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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노사정 대타협(이라 쓰고 ‘쉬운 해고’라 읽음)이 극적으로 타결된 바로 그 날 저녁. 청와대에선 가카의 옥음이 울려 퍼졌다.



"노조와 기업이 정말 어려운 타협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아."



그렇다. 가가카께서도 팔목 비틀린 한국노총의 타협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카께서 친히 ‘보답’을 하시겠다고 천명하셨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감개가 무량한 일이냐.


다음 날 국무회의. 가카께서는 이 감동적인 스토리에 방점을 찍으셨으니, 사회 지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 일자리 펀드를 만들고 본인이 제일 먼저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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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솔선을 수범하여 참여를...”


단 하루 만에 이 같은 구상을 완성했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바로 그날 오후, 청와대 참모진들이 회의를 통해 가카의 제안을 구체화하고, 다음 날 16일 황교안 총리가 국무위원들을 불러 모아 후속논의를 하는 등 ‘가카의 구상’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무위원들이 자기가 관할하는 부서에 펀드를 유치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했다거나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선 ‘사실상 강제’로 펀드에 가입해야 하는 분위기였다거나, 은행권에서 펀드 기부를 강제했다 철회한 일 등 소소하고 비(非)본질적인 이야기들은 그리 중요치 않으니 그냥 넘어가자.


9월 21일. 청년들을 어여삐여긴 가카의 대뇌피질에 미세한 전기 자극이 일어 '구상'을 하게 된지 단 8일 만에 ‘청년희망펀드’가 개시되었다! 그리고 그 펀드에 오늘 날짜로 104,848,905,000원이 모였다. 한 달 보름 만에 1,000억이 넘는 돈이 모인 것이다(창조경제가 도대체 뭐냐고 눈에 불을 켜고 댐비는 좌빨들은 여기서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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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청년희망펀드’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 말이 펀드지, 돈 냈다고 뭘 돌려받는 게 아니다. 기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2.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비영리 공익재단인 ‘청년희망재단’에서 펀드를 운용한다.


 3. (굳이 하고 싶다면) 지정된 은행에 가서 돈을 내면 펀드에 참여할 수 있다.


 4. 돈 모아서 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쓰겠다는 대의명분만 있을 뿐. 일단 돈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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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펀드에 가입하겠다고 밝힌 가카께서는 청년희망펀드 1호 가입자로 거금 2천만 원을 투척하시었고, 매달 대통령 월급의 20%인 340만 원을 기부하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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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아니고 참말이다


가카에 이어 2호 가입자는 황교안 총리로 일시금 1000에 매달 원급 10%(130만 원)를 기부했으며, 황우여 교육부 장관, 최양희 미창과부 장관, 김종덕 문체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 가카의 의중을 캐취하는 김무성 대표도 펀드에 가입했고, 원유철, 정의화 의원 등 정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펀드에 동참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계 인사들도 펀드에 적극 참여했다. 어떻게 기부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건희 회장이 200억, 정몽구 회장 150억, '광복절 특사' 최태원 회장 100억 등 25% 새액공제 해택을 감안하더라도 재계에서 상당한 금액을 삥뜯겼, 아니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기업 총수들의 기부 행렬에 본지 김어준 총수의 이름이 빠져있어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훈훈한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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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손연재, 박세리, 주현미, 김태희, 이승기, 류현진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1,000억이라는 위대한 금액이 모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잠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청년이 아닌 것 같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법에 따라, 상황에 따라 ‘청년’이라 규정되는 나이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으니 많은 경우에 청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법에서는 15~24세를 청년이라 하고, 어느 법에선 15~29세, 요즘엔 또 15~34세를 청년이라고 한다. 심지어 새정치, 새눌당은 45세까지 청년비례대표에 신청할 수 있으니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애국심이 투철한 청춘, 아니 청년인 본인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모인 펀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해 공식 사이트에 방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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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이트 디자인이 살짝 구린 느낌이다. 아니 많이 구리다. 딴지일보 사이트보다도 구린 느낌이다. 두루넷을 쓰던 시절에 많이 보던 퀄리티인데, 요즘 레트로(복고)가 유행이라고 하니 그런 줄로 알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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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힘내라 '청년'이 아니고, 힘내라 '청춘'이다.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청춘이라 부르는 경우, 예컨대 청춘 세대라고 한다거나 청춘 조직이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초큼 낯설다. 이 역시도 복고인 듯. 그래도 펀드 이름은 '청춘희망펀드'가 아니라, '청년희망펀드'로 해주셨으니 감사히 생각하고 넘어가자. 아, 저 위에 댓글 단 코코아는 내가 아니다. 정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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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펀드를 운용하는 청년희망재단의 이사진 약력이다. 회장, 장관, 위원장, 수석비서관, 이사장, 총장 등 딱 봐도 어마무시한 경력을 자랑하시는 분들이다. 이사진 얼굴마담으로라도 청년을 한 명 포함할 법한데, 그런 건 없다. 성함 옆에 나이를 '生'으로 표기하는 건 세로로 읽던 조선일보 이후로 첨 본 것 같지만, 역시 복고니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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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펀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대망의 아이디어 공모. '실질적으로 청년들이 원하는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다. 이 정도 복고 분위기에서 이런 기똥찬 생각을 해냈다는 게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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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 반영 -> 진행 -> 일자리 창출. 참으로 직관적이고 시원시원한 사업계획이다. 휘향찬란한 수사만 늘어놓는 요즘 사업계획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공모 게시판에 접속해 어떤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올라와 있는지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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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아까 청춘 응원 메시지랑 비슷한 레이아웃이다. 그런데 이 중대한 아이디어 공모에 글이 고작 121개밖에 없다. 게다가 공모 내용도 아쉽다.


18개로 최다 추천을 받은 제안은 취업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자기 PR과 더불어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한 종합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로드맵으로는 1단계 청년 자신감 회복, 2단계 취업교육 전문인력 양성, 3단계 우수 중소기업 정보시스템 구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년들이 자신감이 부족해 취업을 못 한다는 명랑함이 많은 추천을 이끌어낸 힘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로 추천이 많은 제안은 8개의 추천을 받은 휴먼라이브러리.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휴먼라이브러리를 확장, 보완하자는 주장이다. 좋다. 좋은 말이긴 하나, 가카의 원대한 구상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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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코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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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사태의 해결법 '청년검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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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핀트가 약간 어긋나지만, 쉐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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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첨부파일을 열어봐도 같은 내용)


이렇듯 업체 홍보와 자기PR 속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으나, 역시 부족하다. 게시판이 좀 구려 보이고 글쓰기도 불편하지만, 무려 첨부파일도 올릴 수 있고 추천기능도 구현해 놨는데 우리 청춘, 아니 청년들이 이런 일에 이리도 무관심해서 되겠냐.


물론 이런 식으로 해서 청년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절망감은 나도 공감한다. 청년희망펀드로 일자리 문제의 본질인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 펀드는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가카의 임기가 끝나면 펀드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가카께서 청춘들을 어여삐여기샤, 노블리스 오블리제 차원에서 성심성의껏 아이디어를 내시었고, 참모들이 일치단열하여 단 일주일 만에 정책이 완성됐는데, 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청춘들이 청년희망펀드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중대한 사안에 아이디어 제안이 고작 이것밖에 없다는 건 우리의 비극이고 참극이다. 유감스럽게도 본지와 용비어천가로 용호상박을 겨루는 조선일보에서도 청년희망펀드를 비방하는 사설을 냈다고 하니, 총체적 난국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경제 살리기에 있다. 경제가 회복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를 늘리고 인재 채용을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정부 예산이나 관제(官製) 펀드를 활용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얼마나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정부 일자리 정책은 성장률을 높이는 데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에 노동 개혁과 규제 완화로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15.09.17)



요즘 떠들썩한 서울시 청년수당의 예산이 90억, 성남 청년배당이 113억이다. 이거, 청년희망펀드에 비하면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돈이다. 이런 푼돈에도 사회가 분열하고, 국무회의에서 범죄니 아니니 하는 설전이 오가는데, 청년희망펀드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메말라 있다니, 참으로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가카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삥뜯긴, 아니 자발적으로 참여한 기업 총수, 공무원, 정치인을 봐서라도 이 돈이 잘 쓰여질 수 있도록 우리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쏟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마저 외면하면 이 돈이 정말 눈먼 돈이 될지도 모른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으니까 써서 올려보자. 지금이라면 당신의 제안이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다. 경쟁력도 있을 거고.


DMZ에 감자밭을 만든다고 하건, 서해 앞바다에서 보물선을 찾는다고 하건 좋다. 제주도산 말총을 독과점하겠다는 명랑한 계획도 갠춘하겠다. 진지하게 청년 일자리를 위한 협동조합을 제안하거나, 기존 정책들의 공백을 지적하는 것도 좋겠다.


가카께서 청년의 희망을 위해 힘쓰셨으니, 이제 우리가 뭐든 해보자. 혹시 모른다. 당신의 제안에 감복한 가카께서 덜컥 축복을 내려주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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