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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한 달이었다. 이럴거면 뭐하러 여러 매체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언론판은 레밍떼가 되어 달렸다. 포털 메인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착잡해졌다. 물론 그런 판이 좋은 사람도 있다.

 

정치적으로, 자유한국당에게는 풍성한 초가을이었다. 보수언론이 1일 1단독으로 앞에서 끌어주고 포털 메인이 뒤에서 밀어주면서 이대로 청문회 없이 조금만 존버하면 곧 추석이었다.

 

어차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가 마이크를 쥘 기회가 없을테니, 국민도 들을 기회가 없고, 그렇다면 추석에는 온 가족이 의혹 얘기만 하겠지? 이렇게 융단폭격을 하다 보면 자기도 사람인데 자진사퇴하겠지. 호오옥시 임명되더라도, 흠집을 많이 냈으니까 그 여론으로 다음 총선에도 유리할지도 모르고. 이런 생각에 자유한국당으로서는 가만히 있어도 베시시 웃음이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가을이었다. 

 

풍년의 꿀빨기를 하던 9월 2일, 조국 법무장관 후보가 기자간담회를 한다. 참석한 기자들의 화려한 언변과 지식 수준, 그리고 무려 11시간 동안 기자들 공부시켜주던 조국 교수님 덕분에 여론은 뒤집혔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룰루랄라 꿀빨다가 대차게 싸대기를 맞아버렸다.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청문회는 그렇게 부랴부랴 시작되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그들은 뭐라도 해야했다, 가급적 최선을 다해서. 그냥 앉아서 울 수는 없잖아요.

 

 

이걸 다 증명하든가, 사퇴한다고 말하든가

 

시각 고문받는 사람처럼 아무말 대잔치를 보다가 캘리포니아 유전 터지듯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자유한국당은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었다. 자유한국당에는 어차피 우린 안 될 거라 생각하는 그룹 하나,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룹 하나가 있었다. 그 둘은 목표도, 전략도 달랐다.

 

 

1. 우린 어차피 안 될 거야 : 김진태, 김도읍

 

첫번째 그룹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니 보낼 땐 보내더라도 최대한 연기를 피워야 한다. 그래서 법무장관이긴 한데, 쟤도 깨끗한 애는 아니지 않아? 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그래서 그들은 (이거 알면 고인물 인증) ‘타진요’ 전법을 선택했다. 이 그룹은 제1의혹을 제기한 후 그것에 대한 답변에서 제2의혹을 찾고, 그것에 대한 답변에서 또 제3의혹을 찾는다. 그래서 무한의 의혹을 제기한다.

 

예컨대 당신이 이런 문답을 받는 거다. 

 

당신이 태어난 적이 있습니까 → (태어난 것을 증명) → 출생 증명 서류의 진위여부를 증명하시오 → (증명) → 이 서류를 떼 준 직원의 존재를 증명하시오 → (증명) → 이 직원이 매수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시오 → ?

 

당신이 모든 것을 제법 잘 증명한다면, 그들은 “서류 떼준 직원을 어떻게 매수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등의 말로 지금까지의 증명을 갑자기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거나 또 다른 증명을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이 수정란이 되기 전 정자와 난자를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다. 물론, 정자와 난자를 증인으로 세웠을 때 정자가 난자가 정자와 난자가 맞는지 증명을 해야하고…...하…

 

그냥 믿기 싫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 1초만에 문제가 풀리지만, 이 시대의 데카르트 앞에서 그런 무엄한 말은 하지말자. 

 

이 그룹에게 걸리면 영겁의 시간동안 답변을 하다 당신은 결국 자연사한다. 이것은 청문회에서 그대로 되풀이 된다. 데카르트여도 이건 다 대답 못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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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의전원 입학 유리하게 하기 위해 2월생에서 9월생으로 나이를 낮춘 거 아니냐

 

조국: 아니다. 원래 9월생인데 선친이 학교 일찍 보내려고 2월로 신고한 것. 본인이 원해서 원래 생일로 돌아간 것이다. 의전원 지원할 땐 변경하기 전 생일(2월)로 썼고 2월생으로 합격했다.

 

그렇지만 조진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차 질문) 처음 태어났을 때 어떻게 2월로 신고했냐. → (대답)선친이 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름 → (2차 질문) 근데 출생증명서 없이 어떻게 신고를? → (대답) 당시 호적법상 가능 → (3차 질문을 빙자한 생활 정보 문의) 인우보증은 병원에서 안 태어난 아이들만 가능한데? → (대답) 선친이 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여튼 가능했음 → (4차 질문) 생년월일 관련 판결이 이렇게 빨리 날 수 없는데 혹시 그 판사 친구 아님?

 

눈치가 빠르다면 이미 느꼈겠지만, 조진요는 딸의 생일이 궁금한 게 아니다. 그냥 끝없이 물음표를 이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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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읍: 딸이 제1저자였던 논문, 고려대 입시에 기여했다.

 

조국: 딸 자소서에 논문명, 제1저자 여부 안 들어감. 고려대 입학처장이 인터뷰에서 어학이 중요했다고 말함. 

 

"그래서 이것도 수사를 해야돼요. 고대하고 어떻게 말을 맞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자료가 없다? 아니에요. 대한민국 대학은요. 입시 자료들을 전부다 PDF로 해가지고 대학본부 서고에 다 보관하고 있어요."

 

김도읍 의원과의 질의응답도 길어서 마무리 부분만 옮겼다. 대화를 통해 입증되었더라도 관계없다.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목적이다.

 

주변에, 특히 미취학 아동을 넘어선 나이에 이런 어법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물음표 살인마니 빨리 손절해서 정신 건강을 지키자. 

 

 

2. 사퇴할지도 몰라 : 이은재, 장제원, 여상규

 

두번째 그룹은 아직 자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가 끝나면 기회가 없을테니 자진사퇴할 수도 있다는 말을 귓속말로라도 듣고 싶어한다. 

 

조 후보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진실됨을 연기한다. 진짜로 걱정하는, 혹은 진짜로 화난 표정으로 후보자의 주변인을 흔들어 후보자의 멘탈이 바사삭 내려앉길 기다린다. 주로 ‘주변이 이렇게 어려운데 장관 그거 해서 뭐하겠냐’는 인간적인 조언이나, ‘주변이 이렇게 지저분한데 너 혼자만 끝까지 깨끗하다는 거냐’는 식의 분노로 표출된다.

 

확고한 목표가 있어 이들은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가끔은 속내를 확 드러내는 말을 그냥 해버리거나, 자기가 위원장인지 필드에서 뛰는 플레이어인지 구분을 못하며, 늘 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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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 후보자는 검찰 개혁은 본인밖에 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법무장관 만큼은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더라도 기어이 해야 하는 겁니까?

 

조국: 제가 기어이 한다는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거취는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은재: 자, 그러면 지금 이제 후보자는 본인도 모르고 관여한 사실도 없는데, 후보자 가족은 명백한 위법, 탈법 사실로 법적인 처분, 구속이나 실형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후보자 본인과 관계 없으니까 본인은 법무부장관 해도 문제가 전혀 없다 이런 입장이십니까?

 

조국: 제가 아무 문제 없다고는 말씀 안 드렸습니다.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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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규: 이렇게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는데, 지명 하신 분한테 오히려 큰 짐을 지어드리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와 자녀 등 온 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단 말이에요. 앞으로 구속될지도 몰라요. 이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근데 장관이 무슨 의미가 있죠? 에? 그런데도 그 결정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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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형...지금 남의 집 자식 얘기...그거 아니야...

출처-오마이뉴스

 

장제원: 조국 후보자는 자신의 주변이 전부 피의자에게다가 사실상의 수사 대상자입니다. 그런데 나는 믿어달라? 나의 선의는 믿어달라?

 

 

 

오전 내내 압박하며 질의한 결과, 자유한국당은 무려 조국 교수가 서울대에서 쓰던 중고 PC를 집에 가져가서 사용한 적 있다는 소중하고 값진 사실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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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모르지

 

어제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은 11명 중 단 한 명, 웅동학원 이사 김형갑 씨였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이 증인이 조국 가족 때문에 학교가 피해를 입었다는, 그런 느낌만 풍겨주면 성공이었다. 문제는 이분이 학교의 회계문제를 잘 몰랐고, 적당히 대답해주기엔 너무 올곧은 타입이었다. 역시 독립유공자 후손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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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르지

 

의기양양하게 증인 신문했던 김진태 의원 눈빛 슬펐다구 진쨔...

 

 

이 구역의 돌+I는 나야

 

시간이 갈수록 자유한국당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똥 뿌리는 족족 더불어민주당에게 되치기 당하는데다 멱살 잡고 흔들어도 조국 법무장관 후보가 사퇴하겠다는 말을 안 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웅동학원 김형갑 이사의 단호함에 정신력이 많이 흩어진 탓이 아닐까. 

 

그래서 자유한국당은 폭주한다. 어차피 이렇게 되어버린 거 조국 후보를 빡치게 하거나, 아니면 이 바닥(?)이 이렇게 더럽다는 걸 보여줘서 조국 후보가 스스로 도망가게 하려는 전략인 걸까. 여튼 ‘이 구역의 돌+I는 나’ 전략이 아니라면 여섯 살도 아니고 64년생이 국회에서 서류  찢는 퍼포먼스 하는 걸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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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협박범이 갑자기 빤스 벗어제끼는, 그런 풍경을 여기서 보다니.

 

 

그 어려운 걸 자유한국당이 해낸다

 

추석에 잊혀지면 안되니까, 이대로 보내주면 너무 손해니까. 팩트체크 다 끝난 이슈 잡고 치명적인 질문인 양, 진지한 척 하는 정치 노동자들은 애잔하다만, 결국 청문 보고서에 대한 논의를 미루고 넘어간 것이 못내 아쉽다. 

 

청문 보고서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 자유한국당은 검찰이 조 후보자의 부인을 기소하기를 기다렸다. 수사기관만 알고 있었어야 하는 정보를 자유한국당이 청문회장에서 줄줄 말하는 걸 보면, 이렇게까지 검찰에 의지하고픈 마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미 1300번쯤 이야기된 것들을 반복한 도르마무식 청문회가 남긴 의의가 있다면, 새로운 법무장관이 어디에 가위를 대야할 지 좌표를 찍어준 일 아닐까. 어딘지 알겠다. 그 어려운 걸 자유한국당이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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