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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수요일


신짱


 







1부 보러가기


 



 내 (친구의 집 말고) 취재는 어디 있는가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개막식이 열리는 요트경기장으로 이동.


 



 



 


어제까지만 해도 강풍이 심했다는데 오늘은 바람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다. 재래식 언론의 무난한 스트레이트 기사라면 '화창한 날씨 속 화려한 축제의 서막을 올리다' 정도의 헤드가 나올 법하다. 좋은 날씨, 차질 없는 진행, 환호하는 관객들. 말 그대로 축제다.


 


그러나 여기 모처럼의 축제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사람이 한명 있었으니, 바로 본 기자다. 1부에서 언급한 '딴지식 취재'라는 화두는 이번 취재 내내 본 기자의 마음 속에서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다. 레드카펫에서의 스타들 모습이야 앞태, 뒷태 가리지 않고 '숨막히게' 담아 내시는 분들이 계시고, 개막식 출석체크, 으례적인 개막선언... . 이거 안봐도 블루레이 아니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관객들의 환호성이 커갈수록 본 기자의 고뇌도 그만큼 깊어만 간다. 그 옛날, 시험전날이면 왜 그리도 간절히 '북괴의 남침'이나 지구멸망을 염원했는지 새삼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뇌내 망상들.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과 쓰나미로 개막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연예인과 일반관객 구분없이 한데 뒤엉퀴는데.... 음.. 너무 사악한 것 같다. 무엇보다 본 기자 스스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순간적인 돌풍에 여배우들의 드레스가 벗겨져서, 일순 개막식장 전체가 정말로 '숨이 막히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딴지가 썬데이 서울도 아닐진대 아무리 취재거리가 궁하기로써 이런 선정적인... 까지 쓰다가 갑자기 본지의 창간이념이 떠올랐다. '본지의 유일한 경쟁지는 썬데이 서울. 기타 어떠한 매체와의 비교도 단호히 거부한다' 오옷!. 정말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본 기자 숨이 막히는 고통을 참고 오직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오직 뷰파인더에만 집중하다 장렬히 전사한다 할지라도 한평생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국내외 귀빈에, 공중파에서 생중계까지 하는 행사에 누군가 단상에 올라가 깽판을 부리면 어떨까. 가만... 그러고보니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부산영화제를 빨갱이영화제, 좌파영화제라고 하던 분들이 계셨잖은가. 오옷!.


 


뇌내 망상은 여기까지. 그래 바로 이거다. 예년과 다른 빡센 감사와 공전절후의 절대비기 색깔신공까지 꺼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도 여지 없이, 아니 오히려 역대 최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원래 올해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는데 좌파영화제라는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 누가 봐도 좌파가 아닌 내가 이 과도기를 버텨주는 게 낫다고 판단, 내년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고 한다. 과연 빨갱이다. 질기기가 쇠심줄이다.



그러나 본지가 누구냐. 조선일보조차 밝혀내지 못한 천성관의 무고를 입증한게 본지 아니던가. 부산영화제가 빨갱이영화제, 좌파영화제라는 걸 기필코 증명하겠다는 굳은 각오와 함께 식장으로 입장.


 


 나 다시 돌아갈래!


 


무심히 보아넘기던 부산영화제 깃발의 숨은 의미가 선연히 드러난다.


 



 


보라 저 붉디붉은 붉은 색을. 이 쉐이덜 이제보니, 아주 대놓고 빨갱이짓을 하고 있었다.


 


식장에 모인 엄청난 수의 빨갱이덜. 무대 디자인마저 온통 빨갛게 도배했다. 혹시 무대 디자이너가 색맹인 거냐.


 



 



 



 


행사장이 요트경기장이라 그런지 바로 옆에 요트들이 모여있다. 근데 저 길고 뾰족한 돛대 비스무리한 것들. 저거 나중에 죽창으로 쓰는 거 아니냐. 국정원이나 경찰은 뭐 하는거냐. 저거 다 뽑아버리던가 플라스틱으로 바꾸던가 해야지.


 



 


주요 빨갱이 인사들 입장하는 데 걸린 시간만 한시간. 과연 빨갱이들의 축제답게 레드카펫이라 불리우는 시뻘건 장판을 밟고 입장하고 있다.


 


몇년전부터 일본의 빨갱이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뵨사마와 헐리웃산 빨갱이 조시 하트넷(이넘은 이름부터 뭔가 거시기하다. 국정원은 미 CIA와의 공조체제를 통해 이넘의 특정 신체부위가 정말 하트모양인지 아닌지 조속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흐릿해서 잘 안보이지만, 영화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배우 설경구다. 천만관객동원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빨갱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배우 민효린이다. 등빨로 관객들을 빨갱이로 세뇌시키는중. 심지어 관객석 의자, 바닥까지도 빨간색이다. 세상의 색깔이 빨간색만 있는게 아닐텐데, 이쯤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빨갱이 행사 인증 아니냐.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현장. 우리의 앙선생님마저... 언젠가 더 세뇌가 진행되면 저 순백색 부르뎅아동복이 붉게 물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새삼 빨갱이에 대한 분노가 똥꼬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연예인들이 레드카펫 입장을 통해 빨갱이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빨갱이 영화제에 참석하면 그게 빨갱이지 뭐냐. 골수 빨갱이일수록 관객들의 함성이 비례해서 커져갔다. 소수점 이하의 db까지 캐치하는 본 기자의 생체소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대략 구준표(미안하다. 니 본명이 뭐냐), 이병헌, 소지섭 등의 함성이 컸다. 최고본좌는 역시 개막작 주연배우로 맨 마지막에 입장한 장동건. 허나 이에 필적하는 무서운 기세의 다크호스 빨갱이가 있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쏟아지는 게, 처음엔 드디어 경찰이 작전에 돌입했구나 착각했다. 이 소리는 딱 경찰이 촛불좌빨들 때려잡을 때 나는 소리 아니던가. 알고보니 비담 김남길이었다.(미안타. 딴 거 찍느라 얘 사진은 못찍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혹시 경찰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빨갱이 채증자료 수집.


 



 



 



 


자료 수집중 웬지 우리 상식에 빨갱이들 행사에 어울릴법 하지 않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발견. 아 드디어 저분들이 행동에 나서시는건가.


 



 


한동안 예의주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이 어르신들까지 빨갱이로 세뇌되었다니. 결국 서울에 있는 HID와 현충원 의거의 주역 어버이연합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일까. 상념에 빠져있는데... 앗 깜딱이야! 이 쉐이덜은 폭죽까지 빨간색으로 터뜨리네.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빨갱이들의 실체 확인에, 마침내 식이 시작되었지만 더이상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개막작은 이미 보았으니 미련 없이 철수.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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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알았다. 이날 축하공연을 위해 소녀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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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 해운대 바닷가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식장 밖에서 찍은 어처구니 없는 사진을 보니 더이상 바르고 고운말 쓰기가 불가능해짐을 깨닫는다.


 



 


씨바, 이딴 거 찍으려고 소시 유리님을 맨눈으로 알현할 기회를 놓치다니... 빨갱이 영화 <박하사탕> 설경구의 대사가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기는 정말 이번이 처음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폐허가 된 레드카펫 입구.


 



 


빨갱이덜의 저질 공중도덕을 한눈에 보여주는... 씨바, 이딴 게 다 뭔 소용이야. 더이상 빨갱이 타령, 빨갱이 놀이 하기도 귀찮다. 샵새끼덜아 내가 빨갱이다 내 빤쓰도 빨간색이거든? 나나 잡아가라 이 씨방새들아! 소시 유리도 못봤는데 이 무신... 갑자기 취재를 영화제 기간 관객들의 무질서 행태 머 이딴 걸로 전환할까 0.5초간 고민도 해봤으나, 아 씨바 다 귀차너 썅!.


 


 악마는 프라다를 입지만 신짱은 등심을 먹는다


 


기분전환겸 '신짱의 럭셔리 취재여행' 모드로 전환 결정. 장소물색중 동행한 여기자 B양의 한마디.


 


"저는 고기밖에 못 먹어요. 호호호"


 


"아, 고기를 좋아하시는구나. 그럼 고기 먹으러 가죠"


 


총수만큼이나 고기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구나.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일견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는 저 대사가 자꾸만 머리 속에서 웅얼거리며 점점 증폭되어갔다.


 


저는 고기밖에 못 먹어요


 


저는 고기밖에 못 먹어요


 


저는 고기밖에 못 먹어요 호호호~


 


머리 속에서 광활한 초원이 떠오른다. 나는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대자연이 제공하는 감미로운 평화를 온몸으로 음미하는 중이다. 이때 정적을 깨는 육식동물의 발자욱 소리... 나를 노리는 소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기집. 럭셔리 취재가 테마이니 당근 평소 안먹던 럭셔리한 걸로 주문. 무려 맥주에 등심에 육회.


 



 



 



 


근데 등심이 1인분에 5천원, 육회가 1인분에 6000원이다. 아무리 빈티를 천형으로 알고 사는 본 기자라지만 이거 갖고 럭셔리라 하기엔 좀 많이 글타. 기왕 시킨거니 군말 없이 테러 돌입. 5천원짜리 등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으나 걍 패스. 그러고보면 원효대사가 확실히 난 분은 난 분이셨다. 이렇게 맛있을수가.


 


열심히 먹고 있는데, 가게에 요상한 총각 난입.


 




사연인즉, 자기는 고2 고학생인데 척수장애인연합에서 제작한 기념품을 팔고 있음. 하나에 달랑 마넌. 이거 하나 팔면 30프로는 자기 학비 보태는 데 쓰고, 나머지 70프로는 척수장애인연합의 몫이라고 함. 기념품의 취지는 경기불황으로 모두 어려운 시기에 부자되시라고 1억원짜리 수표를 금칠로 형상화했다는 친절한 작품해설까지.


 


영수증 처리가 안된다는 사실에 살짝 망설였지만, 과감히 하나 지르기로 함. 대신 인증샷과 기념품 딜 요구. 콜.


 



 


학생, 혹시 이거 보거든 연락혀. 사진 보내주께. 근데 알려준 홈피 들어가보니 이런거 안 팔더라. 나 속은거 아니지? 그렇다고 말해줘 응?


 


마지막으로 고기를 노리는지, 맥주를 노리는지, 혹은 또다른 무엇을 노리는지 모를 그녀들의 매서운 눈빛. 모니터 뚫어지게 보다보면 보일 거다.


 



 


 비포 선라이즈


 


그날 밤.


 



 


숙소는 방 하나, 거실 하나.


 


"신짱님이 방 쓰세요"


"아니요, 걍 제가 거실..."


"닥치고 니가 방 쓰세여"


"..."


 


왜 굳이 나에게 방을 쓰라는 것일까. 어디 도망갈 데도 없고, 콘도만의 특수방음벽 설치로 소리를 질러봐야 밖에서는 들리지도 않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공간을...


 


여기자 A양이 기사 작성을 위해 피시방에 간다고 한다. 콘도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우라질. 그러고보니 아까 둘이서 쏙닥거리는 게, 가위바위보를 했던 것도 같고...


 


어쨌든 둘만 남은 상황.


 


"신짱님 먼저 씻으세요"


 


헉!


 


"저 원래 씻는 거 안 좋아하거든요"


 


나도 몰래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씻기 좋아하는지 잘 알거다.


 


"호호 그럼 저 먼저 씻을게요"


 


방에 누워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뉘신지 모르겠으나 암튼 모든걸 님의 뜻대로 하소서. 본 취재의 테마가 '독고영재의 스캔들'이 되든 '플레이보이맨션 걸스'가 되든,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콘도의 특수방음벽이 욕실에는 해당되지 않는지, 샤워기 물소리가 거슬린다. 이윽고 소리가 멈췄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똑.똑.똑. 그리고...


 


철컥!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