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엔 내 세상이라고?
지금부터 당신에게 건방진 제안을 할 거다. 내가 설정한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다니는 직장이 영 맞지 않아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 기타 등등의 이유로 현재의 삶이 불만이거나 변화를 바라는 사람. 그래서 눈앞에 놓인 몇 가지의 선택지 중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 중인 사람. 대략 그런 사람에게 하는 제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선택지에 노가다꾼도 넣어줬으면 좋겠다.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을 테니, 상상이나 한번 해달라는 거다. ’내가 노가다꾼이 된다면?’ 정도의 상상 말이다. 상상하려면 우선 노가다꾼을 알아야 할 터.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노가다꾼의 모든 걸 얘기해볼까 한다.
제일 중요한 돈! 밥벌이 수단으로 노가다꾼, 괜찮다. 노가다꾼은 통상 주 6일 근무인데, 그 기준으로 보면 잡부가 300만 원 안팎, 조공이 350~450만 원, 기공이 450~550만 원, 반장이 600~700만 원 정도 번다.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이다. 팀을 꾸려 현장에 들어오는 하도급팀 오야지들은 1,000만 원 이상도 가져간다.
지금 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보다도 조금 더 번다. 보너스니 성과급이니 따지면 섭하다. 나도 회사생활 해봤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쯤 다니면 모를까 평범한 회사 다니면 명절 떡값 정도 받는다는 거, 잘 안다. 나도 그랬었고.
대신, 일 많이 하잖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6시 반쯤 출근해 5시 퇴근이니까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다만, 6시 반에 출근하면 아침밥 먹고 좀 쉬다가 7시부터 일한다. 아침 안 먹을 사람은 7시까지 와도 된다. 그러다 9시에 참 먹는다고 15분 쉰다. 11시 반이면 슬슬 밥 먹으러 간다. 1시까지 점심시간이다. 3시면 또 참 먹는다고 쉰다. 4시 반이면 슬슬 정리한다. 중간중간에도 담배 피운다고, 커피 마신다고 5분씩, 10분씩 쉰다. 실제로 일하는 건 8시간쯤이다. 직장인이랑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세븐 투 파이브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여전히 괴롭긴 한데, 대신 일찍 퇴근하니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를 길게 보낼 수 있다. 여름에 일이 좀 일찍 끝나 4시 반쯤 퇴근할 때는 한낮에 퇴근하는 기분이다. “오, 아직도 이렇게 하루가 길게 남아 있는데, 난 지금부터 뭐 하면서 놀지? 룰루랄라♪” 할 때의 그 설렘이란.
전망도 나쁘지 않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걸 생산한다. 그래야 돈이 도니까. 건물도 그렇다. 대기업 건설사가 모두 문 닫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건축·토목 공사는 무한히 반복될 거다. 노가다꾼이 밥 굶을 일 없단 얘기다. 나처럼 젊은 노가다꾼 전망은 더 밝다. 따져보진 않았으나, 노가다판 평균 연령이 대략 55~65세다. 건축 붐이던 1980년대에 노가다 일 시작한 진짜 꾼들이다. 이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길어야 10년이다. 이미 노가다판 절반이 외국인이다. 앞으로 그 비중은 더 늘어날 거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외국인에게 반장을 안 맡긴다는 점이다. 반장은 하청 소장, 때때로 원청 관계자와 소통해서 인부 관리하는 자리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말 잘해야 하고, 한국 문화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한국 땅에서 짓는 한국 건물이니까. 해서, 젊은 노가다꾼 전망이 더 밝다는 거다. 10년 뒤에 반장 할 사람이 없다. 요즘 내가 많이 듣는 말 중 하나.
“10년만 지나 봐. 니 세상이야. 니가 외국 인부들 데리고 일해야 돼.”
열심히 한 만큼의 담백한 성취감
앞서 얘기한 진짜 꾼들에게 노가다는, 그야말로 생계수단이었다. 노가다 뛰어서 자식들 키우고, 집 사고, 차 샀다. 자식 키우던 때처럼 악착같이 일해야 하는 건 아닐 테지만, 여전히 그 관성이 남아 새벽에 일어나고, 습관처럼 노가다판에 나오는 거 같다.
나도 처음엔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지금은 안 그런다.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판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하다는 점이다. 회사 다닐 땐 내 노력보다 결과가 안 나와 속상할 때도 있었고, 내 노력보다 결과가 잘 나와 머쓱할 때도 있었다. 노가다판은 일한 만큼, 딱 그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명확하다. 열심히만 하면 딱 그만큼의 담백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또 열심히만 하면 애써 생색내지 않아도 표가 난다. 윗사람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이성민)이 대략 이런 말을 한다. “회사 나왔으면 일을 해. 게임하지 말고.” 네 편 내 편 가르고, 라인 타려고 애쓰고, 정치질이나 하려는 직원에게 던진 말이다. 어디 그 직원뿐이겠나. 회사라는 게, 아니 우리 삶이라는 게 정치의 연속인데.
물론, 노가다판에도 정치질하는 사람 있다. 회사만큼 많진 않다. 왜? 필요가 없으니까. 말한 것처럼,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니까. 정치질하지 않아도 내 노력을 손쉽게 증명받을 수 있으니까. 나 같은 경우, 노가다판 와서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노가다꾼의 매력, 하나 더 있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거다.
대학 졸업하고, 홀로 전국 일주를 했다. 때론 버스, 때론 기차, 또 때론 무작정 걸었다. 가끔 끝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마치 진공 상태처럼. 그럴 때면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대략 어떤 느낌인지 알 거다.
노가다판에서도 가끔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일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념무상 해진다. 그럴 때면 겉치레 다 걷어내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면, 뭐랄까. 침대에서 5cm쯤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가볍고 산뜻하고 유쾌해지는 기분이랄까.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점도 노가다꾼의 큰 매력이다.
노가다판에 들어오기 전, 난 심신이 지쳐있었다. 고백하자면 극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다. 한동안 약도 먹었다. 그런 내가 노가다판 와서 제법 명랑해졌다. 웃을 수 있게 됐고, 다시 글도 쓸 수 있게 됐다. 잠도 잘 잔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앓고 있다면, 한 번쯤 삶을 돌아보고 싶다면 노가다,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 링크
힘들고, 더럽고, 떠돌고
돈, 전망, 매력까지. 노가다꾼의 장점은 이 정도면 될 거 같다. 이제 단점 얘기할 건데, 단점이야 예상 가능한 것들이니 쭉쭉 얘기하겠다.
우선, 힘들다. 처음에는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끙끙 앓다가 잔 적도 있다. 그래도 두어 달만 지나면 몸이 적응한다. 그때부터는 좀 할만하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것도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난 5시에 일어난다. 이 닦고, 눈곱만 떼고 가려고 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잠깐 눈만 붙였다 뜬 것 같은데 모닝콜이 울릴 때면, 참담한 심정이다. “아~” 하고 탄성이 절로 난다. 겨울에는 밤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는 기분이다.
날씨 영향도 크다. 여름엔 남들보다 더 덥고, 겨울엔 남들보다 더 춥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서 무거운 걸 나르자면 숨이 턱턱 막힌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일을 해도, 땀을 너무 흘려 탈수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온다. 얼굴이 까매지는 건 덤이다. 여름에 무심코 거울 봤다가, 너무 놀라 욕이 나온 적도 있다. “아이 X발, 이거 누구야?”
추운 날, 칼바람까지 불어대면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양말 두 켤레에 털안전화까지 신어도 발가락에 감각 없을 때가 있다. 장작불에 10분이 멀다고 손을 녹여도 손끝이 저릿저릿할 때도 있다. 덥든 춥든 그나마 일이라도 할 수 있음 다행인데, 비나 눈이 오면 일을 못 한다.
떠돌이 인생인 것도 노가다꾼의 비애다. 기술만 있으면 70까지도 먹고사는 게 노가다꾼이긴 한데, 그에 비해 공사는 한없이 짧다. 아파트 현장이라고 해봐야 1년 안팎이다. 하나의 현장이 끝나면 또 다른 현장을 찾아야 한다. 때때로 주말부부도 감수해야 한다. 일찌감치 결혼이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혼기 놓치면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 떠돌아다니다 보니 연애할 시간도, 기회도 없다. 노가다꾼 중에 돈 많은 노총각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더럽다는 것도 노가다꾼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진흙, 먼지, 모래가 일상인 건 맞다. 새 옷도 하루만 입으면 걸레가 된다. 집 와서 샤워할 때 코를 풀면, 새카만 콧물이 한 움큼씩 나온다. 더러워서 이 얘기까진 안 할까 했는데, 리얼을 위해 해야겠다. 최근에 목욕탕 가서 때를 밀었는데… 와우!!
뭐 그렇긴 한데, 내 옷이 좀 너절해지고, 내 몸이 좀 지저분해지는 게 그렇게까지 더러운 건지, 난 잘 모르겠다. 회사 다닐 때,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자 일 할 때, 더럽고 아니꼬운 꼴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가.
사실, 지금까지 얘기한 단점은 부차적이다. 힘들고, 더럽고, 수시로 전근 다녀야 하는 직업,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어떤 직업이 안 힘들고, 어떤 직업이 더럽고 아니꼬운 꼴 안 보겠나. 세상사 다 그렇지.
가다가 없는 인생, 노(No)가다
지금부터 얘기할 단점은, 노가다꾼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선은 시선. 내가 노가다꾼으로서 제일 속상한 부분이다. 난 아주 즐겁고 행복한데, 그래서 당당해지고 싶은데, 이놈의 대한민국은 내가 당당해지길 원치 않는 거 같다. 누군가에게 노가다꾼이라고 소개하면, 조롱과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옷 갈아입는 게 귀찮아서, 그냥 작업복 입고 출근했다가 작업복 입고 퇴근한다. 다른 대부분의 인부는 작업복을 챙겨 다닌다. 한번은 용역 아저씨에게 옷 갈아입기 귀찮지 않으냐고 물었다.
“귀찮긴 한데, 집 들어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좀 그렇더라고.”
노가다판에서는 자조적으로 이런 말도 한다.
“노가다가 왜 노가다인 줄 알어? 가다(자세를 속되게 이르는 단어로, 어깨라는 뜻의 일본어 かた[가따]에서 파생)가 없다고 해서 노(No)가다여.”
노가다꾼을 가다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과연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세상은 여전히 그렇다. 조롱과 멸시, 각오해야 한다.
거북한 시선이야 정신승리로 극복하면 어떻게든 해결되는 문제인데, 안전사고 앞에서는 답이 없다. 부딪혀서 멍들고, 긁혀서 피나는 정도는 일상이다. 나는 좀 덤벙대는 편이어서 이틀이 멀다고 정강이, 무릎, 머리 등등을 부딪친다. 진짜로 별이 반짝할 만큼 아플 때도 있다. 그게 아니면 손등, 팔뚝, 허벅지 등등을 긁힌다. 그래서 늘 상처투성이다. 반창고와 연고를 달고 산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넘어지면서 손목을 좀 다쳤다. 키보드 두드리는데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그나마 타박상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노가다판에서는 부러지고, 찢어지고, 파열되는 사고도 왕왕 터진다. 추락, 전도, 낙하(노가다판 3대 안전사고) 사고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진다. 물론, 사망사고도.
노가다판에서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뛰지 마. 천천히 해. 하나씩 들어.” 같은 말이다. 뛰다가 넘어지면, 넘어지는 걸로 안 끝난다. 바닥에 뾰족하고 날카로운 게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바닥만 보고 가다 보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친다. 참나. 앞도 잘 봐야 하고, 바닥도 잘 봐야 한다.
단점 먼저 얘기하고, 장점 얘기할 걸 그랬다. 나름 전략적으로(실은 노골적으로) 장점은 세세하게 쓰고, 단점은 대충 썼는데도, 다 쓰고 보니 노가다꾼, 절대 하면 안 될 직업 같다. 판단은 각자 하는 거로 하자.
우리가 언제부터 쉐프를 쉐프라고 불렀던가. 그냥 주방이모, 주방삼촌이었지. 요즘은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들을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나 보다. 한때는 그냥 BJ였는데. 뮤지션도 한때는 딴따라였고, 헤어디자이너는 심지어 깍새였다. 이 사람들 폄하하려는 거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직업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노가다꾼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직까진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지만, 10년 뒤엔, 또 20년 뒤엔 지금보다 좀 나아지지 않을까. 혹시 모를 일이다. 10년 뒤엔, ‘가다’ 충만한 직업이 될는지도. 난 충분히 설명했다. 이제 다시 제안한다. 상상해보시라. 노가다꾼으로서의 삶을 말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땀은 정직하다.
추천
8문 8답으로 보는 사우디 황금거위 상장 : 2천조 아람코가 떴다 씻퐈추천
돈 버는 게 제일 쉬웠어요? - 3. 재택부업, 그거 함 했구요(feat. 리본) 챙타쿠추천
» [수기]노가다 칸타빌레 21 : 노가다, 할만한 직업 꼬마목수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