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값 상환일이 다가오든 말든, 블로그 알바해서 7천 원 벌었던 상처를 핑계로 푸우 인형을 쓰다듬으며 BL만화책을 보고 있었을 때였다. 딸이 침대 위에 누워만 있는 걸 보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뒹굴거릴 시간에 인형 눈이라도 붙이겠다!"
진짜 눈을 붙이라는 건 아니고 이렇게라도 돈을 벌라는 말이었다. 나 또한 속뜻을 알아챘으나 뜻을 아는 것과 구미가 당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묘하게 귀가 솔깃해진 나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심정으로 '인형 눈 붙이기'에 나섰던 것이었다.
부업은 남대문에서
집에 인형이 산더미 만큼 있다. 봉제인형이라고 하면 나의 벗과 같은 존재로(인형 밖에 친구가 없음) 무엇보다 눈을 잘 달아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표출할 일자리가 없었다. 요즘엔 인형 눈을 사람이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100% 기계화된지 오래되었단다(링크).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하는데 안타까웠다.
그나마 얻은 게 있다면 인형 눈 붙이기와 같은 단순노동을 '재택부업' '재택알바' 정도로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이 키워드로 검색하면 단순노동을 요하는, 비슷한 일자리는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검색하니 악세서리 만드는 일이 있었다. 악세서리와 통 인연이 없는 '초보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라는 설명이었다.
전화부터 했다. 남대문시장의 악세서리 상가로 오라고 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냐고 물었지만 상관 없다고 했다. 손재주와 연이 먼 사람이지만 그 사실은 숨기고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남대문시장 악세서리상가는 회현역 5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에 있다. 나의 고용처이자 부업처는 상가 안에 있었다.
남대문시장 안에 악세서리 상가가 있다
부업처는 악세서리 중에서도 머리핀을 파는 가게였다. 내가 할 일은 천으로 머리핀이 될 리본을 만드는 것. 리본 머리핀 완제품(당장 판매가 가능한 상태)을 만드는 게 아니고 '리본' 그 자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기본 작업(리본)을 해서 넘겨주면 전문작업자가 디테일('리본'을 '리본 머리핀'으로 만드는 작업)을 더한 뒤 판매하는 모양이었다. 부업처가 갤럭시를 만드는 삼성이라면 나는 갤럭시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를 만드는 하청업체였다.
시장 안은 이런 느낌
간단한 작업이라고 해도 어떤 리본을 어떻게 만드는 지는 알아야 하니 한 시간 정도 가게에서 리본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재주보다는 재앙에 가까운 손놀림이라 객관적으로 잘 따라했다고 보긴 힘들었으나 사람 격려하는 게 설리반에 가까운 리본 선생님(리본 만드는 법 가르쳐주었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함)은 잘한다 잘한다 비행기를 태워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런대로 리본을 만들어내자 리본 선생님이 일을 주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계약성립이었다. 리본 선생님이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려는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청업체에겐 거절할 권리가 없다. 뭐 거절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걸 오조오억개 접어야 했음
문제는 일을 받았다는 기쁨은 잠시였다는 것이다. 난관은 바로 찾아왔다.
리본 선생님이 비닐봉투부터 뜯고 봤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비닐봉투 안에 리본 만들 천을 바리바리 챙겨주더니 이틀 안에 이걸 모두 리본으로 바꿔오라고 했다.
대충 봐도 몇 십 개는 만들어야 할 양이었다. 하나 만드는 데에 빨라도 10~15분이니까 몇 십 개를 만든다고 하면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리본만 접어야한다는 말이었다. 벌써 관절이 삐걱대는 게 목디스크가 재발할 것 같았다. 원래 이런 일은 재료값을 내야 한다던데, 그나마 돈 한 푼 안 낸 게 다행인 건가 싶었다.
리본의 늪
리본부터 만들고 리본만 만들어도 시간이 모자랄 터였다. 가능한 빠르게 많은 양을 소화하기 위해 산업사회가 낳은 최고의 산물인 분업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리본 만들기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눴다.
① 천 재단
② 천 접기 (준비물: 양면테이프)
③ 리본 모양(주름) 만들기
④ 리본 동여매기 (준비물: 실)
필요한 준비물(천, 양면테이프, 실)은 가게에서 다 받아왔으니 천 재단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었지만, 인생 쉽게 살 수 있는 거였으면 벌써 돈 이만큼 벌어서 저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인 연하남과 한 백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재택지옥부업의 문을 열기도 전에 지출이 생겼다. 가위와 cm를 잴 자가 없었다(가위 정도는 집에 있었지만 천을 자를 만큼 날카롭지 못했다).
집 앞에서 자와 가위를 사왔지만 역시 일은 시작할 수 없었다. 재단할 때 쓰려고 산 자가 걸림돌이었다. 자도 천도 미끌미끌해서 길이를 제대로 잴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눈금매트(cm가 그려진 미끄럼방지 매트)를 괜히 쓰던 게 아니었나보다. 길이도 잴 수 있고 미끄럼방지까지 되는 건 눈금매트 밖에 없었다.
눈금매트를 사올 수밖에 없었다. 자, 가위, 눈금매트를 구입함으로써 블로그로 번 돈 7천 원은 고스란히 사라졌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걸 이렇게 밝혀냈다.
① 천 자르기
준비물도 준비했겠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길다란 천을 지정된 길이(부업처에서 정해줌)에 맞춰 자른다. 눈금매트가 없었다면 길이 재는 게 힘들어 시간이 배로 걸렸을 거다.
지정된 길이에서 몇 mm 차이나는 건 괜찮아도 1cm 이상 차이가 생기면 수습이 힘들어지니 조심해서 재단해야 한다. 실수를 반복하면 수습하는 능력 또한 늘어나는 게 사람이라지만...
② 천 접기
천을 잘랐으면 이제 접는다. 바로 리본을 만드는 건 아니고 리본을 만들기 위해 틀을 잡는 단계라 반으로만 접는다.
재봉선 있는 쪽이 속면이 되는데, 이 재봉선을 가운데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두지 않으면 나중에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이 경우엔 4단계까지 끝난 리본이라도 다 뜯고 2단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냉혹한 법이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라던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잔소리라 여겼던 자신을 후회하게 될 지 모른다.
재봉선을 가운데다 두었으면 천의 정가운데에 양면테이프를 붙인다. 천을 30cm로 재단했다면 15cm 위치에 양면테이프를 붙여주는 식이다.
다음엔 저 양면테이프를 떼고 천의 양 끝을 양면테이프 위치에 닿게 반으로 접어준다.
천을 최대한 팽팽하게 당겨서 붙여주어야 울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냉혹하다고 말했다. 천이 울어서 각이 죽으면 역시 '처음부터'다.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을 다시 떼고 붙였는지 모른다. 물론 나중에라고 잘된 건 아니고 수습을 잘하게 됐다.
양쪽을 붙이고 나면 납작하게 꾹꾹 눌러준다. 약간 미운 사람 생각했다.
③ 리본 모양 만들기
남은 건 리본 모양 만들기, 즉 주름 잡기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일정한 크기의 주름골을 4개 정도 잡아준다. 주름 잡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긴 한데, 또 하다 보면 된다. 손재주라곤 약에 쓰려해도 없는 나도 했으니 인류라면 모두가 가능한 일임에 틀림 없다.
손놀림만 화려한 사람
④ 리본 동여매기
(대체 뭘 찍었는지 손 밖에 안 나오지만) 주름이 흐트러지지 않게 리본의 중간 부분을 딱 잡은 뒤 실로 동여맨다. 실이 리본의 중심을 잡아주고 천이 필요 이상으로 벌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실을 뜯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긴다(끊어지지는 않을 정도로). 가끔 손가락 살도 같이 묶여서 속상해지긴 한다.
여기까지 하면 리본이 완성된다.
하나에 10분 정도 걸렸는데(분업해서 정확하지 않지만), 손에 더 익으면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계속 같은 작업을 하다 보니 찰리 채플린처럼 누군가의 머리를 나사로 쪼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 고통만 이겨내면 달인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경지에 이르지 않는 것이 나와 주변인의 건강을 위해 좋다.
남은 건 한의원 단골
출퇴근 시간은 물론 회사에서도 만들었다. 편집부 사람들은 처음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봤지만 나중엔 리본 만들고 있는 나를 풍경처럼 여겼다. 나도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리본만 만들었다.
이틀 동안 약 40개의 리본을 만든 뒤 남대문에 방문한 내게 리본 선생님은 잘했다고 또 칭찬을 해줬다. 단시간에 한 것치고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괜찮다고, 잘한다고 했다.
아니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때는 늦었다. 잘 하는 애한테 일을 더 시키는 게 사람 심리다. 또 일을 받은 것이다.
이번엔 처음 받은 양의 거의 두 배였다. 더 큰 비닐봉지에 더 많은 양의 천을 담아주었다. 그나마 4-5일 정도로, 저번보다 기간은 길었지만 양을 생각하면 그 놈이 그 놈이었다.
약속한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리본 제조 기계로 기능해야 했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선 시간을 쪼개고 쪼개야했다. 당연히 쉬는 날은 없었고, 잘 시간까지 아꼈다. 이재용의 삶이 이럴까 싶었다.
노역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이제껏 했던 모든 나쁜 짓이 리본 만들기 형벌로 돌아온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잠 자는 시간 빼고 계속 리본을 만들어야 할 리가 없다. 재택부업하겠다고 했을 때 잘해보라며 북돋아주던 사람들과 다시는 상종을 않겠다 다짐했다.
이제는 눈 감고도 리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는 시점이었다. 어깨와 목 근육이 아작났다. 웅크린 자세로 몇 시간 동안 같은 작업을 하다보니 가뜩이나 없는 근육이 견디질 못했던 모양이다. 목 디스크가 진짜 재발한 모양인지 목과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일었다. 의학에 대한 지식은커녕 이과 지식이 0에 수렴하는 나라도 이건 자연치유될 통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깨를 움직일 수 없어서 이런 느낌으로 걸어다님
말 그대로 병원비가 더 나오게 생긴 상황이었다. 카드값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 그만둬야 했다. (으른의 책임감으로 하기로 했던 건 다 끝냈다)
그만두겠다고 한 다음날, 리본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내가 만든 리본은 145개이며 빠른 시일 내에 정산을 해줄 거라고 했다. 약 일주일을 쉬지도 않고 리본만 만들었으니 나름 만족할 만한 액수가 들어올 것이었다. 편집부 사람들은 임금이 나오면 한 턱 쏘라고 했다. 물론 못 들은 척 했다. 이럴 때만 귀가 안 좋다.
하지만 귀가 좋았어도 한 턱을 쏜다는 건 불가능했다. 번 돈이 13,100원이라서 그랬다. 일주일을 일했는데, 디스크 재발한 것 같은데, 13,100원을 벌어서 그랬다. 현재 시급인 8,350원 기준으로 주급 400,800원을 벌 수 있는데, 나는 일주일 꼬박 일해서 13,100원을 벌어서 그랬다.
삐걱거리는 어깨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누가 지폐 한 장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땅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차라리 땅을 파는 게 이것보단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며 자책했다.
'돈 벌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허무하게 마이너스 상태로 잠정종료가 되었다. 0원도 아니고 마이너스인 이유는 블로그 7,000원, 리본 만들기 13,100원, 도합 20,100원을 버는 동안 '시발비용(스트레스 받아서 홧김에 쓰는 돈)'으로 빵, 치킨, 게임CD 등을 샀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저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책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 앞에서 울 거다. 왠지 그런 심정이다.
조용히 파산을 준비(아님)하며 로또와 맥주 한 캔을 샀다. 맥주를 마시며 다짐했다. 앞으로 부업은 안 하겠다고. 차라리 구걸을 하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 안면인식 결제가 활성화된 중국에서 거지들도 안면이식 페이로 적선을 받는다던데 진지하게 그 길은 어떨까 고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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