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좌린 추천28 비추천0

 

 

 

 

 

요즘 핫하다는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두루뭉실 말하자면 근 이십 년 익숙해진 생활과 작별하고 홀로 뛰어든 세상에서 나는 재정적 동절기에 맞닥뜨렸고, 이런 위축된 계절일수록 성황을 맞이하는 업종, 음식 배달 대행업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꽃내음 따라 외식 나들이 다니는 봄날이 올 때까지 배달대행업으로 세상과 나의 겨울을 버텨보기로 했다.

 

 

 

1. 등록과 교육

 

작심하고 이 업종을 택한 것은 아니다. SNS에서 우연히 배민커넥트 모집광고를 접했고, 전기자전거로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조금 더 알아보게 되었다. 긱 이코노미니 플랫폼 노동이니 이런 일을 규정해 보려는 온갖 말들이 검색되었지만, 노는 자전거와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는 내 눈에 꽂힌 정보는 그저 '배달 1건 5,000원, 초보자도 시급 15,000원 가능'이었다.

 

배민커넥트 라이더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구글 폼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름과 연락처, 소유한 교통수단과 배달 일을 해보았는지 여부를 기입하고 참석 가능한 교육장과 일시를 선택하는 게 전부였다. 자전거로 외장하드며 USB 메모리 따위를 언론사나 제작사에 전달해본 적이 있었기에 배달경력에 '전기자전거로 거래처 납품'이라 적었다.

 

다음날 배민커넥트 지원에 합격하였으니 모일 모시 북부사무소 교육장으로 오라는 문자가 왔다.

 

젊은이 다섯과 아재 셋 정도가 교육장에 왔고 그 중 한 명은 여성이었다. 커플이 함께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해보려는 것 같았다. 산재보험과 유상운송보험에 관한 설명, 라이더 앱 다운로드 및 설치법과 간단한 업무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가게 점주 및 배달 고객을 향한 인사 예절에 대해 무척 강조해서 교육했고, 성폭력,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부분 역시 세심하게 교육했다. 나중에 맞닥뜨리게 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세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고객센터 문자 문의를 통한 문제 해결 절차를 배웠다.

 

자전거나 킥보드 라이더의 경우 교육 받은 날 자정부터 앱에 로그인이 가능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배달 시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교육과 계약서 작성, 사진촬영 및 장비 - 뱃지, 배달가방, 헬멧, 우의 수령이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요즘 배민라이더스 주문을 하면 픽업한 기사의 실시간 위치와 함께 얼굴 사진까지 뜬단다.

 

sIMG_4602.jpg

똭!

 

 

 

2. 배달대행업계의 사정

 

대체 우아한 형제들은 나라는 인간의 무엇을 믿었기에 이리 간소하고 신속하게 대행 계약을 맺고 당장이라도 배달을 보내고 싶어 안달인 것일까? 배달대행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

 

비 오는 수요일 얼큰한 짬뽕이 먹고싶어진 갑돌이는 냉장고에 붙어 있던 전단지를 확인하고 중국집에 주문을 한다. 주문을 받은 점주는 마침 모든 직원이 배달을 나가 있는 터라 자신이 가입한 동네 배달대행(혹은 배달중개) 업체에 '콜'을 띄운다. 배달대행 업체는 이 콜을 상황에 따라 특정 라이더에게 배당하거나 모든 소속 라이더에게 뿌린다. 라이더들은 자신의 배달대행 앱에 뜬 콜을 확인하고 동선이 마음에 들면 배차를 수락한다.

 

2-30분 동안 달랑 2-3천 원의 수입만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라이더는 비슷한 동선의 주문 콜 몇 개를 엮어 배달을 나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배달 소요시간은 조금씩 늘어난다. 배정받은 기사는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초보이고, 그에게 몇가지 사소한 불운까지 겹쳤다면 갑돌이는 나온지 30분도 더 지나 식고 불어터진 짬뽕을 배달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각과 실력이 뛰어난 라이더들은 가게 픽업과 고객 전달의 동선을 다섯 개든 여섯 개든 최대한 많이 엮으면서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아슬아슬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루 12시간에 최대 7-80콜 가까이 뛴다는 고소득 배달대행 라이더가 탄생하고 회자된다.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같은 주문 중계 앱 내 '배민라이더스' 탭이나 '요기요플러스' 탭에서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양상이 벌어진다. 흔한 배달음식 대신 유명 맛집의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라이더 운영 방식에도 약간 차이가 있다. 요기요플러스는 시급제 라이더를 모집해 지정배차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고, 배민라이더스는 배차 제한과 단가 프로모션으로 배달 품질 제고를 기하며, 짬짬히 일할 수 있는 일반인 라이더 배민커넥트를 모집하여 도처에서 발생하는 주문에 대응하고 있다.

 

배민라이더스 중부센터 지역의 경우에는 12월 11일 현재 라이더에게 기본 배달비 3000원~4000원에 1500원의 추가금을 더 얹어준다. 대신 동시 배차를 2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사동에서 두루치기백반 두 세트 받아 받아 평화시장에 배달하러 가는 도중, 시간 봐서 익선동 들러 돈까스 세트 하나를 더 업어 가는 식이다. 이렇게 두 건의 배달을 성공하면 뗄 거 떼도 대략 1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우버이츠 철수와 비슷한 시점에 시장에 진입한 쿠팡이츠 역시 무려 시급 보장에 배달 건당 7,000원을 제시하며 1대1 단독 배차 서비스를 런칭했다. 한 시간에 세 건도 못 해도 1만8천원은 보장해준다는 거다. 라이더가 배차 콜의 간을 보지 않고 즉시 수락할수록, 배차를 엮지 않을수록, 배달 속도와 품질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 회사들은 배달 단가 프로모션이라는 당근을 뿌려 더 많은 라이더를 영입하거나 배차 종용같은 채찍을 은근히 쓰거나 하는 식으로 거대해져가는 배달 시장의 파이를 움켜쥐려 한다. 지구 최고의 두뇌 이세돌 기사가 인공지능에게 밀려 은퇴를 하는 동안, 고위험 반복작업의 음식 배달 기사는 각종 플랫폼에서 모셔가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요기요는 여름 비수기가 끝날 무렵 시급제를 폐지하고 지입 방식에 강제배차까지 가능하도록 운영방식을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배달대행 기사의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이슈를 맞이했고, 초기 근무신청 성공이 하늘에 별 따기라며 인기를 끌던 쿠팡이츠는 콜 단가가 낮아지고 시급 보장이 사라져가는 기미가 보이자 순식간에 배달대행 기사들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와중에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던 독일 회사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 1위 업체 배달의 민족을 사들이고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주가 대박을 쳤다. 옥션을 인수한 이베이가 지마켓까지 인수하며 2011년 이베이코리아를 출범시킨 사례가 떠오른다.

 

s제목 없음-1.jpg

 

 

 

3. 첫 배달

 

큰 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사람들은 자꾸자꾸 치킨을 시켜 먹고 싶고, 나는 배민커넥트에 올라타기로 했으니 배달의 민족 화이바를 쓰고 음식 배달을 시작했다. 배민라이더스 앱을 열고 당일 운행 신청을 하면 몇 초 만에 운행 승인이 떨어진다. 운행 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때부터 콜이 수신된다.

 

콜에는 주문번호, 배달번호, 픽업주소, 배달주소, 주문메뉴, 금액, 받을 배달료, 고객요청사항 등이 담겨 있다. 배민커넥트의 경우 '앱에서 결제완료된', '직선거리 반경 2km 내'의 주문만 들어오며, 간혹 추천배차나 단독추천배차 콜이 들어오기도 한다. 단독추천배차는 일 시작한 지 처음 15일 동안 간혹 띄워주는데 다른 라이더보다 내게만 몇 초 먼저 보여주는 콜이다. 약간 여유있게 주문을 검토할 수 있다.

 

추천이든 단독추천이든 어쨌든 알록달록하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터치해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배차요청을 눌렀다. 대학로 소나무길 수제 버거집의 햄버거를 창신동으로 배달하는 건이었다. 낙산 능선을 따라 지어진 한양도성 건너편에 위치한 창신동은 사진 찍으러 자주 다니던 곳이라 친숙한 달동네다. 몇 건 더 배달해 보고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직선거리 1.0km밖에 되지 않는 나의 첫 배달 건이 바로, 대학로에서 동대문까지 내려가 다시 온갖 패브릭 배송 3륜 오토바이들이 즐비한 창신길 시장 거리를 통과해 가파른 구비구비 달동네 골목을 하염없이 찾아 올라가야 하는 대표적인 '기피콜'이었다. (배달대행 기사들끼리 이런 콜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긴 한데, 밥 배달하는 사람 입에 올릴만한 단어가 아닌지라 내맘대로 기피콜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네에서 신나게 자전거 타며 6,900원짜리 햄버거 하나 배달하고 5,000원을 받는 첫 경험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개천에서 피라미를 잡아 식당에 팔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족대로 피리 잡는 것 자체가 시간 가는줄 모르게 재미난 일인데 심지어 (푼돈이지만) 돈벌이까지 된다니!

 

두 번째 콜 역시 좋지 않은 콜이었다. 딴지일보 예전 사옥 근처에 있는 빙수 가게에서 아이스 라떼 한 잔을 받아 낙산길 모 아파트로 배달하는 건이었다. 한성대 쪽 길을 잘 모르는 내가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대학로에서 출발하여 동대문에서 좌회전, 동묘앞에서 또 좌회전, 창신역에서 또 좌회전하여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 아파트 단지로 진입해야 했지만 이번엔 직선으로 낙산 정상을 통과해 보기로 했다.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무심히 오르는 길이기도 했다.

 

가는 도중 문득 핸들 음료걸이에 달랑 걸어둔, 내가 배달하고 있는 음료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아이스 라떼 둥그런 뚜껑 구멍으로 커피가 넘치진 않을까?' 배달 나가는 커피는 용기를 랩으로 씌운 다음 그 위로 뚜껑을 덮는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극도로 불안해져 조심조심 거북이 운전을 시작했다. 눈이 와도 덜 미끄러지게 완전 깊은 골을 울퉁불퉁 파 놓은 골목길이었다.

 

천천히 낙산 정상을 지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동과 입구를 찾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파른 경사면에 조성된 단지인지라 지도상에서 붙어 있는 듯 보이는 동과 동 사이가 통로 대신 축대로 막혀 있었다. 예상보다 지연되기 시작하자 이번엔 얼음이 너무 녹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애초에 싱겁자고 먹는 아메리카노면 또 몰라도 아이스라떼 얼음 다 녹으면 그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고객은 빼꼼 열린 문 틈으로 별 말 없이 커피를 받아갔고 그제서야 몸과 마음의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콜은 이른바 '꿀콜'이었다. 대학로 소나무길 첫번째 배달했던 햄버거집에서 같은 소나무길 몇 걸음 안 떨어진 집으로 배달하는 건이었다. 전기자전거 허용 출력 상한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250W짜리 전기자전거로 한 시간 동안 낙산을 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5,000원 씩을 벌었는데 이번엔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배달하고 4,500원을 벌었다.

 

그러고 보니 그 햄버거 가게 앞에는 항상 민트색 배민라이더 스쿠터가 두세 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런 꿀콜을 잽싸게, 그것도 두 건씩 엮어 다녀야 그나마 의미있는 벌이가 가능해지는 거구나!

 

sphoto_2019-12-12_12-33-33.jpg

기피콜과 꿀콜

 

그렇게 첫째날은 혜화, 창신, 인사, 종로 3~6가, DDP를 돌며 8건을 배달했다. 클레임이나 사고 없이 38,500원 벌었다.

 

묶음배송은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낮 3시간, 저녁 1시간을 달렸으니 시급 1만원에도 못 미치는 성과였다. 15,000원을 번다는 초보자는 과연 언제 될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