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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노가다판으로 말할  같으면 9할이 남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속해서 무거운  들어야 하고,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중노동이니까. 유전적으로,  통상적으로 그런 일은 남자가 여자보다 잘하니까.

 

남자가 많다 보니, 일하며 나누는 대화 주제도 빤하다. 여자, , 낚시. “왕년에~” 시작해 본인이 얼마나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었는지, 얼마나  물고기를 잡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어쩌다 쉬는 날도 보통은 낚시하러 가서 술을 마시거나, 술을 마시면서 여자 얘기를 하거나, 여자를 만나 술을 마신다. 어쩌면 그런 마초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자가 더욱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노가다판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여자들이 있으니, 이른바 ‘아줌마 3대장되시겠다. ‘핀아줌마 ‘먹아줌마’, 그리고 지금은 없어져 전설로만 남은 ‘못아줌마까지. 이번 , 아줌마 특집이다. 본격적인 얘길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만 전제하자. 내가 지금부터 표현하는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편견이나 비하의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그대로 ‘Mrs’ 의미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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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링크)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리듬, 핀아줌마

 

핀아줌마 소속은 정리팀이다. 하는 일은 핀을 줍는 거다. 이삭 줍는 여인도 아니고, 핀을 줍는다? 이게 무슨 말인지 얘기하려면 건축 공정을 살짝 설명해야 한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짓는다 치자. 우선 철근을 세우고,  철근을 중심으로 거푸집을 짠다.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콘크리트가 굳으면 거푸집을 해체한다.  과정을 반복해 건물을 쌓아 올린다.

 

 중에서 거푸집은 유로폼(일정한 규격의 합판 뒷면에 강철 틀을 붙여 만든 거푸집 패널)     붙이고, 각종 파이프와 각재, 합판 등으로 보강해 만드는데,  거푸집 제작에 쓰이는 거의 모든 자재가 재활용 자재다. 그런 까닭에 콘크리트가 굳은  해체팀에서 거푸집을 해체하고 나면 정리팀에서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는 자재를 종류별, 사이즈별로 분류해서 다시  정리한다. 그렇게 정리한 자재들을 어지간히 빼내고 나면 바닥에 온갖 잡동사니가 굴러다닌다. 콘크리트 부스러기부터 각종 쓰레기, 잡다한 고철, 재활용 가능한 여러 부속 자재 등등이 말이다.  타이밍에 우리의 핀아줌마가 등장한다.

 

참고로, ‘ 정식 명칭은 웨지핀, 또는 외지핀이다. 현장에서는 흔히 폼핀[뽐삔]이라 부른다. 유로폼과 유로폼 사이를 고정할  쓰는 부속 자재다. 크기는 대략 10cm. 꼬깔콘처럼 생겼다. 재질이 쇠라 거의 반영구적으로 재활용할  있다. 핀아줌마가 줍는  바로  폼핀이다.

 

언젠가는 핀아줌마를 가만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손엔 눈삽을, 다른  손엔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다. 우선, 눈삽으로 바닥의 온갖 잡동사니를 박박 긁어 군데군데 모아뒀다. 그러고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안전모에 부착한 헤드라이트를 켰다. 잡동사니의 한쪽 끝에서부터 쇠꼬챙이로 슥슥슥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손으로는 분주하게 부속 자재를 골라 나갔다.(, 핀아줌마라고 해서 폼핀만 골라내는  아니다. 대표적인  폼핀일 , 일일이 설명할  없는 부속 자재가  가지도 넘는다) 골라내는 족족 종류별로 이건 이쪽으로, 저건 저쪽으로 툭툭 던져냈다. 시선은 오직 쇠꼬챙이 끝에만 집중하는  보였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의 눈빛으로 말이다.  골라내고 나서는 종류별로 던져놓은 부속 자재를 자루에 착착 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0 쓰레기봉투 크기 정도의 자루가 수북이 쌓였다. 핀아줌마는 마지막으로 자루의 주둥이를 가는 철사로 휙휙 묶어냈다. 슥슥, 툭툭, 착착, 휙휙.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리듬이었다.

 

 

 

공사의 시작, 먹아줌마

 

먹아줌마는 먹줄을 튕기는 아줌마다. 이게 무슨 말인지도 뒤에서 설명하자. 소속은 하청 소장 직속의 먹팀이다.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선 기준이 필요한데, 노가다판에선 그게 설계도면이다. 기초바닥 공사가 끝나면 설계도면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보통 ‘먹반장이다. 설계도면 기준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어떻게 밑그림을 그리느냐. 자를 대고 연필로 그릴 수는 없을 . 그래서 쓰는  먹통이다. 먹통이란, 먹물을 잔뜩 머금은 먹줄을 돌돌 감아놓은 통이다.  먹통에서 먹줄을  빼내 양쪽에서 팽팽하게 잡는다. 바닥에서 5cm 정도 띄어서 말이다.  상태에서 먹줄을  튕기면 바닥에 먹선이  그어진다.  먹선을 기준으로 모든 공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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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링크)

 

이때, 먹반장 맞은편에서 먹줄을 팽팽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먹아줌마다. 먹아줌마는  레이저 레벨기와 빗자루를 들고 다닌다. 작업장에 가면 레이저 레벨기부터 세팅한다. 그럼 먹반장이 레이저 레벨기와 설계도면을 보며 기준을 잡는다.  사이 먹아줌마는 먹선이 지나갈 자리를 깨끗하게 쓸어낸다. 바닥에 먼지가 많으면 먹선이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까닭이다.

 

기준을 잡은 먹반장이 먹줄의 한쪽 끝을 먹아줌마에게 쥐어 주고는  물러난다. 먹아줌마는  먹줄을 흔들림 없이  잡고만 있으면 된다. 기준점까지 물러난 먹반장이 먹아줌마를  쳐다보며 “오라이?” 하고 외친다. 그럼 먹아줌마가 “~라이~”하고 크게 외친다. 준비됐단 얘기다. 그럼 먹반장이 먹줄을  튕긴다.

 

그게 끝이다.  자체가 어렵거나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아니다. 다만, 정확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웃음기  빼고 진중하게 진행된다. 앞서 말했듯, 먹선을 기준으로 모든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전 현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이미    거푸집 제작을 끝낸 상황인데, 뭐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확인해보니, 먹반장 착오로 ‘오야먹(먹선 중에서도 기준이 되는 먹선)’ 1m가량 어긋나 있었다. 말하자면 건물이 전체적으로 살짝 틀어져 버린 거다. 결국, 거푸집을  해체하고 다시 공사해야 했다. 작은 실수 하나로 인건비 수천만 원이 날아가 버린 사건이었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못아줌마

 

어떠한 노동의 가치가 인건비를 상회하지 못할 ,  직업군은 사라지고 만다. 그게 자본주의 논리다.  논리로 핀아줌마가 생겨났고,  논리로 못아줌마는 사라졌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요즘은 거푸집 제작할  주로 유로폼을 쓴다. 유로폼이란, 아주 쉽게 생각해 공장에서 찍어낸 합판이다. 테두리에 강철을 둘러놓은 튼튼한 합판 말이다. 우리나라에 유로폼이 보급된 시기는 대략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이라 한다. 그럼  이전까진 어떻게 거푸집을 제작했느냐. 목수가 현장에서 일일이 폼을 만들었다. 이걸 재래식 폼이라 한다.

 

재래식 폼은 이렇게 만든다. 우선, 거푸집에 맞게 사이즈를 계산한다.  사이즈에 맞게 합판을 켠다.  합판에 맞게 다루끼(우리가 흔히 각목이라고 부르는 40mmx50mm짜리 각재. 일본어 たるき[다루끼]에서 파생) 여러  자른다. 그걸 합판에 격자무늬로 못질해서 박는다. 이렇게 하면 재래식   장이 완성된다.  재래식  수십 수백 장을 일일이 만들어서 다시 못질을 수백 수천  하면 거푸집이 완성된다.

 

상상해보라. 하나의 거푸집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못이 필요할지. 중요한   당시  값이 요즘보다 훨씬 비쌌다는 거다. 인건비를 상회할 정도로. 그러니 누군가는 거푸집을 해체한  어지럽혀진 잔해 더미를 밟고 다니며 못을 뽑아야만 했던 거다. 재활용할  있게끔. 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못아줌마다.

 

못아줌마들은 목수들 것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망치를 들고 다녔단다. 그걸 옆구리에 차고, 잔해 더미를 휘젓고 다니면서 못도 뽑고 휘어진  톡톡 쳐서 다시   있게 곱게 펴냈단다. 유로폼이 등장하면서 예전만큼 못을 많이  써도 거푸집을 제작할  있게 됐고, 무엇보다  값이 하락하면서 자연스레 못아줌마라는 직업도 사라지게 됐던 거다.

 

이따금, 노가다밥 오래 먹은 형님들에게 못아줌마 얘기를 전해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세트로 딸려오는 대사가 있다.

 

 시절엔 지금처럼 안전 수칙이 정립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전모는 물론이고 안전화 착용도 드물었단다. 그렇다 보니 못아줌마들이 자주, 못에 찔려 다치곤 했단다. 그때마다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고.

 

아이구 X~ 낮에는 못에 찔리고, 밤에는 남편 X 찔리고~ 피곤해서  살겄다!!”

 

형님들은 라임이 좋다 낄낄거리며 웃었는데, 그때마다  슬픈 마음이 들었다.   마디 말 속에,  시절 가부장적인 문화와 노가다판의 열악한 작업환경,  가운데에서도 억척같이 살아야만 했던 여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같아서 말이다.

 

 슬픈 건  시절의  환경이 여전히 유효한  같아서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훨씬 열악한 작업환경과 처우도 그렇고, 핀아줌마나 먹아줌마에게 걸쭉한 성적 농담을 던지고는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는 저급함 여전하다.

 

그들도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고,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의 OO이기 이전에 성희롱하는 남성들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인격체다. 인간인 이상 누구도 차별받거나 상처받을 이유, 혹은 차별하거나 상처  권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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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여성신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