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5. 상처뿐인 승리
6. 리더의 자세와 사내 불륜이 미치는 영향
7. 20년 다닌 직장을 관뒀다
8. 퇴사 후 느끼는 것들
9.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10. 퇴사 후, 트라우마 - 불행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행복을 나누면 질투가 되네
외전. 소문 공화국과 검찰 공화국 사이에서
외전. 잘못된 일을 열심히 하는 부류
11. 비정규직 2년, 정규직 18년 이후에 떠오르는 풍경들
에필로그
1.
처음 이 연재를 기획했을 때, 대단할 것 없는 스펙으로 어떻게 20년이라는 세월을 대기업에서 보냈는지, 일을 하며 그간 무엇을 보고 어떤 걸 느꼈는지 쓰고자 했다. 연재 중 내가 퇴사해 버리는 바람에, 그 후로 갑자기 기획 의도와 많이 달라진 기사를 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전혀 엉뚱한 전개가 되어버려,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과 합의해 연재는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2.
에필로그인만큼 이전 에피소드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에 대해 약간 썰을 풀고 가자(내가 이렇게 친절하다). 나는 약 20년간 상표권 및 디자인 저작권 관리 업무를 했고, 그 밖에 산발적으로 떨어지는 여러 업무도 병행했다. 특히 디자인 관련 업무가 많았다. 대개 제품 소개 자료, 대외용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부서의 요청이 있으면 제품의 홍보물 제작 지원 업무도 했다.
B2B 회사 특성상 일반 소비자가 알만한 브랜드가 없어, 디자인 외주를 줄 때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랜 시간 상표 업무를 해 자연스레 제품에 대해 기술적인 이해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각종 홍보물을 작업할 때 중간에서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예컨대 신제품 관련해 홍보물을 제작하려 하면 그들이 원하는 홍보물 내역을 구체화하고 이를 쉽게 풀어 디자인 업체에 설명하는 일이다.
이 일이 사내에 알음알음 소문이 났고 여러 부서에서 관련 업무 협조 요청을 많이 해 왔기에 이런 커리어를 바탕으로 회사 로고 디자인 변경 작업도 수행했다. 물론 내가 했던 일이 그룹의 C.I를 바꾸는 일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룹 내 개별 제품의 로고 디자인 변경 업무는 어떤 의미에서 기존 업무의 확장이라 못 해 낼 이유가 없었다.
프로젝트 예산을 1/10로 줄일 수 있었던 건, 이 일을 하기 이전부터 내가 오래도록 여러 디자인 업체와 일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저 금액은 외주 업체, 즉 '브랜드 업체'가 제시한 견적 대비 절감 비용이고, 단발성 업무였기에 기존에 이 일을 했던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자, 그럼 다시 에필로그로.
3.
여태 일을 하면서 퇴사하는 날까지 지킨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업체 미팅은 가급적 2시에서 4시 사이에 끝낸다는 거다. 일하는 동안 나는 업체로부터 밥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없고 명절에도 사과 한 알 받아 본 적 없다. 나에겐 당연한데 주위에선 조금 이상했나 보다.
함께 오래 일해 온 디자인 업체 사장은 농담조로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오밤중에 불러내 술값 대신 내달라는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편해요. 과장님 같은 분한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해서 나는 말했다.
"지금처럼 일 잘 해주시면 됩니다."
나의 이런 성격은 아마 딴지일보 편집장이 잘 알고 있겠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 첫 글 이후, 몇 번이나 딴지 사옥을 방문했지만 지금까지 집요하리 만큼 밥 한 번 안 얻어먹고 있으니 말이다.
4.
아. A/S 조금 더 들어가보자(아아. 이 결자해지 정신이란). 실무자가 어떻게 사장을 만나냐고 의문을 품은 분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선 맡고 있는 업무의 경중에 따라 더러는 회장 보고까지 갔다. 나 또한 그렇지만 다들 자기 직장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이는 아마도 기업마다 문화가 달라서라고 밖에 따로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자세히 설명하면 필요 이상의 것들이 공개되니 민폐가 될 것 같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추측성 글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다. 여태 없었던 일을 했다고 한 적은 없으니.
5.
나는 여전히 내가 다녔던 회사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서운한 마음보다 크다. 그간의 글엔 그 마음을 충분히 녹여내지 못해 안타깝다. 기본적으로 '인과'를 믿는다.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 20년 일할 만큼은 회사와 맞았으나 그 이상 일할 만큼은 안 맞았기에 딴지일보에 글을 썼던 게 아닐까 한다.
나 또한 이 글을 보는 수많은 직장인처럼 화장실을 뛰어갔다 오며 일하기도 하고, 작업하느라 꼬박 보름을 넘겨 밤을 새웠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인정욕구였을까? 아니, 그때는 그저 일이 좋았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의 대부분 묵묵히 일했다. 물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생각했다. 울고 싶다고 일이 주는 것도 아니고 웃고 싶다고 일이 느는 것도 아니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니, 그저 고개 처박고 할 뿐이다.
한참 남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 오만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러 오는 중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 일을 하는 것에 사람들의 말이 더욱 많아진 때가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팀장이 나를 불러 연차를 내고 며칠 쉬었다 오는 게 어떻겠냐 하였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분이다). 나는 그런 팀장에게 말했다.
"말씀은 고마운데 안 됩니다. 저 자료 만들어주기로 약속한 게 있습니다. 제가 퇴사를 해도 만들어 주고 가야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연성이 없었나 하지만 사람의 성격이란 때때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나보다.
6.
운이 좋게도 나는 어려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이 나이 먹도록 직장 생활을 했기에 여태 생활에 쫓기며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린 건 아니다. 적어도 꽤 오랜 시간 생활비 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 혼자 벌어 혼자 썼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왜냐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보니 그 일은 특권이다. 퇴직을 하고 구직 사이트를 드나들며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대기업, 대기업" 하는지 말이다. 어지간한 직장은 연봉의 앞자리 수가 두 배 가까이 차이 나게 적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 했을 때, 왜 그렇게 말렸는지 알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그야말로 꿀 빠는 일인 게 맞다. 한 번 들어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출퇴근만 해도 월급을 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 이 일에도 끝이 있다. 대개 마흔을 넘기면 특출난 몇몇을 빼고는 승진이 계속 누락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나보다 어리고 잘난 고 스펙의 상사를 모시고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견디며 묵묵히 일하는 비용과 월급을 교체하며 살아가는 게다.
7.
언젠가 파스타 집에서 회식을 한 적 있다. 그때 누가 혼자서 그 집에서 제일 비싼 양고기 스테이크를 시켰고,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자기 돈 아니라고 너무하네' 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의 행동이 못마땅했던지 저마다 그에게 한 마디씩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그가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이거 먹을 거야. 이 식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이 일을 잊고 지냈다.
요즘 그때 일이 떠오른다. 나 역시 이제 맛있는 걸 얻어먹게 되면 염치 불구하고 비싼 걸 시킬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자존심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 진짜 같잖은 거 같은데, 그게 또 그렇게 사람을 울린다.
얼마 전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강종렬이 한 말이 내 마음에 와 박혔다.
"인생 돈이 다가 아닌 건 아는데, 돈이 있으니 수월하긴 하더라."
공감한다.
그리고 요즘 더, 공감한다.
8.
어떤 분이 언젠가 내게 물었다. 남들이 악하다 글을 쓰는 당신은 선하냐고. 당신은 얼마나 선하기에 남을 악하다 할 수 있냐고. 그에 대한 대답을 이제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나는 선하지 않다. 가끔은 누구보다 악하다. 하지만 가능하면 선한 선택을 하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맞다.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기 연재, 대기업 생존방정식 연재를 거치며 이 질문은 줄곧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이게 아닌데, 어째서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가. 그러다 알았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 풀어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해서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어야겠다고.
이러한 이유로 일단 이번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뵙게 될 거다.
모두들 건강하시라.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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