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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의 자존심

2009-11-0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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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9. 월요일
파토


 


먼저 글 하나 보고 시작하자.


 


아래는 우리나라 드라마계의 여왕이라는 김수현 작가가 자기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머 내용 자체는 뉴스에 많이 나왔으니 대략 아시겠지만, 아무래도 전문을 직접 보는 것이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되겠다.



뒤통수 모질게 맞았습니다.


 


김수현의 '하녀' 시나리오는 최종적으로 약 일주일 전에 완전 회수했습니다. 간단히 경위를 설명하자면 제작자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 휴가 중에 2개월을 대본 작업에 매달려 끝냈습니다.


 


감독 선정을 놓고 '안 된다'는 제작자를 설득해서 임상수 감독을 추천했습니다. 임감독을 강력 추천한 것은 그의 연출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제작자와 계약 당시 대본 수정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수정해야 하는 이유로 나를 납득시키면 이의 없이 수정해 주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감독과 한 차례 만나 이런 저런 잡담을 했었고 '당신의 능력을 믿으니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마음 놓고 보충해 봐라. 내가 납득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겠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추석 직전에 임상수 감독의 대본을 받아보고 황당하기 그지 없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수정 보완의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임상수 시나리오로 다시 쓴 대본이었습니다. 내 대본에서 살아 있는 것은 초입의 한 장면 반 토막과 나오는 사람들 이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본이 훌륭했나. 그랬으면 나는 이의 없이 그대 대본이 더 훌륭하니 그대 대본으로 하십시오 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추석 전날인가 그 부근에 다시 감독을 만나 얘기했습니다. 도대체 대본을 다시 썼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으나 그의 대답은 '이건 선생님 대본이에요. 선생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저보고 처음부터 이걸 쓰라고 했으면 저는 이렇게 못썼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우격다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임상수 시나리오를 용인할 수가 없으니 어쩔 거냐 했더니 한번 믿고 그래 네 마음대로 만들어봐라 할 수는 없냐고 우기다가 마지 못해 '할 수 없죠' 제가 선생님을 따라야죠'했습니다. 그러고 내가 그의 대본 중에서 골라 쓸 수 있는 게 있으면 수정 본에 끼워 넣어 주겠다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 감감 무소식으로 제작자와 임감독은 자기들 식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던가 봅니다.


 


약 일주일 전에 제작자와 통화해서 사실확인을 하고 내가 '빠진다'했더니 임감독이 이메일로 간단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시간을 내 주신다면 찾아 뵙고 사과 드리고 야단 맞고 용서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는데 '사과 필요 없고 야단칠 의욕 없고 용서 할 수 없다;는 답장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이 작업에서 김수현이 빠진다면 자기는 세상에 도둑놈 사깃군 밖에 안되냐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는 내 대본이 자기가 다룰 수 없을 만큼 조악했으면 간단하게 '나는 이 대본으로 연출 못하겠습니다'하고 연출 포기를 했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무섭다는 실감으로 등골이 써늘합니다.


 


나의 '하녀' 대본은 임감독 빼고 일곱 사람이 읽었습니다. 한 사람만 민간인이고 모두 이 계통 사람들입니다. 평점 아주 잘 받았습니다.. 하하. 홈페이지에 시나리오 전편을 올릴 테니 흥미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십시오.
(현재 시나리오는 내려와 있음)


 


결국, 제작자가 김수현한테 대본을 요청했고 김수현이 임상수 감독을 추천하고 두 달간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임상수가 수정한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많이 바뀌어 있어서 이렇게는 곤란하다고 했는데 이후 연락도 없고 지들끼리 작업한 것 같고 그래서 안 하겠다고 했더니, 임상수가 와서 사과한다고 해서 다 필요 없다고 했다. 수정한 대본보다 내 대본이 훨씬 낫다 하하.


 


머 이런 내용이다.


 


이건 사실 ‘감독 ? 시나리오 작가 ? 제작자’ 사이에서 지금 이 순간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오해와 힘겨루기의 수많은 유사 상황 중 하나일 뿐 별 다른 일도 아니다. 근데 이게 웬일인지 중요한 뉴스가 된다. 그건 임상수 때문도 아니고 문제의 영화 ‘하녀’ 때문도 아니다.


 


바로 ‘거장’ 김수현이 결부된 일이기 때문이고, 또 그가 이렇게 소상한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렸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본명 김순옥)는 43년생으로 올해 만 66세다. 자기 홈페이지 이름을 ‘우리 시대의 신화 김수현’이라고 붙일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전설적인 드라마 작가라는 점, 다들 아는 바와 같다.


 


72년 MBC ‘무지개’를 시작으로 ‘여고 동창생’, ‘청춘의 덫’(나중에 리바이벌) 등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해서 80년대 ‘사랑합시다’,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등의 대히트로 확실한 흥행 작가의 입지를 구축했다. 이런 성공은 90년대에도 계속 이어져 ‘배반의 장미’,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청춘의 덫’ 리메이크 등으로 김수현 불패의 신화를 쌓았고, 21세기 들어서도 ‘사랑과 야망’ 리메이크와 ‘엄마가 뿔났다’등 히트 드라마를 계속 양산해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수현 작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지존의 위치에 오른다. 동시에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87년부터 95년까지 장장 8년을 재직했고, 2004년 이후 고문을 맡기도 했을 정도로 그의 지명도와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깐깐함과 자존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수현의 대사는 토씨 하나 틀려도 안 되는 것으로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경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 글이나 거기서 묘사된 관점과 행동이 마냥 거장의 자존심으로 이해될 수 있는 걸까.


 


일단 김수현 작가는 비록 최고 흥행 드라마작가일 망정, 영화 시나리오 쪽에는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1968년, 즉 41년 전에 ‘저 눈밭에 사슴이’ 라는 작품으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입봉’하고 70년과 71년에 ‘미워도 다시 한번 3부’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 등 ‘미워도~’ 시리즈의 후속편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변장호 감독의 ‘보통 여자’, 박철수 감독의 ‘어미’(85년), 그리고 2001년에 ‘미워도 다시 한번 2002’를 썼다. 숫자로 따지면 대여섯 편은 되지만, 내막을 보면 옛날식 최루성 멜로인 ‘미워도’ 시리즈만 3편, 그리고는 80년대 중반에 두어 개 작업한 정도가 전부다.


 


이런 그에게 7년 만에 영화 시나리오의 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작품은 개성적인 스타일리스트인 김기영 감독의 60년 작 ‘하녀’의 리메이크였다. 옛날 생각도 나고 영화 쪽에 재도전한다는 면에서 작가로서 해 볼만한 작품이었을 거다.


 


그러나 사실 그의 영화적 완성도가 과연 드라마의 그것에 버금가는지, 혹은 수십 년간 익숙해진 드라마적 접근과 호흡이 2시간 남짓에 모든 것을 압축해야 하는 영화 작업과 어울리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10.26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과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래된 정원’ 등 나름 개성 있는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 임상수의 눈에는 이 영화에 대한 김수현식 접근이나 대사들이 그리 근사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머 감독 눈에 좋게 안 보였으니 많이 수정했지 않았겠냐


 


말 나온 김에, 왠지 아무도 안 건드리는 듯한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함 해 보자. 과연 김수현 드라마들이 그가 보여 온 자존심과 고집에 어울릴 만큼 위대한 작품들인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어려서부터 ‘사랑합시다’, ‘사랑과 진실’로 시작해서 ‘엄마가 뿔났다’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작품들은 나름 섭렵한 입장이고, 김수현 작가의 설정이나 캐릭터, 대사 등이 다른 유사한 드라마들에 비해 뛰어나고 감각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우리나라 드라마의 범주 내에서 그런대로 낫다는 정도 이야기다.


 


머 필자도 소녀시대의 팬으로서 잘 만든 엔터테인먼트를 폄하하고 싶은 맘은 전혀 없다. 하지만 80년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김수현 작품들은 솔직히 말해서 잘된 미국 드라마들의 깊이나 섬세함에 비할 바가 아니고(‘Grey’s Anatomy’ 나 ‘Battlestar Galactica’ 를 몇 편만 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선덕여왕’ 같은 지적인 수 싸움의 묘미와 쾌감도 없는 그저 볼만한 수준의 전형적인 가족/치정 드라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마치 위대한 거장이나 문호의 반열에 오른 듯한 과장된 자의식과 고집을 자주 비추어 왔다. 요즘 국내외의 잘 만든 드라마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혹시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감독은 연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에 대해 사실상 모든 책임을 지는 입장에 있다. 그런 감독 입장에서, 지난 사반세기 동안의 영화 경력이 24년 전인 85년에 한편, 2002년에 또 한편에 불과한(‘미워도 2002’는 흥행에서도 참패) 드라마 작가의 영화적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김수현 작가 쏟아 부었다는 2개월은 시나리오 작업으로 긴 시간도 아니다. 드라마 집필의 호흡으로 보자면 무척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배경 하에서 작가 본인이 임상수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하고 추천을 했다면, 그리고 글에도 있듯이 ‘당신의 능력을 믿으니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마음 놓고 보충해 봐라’ 라고 까지 했다면 스스로 공을 임상수에게 넘긴 셈이다. 물론 그래서 가지고 온 게 생각보다 너무 많이 바뀌었다면 기분이 상할 수야 있겠지만, 서로 프로답게 논의를 하면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입장에서 함께 풀어 나가면 되는 거다.


 


물론 감독이 시나리오에 지나치게 간여하는 영화계의 관행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며, 프리랜서인 작가 입장에서 오랜 세월 PD나 감독들의 ‘전횡’에 대해 쌓이는 게 있고 때로 방어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점이 문제라면 이것은 개인 김수현의 황당함이나 자존심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단지 모든 시나리오 작가들이 매일같이 겪는 일을 겪었을 뿐이다. 그런 부분이 문제로 여겨진다면 제기하되,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오랜 기간 역임했던 사람쯤 되면 거기에 보편성을 부여해서 시나리오 작가들의 창작의 권리와 감독과의 역할 분담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민을 했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임상수와 조율을 해서 일을 잘 풀어나가고 앞으로의 좋은 선례를 만들면 된다..


 


그러나 위 글을 보면 그는 수정된 시나리오를 보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나머지 일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은 것 같다. 결국 ‘할 수 없죠 제가 선생님을 따라야죠' 라는 말이 나오도록 임상수를 굴복시키고, ‘당신 대본 중에서 골라 쓸 수 있는 게 있으면 수정 본에 끼워 넣어 주겠다’며 시나리오에 대한 모든 최종 편집 권한을 자신이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임상수는 물론 다른 어떤 감독도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지금 하려는 작품이 김수현의 흥행력이 검증된 TV 드라마 쟝르도 아니고, 또 방송사의 직원으로서 말 그대로 ‘연출’만이 주 업무인 드라마 PD와, 영화의 기획부터 배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영화감독은 입장과 일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격다짐’은 임상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하고 있는 거다.


 


아마도 방송에서의 불패 신화에 너무 젖어 있고, ‘토씨 하나 바꿀 수 없다’는 고집에 대해 PD나 연기자들이 보여온 지나친 존중(김수현의 문장이 모조리 위대한 명문이라기 보다는 흥행이 잘 됐기 때문에 가능했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어디서든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


그러나 본인이 뚜렷한 성과를 남긴 바 없는 영역에서까지 그런 것을 바란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딴지에서 필자는 10년간 수백 편의 글을 쓴 최고참 필자고 내 글을 토씨 하나 건드리는 사람도 없다. 방송 다큐를 만들게 된 것도 그런 딴지의 경력과 글을 보고 그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 온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송 일을 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니 피디 당신은 내가 만든 구성과 대본으로 촬영만 하면 된다. 머 괜찮은 게 있으면 좀 끼워 넣어 주마’라고 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원칙은 김수현이 아니라 톨스토이나 헤밍웨이라
한들 크게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수현 작가는 글에서 “내 대본이 자기가 다룰 수 없을 만큼 조악했으면 간단하게 '나는 이 대본으로 연출 못하겠습니다'하고 연출 포기를 했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임상수의 뒤늦은 배신 행위를 비난하고 있지만, 자신이 추천한 감독이 실제로 그런 소리를 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심히 궁금하다. 이런 건 정직한 말이 아니다.


 


더 불편한 부분은 ‘요즘 젊은 아이들이 무섭다는 실감으로 등골이 써늘합니다’는 소리다. 누가 들으면 임상수 감독이 이제 막 입봉하는 30대 초반 감독이 아닌가 착각할 수 밖에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1962년 생으로 이제 곧 우리 나이로 49세가 된다. 지난 십여 년 간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감독들인 박찬욱, 봉준호나 곽경택, 윤제균 같은 흥행 감독들보다 오히려 위다. 임상수보다 위 또래에서 뚜렷한 입지를 보이는 감독이래 봤자 김기덕이나 이준익, 강우석, 홍상수 정도인데 그나마 나이 차도 2,3년에 불과하다.


 


아무리 본인 나이가 많다고 하지만 이렇게 50이 다된 감독에 대해 ‘요즘 젊은 아이들…’ 운운하는 표현으로 막말을 하는 게 정당한 것인지, 또 말과 글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수현 작가가 이런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우세를 점유해야만 하는 건지,


 


필자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방송 작가들 정말 고생 많이 한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입이 아프지만, 특히 ‘새끼 작가’라고 불리는 20대 여성 작가들의 중노동과 박봉, 불안한 지위 등은 다른 어느 방면의 계약직 노동자보다 나을 게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점은 영화의 스태프들도 하나도 나을게 없다.


 


따라서, 그런 시스템 속에서 일하기도 했던 필자 입장에서 김수현 같은 거물 작가가 감독을 상대로 작가의 고유한 권리와 자주성을 주장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명분보다 ‘에고’가 우선하고 영화 작업의 총괄자로서 감독의 입지에 대한 이해 없이 사회적 지위와 연배를 내세운 시시한 자존심 싸움이나 한다면 그건 작가들에게도 아무 도움 안 되는 일이다.


 


지난 2008년 3월, 김수현 작가는 과거 이사장직을 맡았던 방송작가협회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그 이유는 이사장 선거에서 자신이 미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고 다큐멘터리 작가인 현 김옥영 이사장이 당선되었다는 사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도 이사장 선거 때 자신이 미는 사람이 되지 않자 협회를 나갔다가 다시 가입한 적이 있다고도 한다.


 


김수현 작가의 이번 행동과 저 글도 이런 그의 성격 및 행보와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드라마 발전에 공을 많이 세운 분이고, 또 그 바탕으로 지금 선덕여왕 같은 드라마도 나올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바닥의 최고참이자 원로로서, 또 많은 나이에도 아직 왕성히 활동하는 현역 작가로서 좀 더 열린 마음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품어 주면 안 되는 거냐.


 


그도 이제 70이 다 되었고 사람이 언제까지고 히트작을 내놓을 수는 없다. ‘토씨 하나’ 류의 고집도 어느 날 김수현의 글빨이 먹히지 않는 순간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영화 일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 젊은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 김수현이라면 언제든 반길 것이다. 허나 자존심만 내세우고 어린 것 운운하며 작업 과정에서의 불쾌한 일들을 이런 식으로 표출해서 쓸데없는 뉴스나 만드는 노회한 원로라면, 그런 사람은 이미 이 땅에 너무 많다.


 


딴지 문화부장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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