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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원발 ‘레깅스 사건’의 전말

 

법원이 또 한 건 해냈다. 일명 '레깅스 판결'이다. 요약하자면, 판사가 판사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사건의 전말부터 보자.

 

버스에서 하차하려던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와 하반신을 버스 하차문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핸드폰으로 약 8초 동안 몰래 촬영하다 형사재판까지 오게 되었다. 일명 몰카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1항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였다.

 

1심에서 이 피고인은 벌금 70만원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24시간 형을 받았다. 피고인은 형이 너무 가혹하다며 ‘양형과중’으로 항소했다.

 

항소심(의정부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는 피고인이 주장 내용 외의 다른 재판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 외의 법리판단에 대한 부분도 다 새롭게 살펴보겠다면서 ‘직권’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항소심에서는 원심판결을 뒤집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응? 무죄라고??

 

대체 무슨 근거로 무죄라 판단했는지 살펴보니, "피고인이 촬영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 제1항 소정의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요지다.

 

 

2. ‘레깅스’는 특별한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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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몸을 촬영했는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부위가 아니라서 무죄라고?? 역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법원이 제시하는 무죄의 근거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동영상 촬영 당시 피해자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다소 헐렁한 어두운 회색의 운동복 상의를 입고 있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레깅스 하의에 운동화를 신고 있어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그리고 레깅스의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 부분이 전부였다”

 

한 마디로 노출된 부위가 약했다! 고로 그 정도는 남이 몰래 찍어도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다. 이런 말씀이다.

 

② “피고가 피해자의 상반신부터 발끝까지 전체적인 우측 후방 모습을 촬영했는데, 특별히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는 아니하였다”

 

쉽게 말해 뒤태를 찍었을 때 엉덩이를 줌으로 당겨서 확대해 찍은 것도 아니니 성적 욕망 성적 수치심을 유발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③ “피고인이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는 피해자의 뒤에서 피해자 몰래 촬영한 것이기는 하나, 피고인은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하였다”

 

뭐 몰래 촬영해도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정도 촬영했으니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유발 아냐! 라는 소리다.

 

④ “레깅스는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한때 유행했던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인 ‘스키니 진’과 레깅스는 소재의 색깔이나 질감에서 차이가 있을 뿐 별반 차이가 없고, 피해자 역시 위와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하여 이동하였다”,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레깅스 입었다고 성적 욕망의 대상 아니니, 그 정도 입은 사람 뒷태는 몰래 촬영해도 형사상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⑤ “피해자가 경찰조사 당시 ‘기분이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이러한 진술은 성적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후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였다”

 

한마디로 피해당시 경찰 진술할 때 왜 “나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 불쾌하다! 불안해서 버스 탈 수 있겠냐?”라고 확실하게 표시 하지 않았냐, 그 정도는 표시해야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다.

 

수치심은 내심으로 느끼는 것이고 표현을 할 때는 다른 식으로 완화되어서 표현하거나, 가해자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행위를 했다고 명시적이지 않고 다른 표현 방식으로 불안함이나 수치심을 표현하는 건 수치심으로 보지 않겠다는 소리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까지는 원치 않는다고 해서는 수치심을 안 느낀 것이니 반드시 ‘엄벌에 처해달라! 저런 새X는 꼭 콩밥을 쳐먹여야겠다!’는 요구 정도는 해야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같은 걸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사람이 교화되는 방향으로 해달라고 해서는 절대 내가 몰래카메라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3. 몰카 사진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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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으로 이런 개떡 같은 판결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한 것도 분노할 일이다. 헌데 우리의 재판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판결문 공소사실 아래 무단으로 촬영된 피해자의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실었고, 이 판결문이 언론사에 그대로 유출된 것이다.

 

판결문은 ‘빼박’ 공적 기록이다. 그런데 이 공적 기록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촬영된 사진을 남겨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 물론 판결문은 해당 사건의 당사자와 대리인만 볼 수 있지만, 내부 열람을 통해 다른 판사들도 열람이 가능하고, 검사들도 관련 사건을 이유로 얼마든지 열람 신청을 통해 열람 가능하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 목적으로 열람이 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결코 작지 않은 문제다.

 

그렇다면 판결문에 사진을 함께 싣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가? 아니다. 최근 몰카 범죄가 급증하면서, 판결에 꼭 필요할 경우 사진을 종종 넣기도 한다. 같은 장면을 두고 쌍방 주장이 완전히 배치될 때에는 사진을 실어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레깅스 사건은 양쪽의 주장이 갈리지 않았다. 몰카를 찍은 건 사실이고, 피고인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처벌을 줄여달라는 항소였는데, 재판부가 오버해서 판결문에 사진까지 실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일이 법원 내부에서는 제법 유명했던 모양이다. 법원 쪽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 비판도 있었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은 막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보도로 거센 비판이 일자 의정부지원에서는 판결문 원본 유출자를 색출하기 위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4. 시대변화 못 따라오는 구린 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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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런 ‘입다 늘어난 싸구려 레깅스’ 같은 사건이 벌어진 걸까?

 

판사들의 특이한 시각일까?

 

재판부 구성을 보니 오원찬 재판장에 박세황, 고준홍 판사가 배석으로 참여했다. 

 

오원찬 재판장은 판사로 재직하면서 재미있는 이력을 만든 인물이다. 지난 2015년 성매매처벌에 관한 특별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처벌 특례법 제21조 제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제기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유독 성매매와 관련한 사건에서 ‘리버럴’한 판결을 내리는데, 올 4월에는 성매매자로 가장한 형사에게 성매매를 알선하여 기소된 유흥업주에 대해서는 ‘함정수사’라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합의부에서는 재판장이 끌고 가고 배석 판사들이야 재판장을 따라가니 오원찬 재판장의 개인적 견해가 많이 투영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유독 법원에서 튀는 판사 한 사람의 개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가 취재한 다양한 법조인들은 이것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법조계 대부분의 문제라 말한다. 판사들의 감수성이 아직도 쌍팔년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류영재 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기사에도 실렸네요. 판사 대상 인권교육이 필요하단 지적에 유구무언입니다”라며 “무단촬영이 문제되어 재판까지 오게 된 사안에서 그 무단촬영이 성범죄에 해당하든 해당하지 않든 간에 무단촬영된 그 사진을 판결문에 실을 때, 무단촬영된 사람에 대한 고민과 배려를 한 것인지,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슬펐어요”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5. 판사님들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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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에 사진 공개까지. 이 판사님들을 어찌해야 할까?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니, 성인지 교육을 잘 하면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글쎄. 그것도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긴 어렵다. 법조인을 뽑는 방식 자체가 글러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사법시험으로 뽑아서 연수원 성적순으로 판사와 검사를 나누는 임용 방식으로는 변할 수 없다. 성적만 보고 뽑으니 법관의 에토스(ethos)가 현저히 떨어지고, 아예 그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판사들도 생겨난다. 검사도 마찬가지고. 그들과 매일 부대끼고 사는 법조계 한 인사는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성폭력하는 판사, 성매매하는 판사, 성폭력하는 검사, 성매매하는 검사, 일베하는 판사, 똘기 충만한 판사들 많다. 사법농단이 괜히 있었겠나? 사회 수준이 그렇다!”

 

십년 전만 해도 성폭력 사건 재판 중 피고인 측에서는 화간을 주장하기 위해 그동안 피해자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피해자가 여러 번 성관계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체감정을 하자고 재판부에 요청하였고, 듣고 있던 판사는 “검사님 어쩔까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부장검사가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비키니 입은 건 보라는 건데 그거 찍은 게 무슨 몰카냐?”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라는 것이다.

 

법조계 여성들이 서지현 검사한테 고마워하는 점이 있다고 한다. 서지현의 미투로 동료 판사, 동료 검사들 그 중에서도 갑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그나마도 ‘말조심’ 이라도 하자는 태도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으니 앞으로 갈 길이 참으로 멀다.

 

수험에 익숙한 달인들이 성공하는 세상, 정형화된 문제의 정답을 찾는 데만 능통한 자들이 사회의 약자를 특별히 보호하는 소명을 지닌 사법부의 법관이 되고, 법조계 전반을 차지한 수십 년이다. 이번 레깅스 판결문 사건은 현재 법조계의 허접한 사고방식, 낡아빠진 의식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