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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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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감옥
『...4, 5일 뒤에 미조부치(溝淵孝雄) 검찰관이 와서 다시 심문하므로 전후 역사에 관해 세세한 것을 진술했더니 검찰관이 이토를 저격한 사유를 물으므로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했다.
1. 대한제국 민 황후를 시해한 죄요.
2. 대한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4. 무고한 대한인들을 학살한 죄요.
5. 국권을 강탈한 죄요.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요.
8.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9. 교육을 방행한 죄요.
10. 대한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12. 대한인이 스스로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13.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대한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14.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요.
15. 일본 천황폐하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요.
검찰관이 다 듣고 난 뒤에 놀라면서 하는 말이,
“진술하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동양의 열사라 하겠소, 당신은 열사이니까 사형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하였다.』
『이날 장춘(長春) 헌병대에서 밤을 지새고, 이튿날 다시 기차를 타고 어느 정거장에 정차했는데, 일본 순사 하나가 올라와서 갑자기 내 뺨을 주먹으로 후려갈기므로 내가 화가 나서 욕을 하자 헌병 장교가 그 순사를 끌어내린 뒤에 날더러 하는 말이,
“일본과 대한국 간에는 이같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화내지 마시오.”』
그때 전옥(감옥 형무소장급) 구리하라(栗原)와 간수계장 나카무라(中村)는 항상 나를 보호해 주고 후대했다.
매주 목욕을 시켜주고 오전 오후 두 차례씩 사무실로 데리고 나와 고급 담배, 서양과자와 차를 주기에 배불리 먹기도 했다.
또 하루 세 끼 쌀밥을 주었고, 내복으로 고급품을 같이 입히고 솜이불 네 벌을 특별히 주었으며, 과일을 날마다 주었다. 매일 우유도 한 병씩 주었는데 이것은 소노끼(당시 한국어 통역과)가 특별히 보내 준 것이고, 미조부치(溝淵孝雄) 검찰관은 닭과 담배 등을 넣어주었는데 이같이 특별히 대우해 준 것에 대해 다 적지 못한다.』
-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 中 발췌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 있을 때 안중근 의사와 함께한 일본인들은 인간 안중근에게 호의적이었다. 그의 뜻에 동의했고, 그의 인품에 감복했다. 그 결과 전옥이었던 구리하라는 사형판결이 있은 직후 당시 고등법원장이었던 히라이시 요시토(平石義人)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안중근은 사형판결에 불복하는 사유를 설명했고, 덤으로 당시 국제정세에 관한 의견도 피력했다. 이때 히라이시 요시토는,
“내가 그대를 깊이 동정하지만 정부의 방침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다만 그대가 진술한 의견만은 정부에 품신하겠다."
라는 답변을 했다.
(구리하라는 안중근의 인품에 감복해 법원장과 재판장에게 구명 탄원을 썼고, 처형 전날에 비단 소복을 마련해서 안의사에게 건네줬다. 사형 집행 이후 안 의사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고향 히로시마로 낙향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하는 건 안중근과 접촉한 일본측 인사들의 마음과 일본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는 대목이다. 고등법원장이었던 히라이시 요시토가 말한 ‘정부의 방침’이란 말을 유념해서 살펴봐야 한다.
“3월26일 안중근의 매장이 끝났다는 보고가 있은 지 얼마 후, 5시에 안중근 재판의 최고책임자인 뤼순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요시토 관사에서 「안중근사건 관계자 위로만찬회」란 이름으로 축하연을 개최했다.”
1910년 3월 29일자 만주일일신문과 만주신보 등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이 축하연에 참석한 사람으로는 주최인 히라이시 고등법원장, 검찰관 미조부치 검찰관, 판관과 통역 서기 등 8명이었고, 내빈으로는 관동도독부의 사토 경시총장, 뤼순 감옥의 구리하라, 변호사와 언론인 등 6명이었다. 이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요정에 가서 기생들과 술판을 벌였다.
이들의 의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관계기관 인사들이 모여서 만찬을 한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정부에서 이 사건에 개입을 했다는 것에 관해서는 이미 밝혀진 사실로 확인됐다. 여기에 증거가 하나 더 추가된다.
이 당시 이 만찬회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이 만찬에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이 재판진행과정에서 안 의사를 관리하거나 사형집행에 참여한 인사들 25명에게 일본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거다.
검찰관에게는 250원, 재판장과 형무소장에겐 150원, 판사는 20원, 간수 6명에게는 10원에서 45원까지 차등지급을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긴장하고 있었다.
“안중근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최대한 빨리 형 집행절차를 밟는다.”
라는 판단을 내린 뒤에 이를 밀어붙였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재판은 일본 사법부가 진행 한 게 아니라 외무성에서 주도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판결은 히라이시 요시토가 아니라 외무대신인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가 내렸다.
보상금이 나온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절차상에 무리가 없었다면, 일본 정부가 굳이 보상금을 줄 이유는 없었다. 재판관계자와 뤼순 감옥의 관리들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건 그들 스스로도 이 재판이 무리하다는 걸 인정한 거다.
일본 정부의 판단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안 의사와 함께 한 이들은 안 의사의 인품과 주장에 감복한 상황이었다(보상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당시 25세. 일본 헌병 상병이었던 그는 뤼순 감옥에 배치됐었다. 여기서 안중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안중근과 대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안중근의 사상에 차츰 감화된 그는 결국 안중근을 인정하게 된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안중근은 지바를 불러 선물 하나를 건넨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였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그 동안 마음을 나눈 이에 대한 배려라고 해야 할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그러니 내게 너무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
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 글은 훗날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가 된다)
“그간 보여 준 친절을 마음 속 깊이 고맙게 생각하오. 동양에 다시 평화가 찾아와 두 나라 사이에 우호 관계가 회복될 때 다시 태어나 반갑게 만나기로 하세.”
“선생님,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저립니다. 앞으로 선한 일본 사람이 되도록 생을 바쳐 정진하겠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후 지바 도시치는 제대를 자청했고, 군을 나간 뒤 고향인 미야기현(宮城縣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바의 고향에는 다이린지(大林寺)란 절이 있다. 지바는 자신이 받은 글을 봉양했다. 이후 지바는 죽었고, 그 유해는 다이린지에 안장됐다.

1979년 지바의 유족들은 다리인지 주지와 상의한 끝에 1979년. 안중근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이 글을 한국에 반환하기로 하고, 안중근의 서비(書碑)를 원본대로 건립했고, 매년 9월 1일에 안중근과 지바의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안중근과 지바에 관한 사연은 일본 방송에서도 소개된 이야기다. 물론,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고, 일본에서도 의도적으로 이 내용을 외면하는 것 같지만...)
필자 주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2020년 3월 공개 예정입니다. 펀딩 목표 금액 1천만원으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하얼빈 의거 장면을 촬영하려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격장면 재현을 위한 물적 토대는 크게 3가지로, M1900 권총과 32ACP 탄, 그리고 발리스틱 젤라틴입니다. 총은 미국 총기 옥션에서 낙찰받아 현재 배송 프로세스를 밟는 중입니다. 펀딩은 32ACP 탄과 당시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십자가 흠집’이 있는 탄의 위력 실험을 위한 발리스틱 젤라틴 구매 비용, 그리고 촬영에 들어갈 기자재 대여와 인건비로 사용 예정입니다.
총기 사격 실험에 고속촬영 장비와 인력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고속촬영을 위한 조명 세팅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110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가 어떤 악조건 속에서 의거에 성공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는지를 실물 총을 가지고 실험할 예정입니다.
현재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국내 재현 사격을 추진중이며, 만약 국내사격이 여건상 어렵다면 미국 현지에 섭외한 사격장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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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만평]오늘자 서초동 zziziree검색어 제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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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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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