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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다. 무엇이든 뚫는 창, 그리고 무엇이든 막는 방패란 양립할 수 없다. 흔히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우리는 '모순되었다'고 표현한다.

 

이 말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당연히 같은 단어를 쓰지만, 우리와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사회모순(社會矛盾)'이라고 하면 무슨 의미가 연상되시는가? 이는 문자 그대로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상황'을 비유한 것으로, 우리는 이때 흔히 '갈등(葛藤)'이란 말을 쓴다.

 

사회문제를 표현할 때, 우리가 그 혼란상을 강조해 얽히고 섥혔다는 뜻의 갈등이란 말로 표현하는 데 비해, 중국은 구조적 대립관계를 인식해 모순이라고 표현한다.

 

2019년의 중국을 정리하자면, 이 말이 가장 와닿는다.

 

모순.

 

 

 

외부모순 - 미국의 무역규제, 투자심리를 찌르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반중국 성향이 강해짐에 따라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차질을 빚었지만, 미국의 무역규제보다 아프진 않았다.

 

관세 문제로 시작해 화웨이 규제로 이어진 미국의 조치가 장기화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유예조치나 협상 등으로 인해 중국이 입을 타격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무역규제의 초점은 2019년이 아니다.

 

인텔이나 퀄컴 등의 기술표준을 보급해온 미국의 방식과 달리, 중국은 자국설비를 보급하고 거기에 효율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게끔 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핵심기술 개발이 아니라 설비의 효율적 운영을 미끼로 기술표준을 자신들에게 맞추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은 베끼고 훔치면서 국제적 원성을 들었다.

 

미국이 화웨이에 창날을 겨눈 건 5G 기술패권의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추상화시켜보면, 개별제품의 판매가 아니라 중국 자체의 기술표준을 억누르는 데 미국의 목적이 있었다. 나는 화웨이 이상으로 무역규제가 번지지 않으리라고 보았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무역규제의 실상은 (미국이 인정하는) 국제적 무역 기준을 중국이 받아들이라는 압박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규제는 표면적으로 보호무역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국가가 배제된 기업 중심의 자유무역 방식에 동참하라'는 것이고, 특허권에 기반한 핵심기술 이용료를 가격에 반영하라는 것이다. 그간 중국은 보이지 않는 보조금과 기술도용의 방식으로 첨단산업을 부흥시켜왔고, 이는 국가차원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웨이가 처한 난점들, 이를테면 AP 설계, OS, 5G 기술 등이 사례에 해당한다.

 

중국이 끝까지 화웨이를 방어하려 했다면, 중국의 모든 수출 산업은 특허나 정부 보조금을 근거로 무역제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관세부과는 미국 정부가 쓰기 쉬운 상징적 수단일 뿐이며, 온갖 법적 소송과 안전성 문제 등이 뒤따랐으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국은 화웨이 제재를 묵과하고 협상에 나서는 수밖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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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 중앙정부는 여전히 자충수를 두고 있다.

 

미국의 무역규제로 당장 피해를 본 기업보다 무서운 것은 투자심리의 위축이다. 중국엔 수많은 부실기업이 있고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영기업을 연착륙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는데, 수출이 줄어들고 투자가 위축되면 부실기업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중국 정부는 아직도 이를 계획경제 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부실기업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은행을 병합하거나 없애고, 부정적인 여론을 억압하는 방식들이 그렇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더욱 강한 수준의 여론 차단 정책을 쓰고 있다.

 

무역규제에 대한 중국 수출기업의 입장을 예상해보자. 화웨이는 누가봐도 정부가 키운 기업이다. 그로 인해 미국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피해를 우리 기업이 짊어져야 하는가? 정부가 화웨이를 도우듯이 우리의 수출 손실에 대해서도 보상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공장가동이 어려워지고 실업이 발생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가? 무역규제가 장기화될 거라면 신규투자는커녕 하루라도 빨리 공장을 닫는 편이 이득이지 않겠는가? 불경기가 예상된다면 먼저 예금을 챙겨 실물화해야 하는데, 국내 부동산은 끝장 났으니 해외 부동산이나 금으로 치환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런 합리적인의문에 대해 중앙정부가 해줄 수 있는 건 당 차원의 격려나 감독관을 파견하는 게 전부다. 투자심리가 활성화되는 쪽으론 전망하기 힘들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금융 리스크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고 전망한다. 꽤 오래전부터 중국의 금융 위기는 심심찮게 지적돼왔지만, 최근 불거진 지방은행들의 '뱅크런(Bank Run. 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 상태를 우려해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사태)' 때문이다예금인출이 폭주하는 현상은 금융위기가 기업 차원을 넘어 소액주주와 예금자 차원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됐을 때 발생한다.

 

블룸버그는 중국인민은행 자료를 인용하며 '2018년 기준으로 기업들의 총부채가 GDP 165%를 넘어 과잉차입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사실 일반인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중국 고위 관료들이 캐나다에 땅을 사고 가족들을 이민보내고 있다', 나아가 '중앙정부가 곧 화폐개혁을 단행할 예정이라 미리 금을 사두고 있다'는 속설이 훨씬 의미있게 들릴 것이다. 일설에는 '화폐개혁 뿐만 아니라 모든 사유기업을 폐쇄하고 국유화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말을 신뢰로 대체해 읽을 때가 있다. 신뢰는 오랜 시간 축적됨으로써 제 기능을 발휘하며, 한번 망가진 신뢰를 다시 쌓기는 힘들다. 중국도 그간의 발전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볼 수도 없는 게, 중국은 또다른 사회모순을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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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및 기사 - 링크

 

 

내부모순 - 2019, 광둥성 화저우시 원러우진의 이야기

 

'사회주의와 민주화'라는 대치구도를 만든 홍콩이야말로 중국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사회모순이다. 이미 이전 기사에서도 다루었고 다들 잘 알고 있으니, 이번 기회엔 이게 중국에서 무슨 의미인지 전달해보도록 하겠다.

 

2013, 광둥성 마오밍시(茂名市)와 화저우시(化州市)는 화장장과 장례식장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화저우시는 마오밍시에 속한 하급 지자체이며, 두 도시는 130Km 정도 떨어져 있다. 마오밍시 관할지역의 인구는 800만 명에 달하지만 화장장은 단 한 곳밖에 없어 공공화장장이 필요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2014년 화저우시의 리강진(丽岗镇, 우리 식으로는 군급 지역)에 화장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해당 지역엔 산지 거주민이 많았으며 매장 풍습이 강한 곳이었다. 화장장이 주는 불길한 이미지도 있었다. 무엇보다 화장장의 위치가 문제였는데, 몇 만 명이나 사는 거주지역에서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대기오염과 잿가루 문제를 우려했고, 일방적인 결정에 반대하기 위해 화저우시 청사를 둘러싸고 항의집회를 벌였다. 공식적으론 500여 명이라고 한다.

 

중국 공안이 어떻게 나왔을지는 예상 가능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있는 대로 잡아다가 때리고 했던 모양이다. 구경해도 잡아가고 왜 잡아가냐고 소리쳐도 잡아가고... 화저우시는 가난한 산촌 지역이다. 한두 집 건너면 다 친척이고 아는 사람이다. 그런 곳에서 몇백 명이라고 하면 결국 모든 주민들의 아는 누군가가 잡혀간 셈이다.

 

화장장 항의 집회는 곧 전면적 시위로 번졌다. 2014 4월 화저우시에서 대대적 시위가 발생한다. 이때부터 제대로 보도되기 시작한다. 시위규모는 몇 천~1만 명에 달했고, 공안이 1000명 넘게 출동했다. 20대의 남자가 한 명 사망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다. 결국 화저우시는 화장장 설치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현지 시위 장면을 볼 기회가 별로 없을 테니 번역은 없지만 참고해서 보시라. 대만 방송이고, 현지에서 사람들이 찍은 영상을 재구성한 듯하다.

 

2014 4 14일 화저우시 화장장 반대 시위 보도

 

 

2014 4 15일 화저우시 화장장 반대 시위 보도

 

시 정부에서 취소했으니 모든 게 끝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15년엔 8만 명이 사는 허지앙진(合江镇)에 화장장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역시나 거주지에서 1km밖에 안되는 문제로 시위가 시작됐다. 5 11일에 있었던 천 명 규모의 시위다. 600여 명의 공안과 장갑차살수차최루탄이 동원되었다증언에 의하면 이 때 13살 되는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2015 5 14일 시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정부는 우리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고, 취소했다고 해도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단순히 화장장을 어디다 세우느냐의 문제를 넘어, 정부가 우리를 무시하고 죽일 수 있다는 생존권의 문제로 한 차원 격상되는 것이다.

 

역시나 화저우시는 화장장 건설을 다시 시도한다. 이번엔 원러우진(文楼镇) 지역을 대상으로 생태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설문조사에 나섰다. 낮에 집에 들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생태공원 찬반 여부를 묻고 승인을 얻어냈다.

 

그렇게 2019 11 27일 화저우시 홈페이지에 생태공원 공고가 게시되었는데, 여기에 화장장과 장례식장이 포함돼 있음이 밝혀졌다. 중국 네티즌이 이를 놓치지 않고 발견해내었고, 이튿날인 11 28일 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예상대로 이들은 공안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시위는 급격히 확산되기에 이른다.

 

2019 11 29, 시위 현장 스마트폰 촬영 모음

 

2019 11 30, 화저우시 시위 홍콩 보도

 

<빈과일보>에 따르면 이틀 간의 시위로 2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시위대에서도 저항이 강해졌다. 목재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벽돌을 던지는가 하면, 경찰차를 뒤엎어버리는 등 이전의 피켓시위 형태보다 거셌다. 그리고 이런 구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光復茂名, 時代革命(마오밍 해방, 우리 시대의 혁명)

 

홍콩에서 외쳤던 光復香港, 時代革命(홍콩 해방, 우리 시대의 혁명)을 바꿔 부른 것이다.

 

11 29일 원러우전 정부에서는 화장장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하며, '영원히 세우지 않겠다'는 공문을 발표한다. 지역당 서기가 직접 나서서 자신이 서명했으니 믿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시위로 당국의 방침이 바뀌는 일이 중국에서는 있기 힘들기에 나름의 소득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장소만 바꿔가며 해왔던 일인지라 믿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체포됐던 사람들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있을까 근심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중국 전역에서 발생할 것이다. 언론이 통제된 중국이기에 우리가 전해듣기 힘들 뿐이다.

 

홍콩 시위는 중국에서 하나의 모범이 된다. 불합리한 억압에 저항하고, 그럼으로써 실제로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모범 말이다. 이는 반드시 천안문 급의 대규모 시위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화저우시와 같은 양상이 촉발될 수 있고, 어떻게 그것이 확산될지 모른다. 이것이 중국의 내부모순이다.

 

일본의 무역규제를 소재로 한 기사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거시화된 통계로 측정되지 않는 개개인의 행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한국의 불매운동과 젊은 층의 인식변화가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 나아가 내부모순을 대하는 중국 집권층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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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국이나 국제여론을 크게 의식한다. 이는 여론이 없으면 언제든 시위를 제압할 수 있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허나 그렇지 않다. 진짜 의식해야 할 여론은 자유를 갈망하는 홍콩 사람들에 대한 시민사회적인 연대, SNS와 유튜브로 확산되는 동질감이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막는다 한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홍콩의 시위가 더 불을 붙였을지는 몰라도 중국의 내부모순은 결국 터지게 되어있다.

 

내가 전망하는 중국은 그래서 무섭다. 독재체제가 강화되고 있는 정권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GDP 세계 2위인 나라가 한순간에 국영화로 돌아선다고? 중국은 그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른다. 홍콩 시위대에 본토의 특경들이 투입된다고? 그럴 수 있는 데가 중국이다. 이것도 변혁이라면 변혁이겠지만 나는 바라지 않는다. 2020년 우리에게 수많은 위기와 변수가 있겠지만 중국의 모순에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방패는 이제 안팎의 창날을 견뎌내기엔 수명을 다해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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