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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안중근의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링크)>, 프로젝트를 우선 진행하느라 <대망으로 바라본 전국시대 시리즈>가 많이 늦어졌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타. 

독자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동시 진행토록 하겠다.    

 

 

 

 

 

1.

(상략)... 숙명적인 적이   있어서였다.  적은 다름 아니라, 에치고의 우에스기 신이었다. 그는 마치 신겐과 싸우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같았고,  신겐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상경에 대한 야망을 싸늘하게 비웃고 있는  같기도 했다.

 

지난 20 동안 북쪽 지방의 산야를 뒤덮는 명물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은 신겐에게 싸움을 걸어오곤 했다. 어떠한  계략에도 넘어가지 않고 화해에도 응하지 않았다. 참선의 깊은 경지에 들어선 그는 때때로 날카로운 칼을 휘둘러 신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에이로쿠 4(1561)에는 단신으로 카와나카지마의 본진에 쳐들어와 그의 애도 아즈키 나가미츠를 휘두른 예상치 않은 기습까지 감행했다. 그때 신겐은 남만의 철로 만든 지휘용 부채로 막으며 싸우다가 팔과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전광석화와 같이 대번에 여덟 번이나 휘두르는  앞에 신겐이 자랑하는 스와 홋쇼라는 투구에도  군데나 칼자국이 생겼다. (하략)

- 『대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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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에서 다케다 신겐이 가장 고민했던 적이 등장하고 있다(신겐만이 고민하던 적은 아니지만 말이다). 바로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이다. 일본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들  천하인(天下人 : 한자 그대로를 풀이하자면, 천하를 움켜쥔 사람. 일본 전국 시대에 천하인으로 불린 자는 5 있는데 알려진 인물로는 두견새의 비유로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무장   명이라   있다.

 

- 다케다 신겐의 영원한 라이벌,

 

- 전투와 전쟁에 있어서는 ‘그냥천재(공성전에 대해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글쎄...)

 

-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생뚱맞게(!!) 의리와 정의를 내세우고 일평생을 살다간 4차원 정신세계(그의 적들이 그를 평할  ‘의리 있는 존재 말했으니  다했다)

 

- 자신이 비사문천(毘沙門天 : 불교에서 모시는 천부의 부처  하나로,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다) 환생이라 믿는 4차원 정신세계

 

- 극단적인 금욕생활. 여자는 아예 거들떠도  봤고, 밥도 검소하게 먹었다. 거의 일식일찬? 전쟁에 임박해서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걸 보고 부하들은  전쟁을 하겠다는  예상할 정도였다.

 

- 의외로 보수적인 생각

 

- ...그리고 혹시 여자?

 

카이에 호랑이가 있다면, 에치고에는 용이 있었다.

 

2.

지난 20 동안 북쪽 지방의 산야를 뒤덮는 명물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켄신은 신겐에게 싸움을 걸어오고는 했다. 어떠한 계략에도 넘어가지 않고 화해에도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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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화산(風林火山) 깃발을 나부끼며, 주변의 모든 영주들을 공포로 몰아갔던 다케다 신겐이 두려워했던 라이벌이 바로 우에스기 겐신이다.  글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

 

북쪽 지방의 산야를 뒤덮는 명물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켄신은 신겐에게 싸움을 걸어오고는 했다.

 

어떠한 계략에도 넘어가지 않고 화해에도 응하지 않았다.

 

 대목이다. 만약 에치고(越後 : 지금의 니가타현)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니가타현은 지금도 일본  최고 다설 지역으로 유명하다( 하면 홋카이도를 생각하는데, 아니다. 1 적설량이 10미터에 육박하는 동네가 바로  동네다).   때문에 교통이 막히긴 하지만, 대신 눈이 녹아내린 물로 농토는 비옥해졌다.  덕분에 예로부터  지역은 곡창지대로 유명했다(지금도 일본  생산의 중심지다).

 

우에스기 겐신의 본거지는 에치고였다. 그가 전장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겨울이 되면, 에치고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눈이 오면, 난리가 나는 동네인데, 당시에는 어땠을까? 에치고 밖으로 나가 전투를 벌이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가 눈이 오기 전에 군대를 이끌고 에치고 밖으로 나와 전쟁을 한다면? 영토 확장을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 새로운 거점을 만들고, 차근차근 발판을 넓혀 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경우에는  가지 ‘문제점 등장한다. 바로, 우에스기 겐신의 ‘정신세계 당시 ‘관동의 상황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하나의 문제라  수도 있다.

 

3.

우선, 우에스기 겐신의 ‘정신세계. 배신과 음모가 횡행하는 전국시대에 겐신은 생뚱맞게도(!!) 의리와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는 명분 없이 다른 다이묘의 영지를 공격하는  싫어했다. 아니, 인간으로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케다 신겐은  공격했을까?  대목은 생각해 봐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에스기 겐신은 중학교 2학년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건가?”

 

(스스로를 비사문천의 환생이라고 말하는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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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문천왕(毘沙天王)
사찰에서는 사천왕문에 모시며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 중 하나

 

우에스기 겐신은 ‘의리 ‘정의때문에 전략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전쟁에 뛰어     번이 아니다. 그는 ‘의리 ‘정의 추구했다(그런 겐신도 형과 싸웠지만). 이런 겐신에게 ‘다케다 신겐 사람이 아니었다.

 

친아비인 다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해서는 길에서 걸식하게 만들어 효를 버렸다. 이것은 신불(神佛)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가 에치고에 있는 야히코 신사에 봉납한 『다케다 하루노부의 악행에 대해서』란 기원문의 내용  일부다. 겐신의 기준으로 신겐은 ‘이었고, 이런 악을 겐신은 없애야 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신겐이 시나노로 치고 들어갔던 거다. 시나노는 에치고와 카이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땅이다.  땅을 신겐이 접수하면, 이후 에치고 침공의 발판이 되는 거였다(중국이 북한을 싸고 도는 이유랑 비슷하다). 여기에 신겐에게 패한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우에스기 겐신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고, 둘은 싸울 수밖에 없게 됐다.

 

신겐과 겐신이 싸우는 것까지는 이해의 범주 안이다. 그런데, 겐신은   전략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했을까? 에치고를 넘어서겠단 생각은  못했을까?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겐신의 ‘보수성이다.

 

4.

 

오다 노부나가는 시대를 파괴한 ‘혁신가라면, 우에스기 겐신은 시대를 지켜내려는 ‘보수주의자였다. 다케다 신겐은  둘의 가운데를 지났던 자다.”

 

다케다 신겐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주장이다. 다케다 신겐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치고, 우에스기 겐신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건 사실이다. 개인적인 평가지만, 우에스기 겐신은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공자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학문적인 부분이 아니라).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주나라 시절로 돌아가자고 역설했었다. 공자의  모델이 바로 주공 (周公  :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이다. 무왕 사후 그의 조카의 섭정으로 나라를 통치했고, 깔끔하게 나라를 돌려줬다)이었다.

 

겐신 역시 마찬가진데, 그는  ‘권위 미친 듯이 순종했다. 이미 몰락한 무로마치 쇼군 가문이나 덴노 가문을 떠받들었다. 그는 허울뿐인 관동관령(関東管領 : 한마디로 일본 관동 지방 전체를 관리하는 직책)이란 이름에 집착했다.

 

명분과 권위에 기댄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야겠는데, 당시 ‘관동의 상황 우에스기 겐신에게  좋지 않았다. 원래부터 독립적인 기질이 강했던  관동 지방이었기에 우에스기 겐신의 깃발 아래 일치단결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아니,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다(실제로 반란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우에스기 겐신 가문이 대대로 에치고를 통치했던 상황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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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겐신의 본래 이름은 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였다. 우에스기 가문이 아니라 ‘나가오 가문출신인 거다. 본래 나가오 가문은 우에스기씨의 일족인 에치고 슈고 우에스기씨의 슈고다이(수호대 守護代 : 슈고가 중앙에 올라간 사이, 수호의 대리인으로 통치하던 지방관)였다. 전국시대의 다이묘들이 ‘의례그래왔듯 겐신의 아버지인 나가오 다메카게도 ‘들고 일어났고에치고를 장악하게 된다.

 

뒤에 겐신 가문의 ‘사연 다시 말하겠지만, 이렇듯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권력 잡은 가문들은 주변의 질시와 시샘, 그리고 ‘반항으로 이어지곤 했다.

 

아니,  놈들이랑 나랑  차이가 있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어? 나라고 다이묘  되란 법이 어딨어?”

 

우에스기 겐신은 이런 상황에서 외부로부터의 ‘권위 스스로의 ‘명분 필요로 했던  아닐까?(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이미 땅에 떨어진  무로마치 막부와 덴노 가문의 권위 였기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보여준  없었다. 그럼에도 우에스기 겐신은  명분에 집착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