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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 후 3년 만에 성북구의 압구정이라 불리던 돈암동 산동네 대규모 재개발단지 아파트 입주권(일명 딱지)을 매입하여 작으나마 내 집 마련의 숙제를 해결했다.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1년 동안 전세를 주면서 앞으로 내가 들어가 살게 될 집이 궁금해 이따금씩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입주하면 집을 어떻게 단장할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얼마나 설레었던지. 당시를 회상하면 그 때의 내가 참 행복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첫 집이 다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에겐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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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벽지가 이쁜 거실의 초록색 벽지, 아들 방의 핑크색 도배, 주방가구를 주문하고 이불도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최고급으로 샀다. 아들 방 가구는 장가 갈 때까지 사용하라고 비싸게 구입하는 등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소비하고 꾸미는 재미를 즐겼더랬다. 그렇게 아파트 입주는 내게 평화를 주었고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겠노라 마음 먹었다. 그런 내 첫 집에 문제가 생겼다.

 

2.

지금도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곧바로 등기이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해당 아파트는 사용승인 후 입주하고도 대략 7년 정도 이후, 개별적인 소유권이전 등기가 이뤄지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등기가 뭔지도 모르던 나는 해야 한다니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등기 이전을 위해 입주권을 매도한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사람의 연락처는 이미 쓸모없는 것이었고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 겨우 알아내고 보니 이민을 간 후였으며 자기는 이전 서류를 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이유는, 오래전 거래를 싸게 했고, 현재 네일샾 다니며 너무 고단하기 때문에 의무를 이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귀찮다는 얘기였다. 너무 속상하고 약올랐다. 아파트 입구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던 입주권 중개사무소들은 몇 개 남지 않았고 내가 거래한 사무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입주권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이른바 떴다방이었다. 내가 알았나! 아니, 불법인데 그다지도 많은 중개업소가 백주대낮에 입주권을 버젓이 거래시켰단 말인가! 불법이라면 내 집은 내 것이 아닌가? 나는 모든 대금을 지불했는데? 변호사를 찾았다. 거금을 들여 소송을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돼가도 재판은 지지부진했다. 판결이 안 나는 이유가 나로선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계약서, 입금증, 거주확인 서류 등은 모두 아파트가 내 집이라는 증거인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변호사는 “원래 이런 소송이 느리다.”고 말했지만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재판엔 내가 직접 가겠노라 했고 난생 처음 서초동 법원에서 재판에 참여하게 되었다.

 

3.

재판을 지켜보니 판사의 질문에 변호사는 웅얼거리기만 할 뿐 대충하는 분위기가 역력해 화가 치밀었다. 판사에게 할 말이 있다고 외쳤다. “이게 왜 내 것이 아닙니까? 제출된 자료 보셨습니까? 내가 살고 있고 돈도 다 냈는데 판 사람이 몽니 부린다고 처리를 안 해 줍니까? 불법이라면 나라에서 단속을 했어야지. 왜 나 같은 피해자를 만드는 겁니까?” 흥분해서 악을 썼다. 판사는 “이해 하지만 과정이란 게 있다.”라며 기다리라 했다.

 

성의 없는 변호사와 이런 소소한 사건은 별 관심 없는 듯한 판사는 모두 내 편에 서줄 이유가 없어 보였다. 변호사를 쓰든 중개사를 쓰든 비용을 지불했다고 그들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고 있으면 안되는 거였다. 내 일은 내가 참견하고 내가 알아야 한다. 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미련이다. 그렇게 한 달 가량 지나서 촉탁등기 판결이 났다. 진즉 법원에서 드러눕고 악다구니 쓸 걸. 왜 세상은 시끄러워야 말을 듣는 걸까. 예쁘고 여리고 상냥하기만 한 내가 판사에게 악을 쓰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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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직접 이전 등기를 하기위해 법원 판결문을 들고 등기소에 갔다. 등기 접수 과정을 잘 모르던 나는 등기소와 구청, 은행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틀 걸려서 등기를 접수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에서 등기 정보를 쫘악 검색해서 하루 만에 끝냈을 테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고생스러웠다. 그 후로 아는 사람들의 이전 등기를 도와주거나 대리해서 접수해주기도 할 정도로 익숙해졌는데 시간이 흐른 후 본인이나 직계가 아니면 등기 접수를 받아주지 않아 그런 일은 멈추었다. 돈도 안 되는 귀찮은 일이고 행여 실수하면 더 귀찮아지는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매입하는 부동산 이전 등기도 법무사에게 의뢰한다. 그게 안전하고 편하다.

 

이 일로 인해 부동산의 권리와 거래에 대해서 누군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보다는 내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중개업소를 통해 부동산을 고르지만 가치의 판단은 내가 해야 한다. 세상 누구도 그 물건의 하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투자의 책임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뭘 좀 알아야 했다.

 

5.

세금 문제도 골치 아픈 일 중의 하나였다. 탈세는 안되지만 절세는 해야 하고 가산세는 절대 피해야 한다. 이 사실을 몸소 경험해서 터득하는 것에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나의 첫 아파트에 대해 무척 만족했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해 눈 떠가는 시선으로 보자면 미래가치는 불합격이었다. 가격이 매우 안정적이고 좁았다. 그래서 매도한 후 근처 신축 아파트에 월세로 옮기고 남은 자금으로 마포구 다세대 경매 낙찰을 받아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파트 매도 4년 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국세청으로부터 아파트 양도세 3천만 원의 세금부과 고지서가 날아왔다. 아파트는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인데 무슨 소리인가. 이유인 즉, 아파트 잔금일과 마포구 다세대 4채 (4가구가 일괄 경매로 나온 것을 지인과 2분의 1씩 지분으로 낙찰 받아 바로 2가구를 매도하고 한 채씩만 보유했다.) 잔금일 하루가 겹치는 바람에 1가구 5주택이 되었던 것이다. 즉 다주택 중과세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원래 예정되어 있던 아파트 잔금일을 매수인 측에서 하루 미뤘던 것 뿐인데.

 

매수인에게 세무서에 사정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니 처음에는 그러겠다 해놓곤 다음날은 싫단다. 나는 상대에게 잔금일을 미루는 편의를 제공했지만 정작 상대는 혹시 모르는 불이익이 있을까하는 마음에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나는 선의를 베풀었으나 상대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봐, 혹은 귀찮거나 또는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발생을 우려해 아주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나는 내가 베풀지 않아도 될 호의를 누구에게도 해주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지금도 갈등한다.

 

6.

억울해서 도저히 세금을 낼 수가 없었다. 매수인 부탁으로 잔금일 하루를 미뤘을 뿐인데 그 하루가 겹쳐서 1가구 다주택 중과세라니. 차익이 5천인데 3천을 내라니. 몇몇 세무사들에게 문의를 해 봤지만 다들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려주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내 발로 직접 뛰자. 우선, 해당 세무서의 납세자보호담당제도를 이용했다. 과세 전 적부심사제라는 사전적 방법이다. 전국 각 세무서마다 납세자 보호실이 있고 그곳에서 납세자의 입장을 정리해서 살펴준다.

 

나는 지금도, 당시 납세자 보호실의 담당 조사관에게 무척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세무사나 법무사를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직접 발로 뛰는 나에게 필요한 서류와 상황을 자세히 살펴주었다. 무척 친절하고 사정을 공감해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괜스레 든든했다고나 할까. 이 단계에서 나는 불채택 되었다. 야이씨... 채택이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불채택이면 과세된다. 가산세가 잔뜩 붙은 고지서가 날아오고 은행계좌가 압류 당한다.

 

어떻게 하나 낑낑 앓다가 보니 다음 단계로 이의 신청이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어차피 소송해야 하나보다 하는 생각에 다시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서 세무서에 가니 세무서 직원분이 솔직하게 말씀해주신다. 이의 신청은 세무서와 국세청에 하는 것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분들이 아무래도 심증과 결과를 일치하기 어렵다고.

 

즉 공무원이라는 울타리에서 납세자의 사정을 폭넓게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그러니 이의 신청이나 심사청구보다는 심판청구를 바로 하라신다. 번복할 수 없으니 자세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라 하셨다. 소송은 마지막 방법이란다. 여기서 상식 하나 외우고 가자.

 

이의신청은 세무서와 국세청에 하는 것.

심사청구는 국세청에 하는 것.

심판청구는 조세심판원(우리 땐 국세심판원이었는데 2008년에 이름이 바꼈다)에 하는 것.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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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름하여 국무총리 조세심판원. 납세자 보호실 담당관이 정리한 내용을 보내주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믿을 건 내 자신 뿐이라는 생각과 이 건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앞서 세무서에서 준비해 준 자료가 있어 수월하기도 했다. 일테면 대출증빙, 소송사건 판결문, 은행계좌 사본, 경매 관련 서류 등등. 과세전적부심에서 나에게 요청했던 서류를 컨닝해서 하나, 하나 서류를 준비해 갔다. 서류가 사유서 포함 열장도 넘었다. 이 서류를 챙겨들고 조세심판원으로 GOGO~!

 

조세심판원에 갈 때는 서류를 2부 준비해야 한다. 그냥 가도 복사기가 있어서 사용하면 된다. 서류를 접수하고 한 달 정도 후에 몇 가지 필요한 질문도 하고 담당도 알려준다.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들. 12월 31일 조세심판원의 결정문을 등기로 배달 받았다. 세율을 고치라는 결정. 1년 동안 수고한 선물을 연말에 받게 되었다.

 

해당 세무서에서 다시 세액을 18%로 계산해 고지서를 보내왔고 소송비와 대위등기 등에 사용된 금액을 추가로 신청해 놓은 상황이었다. 미리 알고 대처했더라면 비과세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내 실수로 과세가 되었고 그 아파트 팔아서 다른 부동산 매입해 이익 본 것과 2500만 원의 세금이 줄어든 것은 어쨌거나 기쁜 일이다. 내가 지레짐작한 것보다 친절한 공무원도 많다. 하나씩 배우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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