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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 추천0 비추천0

2009.11.9.월요일
허기자

 

 

 

 

 

 


핑크영화제(11.5~11.11)가 올해로 3회를 맞는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영화제가 열리는 한국에서 핑크영화제는 그중 가장 독특한 영화제라 할만하다. 소위 에로영화로 불리는 일본의 성인물 가운데 다소 수위가 낮은 작품을 ‘핑크영화’로 지칭하는데 바로 이들 영화만 상영하는 영화제인 것이다. 특히 핑크영화제는 여성을 위한 영화제를 표방하며 ‘남자는 가!’ 오로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까닭에 1회 때부터 꽤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더랬다.

 

 

 

 

 

그러면서 이를 기획한 인물에게도 상당한 관심이 모아졌으니, 그녀의 이름은 다름 아닌 주희다. 그녀는 과거 <호랑이 선생님>에 출연한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핑크영화제의 얼굴마담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항상 핑크영화제와 관련한 인터뷰는 그녀가 도맡아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희는 이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는데 이번 인터뷰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핑크영화제와 주희를 뗄 수 없다면 일단 그녀의 사연부터 알아보자. 왜 연기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지, 한국으로 돌아와 왜 핑크영화제를 기획했는지 물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3회까지 온 핑크영화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인터뷰는 11월 3일 그녀가 재직 중인 씨너스 이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주희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또 다른 인터뷰를 막 끝마쳤을 만큼 핑크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3회 핑크영화제를 홍보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핑크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인터뷰 요청이 많은 걸로 안다. 지금 막 영화진흥위원회와 인터뷰를 마쳤다.
주희(이하 ‘주’) 부끄럽다. 내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1회 때도 자제하려고 했다. 왜냐면, 아무래도 영화제이니만큼 영화적으로 비쳐져야 하는데 내가 예전에 탤런트로 활동했던 부분과 연결이 되면서 본의 아니게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됐다. 그게 영화제에는 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 전면에 안 나서려 하는데 영화제 홍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더라.

 

 

 

 

 

이제 3회지만 핑크영화제와 주희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기 힘들게 됐다.
내가 프로그래머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사실 핑크영화에 있어서 전문가도 아니고 많은 자문을 통해 작품을 선정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공식처럼 ‘핑크영화제=주희’로 굳어지면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차라리 주희에 대해 알아보는 질문으로 시작하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핑크영화제를 알게 되는 거다, 라는 의도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웃음)

 

 


나는 어떻게 핑크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됐나

 

 

 

 

 

 

 

 

 

 

주희는 현재 극장체인 씨너스의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이사다. 그녀는 씨너스 전체의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극장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기획에 힘을 쏟고 있다. 올 여름 개봉했던 <퀸 락 몬트리올>(2007)은 1981년도 퀸의 몬트리올 공연을 디지털 복원한 작품으로 관객의 문화적인 욕구를 감안한 소프트웨어적인 측면과 제작자의 의도를 100% 구현할 수 있는 극장의 하드외어적인 측면을 모두 감안한 주희의 기획이었다. 핑크영화제 역시 관객의 욕구와 극장의 기능을 모두 살릴 수 있게 기획됐다. 여성이 성을 접하는데 여전히 폐쇄적인 한국에서 역으로 밝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일본에서 핑크영화만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핑크영화제의 출발점은 의외로 오즈 야스지로(<도쿄이야기><만춘>)와 야마도 요지(<남자는 괴로워>) 등 일본의 거장 감독이 다룬 지극히 서민적인 생활이다.

 

 

 

 

 

연기를 하다가 영화 공부를 위해 일본에 갔다. 왜 그런 결심을 했나? 
너무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당시는 재미있어서 했던 건데 스무 살을 코앞에 두고 내가 이 길을 진짜 원하는가, 한번쯤은 내가 원하는 길을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연기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 때이기도 한데 아무리 내가 열심히 연기해도 아역이 갖는 한계 때문에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유학을 결정했다. 마침 일본에 친척 분들이 계셔서 사촌동생과 함께 가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예술전문대학, 지금은 예술대학인데 졸업하고 조용히 유학을 떠났다. 근데 내가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공부만 하게 되더라. 일본 대학교 영화과에 입학을 해서 일본영화를 공부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 대한 논문을 썼고, 석사, 박사까지 마치니 14년 정도 걸리더라.

 

 

 

 

 

어떻게 오즈 야스지로를 공부하게 됐나?
일본영화를 공부해야 하는데 어디부터 입문을 해야 될지 몰라서 가장 일본적인 감독 내지는 일본의 거장이랄 수 있는 감독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즈 야스지로를 공부하게 됐다.

 

 

 

 

 

오즈 야스지로만 공부한 것은 아닐 텐데?
‘오즈 야스지로에 미친 시가 나오야(일본 소설가)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쓰고 1998년에 석사 들어갔을 때 마침 한일 대중문화 개방이 됐다. 그때 과연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서 영화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영화 안쪽이 아니라 스크린 바깥에 있는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그전까지 공부했던 것들이 일본적이긴 하나 너무 상류문화에 있는 정신적인 사상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서민들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영화들을 보면, 야마다 요지의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는 오즈 야스지로와 일맥상통하면서도 좀 더 서민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질문을 하게 됐다.  

 

 

 

 

 

그런 의문의 시초는 무엇이었나?
한국이 일본영화를, 일본문화를 봤을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우려할까 생각했을 때 폭력과 성이었던 것 같다. 특히 성에 대해서 현상적인 부분만 보고 일본사람은 변태다, 변태라고 해도 좋은데 그렇다면 왜 변태가 되었는지 근본적으로 연구된 부분이 없더라. 사실 내가 그 전까지 핑크영화를 수업 시간에 수오 마사유키(<쉘 위 댄스><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변태 가족, 형의 새 각시>(1983)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다가 도쿄에 있는 일본 문화의 여러 가지 부분을 연구하는 문화연구센터에 들어가게 됐다.

 

 

 

 

 

설마 핑크영화 연구소라든지 그런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웃음)
내가 속해있던 곳은 ‘성욕 문화사’다. (웃음) 문화연구센터는 국가에서 운영을 하는데 운 좋게 연구원으로 발탁돼 성욕문화사에 1년 동안 있게 됐다.

 

 

 

 

 

거기서 무엇을 연구했나?
너무 유명하신 분들이 많아서 발제는 한 번 밖에 못했고 그저 같이 참여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이후 2005년에 서울에 들어와서 회사(씨너스)에 취직하고 그러면서 나의 구체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핑크영화제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5년인가, 일본에서 핑크영화를 가지고 여성들만 대상으로 한 이벤트가 열렸다. 만약 그 당시에 내가 일본에서 생활했으면 보러 갔을 텐데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핑크영화를 보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핑크영화란 장르만 가지고 서울에서 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본에서는 핑크영화를 비롯해 성을 다룬 영화의 장르가 굉장히 다양한 걸로 알고 있다.
닛카츠 로망포르노, V시네마, AV(Adult Video), 그리고 핑크영화로 세분화돼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영화가 절정을 찍고 슬슬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작은 영화사들이 살아남을 자구책으로 에로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체제에 반항하는 도구로 쓰였고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들도 나왔지만 오락적인 부분을 무시하면 안 되지 않나. 핑크영화는 정치성과 오락성 둘 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게 정말 대단하다. 더군다나 소재에 대한 제약도 있고, 300만 엔 정도의 저가의 예산의 제약, 3일 안에 찍고 5일 안에 편집하라는 기간의 제약이 가해지는 것도 핑크영화만의 특징이다. 그런 제약 안에서 얼마만큼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런 제약이 창작의 폭을 더 넓힌 것 같다.

 

 

 

 

 

좀 더 설명을 보충하자면,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영화사 닛카츠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촬영시스템 안에서 문예작품을 원전삼아 좀 더 고급스러운 성애영화를 만들기 위해 핑크영화보다 10배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다소 수위가 낮은 포르노를 말한다. V시네마는 상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디오 영화이며, AV는 말 그대로 포르노영화이고, 그 이외에 성인물이라 통칭되는 에로틱한 일반영화도 있다. 한국 케이블TV에서 상영되는 일본 성인물은 대부분 V시네마라고 한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핑크영화 수급은 어떻게 이뤄졌나?
작품 수급에 있어서는 일본에서 작가주의 핑크영화를 가장 많이 만든다는 국영영화사를 찾아갔다. 대학교 때 은사님이기도 하신 데라와키 켄 교수님께서 중간에 다리를 놓아주셨다.
 
데라와키 켄이라면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프로그램을 거의 혼자서 담당하는 일본문화청의 문화부장을 말하나? (그는 2005년 딴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여기로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맞다. 그분 역시 핑크영화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계시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핑크영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다. 교수님께서 얼마나 웃겼겠어요. 여자 애가 와가지고 핑크영화제를 하겠다고 했으니. (웃음) 

 

 

 

 

 

일본에서도 핑크영화제를 한다는 게 일종의 화제이었나 보다.
그랬다. 사실 한국보다 성문화에 대해서는 깨어있긴 하지만 일본에서도 주류에는 못 들어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왜 하느냐?”고 묻더라. 나는 “핑크영화를 영화 자체로 한국인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온리 포 우먼’(Only for Women)으로 갈 거다, 해서 진행이 됐다. 
   

 

 

왜 핑크영화제는 여성만 입장할 수 있나? 

 

 

 

 

 

 

 


핑크영화제는 다루는 영화의 성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여성에게만 관람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1,2회와 비교해 남성관객의 입장이 하루 늘었지만 영화제 기간과 비교해 여전히 짧다. 오히려 여성을 위한 영화제라는 이유 때문에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여성의 성에 대해 양으로, 음으로 이중 잣대가 횡행하고 있는 실정에서 온리 포 우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핑크영화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의 정착이기 때문이다.

 

 

 

 

 

핑크영화제는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영화제를 표방한다. 마치 문화로 하는 여성 인권운동으로 보인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여성들이 성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하지만 핑크영화제가 그런 부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내가 핑크영화제를 여성들의 영화제로 생각한 건 핑크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성을 다루는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인데 우리 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컨대, 한국의 16mm 에로영화 산업은 공중분해된 거나 다름없다. 한때 봉만대, 이필립 감독 등이 열심히 만들긴 했지만 지금은 야동 일색이 되면서 한국 에로문화가 음란 쪽으로 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성을 다룬 영화라기보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삶의 측면에서 핑크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한국의 에로문화를 양지로 끌어 올리겠다?
밝은 멀티플렉스에서 여자들끼리 공개적으로 성을 논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그러기위해서는 여성의 힘이 필요하겠구나. 사실 핑크영화가 여성을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지 않나. 90% 이상이 남성이 만들었고 또 남성들이 숨어서 보는 영화이고. 대신 여성들은 양지에서 당당하게 보자. 이를 즐기자.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전략이 적중해 1회 영화제 때는 점유율이 80%를 넘었고 성공적으로 3회까지 오게 됐다.
이쪽에 취향을 가지고 있고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모를까 많은 대중에게 보여질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보다가 못 견디고 나가는 분들도 있다. 특히 남성과 같이 보는 날은 여성들이 조금 더 불편해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의 몸을 물신화하기 때문에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럼 핑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대부분 여자들에게 거부감이 덜한 작품으로 선별이 되겠다.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의 핑크영화 초기 재기발랄했던 작품들, 핑크영화로써 돌출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 위주로 여성을 너무 비하하는 작품은 제외하고 상영작을 고르고 있다. 다만 작년 상영작 중 <노예>라는 영화가 있었다. 수위가 굉장히 높아서 상영작으로 결정하는데 많은 논의가 됐던 작품이었다. 회사 대표님이 남자분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바이트까지 쏠린다고 하시고. (웃음)

 

 

 

 

 

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오바이트까지?
여성 주인공이 가학 당하는 걸 즐기는 마조키스트다. 아무리 주인공 본인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보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싫을 수밖에 없다. 근데 감독이 작품을 너무 밝게 그렸다. 주인공이 실제로 마조키스트인 자전적 영화다. 그래서 부제가 ‘누가 모래도 좋은 나의 인생’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소수의 성적 취향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상영을 결정했다. 그런데 의외로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이해는 못 하지만 극중 주인공의 마음이 전달이 된 거다.  

 

 

 

 

 

여자로 변장해서라도 핑크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웃음)
처음에 핑크영화제 제안서를 냈을 때 남성 직원들이 두 팔 벌려 환영을 했다. 너무 좋아들 했다. 근데 못 들어간다고 하니까 바로 실망하더라. (웃음)

 

 

허 그래도 회를 거듭할수록 남성들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주 1회는 첫날만 개방했고, 2회는 여성이 입장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날이 하루였고 올해는 이틀이나 개방된다. (웃음)

 

 

 

 

 

근데 여성을 위한 영화제라는 취지가 역으로 남성을 차별한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에서 친하게 지냈던 독일친구가 있는데 핑크영화를 가지고 남녀 차별해서 입장시키는 걸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그거다, 나는 남녀가 함께 봐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반문한 적이 있다.

 

 

 

 

 

영화제 시작한 지 이제 3년이니 그동안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여성이 남성을 동반해서 관람하는 날과 여성만 보는 날의 상영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여성만 보는 날은 여탕 분위기라고 우리는 얘기를 하는데 수위가 센 영화일수록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보고나서는 재밌게 봤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하지만 남성과 같이 있을 때는 경직되고 더 수치심을 유발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국 남성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일까? 영화 자체의 남성 폭력적인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잘은 모르겠다. 다만 모든 문제들을 남성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의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 아직도 한국사회가 성을 바라보는데 있어 여성들에게는 이중적인 잣대를 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실 우리도 조심스럽다. 매년 여성관객을 대상으로 ‘여성을 위한 영화제를 찬성하시나요?’ 설문을 받고 있다. 거의 모든 여성들이 찬성한다. 왜 남성과 여성을 가리는지 이해 못하겠다던 여성이 남성과 함께 관람한 후에 이해를 하겠다고 말한 경우도 있다.

 

 

 

 

 

그렇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제가 돼야하는 것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들어와서 봐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영화제로 만들고 싶다. 남성, 여성 모두 들어오면 저희 수익도 더 좋아지겠죠. (웃음)

 

 


핑크영화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 간의 인식차이

 

 

 

 

 

 

 

 

 

 

핑크영화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핑크영화를 바라보는 양국의 인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의 에로영화 산업은 붕괴된 지 오래고 야동의 형태로 주로 음지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핑크영화는 물론이요, 여러 장르의 에로영화가 양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에로영화를 대하는 내부자의 시선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일본의 영화 창작자들에게 핑크영화는 영화 만들기의 한 일종이다. 거기에는 제작비의 제약과 기간의 제약만 있을 뿐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주류의 영화 만들기와 큰 차이가 없다. 창작자들부터 영화 그 자체로 받아들이니 일본 관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핑크영화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 한국의 핑크영화제가 지향하는바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당장에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감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핑크영화제의 지속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 상영작은 15편이었는데 올해는 10편으로 줄었다.
작년에 본의 아니게 영화제가 크게 보였다. 15편 상영에, 전국 씨너스 극장 네 군데를 돌며 순회상영을 했다. 그러다보니 규모가 큰 영화제처럼 비쳤다. 핑크영화제가 대중을 타깃으로 한 건 아닌데 그런 부분에서 반성을 많이 했다. 양으로 승부하는 영화제가 아니니까 내실이 알찬 영화제로 만들어야겠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한 편 한 편 더 심혈을 기울이자.

 

 

 

 

 

핑크영화제를 비판하는 글도 본 기억이 난다.
저급한 성을 다루는 영화제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글도 있었다. 이 사회에서 나올만한 얘기라는 것은 충분히 감안을 했고 그래서 일일이 대응하지도 않았다. 저희 내부에서도 변하고 있고 핑크영화제에 대한 의미를 모두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다.

 

 

 

 

 

1회와 비교해 핑크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은 어떤가?
1회는 호기심으로 많은 오신 것 같다. 2회 때는 ‘핑크 사천왕’(사토 도시키, 사노 가즈히로, 제제 다카히사, 사토 히사야스) 전을 하면서 마니아가 생겼다. 일반 에로영화가 너무 포장을 많이 한 영화라면 핑크영화는 솔직하고 가감이 안 된 영화 같다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일본의 핑크영화 관계자들은 핑크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핑크영화제에 상영됐던 영화의 감독 중에서 굉장히 당황스러워 하는 분들이 있다. 본인의 영화를 여성끼리 본다고 전혀 생각을 못해서다. 그래서 여성들이 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하는 감독도 있고, 작년에 상영작 중 <불륜중독>의 요시유키 유미 감독은 눈물까지 흘렸다. 팝콘도 먹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자신의 영화를 봐준다는 자체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는 거다. 남성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하더라. 그분들에게도 좋은 자극제였던 것 같다.  

 

 

 

 

 

일본의 감독이 그럴 정도면 일본에는 핑크영화를 주요 장르로 하는 영화제급의 행사는 없나보다?
핑크영화만 가지고 영화제를 여는 건 우리가 처음일 거다. 일본에는 핑크대상이라고 매년 시상식을 연다. 얼마 전에 도쿄의 이미지 포럼에서 핑크영화의 역사를 훑는 행사로 40여 편의 작품을 상영했다. 나도 그때 가서 봤는데 핑크영화를 상영하는 일반적인 성인영화관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성인영화관에는 집에서 인터넷을 못하는 나이 많은 남자 분들이나 점심 때 쉬러오는 샐러리맨,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주로 온다. 그에 반해 이미지 포럼의 행사는 두꺼운 책을 든 학자 타입의 분들까지 오시더라. 그러니까 상영환경이 주는 분위기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이 핑크영화에 대해 편견이 없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핑크영화를 만들고 이끌어온 사람들의 인식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제 다카히사(<블레임: 인류멸망2011>) 감독의 경우, 경계가 없다. 수십억짜리 블록버스터영화도 만들고 그 다음 주에는 300만 원짜리 핑크영화도 만든다.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산 안에서 만드는 건 다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이번에 <굿‘바이>로 아카데미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은 일본에 오자마자 국영영화사의 프로듀서를 만났다고 하더라. 핑크영화를 영화의 고향으로 느끼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이번에 타키타 요지로 감독으로부터 친필로 서신을 받았다. ’본인은 창작의 자유를 핑크영화에서 배웠다.‘

 

 

 

 

 

내부에서 핑크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관객들 역시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50년이 넘도록 핑크영화가 유지된 힘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질문이라고 할까. 핑크영화는 35mm 필름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디지털로 바뀌었을 때 과연 핑크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핑크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국영영화사의 프로듀서에게 물어봤더니 “그때는 핑크영화의 종말이지” 하시더라.

 

 

 

 

 

왜인가?
현재 일본의 성인영화관의 영사시설이 35mm로만 갖춰져 있다. 디지털로 찍으면 상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V시네마와 차별이 없어지는 거다.

 

 

 

 

 

그렇게 되면 핑크영화제도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국내로 눈을 돌려 한국의 핑크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우리도 언젠가는 한국의 핑크영화를 제작해보고 싶다. 원래는 박기용 원장님(<낙타들> <모텔 선인장> 연출, 現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 핑크 멤버이고 핑크영화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1회 때 고려를 했었다. 박기용 원장님이 연출을 하면 데라와키 켄이나 이미지 포럼에서도 적극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기용 원장님이 아직은 공직에 계시니까 못하신다고 했다. 정말 재밌는 한국의 핑크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핑크영화제도 변화가 필요하겠다.
핑크영화뿐 아니라 로망포르노로 상영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의 핑크영화 제작도 고려중에 있다. 그 외에 또 다른 계획이 있지만 이건 지금 밝히기는 곤란해요. (웃음)

 

 


글 허기자(edwoong@daum.net)
사진 허남준(
paintbox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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