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9. 월요일
김지룡
회사에 다니던 시절,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상사가 '야, 노래 한 곡 뽑아봐'라며 노래를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에게 노래를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집에서 예전의 상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귀가하면 아내는 들뜬 목소리로 딸아이가 새로운 노래를 익혔다는 식의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때 큰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 그 노래 좀 불러 봐."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말도 일종의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하나씩 익혀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아빠에게 큰 기쁨을 준다. 그림을 그리는 것, 글씨를 쓰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춤을 추는 것 같은 일이다. 아이가 새롭게 익힌 것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명령조의 말을 한 것이다.
'노래 해 봐라', '춤 춰 봐라', '글씨 써 봐라'.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춤 좀 춰 볼래?', '노래 좀 해 볼래?'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보다는 낫지만 이것 역시 아이 귀에는 명령으로 들릴 것 같았다. 노래방에서 상사가 내게 어떻게 말했으면 즐겁게 노래를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네 노래가 듣고 싶네."라고 했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말을 사용하면 명령하지 않고도 아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 새로운 노래 배웠다며? 우리 딸 노래를 듣고 싶네.
우리 딸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 새로운 춤을 배웠다며? 얼마나 잘 추는지 보고 싶네.
아빠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말투는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주는 말이다. 혹시 이런 말투로 말을 했다면 아이가 거부하더라도 삐치지 말아야 한다. 아이도 노래하고 싶지 않을 때, 춤추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명령조의 말을 하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었다. 아이에게 "안 돼"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 일이 많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아이가 뜨거운 것을 만지려고 하거나, 차도에 들어가려 할 때 무의식적으로 "안 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말에는 '왜 하면 안 되는지'라는 이유가 없다. 이것 역시 일방적인 명령이다. 게다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 심리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 더 하고 싶었지 않나 싶다.
이런 경우는 '뜨거워', '위험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 이유와 상황을 말해주면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아이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아들을 키우면서 내가 성숙해졌다고 느낄 때가 많다. 큰아이를 키울 때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했던 일이, 둘째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올해 일곱 살인 아들아이는 열두 살인 딸아이의 물건을 많이 탐낸다. 얼마 전 아들아이가 딸아이가 아끼는 수첩을 몰래 들고 나와 낙서를 하려고 했다. 그대로 두면 딸아이와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일이다.
첫아이 때는 "도로 갔다 놔"나 "안 돼"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아들아이에게 "누나에게 허락 받았니?"라고 물었다. 아들아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누나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다. 딸아이는 수첩 대신 쓰지 않는 노트를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아들아이가 계단에서 장난을 쳤다. 예전 같으면 "안 돼. 올라와"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놀면 문이 열리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 내리지 못하는데"라고 말해 주었다. 아들아이는 바로 올라왔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요즘 인터넷으로 외국 드라마를 보는 일이 많다. 제일 즐겨보는 것은 미국 드라마인 "CSI 마이애미" 시리즈다. 주인공인 호레이시오 반장의 화법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범죄자들에게 매우 단호하고 강압적인 어조로 말한다. 하지만 부하 직원에게는 좀처럼 명령하지 않는다. 부하 직원에게 어떤 일을 시킬 때는 이런 말투를 쓴다.
"우리는 그 사람을 조사해야 할 거야."
부하직원과 단 둘이 있을 때도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 '우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앞에 있는 부하 직원에게 그 일을 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호레이시오 반장도 부하 직원에게 명령조의 말을 할 때가 있다. 촉각을 다투는 급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다. 아빠가 집에서 큰소리로 말해야 하는 것은 '집에 불이 났을 때' 빼고는 없다는 말이 있다. 호레이시오 반장의 어법을 보면 직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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