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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ㅇㅇ법인 근로자 대표 나야나 입니다. 실명 까고 노조 만들 사람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상대 : (당황)원래 탐색전 하고 이름을 까는데 바로 말하셔서 당황스럽네요...

 

나 :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합법적 일을 하는데 문제 될 게 있나요? 그래서 프로필도 제 걸로 들어왔습니다. (생략)

 

 

 

사실 대화를 하기 전에 아내에게 물어봤었다. " 노동조합을 해보려고 하는데 어때? 보고 싶어. 이거 하면 죽기 전에 후회할 같아." 대답은 "그런 정도면 해봐." 였다. 고마웠다. 나의 당당한 발언은 이런 우리 집 권력자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같다. 시간이 지나 때의 일을 다시 물어보았다.

 

: 그때 네 쉽게 허락 줘서 마음이 편했어. 고마워.

 

아내 : 쉽게 없어!! 죽을 후회할 거라며? 그럼 원망하면서 죽을 아냐? 꼴은 내가 보지. 그리고! ! 이렇게까지 깊이 알았나?! 어디 가서 내가 쿨하게 허락해줬다고 하기만 해 !!

 

역시 기억은 편한 대로 저장되고 회고되나 보다. 우리 집 권력자님 감사감사.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돌아가 보자. 대화가 있고 난 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 상의하고 싶었다. 만남은 그날 오후 5시쯤 이루어졌다. 보안을 하는 나보다 보안을 생각하며 조심스럽던 그는 회사 사람들이 가지 않는 근처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다. 떨렸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이때까지는 이런 일을 벌일 정도의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나거나 결의와 빨간 기운이 가득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인상은 회사 어디에서나 만날 있을 법한 평범한 개발자 A였다. 약간의 안도를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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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는 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내가 속한 법인이 지주사였고, 보안 직군이다 보니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을 몰라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만나보니 괜한 오해를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채팅방에 150 정도 있던 것이 생각 다른 분들도 빨리 만나 뵙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머뭇머뭇하며 솔직히 말해줬다. 원래는 함께 준비하던 분들이 계셨는데 분이 회사의 압력으로 퇴사를 하게 되면서 실명을 공개할 사람은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는 혼자서라도 진행을 하겠다고 했다. (... 이때 눈치까고 튀었어야 했는데…. 원통하다!!!) 그래서 내일 오전 10시에 설립을 선언할 거고, 다음 주 월요일에 홍보전을 할 거라 했다. 그러면서 괜찮으시면 홍보전을 도와줄 있냐고 했다.

 

... 이런 경우가 있지? 너무 급작스럽잖아! 보통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개월에 걸쳐 마음의 준비도 하고 사전 교육도 받을 텐데 나에겐 고민할 시간이 겨우 16시간이라니생각한 것과는 완전 다른 전개에 만감이 교차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건가? 싶기도 해서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그래서 홍보물 나눠주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같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돕겠다고 했다. 그러고 멋져 보이고 싶었는지 합류는 막차를 탔지만 가입은 1호로 하겠다 선언(?) 마지막으로 만남은 끝이 났다.

 

다음날 8 40. 카톡이 왔다. 그가 보낸 홈페이지 링크였다. 오늘 10시에 홈페이지를 통해 설립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온라인 가입을 받는다고 했다. (IT 회사 답게 노조 가입도 /오프라인을 모두 받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1 가입자가 되었다. 후훗. 그리고나서 여느 때처럼 출근하고 팀원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며 10시를 기다렸다. 당시 대부분의 이야깃거리는 노조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근처 회사에서 며칠  노조가 생긴 효과였을 것이다. 괜히 마음이 찔리고 표정 관리가 안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 우리 회사에 노조가 생긴다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 우쭐(?)하기도 했다.

 

10:00 정각. 단체 채팅방과 회사 메일, 그리고 언론 기사에 노동조합 설립 소식과레이드’, ‘크린치같은 게임 업계 용어가 잔뜩 들어간 설립문이 실렸다.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평균 근속 3! 개인주의의 끝판 대장이라 불리며, 모두가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 했던 게임회사에 하나의 노조가 탄생 순간이었다. 사무실은 갑자기 날아든 소식에 들썩거렸고, 회사의 모두가 흥분했다. 설립 2시간 만에 가입자가 100명을 돌파했다. 뭔 해야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나는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주말 저녁 전화가 왔다.

 

: 나야나 님이 수석 부지회장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왠지 해주실 같습니다.

 

나야나 : 그게 뭔데요? 뭔 높은 자리일 거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해도 되나요?

 

지금 대화를 보고 있는 여러분들도 때의 상태와 비슷할 같아 노동조합의 구조에 대해서 대충 후려쳐 본다. 노동조합은 특성에 따라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누어 있는데, 언론에서 말하는 위원장은 이런 노조들의 대표를 말한다.

  • () 노조 : 특정 산업의 기업(지회)들이 모여 이룬 노동조합 금속노조
  • 기업별 노조 : 기업의 노동자가 만든 노동조합 OO기업 노조
  • 일반 노조 : 산업을 구분하지 않고 연합하여 결정한 노조 서울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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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조들도 상위단체에 가입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민주노총이니 한국노총이니 하는 총연맹이다. 우리 지회가 속한 노조 역시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다. 자세히 설명하면 너무 길어질 같아 앞으로는 내용 이해를 위해 설명이 필요 때마다 조금씩 나가도록 하겠다. 사실 유럽 선진국의 초등 교육 필수 과정이고, 헌법에 보장 시민의 기본 교양인 노동조합을 따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기는 하다. (최근엔 일부 지자체에서는 교육 과정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하니 다음 세대는 달라지기를 바란다)

 

여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잘은 몰랐지만 자신이 없어 망설여졌다. 그러다 결심을 굳힌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서로 연봉과 소속 조직의 상태를 확인 순간이었다. 당시 그는 그룹사의 거의 모든 매출을 견인하는 프로젝트에서 5 이상 일을 하였고, 현재는 다른 신규 프로젝트로 소속을 옮긴 상태였다. 그래서 당연히 높은 연봉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아직 우리 회사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으니....), 경력이 2 적은 나보다도 연봉이 낮았다. (오해하지 마라! 특별히 내가 높지는 않다.)

 

… 이건 뭐지. 여긴 내가 가진 상식이 하나도 통하네? 거기에 더하여 내가 받은 작년 인센티브를 이야기하니, “ 그걸 인센이라고 준다고?”라며 그가 경악했다. 그렇게 비상식적인 상황의 우리 분노의 선은 일치를 보았고, 어차피 생각이라면 가장 줄에 서야 안전하다는 그럴싸한사탕발림 나는 수석직을 수락해버렸다. 이때부터 아내의 집안 권력은 한층 공고해졌고, 동안 Yes맨으로 살았다. 그래도… 여보 ...!!

 

그렇게 며칠 지나 홍보전의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그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노조를 세운 다른 IT 지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런 행동을 연대라고 하는데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든 () 노조의 가장 장점이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이제 시작해서 어리바 타다가 길드에 가입하면 길드원들이 쪼랩 템도 나눠주고 스킬 찍는 법도 알려주며 챙겨주는 것과 비슷하다. 홍보전은 노조 가입을 독려하는 (노보라고 불리는홍보물을 출근길에 나눠주는 것이었다. 홍보물의 내용은 내가 기존에 노조에 가진 선입견과는 전혀 다르게 게임 회사의 특성을 살려 각종 게임 용어와 SNS 스타일의 문구, 그리고 온라인 가입을 위한 QR코드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본의 틀을 IT다운 파격적이고 참신한 내용이라고 했다. 하긴 내가 참신했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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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출근하는 회사 앞이고, 오며 가며 만나던 사람들이지만, 막상 앞에서 노동조합 홍보지를 나눠주려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엄청 떨렸다. '혹시라도 인사팀이나 아는 사람이 보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불러서 "그만두든지 나가!"라고 통보를 하면 어떡해야 하지?' 같은 생각들로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확신에 표정으로 홍보지를 나눠주는 선배 노조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차마 입밖으로는 꺼낼 없었다. 그리고 줄이 가장 안전하다고 했으니 책임져(?) 주겠지! 라고 편히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1시간가량의 홍보전이 끝나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아까는 차마 밖에 꺼내지 못했던 불안들이 현실로 엄습했다. 누가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해도 불안해서 쳐다보고 왠지 실장님이나 상무님이 나를 따로 부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2시간 3시간…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어 갔지만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다.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라는 영화 올드 보이의 명대사처럼 나는 어쩌면 상상 속에서 홀로 겁에 질려 떨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정말 아무도 모르는 구나.' 이쯤 되니 왠지 섭섭했다. 딴에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심이었는데 사람들은 정말 타인에게 관심이 없구나. 진짜 바로 무슨 일이 벌어질 알았는데, 이게 진짜 아무 일도 일어나는구나... 현타...마상... 결국 인생에서의 도전이란, 막상 한 발 딛고 보면 별 거 아닐 있다는 가장 명쾌하고,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