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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9. 월요일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0. 들어가며


 


이번 기사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에 관한 글이다. 저번에 올린 '신념에 대하여'란 기사와 이 기사를 보시고 '이 인간이 일본 총리 열전이라도 쓸 셈인가'하는 독자제위가 계실지도 모른다만, 안타깝게도 현 시점에서 그런 계획은 없으니 걱정들 접으시길 빈다. 뭐 한 4-5년 공부 더 하고 나서 써 볼 수도 있겠지만(다들 아시겠지만, 일본 총리 열전을 쓸려면 이토 히로부미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이만큼 껄끄러운 인트로도 사실 찾기 힘들다). 오늘은 그렇게 심각한 주제도 아니고 하니, 재미삼아 읽어주시길 바란다.



1. 뜬금없는 전국시대 이야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사실 일본어 발음에 맞출려면 토요토미가 더 정확하다만, 넘어가겠다)에 대해 설명을 하는 건 굉장히 난감한 일이다. 욕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남들 다 욕하는 곳에 내가 한 두 마디 더 얹는다고 세상이 더 밝아질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친구의 개인적인 능력같은 것도 살펴보면 재미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오늘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현대 일본에서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지만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정답부터 이야기하면,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아둥바둥 기어올라 잠깐이나마 천하를 손에 쥐어본 인물' 되겠다.


 


일단 그 출신성분이 귀족적이지 않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자기 주인인 오다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으며 훗날 장수로 성장하지만, 첨엔 그냥 오다의 시다바리일을 하고 있었다. 진짜로, 걍 몸종이었다. 밥짓고 부채질하고 갑옷 벗겨드리고. 그게 이 아해의 일이었다. 그는 총명하다기 보단 잔꾀가 밝은 인물로, 주인한테 샤바샤바 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대표적인 일화가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을 덥힌 사건 정도일까.


 


어느 겨울, 오다 노부나가는 밖에 나갈려고 신발을 신다가 이상하게 신발이 따뜻하다는 걸 깨닫는다. 왜, 겨울에 찬 신발 신으면 발도 차갑고 기분 드럽지 않은가. 그걸 예상하고 신발에 발을 집어넣었는데 왠일인지 따땃한게 기분이 삼삼하더란 거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당시엔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세한 다음에 얻은 이름이다)를 불러 물으니 '찬 신발에 주인님 발이 상하실까봐 제가 아까부터 신발을 품속에 넣어서 따뜻히 덥히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는 거다. 그는 이 일로 오다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기 시작해 승진가도에 오른다. 뭐, 그런 스토리지.


 


사실 몇 백년 전 이야기(것도 일화)의 세부적인 사실관계 확인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그가 출세를 위해 저런 아부를 해야 할 정도로 낮은 신분에서 출발한 인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꾀가 많은 인물이라는 것-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현대 일본인들이 그를 그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는것- 정도이다.


 


여담인데, 몇 년전에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나 가거든'이란 노래와 뮤비가 유행을 한 적이 있었을 거다. 조수미씨가 이 프로젝트의 메인이었고, 조관우씨나 김범수씨, 김경호씨 같은 쟁쟁한 가수들도 커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가수에 맞춰 뮤비도 몇가지 작은 에피소드를 만든 걸로 아는데, 조관우씨 버젼이었나 어딘가를 보다가 뒤집어질 뻔 한 적이 있다. 왜냐고? 위에서 이야기한 이 일화를 에피소드로 썼더라고... ㅡㅡ; 정준호씨가 연기한 무사가 명성황후 신발을 품에 안아 덥히고, 나중에 명성황후가 밖으로 나와 그 신발을 신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줄거리. 참나... 명성황후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별로 안 좋아한다)는 둘째 치더라도, 꼭 그 이야기를 거기에 써야 했냐는 생각이 들긴 했다.


 


어쨌든, 그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중에 전국시대를 평정하자 일본의 백성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백성들 입장에선 잘난척 하는 무사계급만 보다가 자기들 처럼 고생하며 살아본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보니 감격스럽기도 했을거다. 뭐, 그의 통치가 그렇게 오래 이어진 건 아니다만.



2. 현대판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러니, 일본인들이 제 64대, 65대 총리인 다나카 가쿠에이를 '현대판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불렀다는 걸 가지고 '그들은 다나카 가쿠에이를 계산기 같은 시베리안 허스키나 스리랑카 십장생,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깔놈으로 알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해다(남녀탐구생활은 유투브에 올라와 있어서 나도 가끔 본다. 해외생활의 낙이지). 오히려 다나카 가쿠에이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있는 정치가 중 한 명이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1918년에 태어나 1972년에 일본 내각 총리대신에 오른다. 그는 많은 인기 만큼 여러가지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대판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별명도 그 중 하나였다. 이유는 당연히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나 당대에 입신양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원래 참 좋은 프로필이어야 하는데 왜 요즘 한국에선 이 프로필 들으면 한숨짓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건지, 좀 답답하긴 하다.


 


그의 학력은 무려 초졸이다. 도쿄대 법학부 출신만으로도 동창회를 몇 번을 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학벌사회인 일본 정치계에서 그의 이런 이력은 매우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국으로 치면 전문대학과 직업학교를 반반씩 섞어놓은 곳 비슷한 곳에 들어가 건축학을 배운다. 사실, 직업교육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그후 그는 건설업계에서 성공해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은 후 정치가로 변신하여 국회의원이 된다.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하던 다나카 가쿠에이는 총리가 되는 해에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 열도 개조론'이란 책을 출판한다. 총리가 된 후엔 이 문제를 전담하는 참모진까지 구성해서 일본 열도를 개조해 보겠다고 덤비는데, 그 '개조'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도로 깔고 철도 놓자는 거다. 토목공사. 독자제위도 토목공사 좋아하시나?



구상은 비교적 간단하다(이 점 매우 중요하다. 길고 복잡한 구상을 들이밀어 봐야 국민들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일본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좌우로 (혹은 남북으로)길쭉한 나라이고, 지역간의 발전격차가 심하다. 특히 북쪽의 일부 지역은 굉장한 다설지역(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공업시설도 빈약하고 해서 사람들 먹고사는게 영 시원찮다. 그러니, 온 나라에 혈관을 뚫듯 고속도로와 신칸센(고속철도)를 건설하여 사람과 물자의 유통이 잘 통하도록 하고, 소외된 지역에도 공업시설을 유치해서 지역간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거다. 좋은 이야기지.


 


 ... 잘 되면 좋은 이야기이긴 하지.



3. 표절의혹 번외편


 


아까 살펴보았듯 다나카 가쿠에이는 절대로 수재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총리직을 맡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일본의 총리는 저번 기사에 나왔던 기시 노부스케처럼 도쿄대 법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간이 무지무지 많았고, 꼭 도쿄대가 아니라도 명문대 출신이나 명가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다나카 가쿠에이는 좀 어리숙하지만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갔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도쿄대 출신이 즐비한 정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지만, 그는 무시무시한 암기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숫자를 외우는데 매우 탁월했다. 회의 석상에서도 비서진이 자료 따로 준비해 줄 것도 없이 과거 수년간의 경제지표를 소숫점 아래 두자리까지 줄줄 거론해서 배석한 참모들 진땀을 빼게 했다고 한다. TV에 출연해서도 프로그램 진행자의 돌발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역시 소숫점 아래까지 정확한 숫자를 들먹이며 의견을 제시해 국민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여담이다만, 학력이 좋지않은 게 아니라 아예 학력이랄 것도 없는 다나카 가쿠에이가 좋은 대학나와 '난 머리가 좋은 인간이오'하고 다니던 관료, 정치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 코를 '주로 기억력을 이용해'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장면을 보면서 일본 국민들이 어느정도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튼, 그는 기억력이 뛰어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억력과 숫자에 관한 면모는 그의 '국토 개조' 구상을 추진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반대의견도 물론 많았지만, 그가 정확한 숫자를 동반한 비전을 들이밀며, 예를 들면 '이 지역과 이 지역을 있는 324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향후 10년 이내에 3.24%의 소득증진이 기대되며...' 어쩌구 하면, 왠지 설득력이 있었다. 정치가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발언 내용의 진위를 떠나 발언이 사실인 것 처럼 들리게 하는 건데, 그는 그 점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결국 그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국에서 토목공사 파티를 벌인다. 도속도로 뚫고, 신칸센 놓고. 당대에 입신양명한 사람답게, 한 번 자기가 맘 먹은 일은 그도 좀처럼 굽히려 하지 않았다. 이런 그를 일본의 언론은... 뭐라고 불렀게?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고 불렀다.


 




이건 뭐 어마어마한 특급비밀도 뭣도 아니다. 일본에서 뉴스 좀 읽어본 분은 상식으로 알고있는 이야기일 거고, 한국 언론에서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는 이야기다. 다만, 점잖은 재래언론들께선 이걸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는 식의 전재를 깔고 이야기들을 하셨더만. 이에 어딜봐서 우연의 일치같아 보이냐.


 


자, 이제 이걸 누가 표절했는지 좀 살펴보자. 지금부턴 그냥 내 추측이다.뭐, 청와대 측에서 증빙자료 보내주시면 읽어드릴 의향은 있다.


 난 일본 언론의 표현을 고 정주영 회장 측근이 주워다가 듣기 좋으시라고 쓰기 시작하고, 그걸 가카께서 스리슬쩍 뺏어 드셨다는데 200원 걸 수 있다. 참고로, 가카가 정주영 회장의 별명을 잡수시는 장면은 불기둥님의 기사를 참조하시라.


뭔 사대주의라고 돌 던질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리가 된 건 1972년이다. 그리고 저 별명은 재임 당시부터 그를 따라다녔고, 당연히 현직 총리의 별명이니 일본 언론들은 저 표현을 심심찮게 써 댔다. 애시당초 저런 오바스런 별명 붙이는 건 일본 언론들이 자주하던 짓이고(기시 노부스케의 별명인 쇼와의 요괴도 그렇고, 다나카 가쿠에이 자신은 현대판 도요토미 히데요시, 달동네 총리 등 많은 별명이 있었다), 원래 유명한 총리는 한 두개씩 별명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까 살펴본 것 처럼 굳이 '컴퓨터'라는 표현을 썼던 이유도 비교적 명확하다. 1970년대의 '컴퓨터'라는 단어를 요즘 나온 24인치 아이맥이나 소니의 최신형 바이오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당시 컴퓨터는 연산기계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숫자에 강한, 인간이 암산이나 주판(당시만 해도 주판이 빠르냐 컴터가 빠르냐는 논쟁이 엄연히 존재했었다. 일본 티비에서 주판의 달인을 모셔다 컴터와 연산스피드 시합을 벌였던 장면이 아직 남아있을 정도로)으로 할 수 없는 숫자놀음을 할 수 있는 기계. 숫자에 특히나 강했던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어울릴 만한 별명이지 않나?


 


그에 비해 1970년대 정주영 회장이나 가카는 적어도 그 별명이 주요 언론에 거의 매일 언급될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인물은 아니었다. 별명이라고 해 봐야 현장 같이 뛰는 측근들이나 부하직원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말이겠지.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따라했다는게 신빙성이 있어 보이나?


 


뭐, 좋다. 방송도 표절하고 음악도 표절하는데 정치가가 별명 표절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으니. 하지만, 가카께서 그걸 사용하시는 품새가... 심히 쪽팔린다. 부시랑 만났을땐 '난 머리도 좋은 불도저야'라는 뉘앙스로 살짝 바꿔치기 하셨더만. 그런거 외신 보도되는거 아시나? 일본 국민들이 그 보도 읽고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4. 원조(?) 컴퓨터 달린 불도저의 말로


 


그럼 마무리로 다나카 가쿠에이의 마지막 간 길을 간단히 살펴보자.


 


그의 국토개조 구상은 어느정도 실행에 옮겨지지만,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서 그 문제를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으니, 대표적인 예를 몇가지 들어보겠다. 혹시 일본의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씨의 '창룡전'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제위라면,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실거다.


 


일본 전국에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는다지만, 일이란게 순서가 있는 법이다. 어느 지역에 먼저 도로를 놓을지. 놓는다면 어떤 코스로 놓을지. 이익이 대립할 수 밖에 없다. 도로 놓으면 그 주변은 땅값이 올라가니까 너도나도 자기 동네에 도로 놓을려고 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여러사람의 이익이 대립하는 곳에서 그 이익을 조율하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게 정치라는 물건인데, 이게 제대로 작동을 안하면 귀찮은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관리 들어가서 '나 뽑아주면 까짓거 도로 당겨줄게' 한마다 하면, 표는 그냥 몰리는 거다. 다른 선거운동이 거의 필요가 없다. 총리가 발벗고 나서서 도로 늘린다는데 여당 의원 잘찍으면 우리 동네도 도로 들어설 거 뻔한 일이니 말이다. 야당이 무슨 흰소리를 하던 돈 안되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여당(글까, 자민당) 국회의원들은 또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신칸센 부설 예정지 주변의 땅을 미리미리 헐값에 사둔다. 평당 1만엔 정도에. 그냥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땅인데 그정도 하면 살 수 있지. 그 다음에 그 땅에 신칸센 뚫어버리는 거다. 땅값은 말 그대로 폭등한다. 평당 100만엔으로 뛴 다음에 되팔면, 평당 99만엔의 이익이 발생하는 거다. 아름다운 이야기지?


 


 이 짓을 반복하는 사이에 일본의 땅값은 급등하기 시작하고, 결국 인플레가 발생해 버린다. 그 즈음에서 다나카 가쿠에이는 검은 돈 문제로 대대적인 비난에 직면하고, 결국 총리직을 사퇴한다. 총리직 사퇴 이후에도 정치권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세기의 스캔들로 불리는 록히드 사건(뇌물수수 사건이다)으로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1심에서 징역 4년 추징금 5억엔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지만, 2심에서도 항소가 기각된다. 그 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에 상고 후 얼마되지 않은 1993년, 노환으로 사망한다. 참고로 그의 선거구를 물려받아(이 표현도 참 이상하긴 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구 세습이 관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니) 아직까지 국회의원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예전 고이즈미 내각때 한국에서도 잠깐 유명세를 탔던 다나카 마키코(장녀)다. 
 
그가 추진한 정책으로 득을 본 사람들도 분명히 있긴 하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겉으로 드러난 '균형발전'의 이상과는 달리 정치적인 야욕에 더 크게 좌우된 것이었으며, 결국 어중간하게 중단된 토목공사(특히 신칸센 같은 경우엔 아직 처리가 덜 된 상태이다)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남기기도 했다. 아직껏 일본 국민들에게선 '일본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대우받는 그이긴 하지만, 정작 남이라 할 수 있는 내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기릴 주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5. 역사라는 것


 


딴지는 축구만큼이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공간이다. 역사에 관한 담론이라는 게 참 애매해서, 그냥 팩트만을 모아볼려면 요즘 같은 세상 클릭질 몇 번 하면 필요한 자료는 다 모인다. 사실 내가 오늘 이야기한 내용도 마냥 사실만을 나열하자면 일본어를 조금 아는 분이 위키랑 관련 링크 몇 개 따라가면 다 모을수 있는 자료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거나 학계를 뒤흔들 새로운 이론이 있으면 내가 박사논문 쓰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하지만, 역사를 이야기할 때 진짜로 중요한건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종합해서 그것을 통해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혜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우리의 실패를 통해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라'라는 쓰라린 외침이라면, 그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저지를 수 있는 크나큰 죄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을 게을리 해서 과거 사람들과 똑같은 실수를 범한다면, 그냥 들짐승보다 나은게 뭔가.


 


나는 우연히 다나카 가쿠에이를 가카보다 먼저 안 관계로, 가카가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거론할 때 부터 감당하기 힘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 정말 오백번 양보해서 그건 봐 준다 치자(심히 쪽팔리지만, 그거 안 따라한다고 덜 쪽팔릴 것 같진 않으니). 그럼 제발 '우연히' 자신과 똑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의 전 총리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직접 공부하기 귀찮으면 보좌관 시켜서 보고서라도 한 장 올리라고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쪽은 도로/철도 뚫기고 한쪽은 강 살리기(?)이긴 하지만, 아마 참고할 사항들이 매우 매우 많이 있을거다.


 




 ...이랬다 저랬다 해서 미안하긴 하다만, 솔직히 말해서 별명 따라하는 것도 좀 관둬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끔 일본에서 이 이야기 나오면... 진짜... 감당하기 힘들게 쪽팔린다. 대충 독자제위가 지금 상상하는거 보다 한 세 배 더 쪽팔린다.


 


우리, 대통령 좀 잘 뽑자. 응?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