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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1909년 10월 26일, 항일의병장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킵니다.  

 

사용된 권총은 벨기에 FN사가 제작한 "브라우닝 M1900"으로 이 총은 일본으로 넘겨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어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그 총의 행방 및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로 매주 연재 예정입니다.       

 

 

 

 

 

“Plan A, B, C”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인 거 같다. ‘총’을 국내로 들여오는 일이기에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튀어나왔다. 방안 하나만을 가지고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거다.
 

초기에 몇 번인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 우리가 내부적으로 정한 결론은, 

 

“하나의 단계를 준비할 때 최소한 3개의 방안을 준비해놓고 움직이자.”

 

였다. '하얼빈 의거 재현'을 예로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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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Plan A

 

전쟁기념관에 배송을 한 다음 국내에서 사격을 하는 방법. 사격장은 국방부의 협조를 얻기로 했고, 사수는 군 특수부대(이동 간 사격에 가장 능숙하다는 판단 하에서)의 협조를 얻는다는 플랜이었다.

 

② Plan B

 

전쟁기념관 수장고에 M1900이 들어가는 순간 ‘불용화’ 처리를 해야 한다. 사용할 수 없도록 공이를 제거하고, 총신에 구멍을 뚫거나 하는 조치를 취한다. 수장고에 들어간 상황에서 사격장면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불용화 처리를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다만 국방부 장관 훈령에 의거해서 잠시 유예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 

 

(M1900을 들여오면서 한국이 허술한 나라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유물로 들여와 전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한다. 전쟁기념관 수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이 총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게 된다. 법령에 따라 소정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쉽게 들여오고, 재현하고 싶지만 국가 시스템 안에 들어간다면 밟아야 할 절차와 규정이 있는 거다)

 

국내 사격을 빨리 진행해야 할 거 같다는 판단이 서고, 우리는 부랴부랴 미국에서의 사격을 준비했다. 

 

“미국을 가야 할 거 같은데...”

"실 사격 재현을 하지 않는다면, 이건 프로젝트 하는 이유가 없지."

“비용은?”

“......”

“......”

“우선 최대한 줄여보자. 초저예산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해보자.”

 

Plan B를 가동했다. 동시에 Plan C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만 돌리는 건 불안했기 때문이다.

 

③ Plan C

 

Plan C는 국내 민간사격장에서의 사격이다. 방법이 좀 복잡했다. Plan A, B는 총의 배송지를 ‘전쟁기념관’으로 하고, 전쟁기념관 주도 하에 경찰청장의 수입허가도 받는 거였다. 우리는 행정절차는 전쟁기념관에게 맡긴 상태로 그 이외의 총기 구매, 배송, 복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쟁기념관 수장고에 들어가는 경우 ‘불용화’처리를 해야 했고, 미국에서 사격하는 Plan B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미국에서의 촬영은 비용대비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Plan C였다. 

 

- 사격장 쿼터 

- 사격선수 자격증이 있는 민간인이 총기를 구매한 다음 사격장에 영치

 

둘 중 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Plan 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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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민간 사격장이 있다.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탄창 하나 10발이면 2만 원 정도 한다. 총기 규제국가인 일본인들이 많이 방문해서 사격한다), 사격할 수 있다. 문제는 총이란 게 열과 압력을 계속 받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용하기 힘들어진다(총열이 갈라지거나 터지는 경우도 있다). 총이 고장 나면 대체총기를 사야 한다. 사격장은 일정 기간 동안 쿼터가 주어진다. 이 쿼터 중 하나를 가져와 총기를 수입하는 방식이다. 

 

아니면 사격선수 자격증이 있는 민간인, 정 안 되면 우리가 사격선수 자격을 취득한 다음 이를 수입하는 방식이었다.

 

44구경, 45구경이 제한되는 상황이라서 살짝 걱정했지만, M1900은 32구경이었고 총열도 4인치를 넘어서(2인치 짜리가 제한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무난하게 통과될 걸로 예상했다. 

 

이 경우 총기는 민간 사격장에 영치해야 한다. 우리가 예상한 사격장은 서울의 ‘남대문 사격장’과 경기도의 ‘경기도 종합사격장’이었다. 특히 경기도 종합사격장은 실내 사격장과 실외 사격장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굳이 군 사격장을 빌리지 않아도 됐다. Plan C의 가장 큰 메리트였다.

 

“굳이 미국 가지 않아도 돼. 한국 사격장에서 한국 사수가 쏘게 하면 돼.”

“행정소요도 크게 들지 않아.”

“사격장에 영치해 놓은 다음 전쟁기념관에 기증하면 되잖아.”

“경찰청 관할을 국방부로 옮기면 되는 건가?”

“그 정도 행정소요는 전쟁기념관에서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전쟁기념관에서도 경찰 쪽 무기를 건네받은 적이 있으니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지.”

“초고속 카메라 빌려와서 발리스틱 젤 실험도 할 수 있어!”

“조명도 빵빵하게 치고!”

“그럼 Plan C로 가자!”

 

하지만 정확히 1시간 만에 Plan C는 날아갔다.

 

복병은 경찰이었다. 몇 달 전부터 M1900의 수입과 사격에 대한 문의를 경찰청 생활질서계에 끈질기게 했다. 그때는 유물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난데없이 사격장이나 개인의 총으로 들여오려 하니까 허가가 나오지 않은 거다. 

 

(프로젝트를 위해 최소한 5개의 행동주체로부터 의견 취합, 정보공유, 의사결정 과정을 가져야 했다. 미국 쪽에서 사격을 준비하는 팀, 기증을 받는 전쟁기념관, 방송을 준비 중인 KBS, 우리가 섭외한 사격장, 총기 수입 대행업체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판단을 내리고, 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어느새 M1900은 유명한 총이 돼 있었다. 하긴 110년 된 총을 들여오겠다고 나서는 이가 몇 달 사이에 또 나타나지는 않을 거다. 거기다 총번도 똑같다면...

 

대행업자가 건넨 전언은 간단했다.

 

“전쟁기념관으로 들어가는 허가는 나올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용으로 돌리는 건 어렵겠습니다.”

 

이 총이 꽤 유명한 총이 됐다는 후문과 함께 Plan C는 무너졌다. (경찰의 판단이 옳다. 기증용으로 삼았던 걸 사격장에 비치하거나 일반 사격용으로 수입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아마도 총기를 들여온다 해도 안전검사 때 제작연도를 보고 불허처리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꼼수였고, 경찰이 이를 눈치 챈 거였다. 하긴 이렇게 허술하다면, 이미 한국은 총기천국이 됐을 거다.

 

결국 상황은 돌고 돌아서 전쟁기념관 수장고로 돌아왔다. 국내 사격을 위해서는 수장고에 들어간 상태에서 불용화 처리를 조금 늦추는 방법을 찾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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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고 해야 할까? 총기를 구한 뒤 총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서 배송업체, 공공기관 접촉, 수입 필증을 ‘어디 주관으로’ 받을까를 가지고 고민했다. 각 기관들과 접촉을 했는데 ‘총’이란 물건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짓도 많이 했고, 별 거 아닌 것에 의미를 두고 움직였던 적도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고 해야 할까? 

 

결국 수취인은 '전쟁기념관'으로 결정됐고, 총기도 전쟁기념관으로 발송하는 걸로 진행됐다. 속 편하게 미국에서 사격장면을 재현한 뒤 불용화 처리까지 한 다음 국내로 보내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역시나 ‘비용’이 문제였다. 돌고 돌아 국내사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전쟁기념관에서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줘서 일은 수월하게 진행됐고, 전쟁기념관을 수취인으로 해서 배송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민간인의 총 반입은 경찰청, 즉, 행안부의 관할이지만, 전쟁기념관은 국방부 관할이다. 아울러 사격협조 역시 국방부 사격장을 통해서 진행하기로 진행됐다. 

 

미국에서의 촬영을 염두에 두고, 현지 사격장과 코디네이터, 사격선수를 섭외하던 노력들, 국내 사격장을 섭외하던 노력들은 결국 Plan A, B, C의 하나였다. 허탈하다는 생각보다는 들여올 수 있고, 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총을 들여오고, 그걸 찍는다는 게 민간인으로서는 ‘꽤’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 이후부터는, 

 

“진행만 되면 돼.”

 

라는, 거의 득도한 심경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