  생각 없었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지루한 사장님 훈시로 시작된 시무식을 마치고 자리에 앉는데, 전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동료가 내게 물었다.

 

"누나, 혹시 요즘 ㅇㅇ부서장님 집에 밥 먹으러  있어?"

 

얘기에 내가 놀란 눈으로 그에게 묻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말을 ~.  확인해 "

 

얘기에 나는 살다살다 얘기를 듣는다. 너도 알겠지만 어디 그럴 사람이냐 했다. 친구는 자기도 황당했단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소문은 입에 차마 옮기기도 힘든 수준으로 각색되어 사내에 배포되어 있었다.

 

5.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런 소문을 퍼트리는가. 조직원이 만 단위가 되면 온갖 소문이 떠돈다. 회사에서 이따금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구구절절 변명하는 일이 구차해 아주 입을 닫아 버렸는데 어째 이번 소문은  겉잡을 없이 번져버렸다. 차마 입에 옮기기 힘들 정도로. 하나만 옮기자면 몸 팔아 승진을 노린다, 뭐, 그런 류다.   

 

이번엔 소문의 근원을 찾았고 얼마 안 가 유력한 증거를 확보, 일부 증언은 녹음까지 했다( 일을 겪기 전까지, 화가 와중에도 녹음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독한 사람들인가 했다).

 

그렇게 취합한 자료를 가지고 나는 부서장에게 보고했다. 소문 사람을 찾아(이때 이미 그 소문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조치를 취해달라 했다. 그러자 부서장은 난처한 얼굴로 본인 때문에 내가 곤란을 겪어 어쩌냐고 미안하다 사과했고 정말로 얼마 범인을 찾았다.

 

그는 부서장 앞에서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고 약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그에게 "좋다, 그럼 내가 당신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테니, 법정에서도 어디 똑같은 말을 있나 보자"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없이 나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사내 이미지도 좋지 않은데 그러지 말자고. 좋게 좋게 하고 넘어가자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참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참아서 좋은 당시 나를 말리던 사람들 입장이었다. 내겐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정 사정 봐주지 말고 끝까지 갔어야 했다.

 

6.

범인은 누구였냐고?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나와 웃으며 오래도록 인사를 나누던 사업팀 부장이었다그에게 오가며 주워들은 조각난 단어를 모아 건넨 사람 역시 사무실 근처에서 일하는 또래의 부장이었다. 충격이었다. 오십을 넘긴 나이였다. 나는 생각했다. 말을 옮기고 만드는 데 있어서, 나이나 성별 같은 아무짝에도 소용 없구나.

 

아침에 우연히 만나 집에 남는 김치를 주겠다고 한 말은 한 집에서 동거하고 밥 먹는 사이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소문 중 일부를 인용하면, 승진하기 위해 몸까지 팔아가며 권력에 줄을 서는 대~~~단한 사람, 그게 나인 거다. 이딴 소문을, 대기업이란 곳에서, 아직 만 단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 내가 퇴사를 한 이후에도. 누가 들으면 난 막 천하를 지배할 요물이다.   

 

이쯤에서 기자 분들에게, 남의 몸에 묻은 먼지가 마땅찮은 그대들에게 묻고싶다. 처음 지문에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어쩌면 오히려 더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연기가 난다면 연기가 났는지 부터 확인해야지, 누가 최초로 연기가 났다고 말했는지 확인해야지, 왜 연기가 났고 어떻게 연기가 났는지 쓰고 앉아 있으면 뭘 어쩌란 말이냐. 

 

요사이 인터넷 포털 뉴스의 수준이 참으로 가관이다. 이건 뉴스 기사인지 시덥잖은 잡글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시선을 끌어야 하는 판춘문예도 이런식으로 타이틀을 뽑지 않는다.

 

"조국 기자회견장에서 때 아닌 감성팔이"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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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 

 

" 시대 문화예술인의 주적은 미국향 사대주의도 아니고, 유투브 같은 미디어 매체의 변화도 아니다. 나라의 정치다. 얼마나 재밌으면, 기자들이 쓰는 글들이 전부 막장이고, 드라마겠는가. 뉴스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으니 아무도 문화컨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지금도 책상머리에서 여차하면 받아쓸 자세로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다. 정보 송출량이나, 작법기법, 컨텐츠 양산 수준, 각색과 편집,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고 작가다.

 

말을 강조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는 지난 4 딴지일보에 <다시, 삼풍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글을 썼다. 혹여나 유가족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얼음판 걷는 심정으로. 헌데 글은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내게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고 태연하게 복붙으로 퍼지더라. 어떤 언론사에서는 생판 처음 보는 여자 분 사진까지 가져다 글과 섞어 교묘하게 교차 편집해 자극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썼다.

 

이쯤 되니, 내가 이곳에서 말만 고대로 베껴간 기자들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고. 

 

기성 언론인들이 딴지 기사를 가져가고 딴지 커뮤니티 글을 퍼나르며 수 십, 수 백개의 기사로 만드는데, 그것도 이름도 명시하지 않고 모 매체, 모 커뮤니티, 해가며 무슨 볼드모트라도 되는 양 이름을 가리는데, 그 볼드모트 매체만이 유일하게 내게 예의를 갖추고, 정중히 인터뷰를 하고, 사실확인을 하고, 고료를 지급하고, 섭외를 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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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조국 후보 지지관련 실검 장악운동에 열심이다. 겪어보니 조리돌림 당할 때 느끼는 고독의 지옥은 남일이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진보 사이에서 이런 말도 나온다.  

 

"조국은 손절해야 한다. 당신들이 하는 짓이 박사모와 무엇이 다르냐, 빠가 설칠 수록 중도가 돌아선다. 이렇게 가면 내년 총선에 안된다."

 

당신들도 이리 반대를 하니, 조국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되는 이유가 따로 있나보다 싶다.  후보의 괘씸죄가 버닝썬과 연류되고도 치외법권에 사는 이들의 추잡한 역사와 맞바꿀 가치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국 후보자에게 부탁한다. 물러서지 말라고. 당신이 버티는 그 가치를 잊지 말라고. 끝까지 이 진흙탕에서 살아남아 상황을 지경으로 만든 사람, 이 구조를 바꾸자고.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망신주고 당이 사격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변함없는 검찰공화국의 구조를, 당신 대에서 끊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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