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content_1410758044.jpeg

 

칭기즈칸이 워낙 서쪽과 남쪽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고려는 몽골발 태풍에서 살짝 비껴나 있었지만 오고타이칸이 즉위한 뒤 어김없이 몽골군의 침략을 받는다. 이 1차 침입 때 고려는 언젠가 얘기한 귀주성 전투에서 몇 달 동안이나 싸워 성을 지켜내는 등 매운맛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극도로 순한맛(?)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서북면 지역의 성들이 무더기로 짓밟히고 수만 생명이 사라지던 무렵 고려의 중앙군이 드디어 북상을 개시했다. 늦어도 한참 늦긴 했지만 고려 중앙군은 황해도 교통의 요지인 동선역 전투에서 몽골군을 쳐부수는 개가를 올린다. 기세 오른 고려 중앙군은 오늘날의 안주인 안북부까지 북상한다. 몽골군도 더 이상 밀리면 곤란하다 싶었던지 전 병력을 동원해서 안북부를 포위한다.

 

원래 고려군 지휘부는 고구려 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써 온 방어전술, 각 성을 지킨 뒤 공성전에 지친 적을 협격하여 물리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는데 누군가 언성을 높인다.

 

 “아니 동선역에서 몽골군 깨지는 거 못봤소? 뭐가 겁난다고 성에 틀어박히자는 거요.”

 

후군 지휘관 대집성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계급상 위인 장군들이 이 맹랑한 소리를 진압하지 못한다. 대집성이 유능하거나 위엄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엄청나게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대집성의 딸이 당대 고려의 권력가 최이의 첩이었던 것이다. 즉 최이의 장인이었다.

 

실세의 장인어른의 한 마디는 위력이 커서 고려군은 출격하여 성밖에서 몽골군을 상대하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군 지휘부는 또 기이한 행태를 보여준다. 3군을 성밖으로 내보냈는데 최고 지휘부는 성에 남은 거다. “진주(陣主), 지병마사 등은 모두 성에 올라가 바라보기만 했고” (고려사) 하급 지휘관과 병사들만 애꿎은 함성을 올리며 몽골군을 맞았다. 더 안된 일은 들판에서 싸워 적을 섬멸하자고 열변을 토한 대집성이 성안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아니 왜 장군까지 들어오시오?”, “아니 장군들은 왜 안 나오시오?” 이런 코미디가 성 위에서 펼쳐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코미디 와중에 몽골군은 밀물처럼 다가서고 있었다. 잘 될 턱이 없다. 고려 중앙군은 반이 넘어 죽는 대참패를 당하고 후퇴한다. 이 전투의 책임을 지고 대집성은 사형장에 끌려가 목을 베...였을 것 같지만 아무런 책임 추궁도 받지 않는다. 최이의 장인이니까.

 

251BB040587155A20D.jpeg

 

몽골군은 개경까지 쓸고 내려가 위력을 보이는 한편 평안도의 다른 지역을 공략한다. 11월 경에는 지금의 평안남도 순천에 해당하는 자주성에 육박했다. 여기 부사로 있던 최춘명은 인근 고을 사람들을 끌어모아 자모산성에 진을 치고 몽골군을 맞아 싸운다.

 

여기서 몽골군은 귀주성에 못지 않은 매운맛을 보았다. “중앙군이 박살나고 쫓겨 갔는데 너희가 싸워 뭐하냐 항복해라.”고 외치던 몽골군의 목에 화살이 꽂혔고 훗날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임꺽정의 마지막 근거지로 등장할 만큼 험준한 지세의 자모산성의 고려군과 백성들은 억세게 몽골군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즈음 몽골군으로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얘네들은 왜 촌구석 애들이 더 난리냐. 서울놈들은 다 두 손 들었는데.”

 

얘기했듯 중앙군이 개박살이 나고 개경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고려 조정은 일단 몽골군과 화의를 맺기로 했던 것이다. 몽골군의 사절을 접견하고 왕족 회안군 정을 파견해서 전쟁을 마무리하려 든다. 그런데 몽골군이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친다.

 

“아직도 귀주성과 자주성 등에서는 귀국의 군대가 우리에 맞서고 있소. 이러면서 무슨 화의란 말이오? 항복을 주선하시오.”

 

최이는 부랴부랴 사람을 보내 귀주성과 자주성에 항복을 종용한다. 귀주성의 박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성문을 열어 항복했지만 자주성의 최춘명은 계속 성문을 닫아걸고 버텼다. 이 최춘명에게 항복을 권하러 간 사람이 바로 찌질이 대집성이었다. 고려사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화는 실로 재미있다.

 

maxresdefault (1).jpg

드라마 <무신>, 대집성

 

“조정이 항복하고 삼군이 다 손을 들었으니까 어서 나와 항복하시오”(國朝及三軍已降 宜速出降)

 

“아직 조정의 명령이 안왔는데 몽골군하고 함께 온 당신 말을 어떻게 믿소?” (朝旨未到 何信而降)

 

그러자 대집성 짜증을 낸다.

 

“회안공이 이미 나와 항복하셨고 우리 3군이 다 그랬는데 왜 이 말을 안믿는다는 거요.”

 

아마 자주부사 최춘명도 대집성의 말을 정말 안 믿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최이의 장인 대집성이라면 최춘명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가 항복을 권하는데 안 믿는다는 건 일종의 고집이고 요즘 말로 ‘디스’였으리라.저 대집성이란 자가 고려 중앙군을 말아먹은 바로 그놈 아닌가. 최춘명은 시원한 한 방을 날려 버린다.

 

“성안에 있는 우리가 회안공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

 

지켜보던 몽골 장수가 성 앞으로 다가들자 최춘명은 화살을 든다. 쉬익 소리가 나면서 땅에 퍽 하고 꽂히는 화살. 대집성도 펄펄 뛴다.

 

“너 군령을 어겼어! 너 임마 하극상이야!”

 

대집성은 최춘명을 기필코 죽이고자 한다. 자기 사위에게 가서는 이렇게 일러바쳤던 것이다.

 

“최춘명이 명령 불복종하고 항복하지 않아서 몽골인들이 격노했으니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당장 죽여서 몽골에 보내야겠는데 사위님이 결단을 내려 주소서.”

 

이미 외침을 물리치는 일보다는 권력의 안위에 더 관심이 있던 최이도 승낙한다.

 

어명을 받고서야 성문을 연 최춘명은 서경으로 끌려왔다. 최춘명 처형의 임무를 띠고 서경에 온 내시 이백전 앞에서도 최춘명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임무대로 싸웠고 어명이 올 때까지 항복하지 않았을 뿐인데 죽일 테면 죽여라.”

 

이 소동을 지켜보던 몽골 관리가 그 꼴을 보고 묻는다. 저게 누구인가? 자모산성에 있던 최춘명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고개를 갸웃한다.

 

“이 사람이 비록 우리에게는 거역했지만 너희에게는 충신이잖아. 나는 이 사람 못 죽이겠다. 이미 서로 화약을 맺은 마당에 너희 손으로 너희 성을 지킨 충신을 죽이는 게 말이 되냐? (此人於我雖逆命 在爾爲忠臣 我且不殺。爾旣與我約和矣 殺全城忠臣 可乎)”

 

우리 편의 전쟁 영웅을 우리 편이 죽이려다가 상대방 관리의 만류로 못하게 되는 코미디는 아마 세계 전쟁사에 없을 것이다. 대집성은 그런 희극의 주인공이었다. 걸핏하면 나라를 위하고 임금의 은혜를 들먹이며 나댔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꽁무니를 뺐으며 자신은 용케 빠져나오되 수많은 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나라를 말아먹고도 처벌을 피했다. 또 나라와 백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건 말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일문의 이익을 위해 못하는 일이 없었고, 꺼리는 말이 없었다.

 

고려 백성들은 대집성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이를 갈았고 찌질한 탐욕에 학을 떼었다고 전한다. 이 대집성을 비난한 시가 고려사 부록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대집성의 딸도 아버지랑 비슷하게 욕심이 많아서 최이 사후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독살당한다.

 

maxresdefault.jpg

 

사진은 잘못 들어갔다. 인터넷 회선 오류다. 대집성의 딸이랑 비슷하게 생겼을 것 같긴 하지만 근거는 없다.

 

警遠夷悽都亂來 경원이처도란내

먼나라 오랑캐 경계하는데 서울에선 난리가 났네

 

大逮武神掃理奈 대체무신소리내

대씨놈 무신(武神:최춘명)에게 들이닥쳐 바른 이치 쓸어버린다 하니 이를 어이하나.

 

未北獪錟下持馬 미북회담하지마

아직 북녘의 교활한 창날 내리지 않았고 말들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盲漢與雌潛辜大 맹한여자잠고대

눈 먼 남자(대집성의 딸에게 반한 최이를 가리킴) 여자 끌어안고 자맥질만 치니 불쌍한 희생만 커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