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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내가 노동조합의 불모지인 게임업계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무엇을 이루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과정 속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좌절했던 순간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궁금하지 않은가? 12드론 앞마당과 같은 ---군대-공대라는 가장 흔한 테크트리를 탔던 평범했던 내가 어쩌다 노동조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쯤에서도 뒤로 가기를 누르지 않은 당신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노조! 너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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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들게 되었나

자본가에 맞서 노동자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하자!! 자본 분쇄! 같은 거창한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나의 정체성은 아직 그쪽과 거리가 있다. 후훗.

 

? 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엄청 좋아하는 , 사람, 심지어 게임이 있을 텐데 누가그게 좋아?” 라고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글쎄…”라고 얼버무린 기억 말이다. 나도 그런거 같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 본다면 지난 10년간 일을 하면서 쌓였던 깊은 빡침과 답답함이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관종 기질을 만나 내려진 결론이 아닐까 싶다.

 

그럼 나는 뭐에 그렇게 빡쳤던 걸까? 분노의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나는 보통의 상식에 어긋나는 기막힌 상황과 내가 하는 일인데도 결정에 1 참여하지 못하는 소외감에 분노했던 같다. 예를 들어 보자면 아무리 야근을 해도 십 원 받는 '포괄임금제' 같은 치트키를 내게 썼을 , 그리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정체불명의 분이 성실히 싸지르는 똥을 막기 위해 내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순간 등등이 있을 같다. 당신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럼 나도 당신과 같은 것에 분노했나 보다.

 

여하튼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분노했을 그런 분노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여가던 차에 마음에 스크래치를 사건이 발생했다

 

B의 자작극과 여론, 당해보니 알겠더라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사내 커플이던 A B 있었다. 우연히 우리팀 막내 ‘A’ 폭행하는 ‘B’ 말리려다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사고는 다음날 터졌다. B 나에게( 분이 있지만 생략하자) 밤새 폭행을 당했다며 감사팀과 익명게시판에 글과 사진을 올렸. 그것만 보면 (내가 보기에도)엄청난 폭행을 당한 것처럼 보여서 게시판은이런 놈은 짤라 버려야 한다.’ ‘21세기에 폭행이 웬’, ‘ 이럴 알았다’ 같은 댓글들이 삽시간에 달렸다. 어떻게 인 줄 알았냐고?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렸으니까.

 

초유의 사태에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누가 누구를 때렸다고 실명으로 올리면 사람들은 대개 그 말을 믿을 테니까.  주간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현대 사회에는 CCTV란 게 있다. 경찰의 협조를 받아 CCTV를 확인 뒤에야 B 자작극으로 결론이 났다. CCTV가 없었으면 나는 폭행을 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당연히 상상하지 못할 일을 벌인 B 징계로 퇴사를 당했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냐 싶은데,  역시 징계를 받았다. 감봉 3개월. 전날의 싸움이 이유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어떤 이유라도 싸웠다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회사의 논리 앞에 앞뒤 정황 같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받아들일 밖에 없었다.

 

소문이라도 바로 잡고 싶어 사건 정황과 결과를 공지해 달라고 했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결국예전에~~~” 시작하는 진실이 되었다. 화가 났다. 사건이 종료되기까지 주간 익명게시판에서 욕을 먹고 뒷소문을 묵묵히 이겨 나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찾아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안 소문으로 떠돌다 갑자기 조용해진 괴이한 성희롱 사건과 폭력/폭언 사건들도 이렇게 처리되었던 것은 아닐까? 피해자들도 억울함을 혼자 감당하며, 배신감과 존중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조용히 회사를 떠났던 것은 아닐까?

 

힘들었겠다. 이럴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면, 억울함을 용기를 가졌을 텐데. 그랬다면 진짜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는 힘이 되어 누군가는 없었고, 거지 같은 현실을 받아 들일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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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해도 문제는 같다  

일이 있고 시간이 갈수록 불편한 마음은 누그러져 갔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별개로 업무에 대한 불만까지 생기자 조용히 이직을 준비했다. IT 종사자들 누구나 그렇듯 또한 불만의 폭발을 이직으로 표출해 왔다. 지금까지 이직을 통해 상승하는 연봉을 인내의 보상이라 생각했고, 능력 있는 자의 특권이라 생각했으며 실제 그렇게 했다(나는 2번 이직했고 3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알게 되었다. 도피일 뿐이었다. 내가 이직하려는 웬만한 회사에는 같은 문제가 있었다. 흔한 말로 다 거기서 거기. 흔한 말로 그냥 돈으로 보상받자, 라는 나의 생각은  문제와 마주할 시간을 늦추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

 

앞의 일을 겪은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인간이 된지도 모르겠다. 이직이 답이 아니라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나였다.

 

1)누구나 꿈꾸는 탈회사 하던가

2)여기에 남아 바꾸던가.

 

일단 탈회사를 하려면 로또에 당첨(요즘은… …)되거나 (건물)주님이어야 하는데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러면 아쉽게도 선택지는 하나만 남았다. 젠장. 어쩔 없이 여기를 바꿔야 한다. 근데 어떻게? 아니, 가능은 한가? 막막했다.

 

그러던 노동법이 바뀌어 투표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 투표로 뽑힌 대표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순수하고 막연한 마음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반장 선거 이후,  출마라 쑥스럽기도 했지만 변화의 첫발을 같아 혼자 설레기도 했다. 결과는 2순위 근로자 대표 당선(복수 당선의 조건이 있었다)이다. 

 

근로자 대표는 힘이 없다네 

바람과는 달리 과반수 직원의 표를 얻어 당선 대표들조차 법에 쓰여진 잘난 권한을 행사할 힘이 없었다. 그저 회사가 내민 조건에 서명만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나마도 2순위였던 나는 1순위 분에게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모든 권한을 위임하라고 했다.

 

!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나와는 다르게 혼자의 힘으로 고군분투하는 다른 법인의 근로자 대표님들이 있었다. 존경스러웠으나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혼자 있겠어, 어차피 안돼라는 그럴싸한 변명을 찾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훗날 이분들과 노조를 만들었다. 결국 만날 운명이었을지도...).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위임 대표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어도 될까? 믿고 표를 던져준 사람들을 기만하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

 

그런 생각을 하며 결국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뭉쳐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촛불 혁명을 겪은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럼 답은 간단했다. 노동자가 뭉쳐 목소리를 내는 노동조합을 만들자. 결론은 났지만 도대체가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런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노조 만드는 법? 

IT답게 검색창에노조 만드는 검색해 봤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왔다. 일단 읽어 보았는데 참트루 레알 1 이해가 안됐다. 하지만 이렇게 정보가 많으니 보다 보면 알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며칠이 지났을 익명게시판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노조 만들고 싶은 사람 여기 오픈 채팅방으로 모여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채팅방에 들어갔다. 150 정도가 있었다. 놀랐다. 나만 이런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볼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빵을 뺏긴 같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차피 혼자서 없던 일이기에 안심도 되었다. 즈음 다른 회사에 노조가 생겼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최초로 생긴 노조 소식에 업계는 들썩였고, 이제는 결심을 실천에 옮길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팅방 공지에 있던실명 까고 노조 만들 사람 걸어주세요 보고 1:1 채팅을 걸었다.

 

: ‘OO법인 근로자 대표 나야나 입니다. 실명 까고 노조 만들 사람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상대 : (당황)원래 탐색전 하고 이름을 까는데 바로 말하셔서 당황스럽네요...

 

: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합법적 일을 하는데 문제 될 게 있나요? 그래서 프로필도 제 걸로 들어왔습니다. (생략)

 

어리석은 대화(?) 시작으로 나의 게임회사 노동조합 분투기는 나도 모르게 시작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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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링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