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전부 다 딴게이야?"
2015년 12월 5일 오후 6시경, 우리는 민주노총 지부원들과 같이 걷고 있었다. 어느 순간 세월호 추모 인원들과 같이 걷고는 있었지만 총파업의 구호가 나오는 상황과 우리 인원은 궤가 맞지 않았다. 광장시장 근처를 지날 때쯤에도 행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앞쪽 대열에 시민단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기수와 상의하여 대오를 이동시키기로 했다.
"딴지스! 딴지에서 오신 분들! 저쪽으로 빠져서 앞쪽으로 대열을 이동하겠습니다!"
기수를 선두로 일부의 인원이 행진의 대오를 이탈했다. 우르르. 인도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 때 대략의 인원을 세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응? 열... 열셋, 응? 스물? 스물다섯? 뭐야, 어떻게 된 거야?!
24일 전. 11월 11일
본격게시판 방송에 '꽁지머리'라는 분이 나왔다. 광화문에서 국정화교과서 저지를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너부리 :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어제, 11월 3일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1막 1장이 끝난 것 같습니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차갑고 높게 느껴집니다. 딴게이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좋지않은 결과를 맞게되어 저 역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씨. 아 잠깐, (5분 후) 어우 야, 다 못 읽을 것 같은데?
아, 시바.
왜 눈물이 나지?
21일 전. 11월 14일
나가야겠다. 가서 직접 봐야했다. 방송은 거짓말을 할 거다. 주변 사람들은 그 거짓만 볼 거다. 눈으로 보고 현실을 찍어와야겠다. 대학로 집회를 보고 광화문 코 앞까지 같이 행진했다. 수 많은 사람들과 구호를 외쳤다. 눈 앞에서 직사로 퍼부어지는 물대포를 보았다. 불과 몇십 미터 밖에서도 독한 최루액으로 연신 기침이 났다. 구역질이 날만큼 기침을 하다가 코피가 픽 터졌다. 밤 10시경, 체력이 바닥나 철수하고 말았다.
19일 전. 11월 16일
회사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광화문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굵은 이슬비가 계속 내렸다. 거기에 혼자 비를 맞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서 있는 꽁지머리 어르신이 있었다. 피켓을 대신 들고 1시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면서 부끄러운 손으로 간식을 쥐어드렸다.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독투 사진게시판과 자게에 게시했다. 10년지기 지인과 그 글을 읽고 광화문에 두 번째 방문을 했다. 12월 5일에는 여러 명이 모여서 같이 나오길 바라신다 했다.
7일 전. 11월 28일
지방에서 지인과 일이 있어 주말을 낀 며칠을 지냈다. 영하 5도의 날씨에 우리는 텐트 안에서 술을 마시며 앞서 모의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깃발을 만들기로 했다. 내용은 단순하게 'ㄷㄷㄷ'로 정했다. 딴지를 상징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제거했다. 우리는 딴게이 몇 명일 뿐이지, 딴지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대표해서도 안된다.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하자.
2일 전. 12월 3일
공지가 더 늦으면 안된다. 뭐라고 할까. 뭐라고 쓸까. 근데 경찰은 얼마나 후달렸는지 집회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언론에 마구 흘렸다. 이 상태로는 공지를 해도 나올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어디서 모여야 할까. 계속 기사와 상황을 지켜봤다. 집회 불허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수 없이 글을 올렸다. 다행히 하루 뒤 법원에서 집회를 허가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쪽지로 연락이 왔다. 한 명, 두 명 인원이 늘어났다. 본가에 제사가 있음에도 정신은 스마트폰에 계속 팔려 있었다.
12월 5일 당일 오후 2시
약속한 시청역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스케이트장 공사구간과 트리, 단상을 제외한 시청 광장의 남은 공간은 이미 시위 인원으로 꽉 찼다. 곧 깃발 제작을 한 지인이 도착했다. 싸구려 낚시대에 깃발을 부착했다. 지인에게 기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명이 올 것 같아? 10명?"
"(웃음)말도 안돼. 그 정도면 대성공이지... 안 오면 하는 수 없고."
"네. 어서오십시요."
"네. 어서오십시요."
어? 계속 오네? 어어?
"푸하. 단체사진 하나 찍고 이동하겠습니다."
3학년 아이를 데리고 온 분은 필자와 같은 딴게이(자유게시판 이용자)가 아니고 라디오게이(딴지라디오 청취자)였다. 같이 라디오에서 놀던 사람인데 여기서 처음 보게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었다. 3시 15분 광장으로 이동했다.
단상의 왼쪽으로 겨우겨우 이동했다. 광장은 이미 운집한 사람들로 붐볐다. 앉아서 집회에 참여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와 여성들이 움직이려는 사람들에게 치이는 상황이 계속 걱정되었다. 우리 다스베이더(ㅊㅈ, 처자-여성회원을 이르는 말) 회원이 옆에 있었다. 괜찮다고 하셨다. 촬영 때문에 움직여야 하는데 발을 뗄 수가 없다.
위엄(?) 쩌는 ㄷㄷㄷ 깃발
아이를 데리고 온 분들 신경이 쓰였다. 유모차를 끌고 다섯 살 딸아이를 데리고 온 분을 문득 돌아보았을 때 그 분은 의연하게 서 있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나 행진이 시작되었으나 주도로를 크게 터주지 않아 더디게 시작되었다. 몇 걸음 걷고 멈추고 걷고 멈추고가 계속되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전광판에 2명이 서 있다. 올려다 보기에도 아찔하다.
아 저 복면 아닌 복면 멋진데 ㄷㄷ
종로 구청으로 나와서도 아직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우리가 행진중, 집회중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그 말. "ㄷㄷㄷ이 뭐에요?", "어디서 오신 거에요?", "무슨 단체에요?". 우리는 말한다. "아. 아닙니다."
저 앞에 공공운수쪽의 공항 항만 노동자들의 깃발이 보인다. 저기에 분명 공항잡부님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몇 시간 뒤 확인 되었다.
종로로 나왔다. 겨우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간다. 중간에 합류하는 인원이 있다고 한다.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래도 깃발을 보고 대열을 찾아오고, 대오를 유지하는 것이 다행이다. 헌데 아무래도 다른 노조들의 대오 틈에서 걷다보니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다. 앞쪽의 시민단체를 확인하고 대열을 움직였다. 광장에서 행진이 시작되면서 귀가하신 분이 있었고, 행진 도중 귀가를 알리고 가신 분이 있었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찼다. 인원이 많이 줄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ㅎㄷㄷ 뭐지?'
30명이 넘는 인원이 깃발을 따라 움직였다! 딱 2명이 따라오다가 되돌아갔다. 이게 다 딴지스라고?!
미권스도 깃발이 크네.
아고라 인원도 상당하고 깃발도 멋지다.
종로 5가에서 신호를 끊어가며 행진을 이동시키고 있다.
시민불편을 정말 걱정했으면 행진 차로를 넓혔을 텐데. 그랬으면 벌써 끝났겠다. 대열의 후미가 겨우 종로에 위치했을 때 선두는 혜화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단톡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딱 보기에도 신병이다. 운동화를 신고 발수상의를 입고 등에는 휴대용 최루액 발사기를 메고 있다. 여유없이 굳은 표정이다.
행진은 혜화를 향했다. 기수에게 '대학로에 들어가면 마무리 집회 대신에 벙커1으로 이동하기'로 전달했다. 집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도 많고, 마무리 집회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커피를 내가 쏘고 싶은데 이거 인원이 너무 많다며 엔빵 좀 해달라고 기수와 농담을 나눴다.
대학로 입구에서 비닐 깃발이 우리를 맞이하듯 흔들렸다.
초상권은 소중하니까 필터로 확 뭉갰다. 중간에 귀가하신 분들과 합류하신 분들을 빼고 더하고 난 뒤에도 이만큼의 인원이 아직도 남아있다. '와 커피값으로 돈 좀 깨지게 생겼는데?' 어떻게 멘트를 쳐서 까페요원에게 할인을 받아낼까만 생각했다. 너부리나 총수가 벙커에 있을까? 벙커 앞에서 시위할까??
문제는 커피값이 아니고 벙커1 강연으로 인한 입장 불가였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위치한 포차100에서 저녁을 대신해 분식과 오뎅국물을 흡입시켰다. 이 딴게이들, 새우잡이행 의심을 하면서도 오뎅국물을 흡입했다. 성실한 회비납부로 약 10만 원 어치의 매상을 올려드렸다. 이 자리에서 집회 참가는 해산을 시켰다. 너무도 감사한 회비 납부에 커피라도 들고 귀가시킨 뒤 나머지 인원과 마무리 집회에 들어가려는 생각으로 벙커1으로 이동했다. 까페요원의 맘좋은 할인과 적당한 기다림 이후 벙커1에 잡입했다.
벙커에서 이렇게 놀면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수염을 왜 이렇게 길렀어요?"
"여러분 이분이 누구냐면."
"아 됐어 말하지마. 하지마아아!!"
"어 안하면 되잖아."
그리고 개발수뇌옹, 공항잡부옹, 호요요PD 등 연예인급 네임드의 출현! 아주 어색하고 좋았는데 네임드의 출현으로 이 사람들 집에 갈 생각을 안한다. 호PD가 <본격게시판방송>에 넣으려는지 멘트 하나 따자고 한다. 아, 이렇게 데뷔하나?
우리 깃발은 벙커1 지하 깊쑤키 벙커헌장 아래에 부착하였다. 며칠 뒤 벙커 방문하는 딴게이들은 존재를 확인해주길 바란다.
대학로 달포차에서 첫 건배사는 이거였다. '쫄지마 ㅆㅂ'
그리고, 여차저차, 여차저차 우린 첫 차 타고 집에 갔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다. 부산에서, 전주에서, 세종에서 오신 분들.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들. 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하거나 오랜만에 참석하신 분들. 중간에 합류하시거나 귀가하신 분들. 고등학생과 뇐네들. 미인 ㅊㅈ회원들. 훈남과 오징어들. 모두가 딴게이로써 나왔다.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다. 또한 닉오픈을 요청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서로 닉네임을 모른다. 그렇게 초 어색한 자리에 시작부터 끝까지, 혹은 도중에 귀가/합류 하신 분들. 주변에서 깃발을 보신 다른 분들에게도 모두 똑같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평생 잊지 못할 거다. 필부 둘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든 깃발 아래 모여준 분들이다. 대략 40여 명 된다고 본다.
오늘 본 어떤 문장을 하나 인용하겠다. "집회가 평화적이었다거나 폭력적이었다거나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집회의 본질은 사회적 영향력의 행사다. 이 영향력의 크기는 참여 인원의 규모이다. 내용이 좋은 행사에도 참여 인원이 적은 것보다 많았을 때 사회를 흔들고 문화적으로 재해석된다. 시위 인원은 '나'의 합산이다. 집회의 내용에 찬성하는 내용이 있다면 시위에 참석하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24일전. 11월 11일. <본격게시판방송>에서 너부리 편집장이 말했다. '꽁지머리님의 시위가 당장은 큰 물결을 이룰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물결이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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