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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겐신의 ‘4차원 정신세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문과 그의 출생,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봐야 한다.

 

 

하나, 우에스기 겐신의 불심(佛心)

 

다케다 신겐의 성장기는 불우했다. 아버지는 동생을  사랑했다. 결국 신겐은 아버지를 쫓아내고, 권력을 차지했다.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신겐과는  달랐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실수로 태어난 천재.”

 

라고 해야 할까? 겐신의 아버지 나가오 다메카게는 당시 성년을 훌쩍 넘은 장남이 있었다(바로 하루카게다). 늦둥이다. 어쩌다  돋아, 생각지도 않은 늦둥이가 나온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는  아니다. 전국시대 권력을 가운데 놓고, 부자지간, 형제지간에 골육상쟁의 쟁투를 벌이는 일은 흔했다. 그런 의미에서 늦둥이 겐신은 축복받은 경우다.

 

(일본 전국시대를 보면,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유명한 장수들도 어린 시절은 과히 행복하다고   없다. 다케다 신겐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면 어찌 되었을까.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는 친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편애의 무서움이랄까? 결국 이들의 인생에 유년기의 상처는 커다락 변곡점이  준다)

 

가문은 장남이 이을 테니까,  절에 들어가라.”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거성(훗날 자신의 본거지가 되는) 카스가야마산성(春日山城) 밑에 있는 린센(林泉)() 고승 텐시츠코우이쿠(天室光育)에게 맡겨졌다.

 

이때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있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관음대사에 대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어머니부터 시작해, 당시 명승으로 이름을 날린 스승까지! 그의 불심은 이제  누구도 건드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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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가야마산성(春日山城)

 

카스가야마 성의 주인이 되고   겐신은 카스가야마  안에 비사문(毘沙門), 스와(諏訪), 고마(護摩)   채의 () 짓는다. 스스로를 비사문천(毘沙門天) 환생이라 믿은(실제로 그렇게 믿는  같았다!) 그는 일반인의 입장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게 된다.

 

그는 전장에서 총알이 스쳐 지나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이유는 간단한데,

 

 비사문천의 환생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 정도면 거의 세뇌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전장에 나갈 때에도 대일여래(大日如來) 관음보살의 목상을 들고 다닐 정도로 불심이 깊었던 겐신. 여기서 개인적인 신앙에 대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종교가 ‘만들어낸그의 이상행동이다.

 

그가 비사문천의 환생이라 믿고, 전장에서 용맹과감한 행동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의 범주 안이다(죽지 않는다고 믿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러나 그의 종교가 그에게 강박적인 행동을 만들어 냈다는 거다.

 

나는 비사문천의 환생이다! 내가 내린 결정은 비사문천의 결정이고,  결정은 언제나 옳다!”

 

나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런 강박을 보였다. 1559 상경(上京)   그는 사카이에 들르게 된다. 곳에서 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여관 주인을... 죽인다. 문제는  이후다.

 

아무리 대영주라도 사람을 함부로 죽일  있는가?”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 겐신은     마을 주민들을 쫓아내고, 불을 지른다.

 

(그의 참모였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 농민들을 몰살한 일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자르고 ‘몰살이란 단어만 부각되는  같아서 전후 사정을 말한다면, 카네츠구의 부하 한 명이 농민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만  농민을 죽이게 된다. 농민의 가족들이 카네츠구에게 탄원을 하는데, 카네츠구는 이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죄인을 처단하고 배상하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배상금도 넉넉히 챙겨주고 범인도 처단했다. 문제는  가족들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거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해하겠지만, 죽은 가족을 살려내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카네츠구는 진지하게 ‘염라대왕에게 소송을 걸어 살려주겠다.’  말한다. 여기서 꼬리표가 하나 붙는데, 염라대왕에게 소송을 걸려면 소장을 전달할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다며 이들을 모두 죽여 버린 거다)

 

사카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쫓아낸  보면 우에스기 사고방식의 일단을 확인할  있다.

 

나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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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있지만, 그럴 때도 겐신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자기는 옳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행적 곳곳에서 확인할  있다. 다케다 신겐의 불의를 나열한 글을 신사에 봉납한  보라. 겐신은 자신이 ()임을 병적으로 확인하려 했고, 자신의 정의를 강박적으로 실천하려 했다.

 

지난 20 동안 북쪽 지방의 산야를 뒤덮는 명물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신은 신겐에게 싸움을 걸어오고는 했다.”

- 『대망』  발췌

 

신겐과의 전쟁은 피할  없는 숙명이라고 보긴 어렵다. 물론, 싸움에 내몰린 경우도 있지만,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도 겐신은 눈에 핏발을 세운  신겐에게 덤벼들었다.

 

하긴, 에치고(越後) 이곳저곳에 반란의 싹을 퍼뜨리고 계략과 모략으로 겐신의 부하들을 흔들어 반란을 일으키게   신겐이 아닌가? 아니,  이전에 겐신의 세계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상극(相剋) 존재가 신겐이었다.

 

(대표적으로 신겐과 내통해서 일어난 잇코 잇키 반란이나, ‘혼조 시게나가(本庄繁長) 반란을   있다. 혼조 시게나가는 우에스기에게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는데, 겐신의 무의미한 관동출병과 포상에 대한 불만을 품고 다케다 신겐과 내통하게 된다. 에치고 땅이 원래 ‘자유분방 모습을 보이는  사실이나 다케다 신겐의 계략과 부채질이 없었다면, ‘軍神이라 불리는 우에스기 겐신에게 쉽사리 등을 돌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겐을 무턱대고 욕할 수만은 없는 ,  당시 상식으론 우에스기 겐신이 특이한 경우고, 신겐이 상식이었다. 배신과 음모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정의 부르짖는 모습은...어쩌면 ‘철부지 모습이라  수도 있다)

 

깨끗하고, 담백한 ‘전투만을 말하는 겐신 앞에 계략과 외교로 사람 뒤통수를 때리는 신겐은 ‘ 자체였다. 가뜩이나 ‘독특한 정신세계 가진 우에스기 겐신이었기에 신겐에 대한 증오는  깊었던 싶다. 겐신은 악착같이 신겐과 싸웠다.

 

5차례에 걸쳐 싸웠던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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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나카지마가 신겐과 겐신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건 맞다. 겐신 입장에서도 북시나노는 에치고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여길 빼앗기면, 에치고가 위험해지기에 신겐과 맞붙을 수밖 없었다. 그러나  ‘전쟁 치러야 했을까? 10 이상  좁은 카와나카지마를 놓고 둘은 모든   걸고 싸웠다(4 카와나카지마에서는 둘이 칼을 뽑아 들고 싸울 정도였다).

 

문제는  전투를 통해서 둘이  얻었느냐이다. 기껏 키워놓은 정예 군사를  잃고(4 전투 때는   동원한 병력의 8 가까이를 잃었다), 딱히 전략적인 이득을 얻은 것도 없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귀중한 ‘시간 잃었다.

 

10 넘게 서로 싸우다 보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사이 오다 노부나가는 힘을 키우고, 일어설  있는 토대를 다질  있게 됐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동안 대마왕이 천하제패를 위한 힘을 키웠던 거다. 만약  시기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인(天下人) 자리에 오를  없었을 거다.

 

신겐이 5년만  살았더라면, 우에스기 겐신이 1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거란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다음 편에서 계속)