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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그 말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시절이 있었다. 국가가 나서서 뭐든 생산하고 수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오죽하면 <세계는 넓고 도망갈 곳은 많다>, 아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남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단다.      

 

 “니들은 계속 생산만 해! 파는 건 내가 할 테니까!!”

 

그 시절, 돈 없고 빽 없는 개인이 출세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기술이었다.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 말이다. 그것이 옷이든, 신발이든, 가발이든, 심지어 건물이든 숙련된 기술로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이 인정받고 돈 벌었다. 해서, 우리 삼촌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말을 들어야 했다.      

 

 “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기술 배워.”

 

어떤 기술이든, 기술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그 시절은 갔지만, 그 말은 노가다판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노가다판 와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역시, 기술 배우라는 말이었다.

 

 

기공과 잡부의 차이? 하늘과 땅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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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영으로 일 할 때다. 제법 큰 아파트 현장이었다.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조회 때 모든 인부가 모이면 대략 300~400명 정도는 됐던 거 같다. 모르긴 몰라도 그 중 내가 제일 젊었다. 외국 노동자 빼고. 아, 사무직도 빼고.

 

나이도 어린 데다가(실제로 그렇게 어리진 않지만, 이 바닥에서는 어딜 가나 막내예요.) 직영 일 특성상 한 자리에서 진득이 작업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하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됐다. 각 공정 반장뿐만 아니라 각 공정의 몇몇 기공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아침저녁으로 인사하고, 때로 담배 하나씩 피우며 농담 주고받는 아저씨들이 늘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기술 배우라는 말도 듣기 시작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진짜 백 번은 넘게 들은 거 같다.

 

“젊은 사람이 왜 직영 잡부 하고 있어? 어차피 노가다 할 거면 빨리 기술 배워~ 하루라도 빨리 배우는 게 남는 거여.”     

 

얘기하는 맥락은 대략 비슷했다. 나이 좀 먹었다면 모를까 어차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먼지 먹으면서 살 생각이면 지금이라도 기술 배우라는 거였다. 장기적으로 봐도 그게 훨씬 낫다면서.

 

실제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자랑이다). 그들이 봤을 때, 젊은 놈이 하루도 안 거르고 꾸준히 나오니까 예뻐 보였나 보다. 언젠가는 날 사이에 두고 목수 반장과 철근 반장이 김칫국을 마신 적도 있었다. 나는 떡 줄 생각이 1도 없는데.

 

“야~ 너 그러지 말고 우리 팀 들어와. 내가 소장한테 잘 얘기할 테니까 지금부터 내 밑에서 목수 일 배워. 딴 놈들 따라가 봐야 X 빠지게 고생만 하고 기술은 안 가르쳐줘. 내 밑에 들어오면 6개월 안에 기술 배울 수 있어. 그러면 너 지금 버는 것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벌 수 있어. 어때? 들어 올텨?”

 

“어이어이~ 저 인간 말 듣지 말어. 요즘 누가 목수 하냐? 너 목수 일 배우면 평생 몸이 고생한다. 철근 배워 철근. 철근이 일도 편하고 일당도 제일 쎄~ 옛날에나 철근쟁이, 목수양반이라고 했었지. 요즘은 목수새끼, 철근양반이여~ 너 이것만 알아둬. 목수 하다가 철근 하는 사람은 있어도 철근 하다가 목수 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봐~” 

 

처음에는 정말 머리나 식힐 요량으로 노가다판에 왔던 거라, 그런 제안을 받아도 그냥 웃고 말았다. 에이, 기술은 무슨……. 지금도 충분히 돈 많이 벌고 즐거운데, 뭐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을 크게 벌이나 싶은 마음이었다.

 

근데, 이게 그냥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노가다 하면서 겪어 보니, 기공과 잡부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래서 기술 배우라고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절절히 들 정도로.          

 

 

1년이면 자동차 한 대, 10년이면 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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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잡부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돈이다. 잡부는 이러나저러나 12~13만 원이다. 기공은 20만 원에서 많으면 25만 원까지도 받는다. 거의 두 배 차이다. 하루만 해도 10만 원 정도 차이 나는 거니까 한 달이면 250만 원, 일 년이면 2,500~3,000만 원 차이다. 십 년이면 아파트 한 채 값이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그렇다고 기공이 잡부보다 두 배 더 힘들게 일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노가다판엔 유명한 말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현장 나오면 또 하루 간 거여~”

 

실제로 그렇다. 새벽 5시에 달콤한 잠의 유혹을 떨쳐내고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가 힘든 거지, 우선 현장에 나오면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기공이나 잡부나 힘든 건 매한가지다. 똑같이 5시에 일어나야 하고, 똑같이 먼지 먹어야 하고, 똑같이 덥고, 똑같이 춥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심지어 기공이 더 편할 수 있다. 잡부는 평생 가봐야 잡부지만, 기공은 나중에 반장이 되거나 그에 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러면 적어도 몸은 편해진다. 무거운 걸 나르거나 빡센 일은 덜 하게 되니까. 그런 단순노동은 주로 잡부나 조공이 하니까.

 

인간적인 대우에서도 기공과 잡부의 차이가 크다. 인력사무소 통해서 나오는 용역 아저씨들이나 각 공정의 반장이나 나이는 비슷하다. 대략 50~60대다. 근데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노가다판에서 새삼 느낀다. 반장이 용역 아저씨보다 어려도 반말하는 게 다반사다.

 

 “어이어이~ 김 씨. 그것도 제대로 못해. 그건 됐고, 이쪽으로 와서 이거나 날라.”

 

그런다고 해서 내가 나이도 더 많은 거 같은데 왜 반말하냐고 하는 용역 아저씨, 난 아직 못 봤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공이냐 잡부냐로 서열이 갈리는 거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게 그냥 노가다판의 암묵적인 룰이다. 기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꼴을 자주 보고, 또 겪다 보니 억울한 생각이 좀 들었다. 똑같이 일하는데 누구는 20만 원 넘게 받고, 나는 고작 12만 원 받고. 맨날 욕이나 먹고. 이게 뭐야. 흥칫뿡!

 

그런 데다가 반장들은 자꾸 기술 배우라고 하지, 심지어 자기 팀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그래볼까 그러엄?’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더욱이, 지금껏 글 쓰는 걸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서른 넘어서 비로소 적성을 찾기라도 한 사람처럼 일까지 너무 재밌으니! 몸 쓰는 일이 나한테 이렇게 잘 맞을 줄, 정말 몰랐다.

 

결정적으로, 친하게 지냈던 목수 오야지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 죽이는 거 빼고 뭐든 배워. 배우면 어디든 써먹을 데가 있어. 옆집 여자 꼬시는 것도 배워두면 언젠가는 쓰게 되어 있어. 인생이 그런 거여. 그래서 기술 배우라는 겨~ 한 번 배워두면 평생 써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던 거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그렇게 난, 기술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공부하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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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 와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말도 있다. 학창 시절, 아빠가 그렇게나 애타게 했던 말.

 

“공부 좀 해라 이 자식아. 너 공부 안하면 평생 후회한다. 나중에 대접받고 살려면 공부해야 돼.”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들먹거리면서 대접받는 삶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닐 테니까. 그런 거에 흥미 없다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할 거 같으면, 굳이 공부할 필요 없는 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남들 공부할 때 책이나 왕창 읽었다. 남들 영어 단어 외울 때 손발 오그라드는 소설, 시 같은 거 쓰면서 학창시절 보냈다. 남들 취업 걱정할 때도 탱자탱자 연애나 하고 카페에 앉아 책 읽고 글 쓰면서 보냈다.

 

그렇게 글쟁이가 됐고, 공부 열심히 한 누구처럼 큰돈은 벌 수 없었지만, 더더욱이 어디 가서 거들먹거리고 대접받을 순 없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고 조심스럽게 자평해본다).

 

해서, 난 내 생각에 확신이 있었다. 공부할 필요 없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뭐 그런 꼴같잖은 확신.

 

지금도 그 생각에 큰 변함은 없다. 다만, 공부해야 대접받을 수 있다던 아빠의 잔소리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잔소리에 담겼던 아빠의 절박함을 말이다.

 

얘기한 것처럼 현장에서는 기술 배운 사람이, 속된 말로 짱이다. 근데, 그 짱을 찍어 누르는 게 공부한 사람이다. 현장에서 반장이라고 하면, 보통 노가다 밥 20~30년 먹은 사람이다. 눈 감고도 건물 한 채 뚝딱뚝딱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노가다판에서 겪었을 산전수전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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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냈던 반장 중에 일흔 살 노인이 있었다. 노가다판에서 40년 보낸 진짜 진짜 꾼이었다. 언젠가 그 반장이 이런 얘길 했다.

 

“20년 전인가? 6m에서 떨어졌어. 그래서 병원에서 1년이나 있었어. 그 뒤로는 무서워서 노가다 못하겠더라고. 집에서 1년을 더 쉬었어. 근데 어떻게 해?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다시 노가다판에 온 거여.”

 

“지금은 괜찮으세요? 저라면 진짜 무서워서 다시는 못할 거 같은데.”

 

“안 괜찮으면? 배운 게 망치질뿐인데, 자식들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려면 하는 수밖에.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지 뭐.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할까 하고…….”

 

그 말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데, 그 촉촉한 눈동자에 담긴 함의를,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뭐.”라는 말속에 담긴 애환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런 꾼들조차 굽실거리게 만드는 사람이 원청 건축기사다. 원청에서는 타설 전, 꼭 검침을 한다. 시공은 잘 됐는지, 문제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거다. 이때 건축기사와 각 공정 반장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작업장을 체크한다.

 

그때 간혹, 꼬마기사가 설계도면을 펄럭거리며 반장을 혼내기도 한다. 노가다판에서는 건축학과 졸업하고 자격증 따서 바로 현장 온 건축기사를 꼬마기사라고 표현한다. 꼬마기사들 나이, 많아야 20대다.

 

속된 말로 자격증 잉크도 안 마른 꼬마기사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반장을 혼내는 거다. 그러면 반장은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예, 예, 수정하겠습니다.”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인다. 그 과정이 문제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부실시공과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검침 과정은 꼭! 꼭! 필요하다.

 

다만,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어쩐지 좀 짠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아빠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아, 이래서 공부하라고 했구나, 하면서.

 

그렇게 꼬마기사에게 실컷 혼난 날이면, 퇴근하는 길에 ‘쐬주’ 한잔 걸치지 않을까. 그런 날이면 얼큰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 자식들 앉혀놓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니들 공부 열심히 해. 그래야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어. 안 그러면 아빠처럼 평생 고생한다.”    

 

아빠가 날 앉혀놓고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노가다판 와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빠가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 좀 할 걸 그랬나? 대접받으면서 살았으면 좋았겠다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아빠 소원대로 공부 좀 했더라면, 술 취해 돌아온 아빠에게 ‘짜~안’ 하고 자랑스럽게 성적표 내밀 수 있는 아들이었더라면, 우리 아빠가 속상했던 일 훌훌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주무시지 않았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