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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6. 리더의 자세와 사내 불륜이 미치는 영향

7. 20년 다닌 직장을 관뒀다

8. 퇴사 후 느끼는 것들

9.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10. 퇴사 후, 트라우마 - 불행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네

외전. 소문 공화국과 검찰 공화국 사이에서

외전. 잘못된 일을 열심히 하는 부류

 

 

 

1.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는 오랜 시간 연구조직에서 근무했다. 그 전까지 공대생하고 마셔 없었다. 학창시절 그림을 그린데다 가깝게 지낸 친구들도 전부 문과였다. 해서 막연하게 이공계생에겐 선입견이 있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순수할 것이다. 거짓말을 못할 것이다' 

 

같은 생각 말이다(4대강 때 생각해보면 이것 참 순진한 생각이다).

 

연구소에 오래 있다보니  생각이 틀렸다는 깨달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거짓말을 했다. 물론 원칙대로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하긴, 못되게 살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전공이 무슨 상관 있으랴.

 

오늘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겪었던 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연구원 출신이다.

 

2.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회사란 곳에 있다보면 대놓고 나쁜 사람을 꼭 한 번 만나기 마련이다. 회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부분이 있지만 보통은 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는 마치 브라운관을 찢고 나온 드라마의 악인처럼 굴었다. 철저하게 "강약약강" 모드로 사람을 구분해 윗사람에겐 간과 쓸개를 바치고, 그들을 위해 아랫사람의 속을 짓이기는 부류였다. 

 

그와 나는 해 전 새로 신설된 부서에서 만났다.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을 진행하는 연구소가 만들어 졌, 단기 과제는 기존 연구소에 전부 두고 중장기 과제를 연구하는 연구원들과 같은 스태프 부서 인원 몇몇이 조직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그는 본사에서 기획파트 팀장으로 왔다. 아마 그가 신설 연구소로 차기 임원 자리를 염두에 계산이었겠지만, 세상에 모든 나쁜 직장인이 그렇듯 그에겐 본부장이 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실력에 비해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란 얘기다. 

 

한데 사장단 몇몇이 예뻐한다고 혼자 김칫국을 많이 마시는 중이었다. 자신이 서있는 라인을 믿고 설쳤다고 할까. 그가 그렇게 야무진 꿈을 꾸는 사이, 차기 본부장 후보로 다른 사람이 지목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눈에 띄게 폭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된다면 너도 , 아니 너희들 모두 " 같은 심산으로 회사를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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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가 본격적으로 '내부 총질' 시작한 계기다. 어이없게도 그가 제일 처음 작업한 사람은 상대 진영에 있던 나였다.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체 사람이 그랬을까, 그게 하필 나였을까 생각해 보니, 나를 제물로 삼는 상대 진영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가장 효과적이어서 그랬던 같다. 우리 모두 경험하지 않았던가, 당사자보다 그의 측근을 건드리는 훨씬 뼈아프다는 사실을.

 

그는 허구한 나를 괴롭혔다내가 현 본부장과 차기 본부장(그를 제치고 후보가 된)의 신임을 받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무튼 지난 겨울 이들의 공격에 마음앓이를 하느라 며칠간 출근을 못하고 자리보전을 있다. 물론 휴가를 내고. 그는 내가 회사에 나가지 않자 사내에 이런 말을 퍼트렸다.

 

"징계 받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신 차리고 무단결근 중이다"

 

억울했다. 직급이 깡패라 어쩔 있나, 억울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책상에 앉자 사람들이 수군댔다.

 

그러자 당시 나를 아끼던 선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안다. 하지만 저쪽에서 저리 나오니 어쩌겠냐. 더럽고 치사하지만 저들에게 떠들고 다닐만한 거리 자체를 제공하지 말자"

 

그때부터  악물고 고개 처박고 일만 했다. 열이 펄펄 끓어도 점심시간에 수액 맞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직급과 서열이 중요한 제조회사는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에 나름 암묵적인 강호의 룰이 존재한다. 예컨대 적군의 칼을 빼앗을지언정 상대의 옷을 찢어 망신을 주지는 않는다든가, 상대 진영의 이등병이 잘못했다고 해도 병사를 해치는 대신 조직의 수장과 이야기한다든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장수의 목은 베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의 어떤 원칙과 법도가 있다.

 

그는 이런 법도마저 진작에 씹어먹는 전설의 후안 무치였다. 체급 차이가 월등한 나를 타격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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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치채셨을까, 앞선 에피소드에 밝힌 김치 사건(나의 대기업 생존방정식 외전 : 소문 공화국과 검찰 공화국 사이에서) 조작한 자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엉뚱하게 자신이 본부장에게 덜미를 잡히자, 그는 가리고 덤비기 시작했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더니 내부에 있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나를 포함한 이쪽 진영을 괴롭혔다. 무렵 그가 만들어 배포한 찌라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금 본부장이 하려는 일은 전부 사업성이 없는 얘기고, 뜬구름 잡는 얘기다. 그러므로 본부는 없어져야 한다'

 

5.

당연히 연구소는 애초에 그런 일 하라고 만든 연구소였다그룹의 미래를 생각해 만든 조직으로 중장기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라고 만든 조직이다. 그러니 단기간에 성과가 나올 리도 없고 사업과 1차적으로 연결을 짓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만에 하나 신임 본부장이 헛소리를 했다 치자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같지도 않은 말에  밑에 있는 석박사들이     해보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겠는가. 한데 그는 간편한 프레임   만들더니 두 세 명의 나팔수를 고용해 맹비난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병신 취급 받을 수 있게 열과 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직장 생활 좀 해봐서 알 거다. 승진을 못하면 누구나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헌데 이 불만이 회사 전체의 문제인지 개인의 문제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세가 큰 사람은 개인의 문제를 마치 모두의 문제인양 탈바꿈시켜 회사 전체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다. 

 

노련한 장이나 경영자는 이런 분위기가 생기는 걸 감지하면 적절히 컨트롤한다. 대신 욕받이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불만이 임계점을 넘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자른다. 그는 그 선을 타고난 재주로, 보일 듯 말 듯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람들을 괴롭혔다.

 

조직에 오래 있다보니 승진과 자리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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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연재를 꾸준히 본 분은 아시겠지만 승부수(?)는 내가 던졌다. 이 모든 일에 염증을 느낀 내가 지난 여름 퇴사했다. 이후, 사내 여론이 많이 술렁였나 보다. 직장인에게 퇴사란 목숨을 던진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계기로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을 한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잘 버티며 항상 웃는 얼굴의 인간이 덜컥, 하고 퇴사해 버리니 전세가 역전되어 그와 반대세력으로 사람들이 집결하기 시작했고, 기세에 위협을 느낀 그는 최후의 공격을 시도했다. 

 

연구소 과제 중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이 있었다. 그는 연구소에서 만들고 있는 수많은 샘플 가장 문제가 많은 제품을 골라 액정을 깨트리고 사진을 찍은 후, 윗사람들에게 이렇게 보고 했다.

 

'봐라,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이렇다. 이렇게 약해 빠진 액정을 어디에 팔라는 말이냐. 그러니 본부는 없어져야 한다.'

 

대기업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유치해질 수 있겠냐, 는 생각이 들겠지만 천만의 말씀. 사람 사는 데 다 거기서 거기다(검찰과 국회를 보면 더 잘 이해가 갈 거다). 그는 그간 퇴사했던 사람들 면담 서류도 조작해 이들이 마치 본부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회의를 느끼고 현직 본부장에게 불만이 있어 퇴사하는 것처럼 가짜 뉴스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틈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회장님이 자신을 신임한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해 자신에게 뭔가 대단한 권력이 있는 것처럼 굴어 사람들을 호도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껌뻑 속아 넘어간다.

 

나와 같은 본부였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힘을 합쳐 없이 그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했고, 결국 얼마 그의 계획은 탄로나 버렸다. 역풍을 제대로 맞아 요즘은 입도 뻥긋 못하는 신세가 됐다. 글로 써서 되는 거지만 그의 수작은 탄로나기까진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를 포함해, 뒤에서 찍은 그의 칼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간 이후에야 말이다. 여기까지가 이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온 내 퇴사 이후의 이야기다. 

 

 

7.

갑자기 당시의 일이 생각난 이유는 요즘 조국 장관과 관련된 뉴스를 유심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초동에서 하는 짓이 내게는 그의 행동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조국 장관의 집을 11시간이나 압수수색 했다지 않은가. 나는 뉴스를 보다가 때 아닌 실소를 하고 말았다. 일로 인해 그간 검찰에 대해 오래 품고 있던 어떤 의문이 하나 풀렸기 때문이다. 여태 나라 검찰이 일을 있는데 일부러 하는 알았다. 한데 이번에 보니 아니다. 그들은 일을 못한다. 못해도 정도껏 못하는 아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럴  없다.

 

YG 아니고 삼바도 아니고 양승태도 아니고 어떻게 조국 장관의 집에 아이 표창장을 뒤지는 데 오만 사람을 동원하느냐는 거다. 아마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거다. 잘못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을.

 

나는 그 압수수색의 풍경을 지켜보며, 직장 생활을 20년한 평범한 퇴사자의 입장에서, 저 풍경이야말로 사법개혁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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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보면서도 그때 승진에서 누락된 후, 자기 패거리와 함께 가짜 뉴스를 열심히 퍼나르던 연구원이 떠오른다.  배달음식 가져다 사람 인터뷰를 따는가, 대중이 알고 싶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이들도 일을 못하는 거다. 못해도 엄청 못하는 거다

 

사법개혁 받고 언론개혁까지 가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8.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말했지만, 대기업이란 곳에서 전쟁하며 보내는 시간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절대 고독'이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나와 말만 섞어도 낙인 찍히는 분위기였기에 시간 동안 나는 친구들과 어디 가서 편하게 한 잔 마셔보지 못했다.

 

행여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까지 괴롭힐까봐 내 쪽에서 먼저 조심하게 된다. 지나고보니 다른 어떤 보다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나는 일을 딴지일보에서 말하고 쓰며 위로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줬는데, 나를 알지도 못하는 여기 사람들이 내게 위안을 줬다. 인생 참 모를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우리가 쓰는 댓글 하나, 사법개혁에 대한 열망을 표하는 지지 하나가 사법개혁을 준비하는 실무진, 그리고 조국 장관에게 위로가 것이라 확신한다.

 

집으로 밀고 들어가는 이리 떼를 막아설 순 없다. 다만 내가 여기서 느꼈듯, '세상에 그런 사람들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하는 하나하나의 말들이, 나의 경험상, 망망대해에서의 등대 같이 다가갈 거라 확신한다. 그 하나하나의 등대가 많아지면 지금까지 철옹성이라 믿었던 말도 안되는 제도들은, 시스템은, 무너질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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