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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호텔 주방을 상상해보자

 

상상해보자. 호텔 주방에 쉐프  명이 있다. 주어진 미션은 짜장면 1,000그릇 만들기. 각자 만든 만큼 돈을 준다. 1그릇당 1 원씩. 쉐프 1명당 100그릇까지는 보장해준다. 그러니까  300그릇은 임자가 정해져 있다. 나머지 700그릇은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임자다. 최소 100 , 최대 800 원까지   있는 미션!

 

규칙은 이렇다. 호텔에서 준비한 조리도구와 재료를 같이 쓴다. 칼과 국자 정도만 개인 연장을 허락한다. 쉐프  명당 보조 쉐프는  명까지   있다. 보조 쉐프 역할은 공동으로 준비된 조리 기구와 재료를 쉐프에게 날라주거나 세팅해주는 거다

 

주방 분위기는 어떨까?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거다. 보조 쉐프들끼리 재료 쟁탈전을 벌일 테고, 가스레인지나 오븐처럼   되는 조리 기구는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일 거다.  과정에서 시기와 질투, 때에 따라 쌍욕과 주먹다짐이 오갈 수도 있다. 그 때 쉐프  명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이렇게 싸우지 말고  팀당 333그릇씩 만드는 걸로 합의하자. 대신 내가 사장한테 1그릇당 1,000원씩  달라고 얘기해볼게. 어때?”

 

그럼 다른  명의 쉐프가 이렇게 말하겠지.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실력에 자신 없으니까 괜한 소리 하고 있고만. 지금부터는 전쟁이야. 혼자 젠틀한 척하지 말라고!!!”

 

, 호텔 주방이, 말하자면 건설 현장이다. 쉐프가 목수 오야지고, 보조 쉐프는 새끼 반장이다. 짜장면은 아파트고, 칼과 국자는 망치다. 가스레인지과 오븐은 타워 크레인과 지게차쯤으로 치자.

 

재료는 목수들에게 필요한 유로폼(거푸집   쓰는 자재. 공장에서 찍어낸 나무 합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합판, 각재, 삿보도(천장 지지할  쓰는 둥근 쇠파이프. 'Support'에서 파생), 각파이프 등이라고 치자.

 

상황과 규칙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가 호텔 주방에서 상상하고 예상해볼  있는 일이 노가다판에서 똑같이 벌어진다. 어쩌면 더욱 심하게. 이번 편은 바로  얘기다. 이른바, '자재를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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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링크

 

공기(工期) 결정하는 가장  요인

 

 얘기에 앞서,  가지를 설명해야 한다.

 

우선 건설 현장 하청 구조.  얘긴  차례 했지만, 간략하게 다시 설명하련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은 ‘다단계 하청 구조 돌아간다. 10개 짜리 임대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을 , 정부는 대형건설사(=원청) 도급을 준다. 원청은 중소건설사(=하청) 두어 곳에 하도급을 준다. 각각 5 동씩 맡은 A 하청과 B 하청 소장은 공정별 오야지를 모은다. 철근 오야지 1, 목수 오야지 3, 시스템 비계 오야지 1, 해체정리 오야지 1 등등. 오야지들은 각자 팀을 꾸려 현장으로 들어온다. 공정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20~50명이  팀이다

 

하청 건설사와 목수 오야지  정확한 계약 관계를   없으나, 통상 ‘1평당 100하는 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예를 들어 20평짜리 4세대가 1층으로 이뤄진 20 아파트 2 동을 목수 오야지가 맡으면 32 (100X20X4세대X20X2 ) 가져가는 거다.

 

인부를   써서, 아파트 2 동을 얼마 만에 완성할 거냐 하는 문제가, 말하자면 목수 오야지 역량이다. 적은 인원으로 빨리 완성하면 할수록 목수 오야지가 가져가는 이윤도 커진다. 바꿔 말하면 목수 오야지가 손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청 건설사와 계약은 32 원에 했는데, 아파트 2  완성하기까지 인건비가 40  들어갔다고 치자. 물론 그렇게까지 손해나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 약간의 손해 정도는 하청 건설사에서 보전해주기도 한다. 어쨌거나 손해는 목수 오야지가 감당해야  몫이다. (노가다판의 안전사고와 부실공사, 임금체납  각종 사건사고의 근원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목수 오야지는 어떻게 해서든 공기(工期, 공사 기간) 당기려고 한다.  공기를 결정하는 가장  요인이 바로 자재다. 아무리 목수들 실력이 좋고 호흡이 좋아도 자재가 없으면 일을  한다. 말하자면 목수 오야지에게는 자재가  돈인 거다.

 

자재를 단도리하는 사람이, 앞서 얘기한 새끼 반장이다. 자재를 제때 챙겨오느냐 아니면 어리바리하다가 뺏기느냐. 이것이 바로 새끼 반장들의 존재 이유다. 여기서부터 총성만 없지 욕설이 난무한 전쟁이 시작되는 거다. 목수 오야지는 새끼 반장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자재 뺏기면 니들도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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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는 전쟁의 서막

 

, 그럼 이쯤 드는 의문.  자재를 뺏고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가? 짜장면 10그릇에 양파 10개가 필요하다고 했을 , 사장 입장에서 양파 10개를 갖다 놓으면 보조 쉐프들끼리 싸울 일도 없을  같은데 말이다.

 

노가다판은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  글에서 여러  설명한 얼음 트레이부터 가보자(지겨운 사람은  문단 건너뛰세요)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얼음 만드는 과정과 같다. 얼음 트레이에  붓고 기다리면 얼음이 되듯, 거푸집이라는 것에 콘크리트를 붓고 기다리면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된다.

 

거푸집은  조각을     누벼  만드는 것과 같다.  조각이 말하자면 유로폼(공장에서 찍어낸 나무 합판이라고 치자. 600[가로 600mmX세로 1,200mm] 가장 많이 쓴다)이다.  유로폼과 유로폼을      맞춰 거푸집을 만드는 거다. 누가? 목수가. 정확하게는 형틀 목수가.

 

소모성 자재와 재활용 자재에 대해서도 여러  설명했다. 철근과 유로폼이 대표적이다. 철근이 건물 뼈대라면 유로폼은 건물의 살이 아니라 옷이다. 철근은 콘크리트 속에 묻혀 건물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이니까 소모성 자재다. 유로폼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거푸집   쓰는 자재다. 콘크리트가 굳을 때까지 모양만 잡아주는 거다. 콘크리트가 굳은 이후에는 해체해서 다시 쓴다. 재활용 자재다.

 

해서, 유로폼 같은 재활용 자재는 애초에 임대 형태로 현장에 반입해 이리저리 옮겨가며 쓰고, 공사가 끝나면 다시  정리해 반출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아파트 10 동에 유로폼 100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유로폼 100장을 임대하는  아니다. 대략 20~30장만 임대해서 101 거푸집에 썼다가 해체해서 102 거푸집에 쓰고, 다시 해체해서 103 주차장 거푸집에 쓰는 식이다. 유로폼뿐 아니라 거푸집   쓰는 합판, 각재, 삿보도, 각파이프 등도 마찬가지다.

 

 현장에 목수팀이  팀이면 이게 아무런 문제가   텐데, 보통은  현장에 두세  있다. 내가 직영으로 일했던 현장에도 목수팀이   있었다. 그러니, 서로 자재를 차지하기 위해  말리는 전쟁을 벌이는 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