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아람코는 어떤 기업인가?

 

Saudi Aramco logo_1572770115882.jpg.jpg.jpg_39587410_ver1.0_1280_720.jpg

 

아람코(ARAMCO)Arabian American oil Comany의 줄임말이다. 사우디 회사인데, 이름 중간에 뜽근없이 아메리칸이 들어가 있다. 이유는 미국 에너지기업 스탠다드오일이 합작해서 세운 회사이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석유 재벌 록팰러 가문이 소유한 스탠다드 오일과, 건국 6년밖에 안 된 신생 왕국 사우디가 손을 잡아 만든 회사다. 이후 아람코는 1980년 사우디 정부에 의해 100% 국유화된다. 역사를 다 훑자면 끝이 없으니 일단은 여기까지.

 

그래서 아람코는 뭘 파는 회사인가? 석유를 판다. 아람코는 못 들어봤어도,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 하면 흔히 떠올리는 끝도 없이 펼쳐진 유전, 그게 다 아람코 소유다. 뭐, 사우디란 나라 자체가 절대 왕정을 하는 국가이고, 국가가 아람코 지분 100% 소유하고 있으니 '사우디 왕가 = 사우디 정부 = 아람코' 셋의 삼위일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후려쳐도 큰 문제는 없다. 사우디의 돈줄이라 할 수 있는 이 국영 석유 생산 기업, 아람코의 주식이 이번에 매물로 나온 것이다.

 

 

2. 회사 하나 상장하는 게 대수냐?

 

20190402mostprofitablecompanies.jpg

 

대수다. 이 회사가 큰 회사기 때문에. 그냥 큰 게 아니라 조오오오올라 크다. 그냥 회사 하나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사우디라는 나라 전체에서 나오는 석유를 담당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천만 배럴 이상을 뽑아냈다. 이 숫자가 감이 안 온다고? 우리나라가 하루 평균 원유 소비량이 280만 배럴이 안 된다. 우리나라 소비량x3을 뽑아내는 회사다. 이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0%에 달한다.

 

더 무서운 건, 얘네가 전력으로 원유를 생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2600억 배럴이다. 이는 메이저 글로벌 석유 기업인 Exxon, BP, Chevron, Total 등등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 여기서 핵심은 “확인된”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석유 고갈로 인류가 고통받을 거란 얘기가 많았으나, 지금은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캐낼 수 없는 지층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게 가능해진 데다가(AKA 셰일), 탐사를 하면 할수록 매장량이 더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다른 회사처럼 빡세게 탐사도 안했다. 그냥 앞마당 좀 깠는데 이 정도 원유가 쏟아진 것이다.

 

더더더 무서운 건 비용이다. 원유를 뽑아내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브라질이나 북해에서는 바다 깊숙히 들어가서 석유를 시추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첨단 기술을 접목해서 셰일 지층에서 석유를 뽑아낸다. 북미에서는 석유가 묻은 오일샌드를 어렵게 열탕처리 해서 원유를 짜낸다.  사우디는? 그런 거 없다. 막대한 원유가 지표면 근처에 뭉쳐 있으니까, 이런 복잡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사우디는 터가 좋아서, 걍 빨대만 꽂아도 오일이 나온다는 농담까지 있다. 이렇게 생산 방식이 간단하니, 당연히 생산 비용도 단연 최소다. 직접 생산 비용은 배럴당 2.5불, 탐사 비용 등등 이것 저것 다 합쳐도 배럴당 10불이 안 된다. 왠만한 나라에 절반 혹은 3분의 1수준이다.

 

아람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석유 업계에 끝판왕 되시겠다.

 

 

3. 그런 회사가 뭐가 아쉬워 상장을?

 

한마디로 석유판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경제성있는 자원인 석유업계에 끝판왕이 매물로 나온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공급과 수요를 살펴봐야 한다.

 

 

4. 공급은 왜?

 

본디 사우디는 석유값을 통제해 온 깡패다. 제일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면서, 가장 많은 보유고를 가지고 있고, 이걸 얼마든지 싼 가격에 더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걍 사기캐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석유 가격을 통제해온 오펙에서도, 아람코와 사우디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수틀리면, 사우디는 언제든지 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우디가 석유를 증산해서 석유값을 일시적으로 똥값으로 만들어 버리면, 결국 더 큰 피해를 입는 건 규모가 작으면서 생산 비용은 더 높은 다른 산유국일 수밖에 없다.

 

main.jpg

 

그런데, 지금 전 세계 최대 산유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오펙에 가입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 단위로 원유를 뽑아낸다.  셰일기업들이 가장 무서운 점은, 근본이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분기 이익만 쫓는 이들 기업들에게, 사우디의 경고 따위는 씨알도 안 먹힌다. 얘들은 유가가 오르면 무조건 증산하고, 떨어지면 직원들 다 해고하고 사채 써서 버틴다. 공기업 단위로 원유를 생산하면서(직원 맘대로 못자른다), 정권 유지를 위해 오일머니로 복지예산을 메워야 하는 산유국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3년 전 사우디가 무한증산에 나서면서, 판깨기에 나섰을 때도 미국 셰일기업들은 버텼다. 석유 탐사 비용 전부 깎고, 월스트리트로부터 돈 끌어와서 일단 호흡기를 달았다. 그냥 버티기만 한 게 아니라,  생산성까지 올리면서 버텼다. 엔지니어들 다 자른자리에는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서, 생산 단가를 낮췄고 파생 상품에 투자해서 손실을 메웠다. 그 와중에 먼저 곡소리가 난건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이었다. 이때 뒤집어진 산유국 정권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질린, 사우디와 산유국은 결국 감산에 나서서 원유가격을 올리기에 나섰고, 올라간 원유 가격에 미국 기업들은 땡큐를 외치며 생산량을 늘렸다. 여기서부터는 관심법인데, 사우디는 이쯤에서 가격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받아들였을 수 있다. 사우디가 아무리 가격을 떨궈도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바퀴벌레처럼 버티다가, 좀 가격이 올라가면 다시 기어 나오는걸 보고 학을 땠을 거다. 이렇게 된 이상 사우디는 체념을 하고, 걔들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수요는 왜?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는 게 맞다. 석유값이 싸지면, 옛날엔  비싸서 못쓰던 곳에서도 석유를 펑펑 쓰는 게 가능하니까. 원유 가격은 오랜 기간 증산과 감산, 수요의 증가와 감소로 균형을 이뤄왔다.

 

문제는, 원유에 대한 수요 전망도 영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국가 단위로 봤을 땐, 중국경제 침체가 가장 크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석유를 소비하고는 있지만, 예전처럼 석유 확보에 엄청난 의욕을 보이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국경제는 성장기를 지나 안정화에 접어들 것이고, 석유에 수요 또한 떨어질 것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과의 무역분쟁은 이러한 경제 둔화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중국과의 교역으로 먹고 사는 독일이나 우리나라 등에도 영향이 높다. 

 

중국과 같은 국가의 마이너스를 메우려면, 인도가 됐든 베트남이 됐든 수요를 어디선가 끌어와야 하는데, 폭풍성장을 하던 중국을 대체할 만한 수요가 보이지는 않는다.

 

rq.jpg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

 

산업별로 봤을 때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미국 같은 경우 전체 원유 소비량의 약 70%가량을 자동차, 비행기, 보트와 같은 교통에 쓴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다.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테슬라와 같은 기업은 물론이고, 이제는 GM이나 포드등의 기존 자동차 제조회사에서도 앞다투어 전기자동차를 내놓고 있다. 전기차의 보급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가 되었다. 게다가 기름으로 굴러가는 비행기나 자동차들의 연비 또한 갈수록 늘고 있다. 

 

이렇게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발전 등의 다른 분야에서 화석 연료를 더 사용할 법도 하다. 문제는, 원유 시장이 보통맛이라면, 이쪽 분야는 지금 엄청 매운맛이라는 것이다. 태양광, 풍력발전 등 대체 에너지 분야는 기술발전으로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직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미 중서부)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도시를 연결하는 전력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상용화 속도가 더디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체 에너지는 비용 경쟁만으로도 원유를 위협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원유 이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게 천연가스다. 원래 셰일가스는 지표면에 빨대를 수직으로 꽂아서 원유를 채굴한다. 문제는, 고난의 행군을 견디고자,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좁은 땅덩이에다가 빨대를 다닥다닥 붙여서 원유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땅에 매장된 원유는 동일한데 빨대를 이렇게 많이 꼽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매장된 원유는 빨리 나온다. 문제는 원유가 다 빠져나온 유전에서 천연가스가 콸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 빨대를 꽂아 다 마시고 난 버블티컵에서, 밑에 남아있는 버블(타피오카)티만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한때 천연가스를 수입해 쓰던 미국에선 이제 천연가스가 남아돈다. 원유 가격은 그나마 좀 올랐다지만, 천연가스 가격은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려가 있다. 게다가 천연가스는 기체라, 수출을 하려면 파이프로 수송한 다음, 액체(LNG)로 바꿔야 한다. 근데 파이프건 액체화 터미널이건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렇게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쉽게 실어 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부산물인 천연가스의 가격이 이렇게 떡락을 하면, 굳이 비싼 석유를 쓸 이유가 없다. 게다가 천연가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에너지다.

 

 

6. 오케이 석유산업이 어려운 건 알겠음. 근데 아람코를 팔아서 어쩌겠다고?

 

.df5.jpg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

실제로 세상을 거진 다 가졌다

 

사우디의 지도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아람코를 판돈으로 사우디의 경제 체제를 바꾸려 한다. 그전에도 사우디(를포함한 모든 중동국가)는, 석유 장사로 번 돈을 가지고 비석유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근데도 안되니까, 베팅을 쎄게 가져가기로 한 거다. 석유판 돈(이자)로 안되니까 아예 주식 (원금)을 팔아서 판돈을 마련한 것이다. 

 

사우디는 2021년 상반기까지 아람코 지분 5%를 판 돈으로(최소 120조 예상) 금융, 관광, 테크에 투자하려 한다. ‘네옴 프로젝트’라고 사우디에 실리콘벨리를 본뜬 미래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쉽게 말해, 사우디를 중동의 뉴욕으로 만들려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우디는 소프트뱅크가 만든 100조짜리 비전펀드에 이미 45조를 투자했다. 석유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아람코의 상장은, 왕세자의 이러한 원대한 계획에 들어가는 판돈이다.

 

 

7. 그래도 아람코 파는 건, 황금알 낳는 거위 배 째는 거 아님?

 

01aramco-articleLarge.jpg

 

물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2016년에 왕세자가 최초 언급한 규모는 전체 지분에 약 5%다. 꼴랑 5%지분 판다고, 기업이 외국에 넘어가는 거 아니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시장 반응이 안 좋으니까 지분을 1~2%만 판다는 계획이다. 이는 아람코 전체 지분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게다가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넘어갈 물량은 전체에 고작 0.5%수준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 아람코를 상장하는 거래소다. 최초 5% 계획을 언급할 때는,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뉴욕이 언급되다가, 지금은 사우디 내 증권거래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반독점법 등을 넘을 길이 없어 뉴욕증시 상장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보통 우회로로 찾는 곳이 홍콩이나 런던인데, 각각 홍콩 시위 사태 및 브렉시트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결국 아람코라는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은 사우디 국내에서만 상장되기로 했다. 추가 상장으로 도쿄가 거론되고 있긴 하다. 규모가 큰것 치고는, 증권거래법이 미국처럼 빡새지 않기 때문이다.

 

 

8. 고작 2%파는 게 뭐가 대수임?

 

고작 2%라고쳐도, 역대 최대 IPO(기업공개)를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아람코의 예상 가치평가액은 1천조에서 2천조 사이다. 2천조를 기준으로 하면, 2%라고 하더라도 우리돈으로 약 40조 원에 달한다. 참고로 기존 최대 IPO금액은 알리바바가 뉴욕에 상장했을 때 기록한 25조 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가치 평가액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하한선과 상한선의 차이가 무려 1천조 원이다. 어떤 평가방식을 쓰느냐, 앞으로 석유 가격을 얼마로 예상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치가 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 차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원자재(석유)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회사에게 주어진 숙명과 같은 것이다.

 

당초 왕세자가 “지른” 2천조썰은 유가 하락과 함께 사실상 물 건너 갔고, 현실적으로 사우디가 요구하는 가치평가액은 1천 600조 원 수준, 시장이 예상하는 가치평가액은 1천조에서 1천 300조 원 수준인 듯하다. 참고로, 1천조 원이라면 브라질 주식시장 시가총액과 비슷하고, 1천600백조면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 수준이다. 아람코 하나의 가치가, 평가하기에 따라 브라질 기업 전체 혹은 우리나라 기업 전체와 맞먹는 수준인 셈이다. 

 

이 정도로 큰 매물이 시장에 나온 것 자체가 놀랍다. 과연 IPO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아람코가 제값을 받고 주식시장에 상장될 수 있을지(나아가, 2%를 넘는 지분이 앞으로 풀릴지도 관심사다), 이 돈을 가지고 사우디라는 국가가 석유몰빵이 아닌 다변화된 경제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