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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맥주 이야기군요.



Russian Imperial Stout


먼 곳까지 맥주를 보내기 위한 양조가들의 노력이 만들었던 새로운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 본토에서 인디아까지, 적도와 희망봉을 넘나드는 길고 거친 항해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다량의 홉을 첨가했던 India Pale Ale(IPA-인디아 페일 에일)이 그것이었지요.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은 맥주가 또 있습니다. 바로 Russian Imperial Stout(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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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러시아를 위해!


18~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St. Petersburg(Санкт-Петербур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스타우트의 수요를 위해 영국 본토에서는 맥주를 준비하게 됩니다. 새로운 스타우트는 거칠고 긴 바닷길에 더하여 인디아로 향하는 길과는 또 다른, 추운 날씨가 기다리고 있는 '북해'와 '발트해'라는 환경을 극복해야 했지요. 런던의 양조가들은 IPA를 만들면서 배운 대로 긴 여행길 동안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스타우트에 홉을 추가합니다. 그리고 추운 날씨로 인해 맥주가 얼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기존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버전을 준비하게 되지요. 일반적인 스타우트가 5~6%의 알콜 도수지만 새로 만들어진 이 스타우트는 10~11%에 달하는 알콜 도수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홉과 알콜에서 나오는 쓴맛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맥아의 단맛도 강화하게 되지요.


보드카를 물처럼 마신다는 러시아인들에게 10%의 맥주라는 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던 고도수의 맥주라는 것은 추운 지방 사람들의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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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저따우 루트와 추위


런던을 출발해 북해와 발트해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이 진하고 강한, 새로운 스타우트는 여제 Екатерина II(예카테리나 2세 1729~1796)와 러시아 황실을 사로잡았으며 큰 인기 속에 제정 러시아를 위한 스타우트, Russian Imperial Stout로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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Екатерина II(예카테리나 2세)

제정 러시아의 성공한 여성 맥덕후



Imperial Stout


이후 제정 러시아의 몰락과 냉전 시대가 시작되며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수요처를 잃고 시장의 증발과 함께 생산의 규모도 작아지게 됩니다. 영국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양조장만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명맥을 잇게 될 뿐이었지요.


우습게도 이 맥주는 미국에서 부활합니다. 냉전시대의 한 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어가는 시점에 또 다른 한 축인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가볍고 마시기 편한 맥주가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에 질렸을 크래프트 양조가들에게 가벼운 라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매력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름있는 양조장들이라면 IPA와 더불어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만들고 있습니다. 소련으로 향하는 길에 몰락한 로마노프 왕조의 맥주 문화가 소련의 적이었던 미국 본토에서 다시 흥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랄까 나름 재밌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 제정 러시아가 역사 속에 남은 단어로서의 존재가 되었을 뿐이기 때문인지 크래프트 브루어리씬에서는 러시아를 빼고 그냥 Imperial Stout(임페리얼 스타우트)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됩니다. 여전히 자신들이 만든 맥주 라벨에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라 적는 양조장들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Imperial


제정 러시아를 뜻하던 'Russian Imperial'에서 러시안이 떨어져 나간 이후 크래프트 양조계에서 Imperial(임페리얼)은 실제 의미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독자적인 형용사 같은 취급을 받게 됩니다. 제국이라는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다량의 맥아와 홉이 사용되고 알콜 도수 10%에 가까운 고도수 맥주(장르 무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맥주 스타일과 관련하여 'Imperial'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 ‘강화판’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크래프트 양조가들의 변태성은 스타우트와는 상관없는 온갖 맥주에 이 임페리얼의 개념을 접목해서 Imperial IPA(임페리얼 IPA)나 Imperial RedAle(임페리얼 레드에일), Imperial Pilsner(임페리얼 필스너)같이 스타일의 기본적인 뼈대는 유지하면서 ‘힘세고 강한 맥주,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임페리얼’ 같은 소리가 나올법한 맥주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변태성 가득한 Imperial이라는 수식어는 Ratebeer.com이나 Beeradvocate.com 같은 맥덕후들의 맥주 평가 사이트내 맥주 순위에서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물론 맥덕후들만의 평가이니 점수와 순위표까지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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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세고 강한 맥주!

(Ratebeer.com의 top50중 25위까지)



츄쵼 맥주


*임페리얼 가문의 이러저러한 맥주들을 다 꺼내놓기엔 능력도 안 되고 귀찮기도 하니 임페리얼 스타우트만 꺼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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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Coast Old Rasputin(노스코스트 올드 라스푸틴-미국) 지난번 스타우트에 관한 글을 썼을 때도 등장했던 맥주입니다. 제정 러시아를 괴멸로 이끈 괴승, 괴존슨, 반인반닭도 7시간 동안 사랑했을 법한 마성의 남자 Grigori Yefimovich Rasputin(그리고리 라스푸틴)이 라벨에 박혀있습니다.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컨셉삼은 맥주들에서는 제정 러시아와 관련된 내용들을 끌어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올드 라스푸틴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군요. 커피와 초콜릿, 건과육 같은 향과 맛들이 느껴집니다. 진하고 강려크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고 9%라는 알코올 도수가 잘 안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거근을 휘둘휘둘했을 라스푸틴의 모습을 맥주에서 느낀다면 그건 혀의 잘못이 아니라 그대 내면에 숨겨진 음란함이 발현한 것뿐이니 너무 부끄러워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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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Dark Seas(미션 다크 씨즈) 9.8%의 알콜 도수. 커피, 초콜릿 향이 매력적이고 약간의 토스트와 말린 자두 같은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올드 라스푸틴과 비교한다면 조금 더 뾰족뾰족한 느낌이랄까요. 부드러움이 적고 러프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왜 올드 라스푸틴과 다크 씨즈를 뽑아들었냐면... 3대 대형마트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임페리얼 스타우트 중 이 두 가지가 가성비와 맛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맛있는 임페리얼 스타우트들이 차고 넘치지만 맥덕후가 아닌 보통의 소비자에게 소개할 때에는 역시 두가지 측면을 빼놓을 수가 없군요. (가성비 운운했지만 역시 다른 맥주들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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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keller Beer Geek Brunch Weasel(미켈러 비어긱 브런치 위즐) 10.9%의 알콜. 로스팅 된 맥아에서 나오는 커피향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커피에 맥주를 섞은 게 아닐까 싶은 정도의 진한 위즐커피향이 매력적인 맥주입니다.(정작 원래의 위즐커피가 어떠한지를 모르는 게 문제지만) 상당히 맛있지만 상당히 비싸요. 구하려면 보틀샵 가야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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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Holland Dragon's Milk Bourbon Barrel Stout(뉴홀란드 드래곤스 밀크 버번배럴 스타우트) 11.00%의 알콜. 통칭 용젖.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치트키라고 불리는 배럴에이징을 거친 스타우트. 버번배럴에서 숙성되며 입혀진 끝맛이 아주 좋습니다. 배럴에이지드 맥주치고는 리즈너블한 가격대의 임페리얼 스타우트입니다. 그래도 비싸요. 그런데 상당히 맛나요. 역시 구하려면 보틀샵 가야되요.


*보틀샵용으로 왜 비어긱 브런치 위즐과 용젖을 뽑아들었냐면... 별 이유없습니다. 그냥 맛있게 마셨던게 기억이 남아서. 맛있었지만 정작 맛에 대한 평을 생략한 것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에 괜한 뽐뿌질을 하기가 좀 거시기해서입니다. 대형마트와 달리 보틀샵에는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차고 넘쳐서 콕 집어서 뭔가를 추천한다는 것도 적절치는 않은 듯 싶기도 하구요.



마치며


겨울에는 역시 진하고 깜장깜장한 맥주들이 좋습니다. 증류주를 마시는 냥 천천히 한모금 한모금을 넘기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며 나른해져옴을 느낄 수 있지요. 만날 하는 얘기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맥주와 사랑을 한 모금씩 나눠마시며 깊은 겨울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애인이 없다면, 그래도 외로운 연말을 보내긴 싫다면 마음에 둔 그녀 혹은 그놈에게 맛난 맥주 한잔 하자고 불러내어 맥주 야부리 천천히 흘러내며 좋은 시간을 보내봅시다. 그래도 안된다면... 미안해요. 그건 허경영 선생이 와도 안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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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고

언젠가 즐거움이 끝나는 순간까지 최대한 행복하게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맥주 라이프 되시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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