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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천재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질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질투란 언감생심 비슷한 처지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쳐다보지 못할 나무에 느끼는 적대감은 열등감이지 질투가 아니다. 그저 그들을 보며 감탄하며 저 사람과 내가 동시대에 살고 있구나 절감하며 어깨 으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많은 천재가 나왔지만 그 가운데 5천 원 지폐의 주인공 율곡 이이는 톱클래스에 든다.

 

그 어렵다는 과거 시험에서 아홉 번 장원을 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린 일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넘사벽의 천재는 일곱 살 때 이웃집에 사는 한 진상 아저씨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에 관한 짤막한 전기를 쓴다. 어린날의 율곡의 눈에 걸려든 이의 이름은 진복창(?~1563)이었다. 율곡의 ‘진복창전’ 중 일부

 

“군자는 마음속에 덕을 쌓는 까닭에 그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소인은 마음속에 욕심을 쌓는 까닭에 그 마음이 늘 불안하다. 내가 진복창의 사람됨을 보니,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품고 겉으로는 평온한 척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이 뜻을 이루게 될 때 걱정해야 할 일에 어찌 한계가 있으리오.”

 

일곱 살 천재도 천재지만 대관절 어떤 인물이길래 이렇게 밉보였을까.

 

진복창도 천재였다. 중종 30년 (1535) 문과에 장원으로 화려하게 급제하여 어사화 쓰고 한양 대로를 누빈 천재였다. 말이 쉬워 장원급제지 조선 최고의 천재 인증이다. 그런데, 멋지게 데뷔한 것은 좋았는데 이 사람은 공부만큼이나 다른 쪽에도 남달랐다.

 

당대의 권신이었던 김안로가 개고기라면 환장을 했는데 먹음직스런 개고기 구이를 듬뿍 갖다 바치며 김안로의 눈에 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이다. 장원급제의 자존심 따위는 개라 주라지였다고나 할까. 그의 목적은 오로지 출세, 그리고 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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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헌부, 즉 요즘의 검찰이라 할 부서와 관리들을 비판하고 탄핵하는 언론기관이라 할 사간원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와도 같았다. 사람들 허물을 잡아 잡도리하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은 탄핵하여 내쫓거나 바보로 만들거나 심한 경우 죽여 버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율곡 같은 천재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금새 진복창을 알아보았다.

 

“득세한 무리들에게 붙어서 온갖 방법으로 매달린 끝에 얻어내고야 말았다. 헛된 명예가 전파되자 식자들은 그 간교(奸巧)함이 말할 수 없어서 끝내는 반드시 나라를 그르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추천한 자가 많아서 필경 막지를 못하고 드디어 풍헌(風憲)을 맡는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교만하게 한세상을 살면서 인물(人物)을 해치는 데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다.” (명종실록 명종 1년 4월 26일)

 

진복창에게 사헌부 장령이 내려지던 날, 사관의 평이다. 을사사화 때 대활약을 하며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럴 수밖에.

 

이 진복창이 권력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구사한 작전 중의 하나는 겸손함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기뻐 미칠 것 같으면서도 그는 짐짓 사양하는 체하며 벼슬 주는 사람을 감복시켰다.

 

“신은 본시 용렬하고 재식(才識)도 없는데 어진 임금(聖明)을 만나 좋은 자리(名器)를 욕되게 한 지 이미 한두 차례가 아닌데, 지금까지 털끝만큼의 도움도 없고 가끔 물의만 일으켜 오다가 .... 신같이 천박하여 인망이 없는 자는 진실로 하루아침이라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명종실록, 명종 1년 8월 22일)

 

벼슬을 사양하며 뜨겁게 내뱉은 소리다.

 

진복창은 툭하면 벼슬을 내던지면서 초연한 체 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었던가 임금들은 깜박 속아 넘어갔고 “그대에게 물망이 없었다면 어찌 선왕조 때부터 중용했겠는가. 사양하지 말라.” 고 목이 메어 말하는 시추에이션이 벌어졌다. 진복창 역시 울먹이며 코를 땅에 박았겠지. 성은이야 망극하고 말고.

 

어린 나이로 명종이 왕위에 오르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자 진복창은 윤원형 밑에 찰싹 붙어 있었다. 특히 윤원형과 밀접한 관계였던 이기(李芑)의 심복이 됐다. 대사간까지 올라간 진복창은 이기와 콤비를 이뤄 선왕 인종의 외척이었던 윤임의 세력 등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런데 이 이기가 너무 나대는 꼴이 윤원형 눈 밖에 나는 눈치를 보이고 대사헌 구수담이 이기를 공격하자 잽싸게 이기를 탄핵한다. 이기의 입장에서는 뒤통수가 찢어지는 심경이었으리라.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야사에는 이기가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하자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소이다.”라고 했다고도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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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과는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절대루.

 

진복창의 특징은 이렇듯 뒤통수치기였다. 그를 사헌부로 이끌어 준 것은 이조판서 허자였지만 진복창의 정체를 알고 띄엄띄엄 대하자 바로 음모를 꾸며 탄핵하여 지방으로 귀양보내 거기서 죽게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 진복창은 겉으로 벼슬에 초연한 척, 강직한 척 연기를 잘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사람 중의 하나는 분연히 나서 간신 이기를 공격했던 대사헌 구수담이었다.

 

구수담은 강직한(?) 진복창을 아꼈지만 점차 그 본색을 알고 멀리했는데 진복창은 구수담의 뒤통수도 강하게 쳐서 삼수갑산의 궁벽진 고장 함경도 갑산으로 쫓아냈고 결국 사약을 받게 만든다. 구수담은 사약을 먹으며 “내가 저놈을 몰라보고!”라며 더 진한 피를 토하지 않았을까.

 

윤원형의 앞잡이로서 별 짓을 다하던 진복창도 탄핵의 대상이 된다. 선비들의 탄핵을 보면 얼마나 치를 떨고 있는지가 보인다. “진복창의 간사하고 반복하고 교활하고 독한 형상은 이루 다 기록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어린 명종은 진복창이 충신이라며 감싸지만 윤원형은 이미 진복창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진복창은 독랄했던 것이다. 진복창에게 걸린 사람은 그 집안의 어린아이들까지 화를 입는다 했고 별명은 ‘독사’였다. 윤원형에게도 부담일 밖에.

 

진복창은 자신이 탄핵한 죄인들에게 걸핏하면 ‘종묘와 사직에 죄인이다’고 떠들었다. 이 문구가 들먹여지면 기본적으로 죄는 무거웠고 귀양지는 멀었다. 진복창을 탄핵할 때는 이 말이 거론되지 않았으나 조정의 공론은 “그 새끼는 먼 곳으로!”였다. 구수담이 사약을 받고 죽은 갑산의 옆고을, 삼수갑산의 삼수로 귀양간다. 여기서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하고 삼수 군민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서 행패를 부리다가 위리안치, 즉 가시덤불 속에 고립돼 살다가 쓸쓸하게 죽는다.

 

앞서 얘기했듯 진복창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주로 활동하며 권세를 부렸다. 그의 눈밖에 난 사람들은 벼슬 떨어지는 것은 물론, 목숨을 건사하기도 바빴다. 법을 들이밀며 관리들을 탈탈 터는 사헌부, 장원급제한 문장으로 준엄하게 정적들을 저며 내는 그 솜씨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쏟았고 죽어갔다. 오로지 진복창이 탐했던 것은 권력이었고, 그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윤원형이 이렇게 얘기했을까.

 

“성품이 본래 간사하여 날마다 보복을 일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그의 고기를 먹으려는 자도 있습니다. ”

 

모름지기 사람을 감찰하고 탄핵하고 형벌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에게도 엄해야 하며, 자신의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힘의 무게를 처절하게 느껴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못할 때 그들은 ‘그 고기를 뜯어먹고 싶은’ 악한이 되며 ‘독사’가 되며 ‘간사하고 교활하여 끝내 나라를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진복창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어디 진복창 뿐이었으랴. 사람 잡는 위세를 휘둘러 본 자들은 좀체 그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인정한 사람을 물고, 자신을 끌어준 자의 손을 끊으면서도 그 힘을 빼지 않으려 하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누구든 뒤통수에 구멍을 낸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바뀌지 않고서는 나라가 바뀌지 않으리라 하였다.

 

진복창이 삼수로 귀양간 후 한 선비가 사헌부 관원들에게 호소하며 남긴 한 선비의 시가 실록 외전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사진은 사헌부 검색했는데, 왜 이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딴지 서버의 오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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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본문과는 무관한 이미지입니다.

 

 

 

檢邪亂終疵 검사란종자

간사함을 단속하는 것은 어렵고 결국은 상처로 남아

 

每愚懲何多 매우징하다

늘 어리석어 늬우치는 일 얼마나 많은지

 

耐路男不隱 내로남불은

겪어야 할 일 참는 사내는 숨지 않는다.

 

只傷催慷自 지상최강자

단지 상처 입어 눈물 흘리고 스스로 의분에 차 외칠 뿐.

 

陳復昌催朽 진복창최후

진복창이란 놈은 구린내를 재촉했지

 

記憶何屍够 기억하시구

기억하시게 얼마나 많은 시신 쌓였던가를

 

制魃征盜勞 제발정도로

귀신들 제압하고 도둑들 때려잡는 노력으로

 

乞語誅豺尤 걸어주시우

엎드려 빌건대 특히나 그 승냥이만큼은 죽여 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